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천장지구 (42/43)

  제9장 천장지구

  천장지구-천지는 영원히 변함이 없다. 변함없는 사랑을 비유하는 말이다

  며칠 동안 헤매던 끝에 찾아낸 동굴 입구에 널브러진 안후명은 백리협의 험한 산세에 혀를 내둘렀다. 백리협에 들어온 이후로 무극무해의 기운을 아끼고 내력을 사용하지 않은 덕택에 송현도 거의 기진맥진하여 입에서 단내를 토해 냈다. 내력을 사용해서 계단을 오른 안후명은 그나마 상태가 종 나아 보였지만 짐짓 엄살을 떠는 통에 당소 혜만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

  "후아, 후아! 내가 다시 백리협을 찾으면 성을 바꾼다."

 당소혜가 비웃거나 말거나 허리춤을 더듬어 호리병을 높이 치켜들어 보지만 이미 오래전에 비워 버린 술병에서 술이 나을 리가 없었다.  

  아쉬움에 혀를 내밀어 보지만 모질게도 호리병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는지 토해 내는 것이 없다. 한숨을 내쉰 안 후명이 이제 무슨 낙으로 버티느냐며 투덜거리자 당소혜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이에 또 발끈한 안후명과 당소혜가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정상까지 오르느라 피곤했던 몸과 마음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뚝!뚝!

거대한 동굴의 천정에서는 종유석 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걸 본 안후명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 갈증을 해갈하려 하자 송현이 기겁을 하며 붙잡았다.

  "그걸 마셨다가는 엉덩이에 불이 날 걸세!"

 송현의 경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챈 안후명은 입맛을 다시며 일어서야만 했다. 그래도 동굴 안으로 들어서니 기온이 뚝 떨어져 시원했기에 견딜 만하였다.

  어두운 동굴 내부를 밝혀 주는 것은 벽에 박혀 있는 야명주였다.

  "사람의 흔적이로군?" 

  안후명의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송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혜의 동굴 곳곳에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 부서진 곳이 많았다. 주변을 살피던 송현이 당소혜를 불렀다.

  "소혜야, 지금부터 아빠가 허락할 때까지 친구를 불러내서는 안 돼. 알았지?”

  당소혜는 그의 당부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 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소혜의 체내에 숨어 있는 독정의 기운을 잠시 누르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송현은 동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예 무극무해의 기운을 봉쇄해 버렸다.

  지금의 송현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안후명에게도 같은 주문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던 안후명은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가 송현이 맥없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보며 크게 놀랐다.

  농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핑계거리가 없었진 탓에 안후명도 내력을 숨기고 무거운 다리를 옮겨야 했다.

  점점 내부로 들어 갈수록 동굴의 좁아졌다. 처음에는 고개를 숙일 정도였지만 이내 바짝 엎드리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높이가 낮아졌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흐르자 점차 앞쪽에서 밝은 빛이 흘러 들어왔다.

  "동굴이 끝나는 모양이야!"

 안후명이 호들갑을 떨자 송현도 기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내력 없이 긴 동굴을 빠져나가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몸집이 작은 당소혜는 이미 저만치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나 덩치가 큰 안후명에게는 정말이지 가시밭길이었다. 무릎이 다 헤진 바지의 구명에 손가락을 넣어 본 안 후명이 불평을 털어 놓았지만 송현이 어깨를 두드리며 앞을 가리키자 그도 안색을 굳히며 따라나섰다. 앞쪽에서 인기척이 들려 왔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동굴이 끝나는 입구로 다가간 세 사람은 밖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실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헛바람을 집어 삼키려는 안후명의 입을 손으로 막은 송현은 눈빛을 빛내며 밖의 동정을 살폈다.

  동굴 벽에 기대어 충격을 가라앉힌 안후명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믿지 못하겠던지 다시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피더니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대체 지금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안후명이 몸을 일으키는 송현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답을 원했다. 안후명의 손을 잡아서 떼어낸 송현은 표정을 굳혔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싸늘하게 식은 송현의 손길이 안후명의 살갗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공지대사가 뭐라고 한 거지?”

  안후명이 참지 못하고 물어보자 송현은 고개를 돌린 채 낮게 중얼거렸다.

  "그냥 백리협에서 가장 큰 동굴을 찾아보라고 했을 뿐이네, 나도 그 이상은 몰라. 그리고 오늘은 나도 참지 않겠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송현의 음성이 마치 새끼를 잃은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느낀 안후명은 송현을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낮은 중얼거림이었는데 안후명이 느끼는 두려움 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송현이 자취를 감추었는데도 그 진득한 살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빠가...... 아빠가 무지 화났다."

  당소혜마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후명은 당소혜를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마치 잠시 후 끔찍한 일들이 벌어 질 것을 예감한 듯 두 손으로 당소혜의 귀를 막은 안후명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귀를 막을 손이 더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도살장! 

  가축을 도축하고 살과 뼈를 분리하는 곳이다. 흔히들 백정들이나 일하는 곳이라 하여 천히 여기고 가까이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가축이 아니라 사람을 도살하는 도살장이었다.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사람의 피였다. 사방에 베여 있는 역하고 비린 냄새는 억 겁의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바닥 위 에 갖가지 유리병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말로 형언하기 끔찍할 정도로 잘려 나간 신체 부위들이 들어가 있었다.

  뚝! 뚜둑!

 천정에서 핏물이 비처럼 떨어졌다. 쇠사슬에 묶인 시체 들이 아무렇게나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대부분 목이 없는 시체들이었다.

  송현의 장포도 어느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오늘은 더 이상 들어올 물건들이 없는가?”

  잡자기 들여온 낯선 음성에 송현은 재빨리 위로 뛰어 올라 몸을 숨겼다. 쇠사슬에 묶인 시체들 사이에 몸을 숨겨야 하는 것이 곤욕스러웠지만 기척을 숨기는 데 이만 한 곳은 없었다.

  그 사이 백정들이나 입는 가죽옷을 입은 장한 열 명이 벽 사이 틈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가죽 부대를 하나씩 끌고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몰골이 처참한 시신들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말이야 오늘은 심심하겠어!"

 커다란 작도를 들어 시신의 머리를 내려친 뒤 쇠사슬에 묶어 위로 향하게 하는 장한들 뒤로 누군가 유령처럼 내려섰다.

  "내가 심심하지 않게 해 주지!"

 갑자기 들여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장한들이 돌아 서니 그곳에는 피로 물들은 장포를 걸친 송현이 서 있었다.

  "이 미친...... 커헉!"

 작도를 들고 있던 장한의 마지막 말이었다. 송현의 검이 번쩍이자 그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의 목을 쳐 낸 장한의 최후 역시 자신의 머리를 그들 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죽여!"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아홉의 장한은 분노한 송현의 손에 의해 단 아홉 수만에 머리가 몸에서 분리됐다. 머리를 잃은 신체들은 한동안 허우적대다가 쓰러졌다.

  답답한 단발마의 비명이 남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송현의 신형이 바람처럼 절벽 틈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송현의 무극무해가 전신 세맥을 타고 퍼져나 갔다.

  마치 그동안 숨어 지낸 것이 답답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려는 듯 그의 내력은 넘치도록 요동쳤다. 이미 송현의 풍보는 바람 그 이상이었다. 그가 떠난 곳에는 바람의 냄새만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절벽 틈으로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 했다. 마치 지옥의 입구에서 불쌍한 영혼들의 살려 달라 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다. 안후명은 당소혜의 귀를 더욱 세게 막았고 자신은 입을 꼭 다물고 나오려는 신응을 참아냈다.

  전쟁터에서도 못 들어 본 끔찍한 비명이 동굴 안에서는 메아리치니 사람을 미치게 만들려는 듯 살아 움직였다.

  '송현, 정의를 심판하는 자게 되게 그대가 악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야!'

 안후명은 태어나 처음으로 천지신명께 기도했다. 그리고 점점 비명이 잦아들자 천천히 눈을 떴다 조심스럽게 밖을 내다보니 머리를 잘린 열 구의 시체만 눈에 들어왔다.

  "응?"

 소매를 잡아당기는 기척에 고개를 숙이니 당소혜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후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왜 그러니?"

 어린 소혜가 걱정이 된 안후명이 그녀의 머리를 쓸어 주자 당소혜는 우는 듯이 더듬거렸다.

 “무서운 마녀가...... 그녀가 저 안에 있어요. 아빠가...... 아빠가 위험해!"

 마녀라니, 어린아이의 엉뚱한 말이라고 무시하기에는 그녀의 능력이 대단했다. 괴수들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소혜가 두려워하는 상대라면 송현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겨우 내 실력으로 송현을 도울수가 있을까? 저 안에는 소림사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한 괴물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잠시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던 안후명은 이내 자신의 뺨을 세게 쳤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사나이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가?’

  술이 없어서 아쉽지만 안후명은 대신에 손바닥에 침을 뱉어 비빈 다음 당소혜를 업고 절벽 틈으로 몸을 날렸다.

  차가운 냉기가 몸을 감싸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 안후명의 신형이 한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따다당!

  똑같은 복장을 한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송현을 에워싸고 공격했다. 표정 없는 무뚝뚝한 인상의 검사들은 가공 할 신위로 송현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송현의 검이 그들의 몸을 난도질했지만 파육음 대신에 바위를 때리는 요란한 소리만 울렸다.

  "구마강시?”

  송현의 눈에 이채를 띠며 뒤로 물러나자 구마강시들은 전열을 정비하더니 송현을 압박하기 위해 합격진을 취했다.

   "크하하하! 예가 어디라고 숨어 들어왔느냐? 안됐지만 네놈은 실험체로 쓸 가치도 없을 것 같으니 피육으로 만들어 주마. 놈을 없애라!"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노인의 명령에 구마강시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송현은 콧방귀를 끼더니 검을 똑바로 들었다.

  "무당 칠성검? 하하하 이거야 원 어이가 없구나! 그 따 위 허접스러운 검술로 구마강시를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냐?"

 그러나 노인의 비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송현의 검에 구마강시들이 분시되는 광경이 그림처럼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건가?”

  노인의 경악한 표정을 채 풀기도 전에 송현은 구마강시를 헤집고 나와 노인 앞에 섰다.    턱! 

  구마강시의 체액이 묻은 송현의 검이 목젖에 닿자 노인은 벌벌 떨었다.

  "그래 꿈을 꾸고 있다고 해 주지 대신에 아주 지독한 악몽이라는 걸 알아 두라고!"

 송현의 미소를 본 노인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연륜이 많은 그로서도는 그토록 차가운 미소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냐 너는?"

  이 정도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기에 노인은 자신의 목에 검이 닿아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를 찾으러 왔을 뿐이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너를 온전히 죽일지, 아니면 참담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게 만들지 선택할 기회를 주마. 영호인과 그의 동료는 어디에 있나?”

  인간의 음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저음에 노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려움 따위는 자신에게 없다고 믿고 있던 노인은 정체 모를 공포로 인해 사고가 정지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영호인?" 

  애써 기억을 더듬는 노인의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노력 중이었다.

  잠시 노인의 주름이 펴졌다. 자신의 기억력에 감사하며 노인은 재빨리 송현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꺼내 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인은 동굴에 잡혀온 무림인들이 명단을 꽤나 상세히 알고 있었다. 송현의 기세에 겁을 먹 은 노인은 주절주절 아는 것이 죄다 털어 놓았다.

  자신이 왜 그런지도 모르고 노인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하지만 노인으로서는 그것이 자신들이 익숙해진 마기 에 상극인 송현의 무극무해 때문이라는 걸 노인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네 정보로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송현의 선고나 다름없는 말에 노인은 두려움에 떨었다.

  "무, 무얼 말인가요?”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는 노인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송현의 차가운 미소였다.

  "너의 개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서걱!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인의 부릅뜬 눈이 기울어진 세상을 보며 최후를 맞이했다. 

  "지하 십칠 층이라...... 깊이도 팠구나. 하지만 백칠십 층이라고 해도 가주마. 더 이상은 내가 용서하지 못해!"

  송현의 몸 주위로 바람이 몰려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바람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야명주가 불을 밝히는 거대한 석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노인은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문 이 열리며 하얗게 질린 사내가 수선을 피웠다.

  "크, 큰일 났습니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책장을 넘기는 일에 열중했다.

  "괴마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너는 실험실에 보낸 고수들이 이상 없는 지나 살피도록 해라."

  노인의 명을 내렸음에도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노인의 눈이 불쾌한 기색을 띠었다. 몸을 돌린 노인이 일어서니 절로 위엄이 풍겨져 나왔다. 그럼에도 사내는 도무지 물러서지 않았다.

  "허어, 이놈이 뭘 잘못 먹었기에 이리 방자한 것이냐?”

  노인의 역성에 사내는 겁에 질린 몸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그제야 노인은 사내가 겁내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침입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놈이 벌써 마흔 번째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흔 번째 관문이라 면 바로 머리 위까지 침입자가 쳐들어 왔다는 뜻이었다.

  "이런 머저리들! 어떻게 해서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느냐?”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늦은 일이었다.

  노인은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석실을 빠져나갔다. 그 뒤로 겁에 질린 사내가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움직였다.

  아명주를 길을 밝히는 복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쾌 넓은광장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중무장한 백여 명의 검사 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두터운 석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을 향해서 인사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노인이 광장의 한쪽 벽에 박혀 있는 야명주들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마흔 개의 야명주들이 모두 빛을 잃고 있었다. 

"관군이 쳐들어 온 것인가?”

  노인의 침음성에 등에 검을 맨 날렵한 사내가 다가왔다. 

"주군, 아닙니다. 침입자는 한 명입니다."

  수하의 보고에 노인의 신형이 격하게 흔들렸다.

  단, 한 명에게 뚫릴 관문이었다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방어 수단이었다.

  기관, 강시, 독공의 고수들이 배치된 전무후무한 관문 들이 단 한 명에게 뚫릴 수 있다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노인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강호에 그만한 고수가 있는지 기억을 뒤져 보았지만 도통 찾아낼 수 없는지 이마에 주름살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쿵! 쿵! 쿵!

 거대한 석문이 먼지를 피워 낼 정도로 충격을 받아들 썩이고 있었다.

  주춤주춤 거리며 고수들이 뒤로 물러섰다. 거대한 석문은 곧이라도 부서질 듯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지자 이를 궁금하게 여긴 검사들이 앞으로 다가가 석문에 귀를 대어 보았다.

  콰광!

 기다렸다는 듯이 산산조각 나는 석문과 함께 검사 스무 명이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다.  잠시 후, 먼지구름이 잦아들자 장삼을 붉게 물들인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네, 네놈은? 분명히 무당의 비역에서 죽었는데?“

   노인은 송현을 손가락질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노인을 발견한 송현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아주 오랫동안 찾았소이다. 당. 천. 악!"

 질기디 질긴 악연의 두 번째 고리인 당천악과 송현이 드디어 조우를 하게 되었다. 잔인한 운명은 황궁에서 끝내지 못한 악연의 시작은 무당의 비역에서 참담하게 끝날 뻔 했지만 결국 세 번째 만남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네놈을 그때 없앴어야 했는데!"

 당천악은 그때의 못 다한 일을 끝내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수하들이 앞을 가로 막자 대노하여 소리쳤다.

  "비켜서라! 저놈의 목은 내가 직접 따야겠다!"

 당천악의 노호성을 터뜨리자 수하들이 감히 맞서지 못하고 물러섰다. 송현 역시 앞으로 나섰다.

  서로 얼굴에 난 땀구멍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거리를 좁힌 다음에야 걸음을 멈췄다. 

  "애송이가 제법 틀이 잡혔군." 

 싸움은 기선 제압이라는 강호의 법칙을 준수하려는 듯 거친 입담으로 시작된 싸움에서 송현은 지지 않고 맞받아 쳤다. 

  “많이 늙었소이다. 영감!"

  빠지직!

  당천악의 어금니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들어 노화 증상을 보이고 있는 터라 그 문제로 당천악은 노심초사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약점을 들춰내는 송현이 당천악은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당천악의 콧김이 뜨거워지자 그의 어깨가 점차 들썩거림이 심해졌다. 

  "애송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당천악의 옷과 망토가 펄럭이자 주변의 흙들이 들썩였다. 거친 모래폭풍이 불듯이 송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흥!"

  수천수만의 암기가 되어 날아오는 모래알과 흙 알갱이를 향해 송현의 검의 원을 그렸다.

  살랑!

  사방이 막힌 동굴에 바람이 불었다. 송현의 일으키는 검풍이 처음에는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간지럽다가 이내 한겨울의 매서운 삭풍이 되어 몰아쳤다.

  콰콰과!

  고막을 찢어발기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바람과 모래폭풍이 충돌했다.

  푸하학! 

  모래와 흙더미들이 방향을 잃고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당천악의 놀라움은 컸다. 황궁에서 헤어진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는 허나 이 정도까지 성장하는 것은 말이 도지 않았다.

  괄목상대! 

  선비가 사흘을 보지 않으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다는 말은 바로 송현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서툴기만 하던 칠성검이 어느새 묘리를 담고 있었다. 당천악은 시큰거리는 손목을 뒤로 숨긴 채 송현을 노려보았다.

  "네놈을 찾아내서 없앴어야 했는데 찾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줄은 몰랐구나!" 

 이를 가는 당천악을 향해 송현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나를 찾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당신 때문에 당문의 식솔들이 멸문한 것은 한이 되지 않던가?"

 당천악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신형은 보기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당문이 멸문당하다니?”

  당천악의 행동이 가식으로만 보이는 송현은 그런 그의 행동이 환멸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더욱 모질게 말을 토해 냈다.

  "이 위선자! 누굴 속이려 하는 거지? 자신의 피붙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피를 뽑아 실험을 한 주제에 감히 그 죄악을 숨기려 하는 것이냐?”

  분노한 송현의 외침이 비수가 되어 당천악의 가슴에 박혔다.

  당천악의 거구가 비틀거렸다. 현기증을 느끼는 듯 그는 머리를 집고 흔들렸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당천악의 고개를 돌려 겁에 질린 사내를 보았다.

  딸꾹!

 사내는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당천악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물콧물을 흘리며 기어서도 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당천악의 수하들 손에 잡히자 그는 울부짖으며 발광을 했다.

  "쉬!"

  당천악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대자 사내는 흐느끼면서 발광하는 것을 멈친다. 당천악이 사내의 턱을 움컥쥐었다.

  “당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덜덜덜 떨리는 사내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자 당천악이 검지를 들어 사내의 허벅지를 찔렀다.

   "끄아아아!"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비명에 동굴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제 대답할 준비가 되었겠지?”

  사내는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당천 악은 다시 오른 속으로 사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말해라!"

  사내는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아는 것을 토해 냈다. 사내는 그분이 모든 것일 시켰다며, 자신은 아무 죄도 없음을 강조했지만 당천악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사내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으깨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퍼억!

 당천악의 손아귀에서 사내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허연 뇌수와 붉은 피가 당천악의 옷섶을 물들였다. 분이 풀리 지 않는지 당천악은 사내의 몸이 너절해질 때까지 두드렸다.

  "어리석은 인간!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결국 당신도 이용만 당한 셈이로군."

  허탈한 송현의 넋두리에 당천악이 몸을 일으켜 돌아섰다. 그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생존자는?”

  당천악은 이미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감정이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

  “하나 남았소이다." 

  당문의 생존자가 하나라는 사실에 당천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을 쥔 두 팔이 힘줄이 돋아나 피부를 뚫고 튀어나올 듯했다.  

   희망을 잃어버린 당천악은 울고 있었다. 비록 소리 내어 울고 있지는 않았지만 온몸으로 울부짖는 중이었다.

  마음의 울음소리는 동굴을 뚫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그 아이는 내가 거뒀소. 내 딸로서 강호를 살아가게 될 것이오. 다만 성은 바꾸지 않겠소이다. 적어도 그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해 주겠소. 혹, 모르지만 나중에 그 아이가 당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지 어찌 알겠소?“

   당천악의 몸이 격정으로 떨었다. 오랜 세월 강호를 주유하며 온갖 손가락질을 참아 온 것은 단 하나 때문이었다.

   천하제일인! 

  남들은 그것이 혼자만의 탐욕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당천악은 자신의 성공이 곧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춘을 낭비하며 이 일에 매달린 것이었다. 황궁에서 반역죄로 당문이 봉문을 당했을 때에도 당천악은 아직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다시 당문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산산이 깨져 버렸으니 오랜 세월 그를 지탱해 준 유일한 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놈이...... 그 빌어먹을 자식이 당문의 식솔들을 보살 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에게는 단지 실험에만 집중하라고 했지. 나는 그 약속을 믿었을 뿐이다. 헌데 내가 한 실험이 결국 내 식속들을 죽이는 일이 되었다니, 도대체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허망함에 당천악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그런 당천악을 송현은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사천당문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 장본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부 시타르를 해 한 원수이지만 지금의 당천악은 그에 대한 벌을 받고도 남았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이제 송현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잡혀온 무림인들은 어디 있소?" 

 당천악은 송현의 물음에 눈물을 감추며 돌아섰다.

   "그래, 이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지하 뇌옥의 죄수들을 모두 풀어 줘라!"

 당천악의 수하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없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당천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송현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천악을 만난 격한 감정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 진 것이 원인이었다.

  “당신의 조력자는 누구죠?”

  겨우 생각을 해 낸 송현이 다급히 물어 오자 당천악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회환이 가득 담긴 웃음을 멈출 때까지 송현은 조급한 마음을 멈추지 못했다.

  “혹, 공지대사가 당신의 조력자였나요? 공지대사가 죽 음을 맞이했을 때 이곳을 알려 주었소."

  당천악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후후후, 구걸신개 철밥통에게 쫓기다 된통 당한 직후 였지. 그때 그 계집이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더군."

  "계집?”

  당천악의 조력자가 뜻밖에도 여자라는 사실에 송현은 크게 놀랐다. 더구나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은 공지대사도 아니었고 당천악도 아니었다. 정작 이 엄청난 참극을 부른 거대한 음모를 계획한 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비로써 깨달은 송현은 두려움을 느꼈다.  

 ‘공지대사가 말한 그날, 소림사의 참극도 당천악의 인생이 비틀어진 것도 설마...... 그자가 개입한 것은 아닐까?’ 

  불현듯 무서운 가설을 세워 본 송현은 자신의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공지대사가 죽음 직전에 자신에게 들려준 비사는 이랬다.

  사부가 자신을 무극무해의 희생양으로 내세웠을 때 필사본을 건네준 이가 있었고 이후에도 그 일을 가지고 자신을 평생 괴롭혀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시작 이 백리협의 가장 큰 동혈에 있으니 아무도 찾지 못하게 없애 달라는 부탁이었다. 공지대사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 한 곳에 '그' 라는 존재가 있었다.

  송현은 왜 제삼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머리를 쥐어박고 말았다.  '팡천악,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 마서를 알게 되었소?“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당천악은 눈을 감은 채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갔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과거의 기억 단편 조각들 중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건......”

  당천악의 입술이 열리기도 전에 송현이 먼저 말했다.

  "소림의 참극이 열리던 그날이었소?" 

당천악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자 송현은 경악했다.

  중원 무림과 천하가 단 한 사람의 농간에 휘둘려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어떤 인물을 떠올렸다.  

당사륭의 후예! 

 그 미지의 인물이 오랜 세월 계획하고 일을 꾸며 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을 위해 엄청난 일을 저지르려 한다고 직감했다.

  무극무해를 세상에 나오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게 만들려는 무서운 계략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송현은 두려움에 빠져 들었다.

  "주군, 뇌옥의 죄인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당천악의 수하들이 지치고 병든 이들을 끌고 왔다. 몸이 성한 자들은 두 발로 걸어 나왔는데 그 중 몇몇의 얼굴을 확인한 송현은 목이 메어 이름을 외쳤다.

 "영, 영호인!"

  파리해진 안색의 사내가 귀를 울리는 외침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송현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아, 하아 저리 멍청한 녀석인 줄 내 진즉에 알았지."

  온몸에 멍들고 터진 상처는 어느새 곪아 들어가고 있지만 기개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포옹하자 그 뒤로 투덜거리는 두 명이 더 나타 났다.

   "막여위! 양명! 모두 무사했구나!"

 송현의 반가움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친구들을 모두 구했으니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벌떡 일어나 춤이라 도 춰야 할 판이다.

   삽시간에 광잠을 채운 무림 인사들이 백여 명이 넘어 갔다. 그렇게 반가움을 뒤로 하고 그들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려 할 때, 안후명과 당소혜가 광장까지 내려왔다.

  안후명은 광장에 처참한 몰골로 서 있는 이들이 실종자 들임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이제 무림의 큰 위기를 구한 셈이니 그는 정말 송현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송현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어린 당소혜의 손을 잡고 당천악 앞에 선 송현은 침울해 하고 있는 그에게 소혜를 보여 주었다. 

  "뭔가?”

  당천악은 그림자가 지기에 고개를 들었다가 당소혜를 보고 크게 경악했다.

  "네가, 네가 살아 있었구나!"

 당소혜를 알아본 당천악은 그녀를 끌어안고 절규했다.

  그런 당천악을 바라보는 무림인들의 표정은 곱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당천악에게 복수를 하려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때 송현이 나섰다.

 "여러 군웅 여러분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당천악도 결국 이용당한 셈입니다. 그런 그에게 복수를 하느니 진정한 흥수를 찾아서 그 죗값을 묻는 것이 옳습니다. 그때까지 여러분들은 살아남아서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내력이 실린 송현의 일장 연설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 이며 수긍했다.

  그때 누군가의 부름이 아주 작은 소리로 들려왔다. 안력을 돋우어 살피니 흐릿한 형태 속에 드러난 이는 송현이 그토록 꿈꾸고 함에 하기를 오매불망 하는 그녀였다. 

  "서희!"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송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가 잡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그때 당소혜의 여린 몸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당천악 역시 고개를 돌리고 낯선 기운을 찾으려했다.

  그러나 그보다 영호인의 비명이 더 컸다.

  "안 돼에!"

 모든 군웅들을 얼어붙게 만든 끔찍한 비명과 함께 듣기 거북한 파육음이 송현의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송현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것은 잘 벼려진 검이었다.

  그 검을 중심으로 송현의 가슴이 붉게 물들어 갔고 송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서희와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검만 보았다.

  “당신은 그날 나를 안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토록 듣고 싶었던 사랑하는 연인의 목소리였지만 송현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말았다. 자신의 가슴에서 빠져나오는 검을 바라보던 송현의 몸이 한쪽으로 급격 하게 기울었다. 

  "도대체 왜......”

  믿지 못하는 슬픈 눈으로 송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바닥에 쓰러진 송현을 바라보는 서희의 눈빛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