소설리스트

학사환생-1화 (1/171)

# 1

학사환생 001화

서장

쾅!

문이 쪼개지며 검은 무복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을 직감한 진현은 한숨을 내쉬며 붓을 내려놓았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

마교의 부활에 대비해야 한다고 그렇게나 주장했건만.

누구도 진현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무림맹은 불과 3년 만에 마교에게 모든 영역을 내주고 말았다.

“이곳까지 왔다면 이미 맹의 무인들은 모두 죽었겠군.”

상대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진현은 책상에 올려두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문득 쓴웃음이 지어진다.

검에 재능이 없어 붓을 들었건만 돌고 돌아 결국 마지막 순간엔 검이라니.

솨악!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려쳤지만 상대는 너무나도 쉽게 피해냈다.

자세가 무너진 진현을 향해 상대가 검을 휘둘렀다.

반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검을 진현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순간 진현의 뇌리를 스친 것은 살아온 일생 따위가 아니었다.

“……아름답구나.”

우습게도 진현은 상대의 검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내게 한 줌의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반평생을 학사로 살아오면서도 검을 놓지 않았던 진현의 마지막 넋두리였다.

다음 순간 차가운 칼날이 진현의 목을 베었다.

서걱!

* * *

“헉!”

진현은 신음을 토해내며 벌떡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진현은 목부터 매만졌다.

하지만 목은 멀쩡히 몸통에 붙어 있었다.

“……분명 나는 죽었을 텐데?”

칼날이 목에 닿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게다가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생 묵향과 종이 냄새에 파묻혀 살았던 진현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코를 찌르는 것은 지독한 술 냄새였다.

심지어 술 냄새는 진현의 입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장서각주가 참석한 회식에서도 술은 입에조차 대지 않았던 진현인데 말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진현이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방문이 열리며 어린 시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자님. 깨어나셨군요.”

아무리 뜯어봐도 진현의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누구지? 너는?”

시비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시비 난정이옵니다. 어서 채비를 하시지요.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시비는 진현을 준비한 의복으로 갈아입혔다.

진현은 다시금 의아함을 느꼈다.

‘떨고 있다. 어째서?’

시비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그녀는 진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

하지만 의문을 해소할 시간 따윈 없었다.

진현은 곧장 가주를 만나기 위해 방을 나서야 했다.

높게 솟은 전각들을 지나치는 동안 무인들의 힘찬 함성이 들려왔다.

무림맹이나 오대세가까진 아니더라도 이곳이 명문문파임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마침내 가주전에 당도한 진현은 가주와 만날 수 있었다.

서류를 검토하는 중년인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헙!”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삼키는 진현이었다.

중년인은 천씨세가의 전대가주 천무흔이 분명했다.

‘이럴 수가? 천무흔은 마교와의 전쟁에서 죽고 그의 둘째 아들 천신혁이 가주가 되었는데?’

심지어 눈앞의 천무흔은 무척 젊어 보였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사십 대 초반.

진현이 천무흔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과 달리.

천무흔은 진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조만간 남궁세가에서 사람을 보내올 것이다. 방문목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그렇게 말하는 천무흔의 얼굴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알았거든 그만 물러가거라.”

충격에 빠진 채로 가주전을 나선 진현.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청년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형님!”

진현은 천무흔을 봤을 때보다 훨씬 놀랐다.

진현이 기억하는 모습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이긴 했지만 확실했다.

청년의 이름은 천신혁.

천씨세가의 이공자이자 천무흔의 뒤를 이어 차기 가주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천신혁이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지만 천신혁은 전혀 어색함 없이 진현을 대했다.

“술 냄새! 그렇게나 금주하라고 말씀드렸는데 또 과음하시다니요.”

천신혁은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몰랐다.

“저라고 형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평생 술독에 빠져 사실 수는 없잖습니까? 부디 아버님과 세가의 무인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만 마음을 정리하십시오.”

물론 진현은 천신혁의 말을 곱씹을 겨를조차 없었다.

죽었던 자신이 어째서 살아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아직 풀지 못했기에.

자신을 지나친 천신혁이 가주전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이나 진현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문득 진현이 물었다.

“나는 누구지?”

진현은 시비 난정을 돌아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알고 있을 거 아냐. 내가 누군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시나요?”

“그래. 그러니까 말해. 내가 누군지.”

난정이 진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천씨세가의 대공자이십니다.”

“대공자?”

뒤늦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천씨세가의 대공자로 태어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은 인물.

천신우.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진현은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크윽!”

“괜찮으신가요?”

부축하려는 난정을 밀쳐내며 진현은 비틀거렸다.

뚝뚝.

코피가 흘러내렸다.

아찔한 현기증이 몰려오는 가운데 망막에 무수한 광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천씨세가 대공자 천신우의 시점에서 바라본 기억들이었다.

천신우가 20년의 일생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

심지어 울고 웃고 분노하고 좌절했던 모든 감정들까지도.

고스란히 진현의 머리에 각인되고 가슴에 새겨졌다.

비로소 진현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10년 전의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이제부터 진현이 아닌, 천씨세가 대공자 천신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안 계신가요? 의원님을 불러주세요! 대공자님이 피를……!”

진현은 허둥대는 난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증이 사라지고 감각이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여전히 술이 깨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제정신일 때보다 감각이 날 서 있음을 느낀다.

‘……이게 재능이구나.’

지난 삶에서 그토록 갈구했으나 갖지 못했던 재능.

그걸 천신우는 갖고 있었다.

그러고도 낭비했던 것이다.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천신우의 모든 것을 알게 된 진현이다.

천신우가 좌절하고 하루하루를 술독에 빠진 원인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납득이 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주어진 재능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하긴 못할 것도 없지.’

정확한 내막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현은 누가 뭐래도 천신우였다.

망나니로 살다가 비명횡사한 천신우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마교에 멸망할 무림의 운명까지도.

뜨거운 햇살 아래 진현은 몇 번이고 되새겼다.

‘나는 천신우다. 천씨세가 대공자 천신우.’

그렇게 스스로에게 각인시킨 진현이 향한 곳은 처소가 아니었다.

‘7년 후 마교의 준동에 대비하려면 강해져야 한다.’

전생에서 무명학사 진현은 마교의 준동을 예측하고도 막지 못했다. 무림맹 장서각을 습격한 마인의 검 또한 당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7년의 시간과 강인한 육체가 주어졌으며.

거기에 천씨세가 대공자라는 신분까지 손에 쥐었다.

진현은 눈앞의 현판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보았다.

‘천무각.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천무각은 천씨세가에서 무공비급을 보관하는 건물. 힘을 추구하는 진현에게 이보다 알맞은 장소는 없다 해도 무방했다.

“공자님?”

천무각을 지키던 무인들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진현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현은 천무각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더 이상 무명학사 진현이 아니라 천씨세가 대공자 천신우였다.

그것은 천무각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천신우가 천무각 안으로 사라지고 나자 무인들은 서로를 돌아봤다.

“드디어 대공자께서 마음을 다잡으신 건가?”

“아직 몰라. 이번 일이 있기 전에도 천무각에서 한 시간을 버티지 못했잖아.”

천씨세가의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들어가길 꿈꾸는 천무각.

그럼에도 정작 그 권리를 갖고 태어난 천신우는 천무각을 드나든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 시간, 두 시간…… 급기야 밤이 깊고 달이 뜨도록 천신우는 천무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 *

진현, 아니, 천신우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천무각을 돌아보았다.

지난 삶에선 갖고 싶어도 갖지 못했고,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던 무공비급들이 눈앞에 널려 있었다.

‘못난 놈.’

원래 몸의 주인을 향한 비난이었다.

‘재능과 기회. 모든 걸 갖고 태어났음에도 스스로 걷어 차버리다니.’

물론 받아들일 재능이 없다면 무공비급은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신우의 몸을 차지한 진현이 아예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무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몸으로 익힐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무재를 갖춘 육체가 주어진 것.

게다가 그에겐 장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엄청난 끈기!

학사로 반평생을 살면서도 검을 놓지 않았던. 재능이 없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끈기가 지금 발휘되고 있었다.

‘일단은 심법부터.’

사라락.

비급을 넘기는 천신우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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