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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문인간 정시하물 직교생사상허 (43/43)

제10장 문인간 정시하물 직교생사상허

문인간 정시하물 직교생사상허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과 사를 함께 하게 만드는가? 

아프다.

 송현은 처음으로 겪어 보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검에 찔려서 입은 상처도 때문에도 아니었고, 차디찬 돌바닥에 쓰러지면서 받은 충격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서희의 그 차가운 눈 때문이었다.

  왜냐고, 송현의 눈이 왜 그랬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끝내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러나 송현은 그녀가 들고 있는 검끝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모질게 몸을 돌리는 와중에 그녀의 뺨 끝에 걸리 는 희끗한 물방울도 보았다.

  '그래, 그거면 되었어. 그럼 된 거야!'

 비로소 송현은 안심하며 밀려오는 잠에 취하려 했다. 

  철썩!

  불에 덴 듯한 화끈한 통증에 가물거리던 송현의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

  "이 자식이 어디서 먼저 죽으려고 어서 정신 차리지 못해!"

 영호인이었다.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남은 영호인이 울먹이며 송현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있었다. 한쪽에는 저승사자가 한쪽은 영호인이 송현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듯 했다.

  "가려면 나를 죽이고 가라! 너 혼자 이렇게는 못 보내!"

 영호인의 악다구니에 송현은 맥없이 웃었다. 그리곤 피를 절은 손을 들어 영호인의 손등을 잡았다.

  "호인...... 난 할 만큼 했어...... 뒤를 부탁하네...... 그러고 그녀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마지막 유언인양 하는 말을 들으며 영호인은 비명을 질렀다.

  양명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고 막여위는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백여 명의 무림인들은 자신들의 구명지은인 송현의 허무한 죽음에 숙연해졌다.

  그때, 당천악이 성큼성큼 다가와 영호인에게서 송현을 빼앗았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송현을 눕힌 당천악은 예사롭지 않은 가슴의 상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극무해의 기운을 파해하는 파륜검을 찾아냈군!"

 번개 모양을 남기는 독특한 검흔을 보고 당천악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내 손녀딸의 후견인이 그냥 이대로 죽도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후욱! 당천악이 손바닥을 칼로 그어 피를 내더니 송현의 상처에 대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기겁한 영호인이 달려들 태세를 하자 안후명이 만류했다. 

"기다려 보시오. 그가 해치려는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니."

 안후명의 말대로 당천악은 비지땀을 흘리며 송현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송현의 가슴 주변에 어떤 기운이 빠져 나오지 못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가슴속에 작은 짐승이 숨어 있는듯 이리저리 요동쳤다.  그러나 결국 당천악의 기운을 피하지 못하고 그물에 잡힌 짐승 마냥 그의 손으로 딸려 들어갔다.  

  "크헉!"

 송현의 상처에서 손을 떼어낸 당천악은 안색이 창백해 져서 뒤로 물러났다. 마치 한걱울 눈에 덮인 사람처럼 온 몸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주군!"

 그의 수하들이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다. 

  “하아, 하아! 내 너희들을 거두었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하는구나. 이 후로는 소혜 저 아이를 따르거라. 그래서 내가 당문에 지은 죗값을 조금이라도......”

  당천악의 신형은 이내 얼음으로 변해 버렸다. 한 많은 미련은 당소혜를 마지막으로 보려는지 그녀를 향해서 고정된 모습이 었다.

  "할아버지?”

 당소혜가 천천히 얼음으로 변한 당천악에게 다가와 마 치 자신을 안아보려 하는 것처럼 웅크린 그의 품에 안겼다.

  똑!

 그녀의 빰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 내렸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인간의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당사륭이 독정을 처음 만들 때 유일하게 실패 했던 독인지화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통정이 었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느끼고 그 아픔을 깨닫고 사랑하고 살며 웃고 슬퍼할 줄 아는 것이 바로 독정의 진정한 완성이었다. 당사릉이 자신의 작품이 완성된 모습을 보았다면 어 펐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당소혜는 당천악의 품에서 빠져나와 송현에게 안겼다.

  그녀의 눈물이 피로 얼룩진 송현의 앞설을 적셨다. 당소혜의 마음이 그녀의 진원지기가 송현의 잠들어 있는 무극무해를 일깨웠다.

  '아빠, 아빠 소혜는 무서워요. 가지 말아요. 나를 두고 가지 말아요!'

 당천악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점점 차가워지는 송현의 싸늘한 육신에 매달린 당소혜의 울음은 영호인과 양명, 막여위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친 구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그들에게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하!"

 그때 갑자기 광장을 울리는 웃음소리에 군웅들의 시선 이 진원지를 향해 움직였다.

  "아니?”

  "저, 저자가 왜?“

  군웅들은 웃음의 주인공을 보는 순간 혼란에 빠졌다가 그리고 당천악을 배후에서 조정하고 무림을 이간질하여 도탄에 빠지게 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닫는 순간 분노에 휩싸였다.

  “남궁연, 이 간악한 놈!"

 광장은 어느새 남궁세가의 고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남궁연의 곁에는 아직도 송현의 피가 묻어 있는 파륜검의 주인 남궁서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 이 비열한 계집! 송현이, 너를 얼마나 아쪘는데,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핏발 선 눈으로 남궁서희를 노려보는 던 영호인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남궁서희에게 악을 써댔다.

  남궁서희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려 했다.

  온갖 저주를 다 퍼부어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영호인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었다.  

  "이 중원에서 남궁세가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분노에 휩싸인 군웅들은 지치고 내력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분연히 일어섰다.

  위기의 순간이 되자 문파와 지위 고하를 구분하지 않고 군웅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힘을 합쳤다. 그것이 의외였던지 남궁연은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하하, 이거야 원 곧 죽을 놈들이 발악을 하는 구나. 네놈들은 불량품이라서 실험에 사용도 못하는 것들이 라서 어차피 폐기처분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구나."

  남궁연의 간악한 언사에 안후명이 소리쳤다.

  “그대는 천벌이 두렵지도 않소? 남궁연 가주. 그래도 한때는 당신을 존경했던 내가 부끄럽기 짝이 없군. 이제 그대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알려졌으니 두렵지 않은가? 이제라도 강호의 무림 동도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

  장대한 기골의 안후명을 보며 남궁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냐, 네놈은?"

 자신의 존재를 몰라보는 남궁연 때문에 안후명은 얼굴 이 붉어 졌다. 심통이 날 대로 난 안후명은 악다구니를 쓰며 남궁연을 자극했다. 

  "그걸 눈이라고 달고 다니는 거냐? 개방의 안후명이다. 이 대협도 몰라보는 남궁연은 썩은 동태눈깔을 지녔구나!"

  걸쭉한 입담이야 개방을 따를 자가 누가 있겠는가? 이 위기의 순간에도 군웅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안후명의 욕설에 남궁연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오호, 개방의 떨거지들이었구나! 잘 되었군.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강호행을 나서지 전에 적당히 실험해 볼 대상이 필요했픈데 강호에서 이름 쾌나 날린다는 네놈들 이면 적당하겠지."

  남궁연이 남궁소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키지 않아 했다. 이에 남궁연의 눈이 매서워지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작은 종을 꺼내 들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의 작은 입술이 달싹이며 천축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들려오자 군웅들은 몸을 떨었다. 모두들 그 끔찍한 방울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기 패문이었다. 영호인마저 방울 소리에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설 정도였다. 안후명 역시 많이 사정을 몰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견후 안후명이라더니 자네는 친인의 냄새도 못 맡나 보지?"

  남궁연의 비릿한 미소를 보자 안후명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은 딱 들어맞았다. 남궁세가 고수들의 뒤에서 나타난 기괴한 짐승의 머리에는 자신도 잘 아는 이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 부처님! 공자님!"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은 안후명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건 악몽이야!" 

 그건 안후명 만의 악몽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던 백여명의 군웅들은 저마다 침음성을 흘렸다.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구파일방 중 하나인 개방의 방주이자 무림의 대명숙인 구걸신개 철밥통이었다. 그와 안명이 있는 이들은 차마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크르륵!"

 입가로 침으로 보이는 체액을 흘리는 괴수는 종소리가 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 그럼 제 잘난 스승하고 해후하도록 하거라!"

 남궁면의 조롱 려인 비웃음이 끝나자 괴수의 몸에서 수 십 개의 촉수가 군웅들을 향해서 날아갔다.

  "피해라!"

 다급하게 경고성을 발했지만 기력이 쇠잔해진 군웅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촉수에 매달려 끌려갔다.

  "사, 살려줘!"

 끌려가는 군웅들을 향해 그나마 상태가 나은 이들이 검 을 고쳐 잡고 휘둘렀다. 그러다 오히려 다른 촉수에 당하는 이들이 속출하자 순식간에 광장은 아비규환이 되어 버렸다.  그 가운데 넋을 읽고 멍하니 체념한 채 주저앉아 있던 안후명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스승이 괴물로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혼미한 상태에서 괴물로 변한 스승이 군웅들을 먹어 치우는 모습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가운데 안후명의 눈에 송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당소혜가 들어왔다. 그리고 소림사에서 괴수들을 상대로 잘 싸우던 당소혜의 신위도 떠올랐다.

  번쩍!

 정신을 차린 안후명이 벌떡 일어나 당소혜를 향해서 뛰어갔다. 당소혜를 안아서 일으킨 안후명이 괴수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도리질 할 뿐 도무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송현뿐이었다. 그런 송현의 숨결이 가늘어지고 있으니 당소혜로서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답답해진 안후명이 윽박지르고 하소연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광장은 비명과 절규로 가득 찼고 피로 얼룩지고 있었다.  벌써 스무 명의 군웅들이 오체분시 되어 참담한 죽음을 맞이했다.

  “네 다른 삼촌들도 잘못하면 모두 죽어! 너만이 사람들을 구할수 있단다. 네 아버지도 이런 것은 원치 않을 거야!"  

  안후명의 설득이 통했는지 눈물을 젖은 당소혜가 송현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정말?“

   당소혜가 관심을 보이자 안후명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다.

 "내가 아빠를 꼭 살려줄게 그러니까 너도 사람들을 구해주렴."

 안후명의 절박한 눈길에 담긴 진심을 느꼈는지 당소혜는 그 작은 입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소녀를 앞세우는 안후명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미 안후명은 당소혜를 독정이니 뭐니 그런 틀에서 벗어나 송현의 딸로서 인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녀를 인간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거지 삼촌 약속한 거야?"

 안후명은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얼굴이 환해진 당소혜가 두 팔을 벌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만해!"

 어린 소녀의 당찬 외침이 광장에 울리는 동시에 검은 독무가 군웅들을 잡아끌던 촉수를 단숨에 녹여 버렸다.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괴수에게 남궁서희는 다급히 종을 울렸다.

  종소리에 힘을 얻었는지 괴수는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괴수의 발치에도 못 미치는 당소혜의 모습은 그야말로 너무나 나약해 보였다.

  군웅들도 그런 광경에 경악했지만 이내 안후명의 외침으로 모두들 탈주를 시작했다.

  "자,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모두 밖으로 도망치세 요! 서두르십시오. 밖에 나가시면 개방의 방도들이 도착해 있을 겁니다. 어서요!"

 군웅들은 어린 소녀의 도움으로 등을 보이고 도망친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신위를 믿고 몸을 움직였다.

  협의라는 것 때문에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군웅들 도 안후명이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설득 에 하나 둘 움직였다.

  남궁세가의 고수들이 막으려 했지만 당천악의 수하인 흑의의 고수들이 길을 터주었기에 군웅들은 무사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사태가 예상외로 급변하자 남궁연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을 봤나. 저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 이냐 모두 없애버려! 어서!"

 길길이 날뛰는 남궁연의 명령을 받은 남궁세가의 고수 들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당소혜의 차가운 눈빛이 닿는 곳이면 남궁세가의 고수들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맙소사! 저 아이는 독정지화?”

  남궁연 그제 서야 당소혜의 정체를 눈치 채고 경악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독정은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남궁연의 서슬 퍼런 질책에 남궁성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의 몸에서 빼낸 독혈은 결국 미완성으로 판명이 났다. 그래서 그녀가 사라졌어도 찾지 않은 것이다. 이미 필요한 것은 모두 얻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독정은 실패한 것이 아니고 미완성인 상태였고 그것을 송현이 사랑과 보살핌으로 완성 시켰을 거라고는 그들로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쏴아아아!

 검은 독무가 남궁세가와 군웅들 사이에 벽을 만들자 더 이상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뜻밖의 사태fl 당황한 남 궁연은 이를 악물었다.

  "흥! 이 남궁연이 꼬마 계집이나 상대하게 될 줄이야!"

 이마에 굵은 힘줄을 드러내며 광장으로 내려서자 남궁 세가의 고수들이 뒤로 물러섰다.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내려선 남궁연의 주변으로 바람이 일어났다.

  양 손을 교차시키며 원을 그리니 무시무시한 기세가 일어났고 끌어 모은 내력을 앞으로 내치니 독무로 만들어진 벽이 크게 요동치며 흐트러졌다.

  "세상에!" 

안후명은 남궁연의 무공이 크게 진일보했음을 알고 경악했다. 그리고 피부를 따갑게 만드는 요상한 기운이 소림사에서 공지대사가 보여 주었던 기세와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역시 저자가 모든 참극의 원인이었구나!"

 무극무해를 중원에 퍼트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남궁연이었다.

  안후명은 확신했다. 자신의 무공 수위는 떨어지지만 상대의 무공을 가늠하는 특별한 눈을 가진 안후명은 공지대 사보다 남궁연의 사이한 무공이 훨씬 더 안정된 상태라는 것을 직감했다.

  "위, 위험해!"

 안색이 급변한 안후명이 당소혜를 향해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남궁연의 쌍 장이 앞으로 힘차게 내 뻗는 중이었다. 

 쿠궁!

 "꺄아악!" 

  벽을 때리는 큰 충격파와 함께 당소혜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혜야!" 

눈물범벅이 된 안후명이 흩어진 독무 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당소혜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 예쁘고 곱던 얼굴에 피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후명은 속이 뒤틀렸다. 자신의 실력이 모자람을 통탄한 안후명의 분을 참지 못하고 봉을 잡으려 하자 송현을 업은 영호인이 그를 잡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오. 우선 피하고 봅시다."

 영호인의 말이 틀리지 않기에 안후명은 자신의 분노를 접어두고 당소혜를 들쳐 업었다. 남궁연과 당소혜의 힘이 충돌한 여파로 광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덕분에 안후명과 영호인등은 무사히 광장을 빠져 나을 수 있었다. 한참을 도망치던 안후명은 위에서 내려오는 인기척에 긴장했다. 그러나 이내 친숙해 보이는 복장을 발견하자 기 뻐했다.

  "노도 장로!"

 개방의 장로들이었다. 오늘처럼 개방의 거지들이 반가운적은 영호인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입니까? 소림에 이어 이 먼곳까지, 가는 곳마다 말썽이니 안심이 되지 않아요."

 노도 장로의 잔소리도 더없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때 저 아래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괴성이 들려 왔다. 안후명의 눈빛도 동시에 사나워졌다.

  "제가 부탁한 것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안후명의 음성이 급변하자 장로들은 깜짝 놀랐다. 안후 명이 재차 재촉하니 장로들은 마뜩치 않아 하면서도 서둘러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대나무 통에 검은 심지들이 길게 나이 었다.

  "흥! 어디 맛 좀 보거라!" 

화섭지를 이용해서 대나무 통에 불을 붙인 안후명은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 떼굴떼굴 굴러가면서도 심지는 꺼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설마 화탄?"

  황궁에서 본 적이 있는 화탄과는 다르지만 심지가 타들 어가는 모양이 비슷했다. 그런 영호인을 향해 안후명이 씨익 웃어보였다.

  "자, 뭐 빠지게 달려 봅시다. 이제 저 아래는 놈들은 벼락 맛 좀 볼 겁니다."

  아연 실색한 영호인과 양명, 막여위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제일 억울한 것은 허겁지겁 먼 길을 내려온 오대장로였다. 쉴 틈도 없이 다시 내려왔던 길을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져온 화탄이기에 자루 가득히 있던 화탄이 모두 불이 붙어 아래로 굴러갔으니 그 위력이 어떠할지는 충분히 알기에 오대장로는 내력을 두 다리에 모두 쏟아 넣었다.

  잠시 후, 등 뒤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 졌다.

 둥!

 처음에는 작은 울림이었고 그것은 점차 크게 퍼져 나갔다. 

 두드드드! 

이윽고 전체가 흔들리며 곧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너나 할 것이 사력을 다해서 경공을 시전했다. 바람처럼 날아서 계단을 빠져나간 안후명 일행은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거세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들어왔던 출입구로 빠져나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때 충격으로 벽이 허물어지며 절벽이 드러났다.

  “헉!"

 밖을 내다본 오대장로 중 육장로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천 길 낭떠러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높았다. 그 아래로 흐르는 유수가 너무나 시려 보였다.

 투두둑!

 균열이 시작된 동굴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뛰어내립시다."

  안후명의 외침에 오대장로는 기겁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소방주, 우리는 아직..... 으아악!"

  돌아서는 장로들의 등을 민 안후명은 당소혜를 꼭 끌어 안은 뒤 뛰어내렸다. 그 뒤를 이어 송현의 몸을 자신과 단단히 동여맨 영호인과 양명 막여위가 뛰어내렸다.

  그 직후 균열을 견디지 못한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백리협 계곡에 때 아닌 비명인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졌다. 

충격!

 중원 무림은 한 가지 소식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과거 소림의 참극과 중원 무림에 불어 닥친 불행의 원흉이 바로 남궁세가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송현이 그토록 원치 않았던 무극무해의 존재 또 한 강호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안후명의 노력으로 개랑의 거대한 정보망이 무 극무해의 나쁜 점만을 부각시켰게에 우려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즉, 무극무해가 신비의 무공 비급이 아닌 마서로 인식이 된 것이다 거기에는 백킬협의 지하 뇌옥에 갇혔던 군웅들이 각 문파로 돌아가고 들은 것들을 사실대로 알린 것도 한몫했다.

  또한 구걸신개 철밥통 마저 괴수로 변했고, 소림의 공지대사 역시 그 마서에 미치고 안았다는 비통한 소식에 중원 무림은 무극무해를 마서로 한정 짓고 반드시 폐기하도록 의견을 일치 했다.

  그리하여 무림 역사상 세번째 정파연합이 결성되었고 진인을 수장으로 삼아 천여 명의 정파인들은 무당의 유 남궁세가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정파연합군이 남궁세가를 찾았을 때,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텅 비어 버린 폐가뿐이었다.

  남궁세가가 자취를 감추자 무림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리하여 무림맹 모인 강호의 지도자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자 머리를 맞대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으니 그들의 시름은 더 깊어만 갔다.  

  무림맹의 맹주 곽무헌의 집무실에는 각 문파의 장문인 들이 모여서 사공혜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전해 듣는 장문인들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럼 곽무헌 맹주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는 건가?“

  화산의 장문인이 크게 걱정을 하자 사공혜미는 오히려 화산일검 악소군의 안위를 걱정했다.

  "곽무헌 맹주의 실종과 화산일검 악소군의 실종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미파의 정인 사태와 청성파의 장문인 역시 오광효 대인의 수하였던 기삼이라는 작자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에 모두 사라졌고요. 물론 그 배후에는 남궁세가가 있음 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광효 대인이 말미를 주며 저와 약조는 하였지만 관리들의 약속을 믿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들리 는 소문에 의하면 열하 근처의 이명운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조정의 군대가 중원을 향한다는 사공혜미의 말에 장문 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중원 무림에 가장 무서운 악몽은 조정의 탄압이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무림의 고수들이 라고 해도 몇 만의 군대를 당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점창의 장문인이 당황하여 호들갑을 떨자 무당의 유 진인이 일어섰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너무 조급하여 눈앞에 놓인 길을 못 찾고 있는 듯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그는 빙긋이 웃어보였다. 그는 그렇게 웃어 보인 뒤 한 사람을 불렀다.

  아직도 얼굴에 야위었지만 기력을 많이 회복한 영호인 이었다. 장문인들에게 예를 올린 영호인은 자신이 황궁에서 오광효 대인과 나누었던 말들과 자신이 조사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설명하였다.

  사공혜미는 그의 세밀한 조사에 크게 탄복하였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궁세가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야욕이 숨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건만 알았고 그 배후가 궁금하여 사람을 붙였을 뿐입 니다.”

   주도면밀한 영호인에게 각파의 장문인들은 무당을 칭찬했다. 유 장문은 그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해 했다.

  “그들이 소주에 비밀 거점을 만든 것은 무림맹의 세력을 흡수하기 위함이었고 십대상방 중 휘상과 손을 잡았던 이유는 휘상의 교통을 이용하여 천하 각지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구하고 운송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궁세가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른 장문인들은 그 간악함에 크게 놀랐다.

  "그 동안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남궁세가의 흔적은 휘 상의 상단들이 이용하는 상로를 따라서 세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영호인이 지도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으며 남궁세가의 세력이 어떻게 확대되었는지 설명하자 장문인들은 경악 했다.

  그 규모가 실로 방대하기가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몰랐지만 휘상이 천하 각지에 쉽게 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남궁세가의 무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휘상의 경쟁 상단을 무참하게 살육했고, 그 때문에 휘상은 쉽게 타 지역을 상권을 점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남궁세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천하 각지에 남궁세가의 세를 넓힐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사살에 장문인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천하 각지에 남궁세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지도를 들여다보던 사공 혜미는 두려움에 떨었다.

  "맙소사! 남궁연이 노린 것은 중원이 아니라 바로 천하 였군요!"

 사공혜미의 말에 다른 장문인들도 남궁연의 야욕이 얼마나 컸는지 비로소 이해하고 경악했다.

  "그렇습니다. 남궁연이 노린 것은 바로 천자의 자리입니다.“

  영호인이 힘주어 말하자 실내는 정적에 빠져 버렸다.

  무거워진 실내 공기에 영호인은 내키지 않는 말을 더 해야만 했다.

  "총군사의 말대로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오광효 대인은 중원을 말살하고 말겁니다."

  중원 무림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음을 깨달은 장문인들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사공혜미는 영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만한 조사를 하셨으니 해결책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공혜미의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영호인을 향했다.  영호인은 사공혜미의 혜안에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총군사로군요. 저는 그간 모은 이 자료들을 통해서 남궁세가의 핵심을 찾아냈습니다."

  영호인의 확신에 찬 말에 장문인들은 눈빛을 빛냈다.

   영호인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모든 시선이 그의 손끝을 쫓아갔다. 손가락은 지도의 한 지점 위에 바둑돌을 올려놓았다.

  그곳은 안휘성이었다. 천하 십대상방 중 휘상의 본거지이기도 한 곳이다.

  "천하제일상방 휘상이 바로 남궁세가이며 남궁세가가 곧 휘상이었습니다."

 영호인의 확신에 사공혜미가 크게 놀랐다.

  “반간계!"

  적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천하제일의 병법이었다. 모두들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마냥 감탄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 다 그 즉시 각 문파는 대기하고 있는 정예 고수들을 이끌 고 안휘성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아낙들이 밥그릇을 들고 나와 개울물에 씻는가하면, 세수하는 이도 있는,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의 지명은 흥춘.

  수양버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호숫가에 펼쳐진 아름다운 그늘이 남호의 풍경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있었다.

  안휘성 황산 남쪽의 작은 마을 흥춘.

 오래 되어 보이는 집들이 수백 채가 모여 있는 이 마을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휘상에서 청춘을 바친 노상인들의 말년위해 지은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을의 역사는 북송 때부터 시작되어 휘상이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지금 십대상방 중의 하나인 휘상의 본거지로서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었다.

  흥춘, 즉 부유한 마을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는 빈곤함 대신 풍족함으로 가득 했다. 마을의 가옥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라도 하려는 것처럼 모두 대저택들뿐이었다. 고관대작의 저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 마을 저택들 중에서도 가장 큰 저택인 승지당을 수백의 무림인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릇을 씻던 아낙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금세 점혈 당하여 입만 벌린 채 조용히 끌려 나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중당' 이라불리는 큰 대전이 있는데 기이하게도 아주 높은 천정이 중간 층계 없이 한가운데가 사각형으로 터져 있었다. 그 안으로 햇살이 들어오니 달리 조명이 필요 없었다.

  중당 안으로 형형색색의 무림인들이 기척을 죽이고 들어섰다. 하나 같이 몸이 가볍고 날쌘 것으로 보아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흥춘의 전통 가옥은 벽을 높이 세우고 문을 작게 낸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구조다. 창문을 내지 않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지붕에 구멍을 냈다고 하는 설도 있고 남자들이 상행을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늘 마을에는 여자와 노인, 아이들만 남게 되자 자위 수단으로 저택들을 이렇게 지었다고들 하지만 무림인들의 눈에는 더 없이 훌륭한 요새처럼 보였다.

  제아무리 많은 적들이 쳐들어와도 진입로가 하나뿐이 어서 공략이 쉽지 않은 요새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안에 갇히는 날이면 지붕에서 화살 세례라도 이어지면 몰살당하기 딱 알맞았다. 이를 눈치 챈 정파연합군은 지붕으로 사람들을 올려 보내 천정을 지키게 했다.

  드넓은 중당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당황한 것은 정파 연합의 고수들이었다. 더 이상의 수색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철수하려는 순간, 마룻바닥이 진동했다.

  "적이다!"

 격한 외침과 동시에 대청마루가 주저앉았고 밖에서도 화살세례가 이어지며, 중원 무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로 같은 가옥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궁세가를 상대로 정파연합은 불을 지르는 것으로 대항했다. 치고 빠지는 남궁세가의 공세에 희생이 늘어나자 이를 치켜보던 사공혜미가 화공을 명한 것이다.  

  전통을 자랑하던 가옥들은 금세 불길에 타올랐고 정파 연합의 고수들은 마을을 에워싼 채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는 남궁세가의 식솔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공혜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잘 풀리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불안한가요, 총군사?“

  영호인이 걱정이 되어 물어 보니 사공혜미는 손톱을 물어뜯던 것을 멈추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쉬워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영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공혜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이 정도에 당할 남궁세가가 아니란...“

  두드드드! 

 사공혜미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불길 한가운데 땅이 치솟아 오르며 흙비가 내렸다. 마치 분화구가 터져 용암이 흐르듯 흙더미가 주변을 덮치며 불길을 꺼버렸다.

  그리고 거대한 산처럼 솟아오른 언덕 위에 남궁세가 일족이 오연하게 서 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군웅들의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남궁연! 그대를 무림 공적으로 선포했다. 그러니 순순 히 무림맹의 부름에 응해라!"

 안후명이 남궁연을 향해 고함치자 상대편에서는 조롱섞인 야유만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안후명의 이마에 주름이 늘자 저택을 둘러싸고 있던 개방의 방도들이 백리협에서 선보였던 대나무 화탄을 꺼내어 언적을 향해 굴릴 태세를 갖췄다.

  모두들 화섭지에 이미 불을 당긴 상태였다. 

 "흥! 남궁연 그대가 아무리 하늘을 나는 무위가 있어도 화탄을 당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순순히 포박을 당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무림맹으로서는 남궁연을 죽이지 않고 체포해서 오광 효에게 넘겨야만 보다 많은 실익을 챙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죄인을 처벌해야만 무림의 기강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하! 그까짓 화탄 따위에 겁을 먹을 내가 아니다. 그리고 과연 화탄을 내게 던질 수 있을까?“

  남궁연이 손짓을 하자 수하들이 포박당한 사람들을 끌고 나왔다. 끌려나온 이들을 보고 군웅들은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었다.

  맹주 곽무헌, 아미파의 정인사태, 형산파의 장문인 등 이 끌려 나와 무릎을 꿇리자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떤 개방도는 너무 놀라 화섭지를 눌러 꺼버렸다. 모두들 미약이 중독되었는지 전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렇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뒷짐을 지고 나오는 노도태감을 보고 사공혜미가 부르르 떨었다.

  "네놈이!"

 껄껄껄 웃으며 군웅들을 조롱한 노도태감이 얼굴을 매 만지자 놀랍게도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굽었던 허리가 펴지고 주름이 사라진 청년이었다.

 “남궁성현!"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특히나 사공혜미는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음을 깨닫고 통탄했다.

  "후후후 억울한가? 오래전부터 우리는 황궁에 사람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오광효의 기삼이라는 충복 노릇을 한 지도 십 년이 넘었지. 덕분에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정파연합을 반 토막 낼 수 있었지."

 각 문파를 돌며 거짓 문서로 곽무헌을 유인한 남궁성현 은 몇몇 문파를 더 돌며 그들의 탐욕을 이용하여 손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의 말대도 지금의 정파연 합군은 반쪽짜리 연합이었다.

  득의한 남궁현이 인피면구를 아래로 내던지자 남궁성 현은 광오하게 외쳤다.

  "오늘부로 중원 무림에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는 사라 지고 오로지 남궁세가만이 남게 될 것이다. 크하하하!" 

  남궁성현의 손짓에 언덕의 구멍에서 괴수들과 구마강 시들이 튀어나왔다. 개방의 방도들은 안후명을 보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화탄을 날리자니 무림맹주를 비롯하여 각파의 수장들이 위험하고 그대로 두자니 괴수에게 연합군이 당하게 생겼다.

  안후명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갑자기 곽무헌이 악을 썼다.

  "화탄을 써라!"

 어떻게 정신을 차렸는지 몰라도 곽무헌은 분명한 발음으로 외쳤고 이를 악다문 안후명이 손을 높이 들었다.

 "좋아, 오늘은 악귀가 되어 주마 대신 남궁세가 놈들을 모두 데리고 간다."

  안후명의 신호를 받은 개방의 문도들의 대나무 화탄에 불을 붙여 아래로 굴렸다. 분지의 언덕에서 거미 떼처럼 기어 나오는 괴수와 강시들을 향해 대나무 화탄들이 맹렬 하게 굴러갔다.

  "화탄이 터진다!"

 군웅들에게 경고한 개방의 문도들이 재빨리 뒤로 빠지자 정파연합의 고수들도 분연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후 천지를 개벽하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지축을 울리며 사방에 흙비를 내리게 만들었다. 

 열 차례 이상 커다란 폭음이 이어졌고 이런 엄청난 폭발 속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모두 믿었다.

  "크르르르!"

 그러나 메케한 연기가 가시기도 전에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괴성에 정파연합의 고수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이 정파연합의 희망을 꺾고 있었다.

  "으아악!"

 도륙! 

한마디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도검불침인 피수들에 게 절정의 고수들이 펼치는 가공한 무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괴수 하나에 수십 명이 합공을 했지만 결국 반각을 못 버티고 쓰러져 갔다. 장문인들 조차 연수 합격을 통해서 겨우 평수를 이루는 정도였으니 말할 필요가 없었다. 쉽게 승리하리라 여겼던 정파연합은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총군사! 피해야 합니다."

  싸움의 승기가 기울자 영호인이 사공혜미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모로 저었다.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뒤에는 이명운 장군의 군대가 지키고 있고 앞에서는 남궁세가의 괴수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 강호는 끝장이에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사공혜미는 의욕을 잃고 주저앉았다. 영호인은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 헛웃음을 토해 냈다.

  "강호에 사는 이가 목숨을 귀히 여겨서 뭐하리!"

 어느 방랑무사의 넋두리를 읊어본 영호인은 검을 꺼내 들고 괴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송현, 이 친구가곧 자네 뒤를 따라가네. 기다리게 저 승길 심심치 않게 해 줄 터이니!'

  검 끝에 내력이 실린 영호인의 검이 괴수들의 촉수를 잘라내며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영호인의 검이 하나라면 괴수들의 촉수는 수십 개였다.

  하나가 열을 당하지 못함인가? 결국 영호인의 검은 점차 느려지더니 촉수가 만들어낸 그물이 옴짝 달싹 하지 못하게 되었다. 

 "후후후, 이렇게 끝나는가? 하지만 무당의 제자로서 원없이 강호를 주유해 보았으니 후회 없는 삶이렷다."

  모든 것을 체념한 영호인이 두 눈을 감았다. 죽음의 그림자를 기다리는 영호인은 갑자기 자신을 옭죄고 있던 기운이 사라지자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그러자 눈에 익은 독무가 분지를 뒤덮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독무는 교묘하게 괴수들과 구마강시들만을 공격하고 있었다.

  "소혜? 소혜가 왔는가?“

  백리협에서 쓰러진 송현이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를 따라서 시름시름 앓던 소혜였다. 그녀 없이 출정하는 길이 불안했던 영호인은 놀라서 주변을 살폈고 어디선가 안후명이 소혜를 반기는 외침이 들려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나?“

  영호인이 떨어뜨린 검을 집어 들자 따뜻한 음성이 들려 왔다.

  "당연하지! 이제 시작인걸!"

 영호인의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얼마나 다시 듣고 싶었던 음성이던가? 영호인은 몸을 돌리면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아 차마 돌아보지 못했다.

  그 대신 익숙한 손길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 했어, 친구! 이제부터는 내가 맡지!" 

뒷짐을 쥐고 분지로 내려가는 회색 장포의 사내. 영호 인이 강호에서 유일하게 벗으로 인정한 송현이었다.

  생과 사의 사투 속에서 홀로 죽음을 이겨내고 일어선 것이다. 그런 송현의 뒷모습이 너무나 듬직했다. 

 괴수들이 꼼짝 못하고 구마강시들이 미쳐 날뛰자 남궁 서희는 애꿎은 방울을 흔들어 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욱 내력을 집중하자 방울이 버터지 못하고 깨져버렸다.

  쨍!

  맑은 소리를 내며 금속으로 만들어진 방울이 깨어지자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그녀가 처연한 눈으로 남궁연을 바라보자 애비인 남궁연은 인정사정없이 강하게 그녀의 뺨을 때렸다. 

 "악!"

 남궁서희는 끈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과연 친아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당황한 남궁성현이 겁에 질려 남궁연에게 매달리자 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퍼억!

 남궁성현은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는 낯익은 검이 남궁연의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채 죽어갔다.

  "자식이라고 하나 같이 쓸모없는 것들뿐이니 내 어찌 대업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

  비정한 남궁연의 처사에 남궁서희는 가련한 양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기만 했다. 그때 검은 독무를 뚫고 사내가 다가왔다.

  "그 버릇은 여전하군. 사갈 같은 놈!"

 차디찬 냉소에 남궁연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누구냐?“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란 남궁연이 내력을 급히 끌어 올렸다. 그러나 상대는 여유롭게 걸으며 자신의 치부를 들춰냈다.

  "하긴 정주부에서도 자신의 딸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죽인 걸 보면 아들이라고 대수일까?“ 그제 서야 상대가 누군지 짐작한 남궁연이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큭큭큭! 거참 질긴 목숨이로군. 파륜검에 당했으면 무극무해의 기운이 뒤틀려 죽었을 텐데 운이 좋았구나!"

 남궁연이 비꼬임을 했지만 송현은 오히려 웃어 주었다.

  "천만에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당천악이 자신의 생명을 주고 나를 구한 것이다."

  대충 어떻게 돌아간 사연인지 눈치 챈 남궁연이 당천악의 어리석음을 탓하자 송현은 혀를 찼다.

  "쯧쯧쯧, 그래도 마지막에 사람으로 죽을 수 있었던 당천악에 비해 너는 결코 사람으로 죽지 못할 것이다. 이 짐 승만도 못한 괴물!" 

  지독한 폭언에도 남궁연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흥! 천하를 얻기 위해서라떤 백만 아니 천만 명이라도 죽일 수 있다. 자고로 영웅이란 수백만의 희생 아래 태어나는 것이다."

  실로 괴변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연의 외침에 송현은 일침을 가했다. 

  "천하의 영웅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궁연 그대는 그것을 잊었기 때문에 결코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송현의 지적이 듣기 싫었는지 아니면 내심 찔리는 바가 있었는지 남궁연은 무섭게 인상을 쓰더니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대도 무극무해를 익혔던가?“

  자신의 내부에서 들끓는 기운과 유사한 냄새를 풍기는 남궁연의 변신을 지켜보는 송현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결국 당신도 무극무해의 유혹에 빠져서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건가?"

 허탈해 하는 송현을 향해 기괴한 모습을 변신한 남궁연은 득의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극무해의 끝을 보고 싶다. 그곳에는 천하제일의 무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신이 될지도 모르지!"

  남궁연의 오만한 자신감은 자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독무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다. 그물처럼 형태를 이룬 독무가 괴수들과 구마강시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남궁연 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 내가 저 나쁜 아저씨를 혼내줄 거야!"

 안후명이 송현을 다치게 한 장본인이 남궁연이라고 말해 준 덕택에 그녀의 미움이 더욱 강한 독무를 만들어 내 어 남궁연을 핍박했다.

  그러나 송현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남궁연이 독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설마?" 

 위기를 느낀 송현이 당소혜를 안고 뒤로 물러나자 두 사람이 있던 자리가 얼음이 녹듯이 녹아 내렸다. 남궁연이 독공을 사용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송현은 집히는 바가 있는지 크게 소리쳤다.

  "그대가 독왕 당사륭의 후예인가?“

  정체를 알아차린 송현을 보며 남궁연이 팔을 휘두르자 독무가 너무 쉽게 사라졌다.

  "크크크, 학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똑똑하구나! 그래 정파 놈들에게 쫓기던 우리는 도망치는 것보다 무림에 안주 하는 길을 택했지 그래서 만든 것이 남궁세가였다. 정파 인처럼 구는 것이 좀 역겹기는 했어도 잘도 속아 넘어가 더구나!" 

 이제야 모든 의혹이 풀렸다.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점들이 단 한마디로 이해가 되자 송현은 남궁연이 더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랬군, 그랬어! 왜 그렇게 그대가 독하고 사악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역시나 악하기 그지없는 존재의 후 손이었군. 주저하지 않고 당신을 처벌해 주지!"

 송현의 눈에는 남궁연이 모든 악의 근원처럼 여겨졌다.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처벌하여 세상을 구하는 사명이 더 크게 느껴지자 그 동안 한 번도 사용 하지 않던 무극무해의 진실한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아!"

 당소혜의 몸이 두둥실 떠올라 분지 밖으로 날아갔다.

  몸부림치는 소혜에게 송현이 웃어주자 겨우 안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남궁연은 자신을 압도하는 기운이 흘러나오자 인정하지 못하고 악을 썼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네가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느냐 말이다."

 남궁연은 태양 앞에 선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설마하니 네가 무극무해의 끝을 보았단 말이냐?“

  부정하는 남궁연에게 송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극무해의 끝은 절세의 신공도 신의 되는 길도 아닌 바로 무였다. " 

  몸을 덜덜덜 떨고 있는 남궁연은 송현의 말을 부정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몸속의 내력이 통제되지 않고 마구 날 뛰어서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내 몸 안에 숨겨져 일던 무의 기운이 나타난 것을 보니 남궁연 당신이 마지막 무극무해의 힘을 가진 사람이 라는 뜻이지. 이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다."

  송현이 다가오자 남궁현은 달아나려 했지만 도통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송현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 끝없는 세계로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번쩍!

  엄청난 빛 무리가 마을을 중심으로 수십여리 밖으로 퍼져나갔다. 너무나 밝은 빛에 눈을 멀 지경이었다. 그리고 빛 무리가 잦아들자 분지를 가득 메우고 있던 구마강시와 괴수들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구마강시는 원래의 시체로 돌아갔고 괴수들은 납치되었던 사람들로 다시 돌아갔다.

  물론 이미 영혼이 파괴되어 더 이상 살아 있는 이들이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구원 받았음을 기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이게 뭐야?"

 남궁연은 주먹을 쥐락펴락 하면서 울부짖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무극무해의 기운이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기는 송현이 조용히 뇌까렸다.

  "무로 돌아갔음이야! 무극무해의 주인이 그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 같군."

  분지를 걸어 올라가는 송현의 등 뒤에 대고 남궁연이 악을 썼다.

  "기회라니 무슨 기회?“

  잠시 걸음을 멈춘 송현이 하늘을 보며 웃었다.

  "아마도 죗값을 치르고 착하게 다시 살 기회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송현은 웃음을 그치지 않고 걸었다. 그러나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웃음을 멈 출 수밖에 없었다.

  "개소리 집어쳐!"

 슈각! 

어느새 검을 집어든 남궁연이 출탄방세의 초식으로 송현의 요혈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무극무해의 기운이 사라진 대신 본신의 무공으로 송현의 죽일 심산이었다.  남궁연처럼 송현도 무극무해의 힘을 잃어버렸기에 남궁연의 공격을 좀처럼 피하기 어려웠다. 결국 온몸에 자 상을 남긴 송현은 크게 노했다.  

  "어리석은 인간! 결국 본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건가?“ 

 개탄하는 송현의 심장을 향해 남궁연의 검이 짓쳐 들었다.

절대절명의 순간! 

챙캉! 

누군가 검으로 남궁연의 검세를 막아냈다. 남궁연 역시 놀란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이 발칙한 계집!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애비에게 검을 들이 대다니!"

 분노하여 씩씩 거리는 남궁연을 무시하고 남궁서희는 다른 검을 송현에게 건네고 송현 곁에 섰다.

  "무슨 뜻이오?” 

  다소  차갑게 대꾸하는 송현을 향해 남궁서희는 환하게 웃었다.

  "아직 기억하나요? 당신이 가르쳐 주었던 정인검을?“

 곽무헌과 함제 만들어낸 쌍검 합격술을 그녀와 함께 연습했던 일들을 어찌 잊겠는가? 송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송현의 손을 잡아 날아올랐다. 남궁연은 남녀가 한 몸이 되어 공세를 가 해오자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난생 처음 보는 검술이었지만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나가 아닌 듯싶으면서도 하나가 되어 힘이 배가 되었고 하나인가 싶으면 어느새 둘이 되어 사방위에서 그를 핍박 했다 결국 참다못한 남궁연이 비열한 수를 썼다. 가슴 설에 숨겨 두었던 송진 가루를 던진 것이다. 그것이 터지면서 시야가 가려졌고 그 틈을 타고 남궁연의 검이 송현의 심장을 노리고 다가왔다.

  푸주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남궁연의 검이 심장을 관통했다. 

 그리고 재차 또 다른 검이 남궁연의 심장을 꿰뚫었다. 남궁연의 눈이 자신의 검이 송현의 심장이 아닌 남궁서희를 찔렀음을 알고 허탈해 하며 쓰러졌다. 남궁연을 죽인 송현은 검을 버리고 쓰러지는 남궁서희를 끌어안았다.

  "왜 그랬소? 도대체 왜 그랬냐 말이오?"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는 송현의 뺨을 어루만진 남궁서 희는 잦아드는 목소리로 최후를 맞이했다.

  "항상 당신을 그리워했어요. 백리협에서도 아버지는 당신을 죽이라고 했지만 차마 심장을 찌를 수가 없었어요. 미안해요, 많이 아팠죠?“

  꺼져가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송현의 가슴은 찢어지는 고통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날 했던 말...... 진심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그날 뱃머리에서 안아준 것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사랑해......“

 남궁서희의 목이 한쪽으로 기울자 송현은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울부짖었다.

   처참한 폐허로 변한 분지로 내려온 정파의 군웅들은 그 참담함에 고개를 저었고 사공혜미와 영호인등은 송현의 슬픔을 알기에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 누군가가 시신을 수습하며 슬픈 노래를 불렀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하게 하는가? 

천지간을 가로지르는 새야! 너희들은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느냐?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네. 

임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 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온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꼬. 

분수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네.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끼는구나.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죄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네.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미친 노래 부르며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그렇게 슬픔을 가슴에 묻으며 비극은 저 멀리 지는 저녁노을처럼 어둠속에 묻혔다.  

  뜨거운 오후 햇살을 아래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책머리 앞에 앉아서 머리를 긁적이며 이마에 주름을 잡고 있었다. 

 탁! 탁!

 회초리가 바닥을 때리자 아이들은 움찔 거렸다.

  "이놈들 봐라! 어제 배운 것을 벌써 잊어다는 말이냐?“

  훈장의 호통에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웬 여자아이가 뛰어 들어 서당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으아앙! 애들아 도와줘 거지 삼촌이 또 내 것을 뺏어 먹으려 해!"

 여자아이가 뛰쳐나가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와!' 소리를 내며 여자아이를 쫓아 나갔고, 잠시 후 타구 봉을 손에 들고 씩씩거리는 사내가 서당에 난입했다.

  "안후명 이 친구야! 도대체 자네하고 소혜하고 나이 차가 얼마인데 매일 싸움질인가?“

  참다못한 훈장이 버럭 고함을 치자 안후명은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

 "시끄러! 애 아버지가 되어서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거지의 닭다리를 훔쳐 가느냐고! 내 앞에서 소혜가 독정 이니 뭐니 그런 말하지 말라고 내 눈에는 그저 말썽쟁이 꼬마일 뿐이야!" 

  서당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사라진 불청객 때문에 송 현은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킥 킥!"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송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냐?“

 왕백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딴청을 피웠다.

 "웃기는 언제 웃었다고 그러십니까? 그나저나 무림맹의 사공 군사께서 곽무헌 맹주의 기일에 오실 거냐고 연통을 보냈습니다."

  곽무헌의 이름이 나오자 잠시 숙연해졌던 송현은 다시 밝게 웃었다.

  "가야지, 어떤 날인데 빠지겠냐." 

송현이 표정이 다시 밝아지자 왕백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동안 시름이 빠져 살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참 그런데 말입니다. 문주님!"

 서당을 나서던 왕백이 고개를 눈초리를 가늘게 뜨며 물어왔다.

  "정말로 그 힘이 사라진 것이 사실 입니까?"

 위 아래로 흩어보며 의심을 품는 왕백에게 송현은 힘없는 팔을 흔들어 보았다. 

  "붓 잡을 힘도 없다, 이 녀석아!"

 내심 기대했던 왕백은 입맛을 다시며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이제 절대신공으로 강호의 위명을 떨쳤던 송현은 사라 진지 오래였다. 왕백이 서당 안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송현은 난장판이 된 서당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잠시 턱밑을 매만지던 송현은 주탄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 하자 갑자기 송현의 장포자락이 휘날렸다. 다음 순간 책들이 두둥실 떠올라 한쪽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이들이 사라진 서당에 볼일이 없어진 송현이 몸을 움직이자 바람의 향기만 남고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끝>

  그동안 학사 장문인을 애독해 주신 독자제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처음 무협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 미숙한 작품을 내놓았음에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음 작품으로 여러분들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여러분들에게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끝으로 책이 나오도록 고생하신 파피루스 편집부 여러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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