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도탄지고 (36/43)

제3장 도탄지고

  도탄지고-진구렁이나 숯불에 빠졌다는 뜻으로 몹시 고생스러움을 말함 

  곽무헌의 앙천광소에 군웅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눈앞에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곽무헌은 마치 나들이 나온 사람처럼 너무나 여유로웠다. 지금의 증거로 만 보면 곽무헌은 무림공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죄를 진 입장이었다.

  그러나 곽무헌에게서는 전혀 그런 긴장감이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인사태를 향해 일을 크게 만들어 소란을 피웠으니 한문파의 장문인으로서 행동이 가볍다 며 나무라기까지 하니 모두들 혼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흥! 맹주는 세 치 혀로 군웅들을 현혹하고 지를 덮으려 하지 마시오!" 

  악에 바친 정인사태가 고함을 지르자 군웅들도 동조하며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곽무헌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뭐, 좋소이다. 아미파의 정인사태께서 왜 이리도 일을 크게 만들어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지만 내 속 시원히 말을 해 주겠소!"

 곽무헌이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돌아와 성큼성큼 들 것에 다가갔다. 검게 탄 시신을 들어 군웅들을 향해 내보인 곽무헌은 비통한 표정으로 당시의 정황을 자신의 관점 에서 이야기했다.

  "괴수가 나타났고 괴수의 정체가 한때, 무림맹에서 몸을 담은 좌군사 위공이었다는 사실도 사태의 말대로 사실 이오." 그러자 곽무헌이 죄를 인정한다고 여긴 군웅들이 장탄식을 터뜨렸다.

  그러나 곽무헌이 손을 들어 군웅들을 진정시킨 후 계속 하여 입을 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아시다시피 좌군사 위공은 내 측근이 아니오. 분명히 죄를 짓고 쫓겨난 죄인일 뿐이고 그를 쫓아낸 것 또한 본인이었소." 이 또한 곽무헌의 말이 사실이기에 많은 군웅들은 고개 를 끄덕였다. 정인사태는 사태가 뜻밖으로 돌아가지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연극이었겠지, 좌군사 위공은 누가 뭐래도 맹주의 수족이었소. 그러니 그런 연극쯤이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소이다."

 정인사태의 반박에 곽무헌은 한심하다는 투로 웃어 보였다. 천천히 공지대사에게 걸음을 옳긴 그는 공지대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후 그를 향해 한 가지를 물었다.

  "공지대사. 그 괴수, 즉 좌군사 위공이 사용한 무공이 무엇이었소?' 곽무헌의 물음에 공지대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어쩔 줄 몰라 했던 공지대사는 전인사 태가 물어볼 때와 달리 재빨리 대답했다.

  "사천당가의 무공이었습니다. 맹주!" 공지대사의 답변에 군웅들은 또 다시 술렁거렸고 곽무헌은 두 팔을 벌린 채 군웅들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 무공이 타인이 그저 흉내내는 정도였소이까?“ 재차 던져진 질문에 공지대사는 강하게 부정하며 소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은 당문의 고절한 비전들이었소이다. 그중에만 천화우도 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소!" 괴수가 만천화우를 사용했다는 공지대사의 말에 군웅들은 경악했다.

  만천화우라면 사천당가의 직전에게만 전해지는 절초 중의 절초였다. 그러한 것을 곽무헌이 알 리가 없었다. 더구나 모두가 알다시피 곽무헌은 사천당가와 교류도 없었다. 이제 군웅들의 시선이 많이 누그러지자 정인사태는 다급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당문에서 벌인 일들은 설명이 불가하오. 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동굴들을 무너뜨렸는지 말해 보시오."

 당문의 식솔들이 죽어 있는 동굴을 무너뜨린 것을 빌미로 잡았다. 정인사태는 배수의 진을 치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곽무헌을 맹주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려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매사 뜻대로만 되지 않는 법이었다. 거의 곽무헌을 덫에 몰아넣었다고 믿었던 정인사태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곽무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곽무헌은 마치 정인사태의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즉각 대답을 내놓았다.

  "휴, 사실은 당문의 장문인이 내게 비밀리에 서신을 보내왔소이다."

 무척 고민하는 표정을 잠시 지어 보인 곽무헌은 고민을 털어놓듯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당문의 원로들이 실추된 당문의 위상을 다시 찾고자 금기를 깨뜨렸으니 도와달란 서신이었소. 그래서 비밀리에 당문을 찾았으나 이미 늦은 후였소."

 그 이후 벌어진 상황을 곽무헌은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괴수의 출현과 사투 그리고 그 와중에 밝혀진 당문의 비밀 실험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군웅들은 그제야 태산에서 사라진 수많은 도사들의 행방과 괴수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을 빼놓고서....

 악에 바친 정인사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호락호락하게 끝낼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맹주, 지어낸 이야기치고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맹주의 말을 뒷받침 할 증거가 있습니까?“

 지지 않고 받아치는 정인사태를 보며 곽무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곽무헌이 손짓을 하자 수신 호위들이 비선당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송현과 사공혜미가 안으로 들어서자 정인사태는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 사나운 기세에 사공혜미가 움찔 하자 송현이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무극무해의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가자 두려움을 잊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밝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송현을 보며 사공해미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곽무헌은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당문에서 이 모든 사태를 입증할 증거물들을 수집해 올 수가 있었습니다."

 곽무헌의 당당한 미소에 정인사태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확신과 자신감이 지워지고 있음을 느낀 그녀는 마지막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굳은 의지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 정인사태가 가련하다는 듯 일별한 곽무헌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다음 군웅들을 향해 송현을 소개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송자 현자를 쓰는 태평문의 젊은 문주올시다. " 태평문의 문주라고 소개하자 군웅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지난날 좌군사 위공 사건으로 이미 유명세를 탔던 터라 많은 이들이 송현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 가 항주에서 동정상방과 대등하게 상권을 유지하더니 근래에 들어서는 이유 없이 쇄락한 동정상방까지 흡수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었다.

  더구나 휘주상방의 항주 진출을 무산시킨 것으로 더 알려진 터라 군옹들은 새로운 인물의 출현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군웅들의 관심은 그의 재력보다는 남궁휘를 물리친 신진고수의 출현이라는 점이 더 컸다. 더구나 그 장면을 지켜보지 못했던 원로 강호인들은 남궁휘의 매서운 장을 꺾어 버린 송현을 자세히 살폈다. 정식으로 송현을 강호에 소개한 곽무헌에게 노려본 송현은 씁쓸하게 웃으 며 군웅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유약해 보이는 문사 차림의 사내를 군웅들은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지만 송현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송현의 소개가 끝나자 사공혜미가 수신호위에게 뭔가 지시를 했고 이윽고 큰 수레들이 비선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군웅들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세워야 했다.

  "아미파의 정인사태께서 본인을 믿지 못할 거라 생각 하오. 그리고 그것은 여러 무림 동도들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되어 당문의 비역에서 가져온 것들을 보여 드리겠소."

 곽무헌의 말이 끝나자 사공혜미가 소신호위들에게 명 을 내렸고 그들은 재빨리 수레를 덮고 있는 천막을 걷어 냈다.

  "저건?"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은 수레에 실린 것을 확인하자 다소 허탈한 탄식으로 이어졌다. 수레에 실린 것은 커다란 철장이었고 그 안에는 겁에 질린 개들이 실려 있었다.

  뜻밖의 상황에 녹옹 방선태가 곽무헌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맹주 지금 우리와 농지거리를 하자는 게요?“

 방선태의 마음은 곧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기에 군웅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곽무헌은 미소를 잃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자, 자! 이건 그냥 평범한 개들입니다. 이 녀석들이 무 슨 증거가 되겠습니까? 증거는 바로 이 손 안에 있소이다."

 곽무헌이 품 안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내들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병으로 집중되었다. 곽무헌이 증거라고 저낸 호리병은 분명히 당문에서 가져왔을 것이고 그것이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추리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꿀꺽!"

 누군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이 호리병 안에 든 것은 사천당가가 만들어 낸 마물입니다."

 다소 긴장한 표정의 곽무헌이 호리병을 송현에게 건넸고 송현은 하얀 천으로 두건을 만들어 코와 입을 막았다.  

  독이라는 뜻이 었다.

  사공혜미와 수신호위들이 뒤로 물러서자 철장 안의 개들은 갑자기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날뛰었다. 송현이 철장 가까이 다가오니 개들은 이미 공황상태에 빠져서 미친 듯이 제 몸을 철창에 들이 박고 있었다. 

그런 개들을 향해 송현은 호리병 안에 검을 액체를 개들에게 뿌렸다. 액체 에 닿은 개들은 몸을 덜덜덜 떨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개들을 송현은 철장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쓰다 듬어 주었다. 개들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송현도 철장 곁 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군웅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질 기대하며 숨죽이고 있었다.

  "쿠에에엑!"

 그리고 괴성과 함께 모두의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괴사가 벌어졌다.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마음이 약한 이들은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겁에 질렸던 순한 개들 이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갈라지며 징그러 운 촉수들이 튀어나왔고 이빨은 악어와 같이 길고 날카로웠다. 붉게 타는 듯한 눈은 마귀의 사냥개처럼 보였다.

  "어찌 저런 일이!"

 "괴사로다! 괴사야!"

 군웅들이 이런저런 탄성을 하는 동안 개들은 점점 그 형체를 변화시켜갔다. 또한 몸집이 변하는 동시에 흉폭성 또한 커졌다.

  텅! 괴물로 변한 개들이 철창을 몸을 들이 박자 강철로 만든 철창이 흔들렸다.

  "저! 저!" 급작스런 사태에 군웅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이에 곽무헌이 나서서 소리쳤다.

  "사천당가가 만들어 낸 독입니다. 이름도 모르고 제조 법도 모릅니다. 다행이 사천당문의 장문인이 옳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 이에 반대하면서 당문 내부적으로 전쟁이 벌어진 듯합니다. 그 와중에 서로 공멸한 듯 보이며 괴수 와구마강시의 정체는 여러분들도 보셨다시피 이 독물이었습니다."

 쉴 새 없이 몸을 던져 사람 팔뚝 두께의 강철 철장을 부 수고 있는 괴물들을 보며 녹옹 방선태는 치를 떨었다.

  까강! 결국 철장이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며 괴물들이 장내로 뛰쳐나왔다. 혈광을 내뿜는 괴물들은 피를 갈구하는 눈으로 군웅들을 향해 이빨을 드라냈다.

  "감히 저 따위 미물들이!" 대노한 명숙들이 분연히 일어나 뛰어 들었다. 특히나 녹옹 방선태가 가장 재빠르게 움직였다. 자신의 일신절기 녹장술 중 하나인 패도무적의 수법으로 개들을 쓸어 갔다.

  펑-펑-

 살이 터지는 거북한 소리와 함께 괴물 둘이 그대로 나 뒹굴었다. 나머지 개들도 고수들의 내공이 실린 검에 몸집이 잘려 나갔다. 

  당연한 결과에 군웅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손만 들어 가리킬 뿐이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당문의 비역에 서려었던 악몽이 떠오른 공지대사가 연신 불호를 외우자, 녹옹 방선태는 자리로 돌아가려던 몸을 돌렸다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헛! 어찌 이럴 수가!" 녹록치 않은 관록을 지닌 방선태였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에는 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더욱 노여움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비전절기를 선보였다. 그의 녹옥장이 흔들리더니 주변을 거칠게 휩쓸었다. 개들은 괴성을 지르며 또 다시 나뒹굴었다. 완전히 피떡이 되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끝을 냈다는 표정으로 안심하던 방선태의 표정은 금세 사나워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수십 년이나 강호를 주유하면서도 이런 경우는 소림사 에서 벌어졌던 참극뿐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쉽게 변해버 린 이들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맞닥뜨린 괴물들은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났다.

  이에 진저리를 친 녹옹 방선태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물러 서 시오!"

 웅후한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기세가 다가오자 녹옹 방선태는 즉시 뒤로 물러섰다. 그 빈자리에 도사 복장의 중년인이 뛰어 들어 검을 휘둘렀다.

  "칠검.... 무당인가?“

  방선태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드니 중년인은 그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무당의 유장문이로구나!"

 몇 해 전 새롭게 무당의 장문진인이 된이였다.

  그가 무당의 보배라고 알려진 태허천령검을 휘두르자 괴물들은 힘을 잃고 더 이상 변형을 하지 못했다. 유 장문 인의 정순한 내공이 괴물들과 상극을 이루는지 괴물로 변 한 개들은 비틀거렸다.

  "지독한 마물이로다! 어찌 아직도 숨이 붙어 있단 말인가?“ 

  무당의 장문진인이 혀를 내두르자 곽무헌이 서둘러 외쳤다.

  "자, 다들보셨으니 이 마물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셨을 겁니다. 저와 공지대사도 이 괴물들에게 크게 다쳤으니까요." 공지대사와 곽무헌까지 패했다는 말에 군웅들은 크게 경악했다.  "한낱 미물도 이렇게 강해지는데 사람이 이 독물에 중 독되면 내가고수도 어쩌지 못하는 괴수로 변하고 맙니다." 

  곽무헌이 말하는 와중에도 개들은 형체를 변형시키며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아둥바둥 거렸다. 지켜보는 이들에 게 그것은 공포였다. 바닥에 내려서 개들에게 살수를 펼 친 이들은 모두가 쟁쟁한 고수들이었다.

  만약 그런 고수들 중 하나가 이 독물에 중독되어 괴수 로 변하기라도 한다면, 정말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악몽이다. 정인사태마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아연실색하여 말문 이 막힌 상태였다.

  득의한 곽무헌이 송현을 보고 눈짓을 하자 송현은 굳은 표정으로 개들에게 다가갔다. 이젠 개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변해 버린 개들에게 고통을 느낀 송현은 눈을 감았다. 

 '미안하구나!'

 품에서 꺼낸 종이첩에서 하얀 가루를 뿌리자 끊임없이 변하던 개들이 하얀 연기를 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수들의 내기를 머금은 검에도 버티던 괴물들이 소멸 하자 군웅들은 함성을 질렀다.

  막연한 정체모를 적에 출현에 긴장했던 군웅들은 그 해 결책을 보고 안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때를 놓치지 않고 곽무헌이 나섰다.

  "여러 무림 동도 여러분 당문이 비록 천인공노할 마물을 만들어 냈지만 당문인들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남겨 두었습니다. 다행이도 그것을 본인이 취하였으니 이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 두어도 될 것입니다."

 곽무헌의 말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곽무헌을 칭송하는 말들이 쏟아냈다. 정인사태를 지지하던 점창파와 여타 문파들도 언제 그랬냐 싶게 곽무헌이 무림영웅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본인은 무림맹의 맹주로서 이 해독제를 각문파에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이 많지 않으나 여기 태평 문의 문주는 한림원 학사를 지낼 정도로 뛰어난 학식과 절정의 무공을 지녔기에 해독제를 제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이제 군웅들은 곽무헌과 송현이 강호를 구했다며 떠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곽무헌이 지닌 해독제를 절실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군웅들을 향해 곽무헌은 착 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습니다." 무겁게 입을 연 곽무헌은 정파연합이 봉문 후, 사천당 가에게 저지른 추악한 일들을 들춰냈다. 모두들 헛기침을 하거나 부끄로움에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그런 군웅들을 향해 곽무헌이 일침을 가했다.

  "이 독물은 바로 우리가 탄생시킨 겁니다. 우리의 무관심이, 우리의 욕심이, 사천당가에서 이런 마물이 탄생시키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곽무헌의 주장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심지어 봉문한 사천당가에서 패악질을 한 아미파로서는 더욱 그랬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악심을 품은 당문의 후예들이 얼마 나 많은 숫자가 이 독물을 가지고 강호에 숨어 들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곽무헌이 꺼낸 말에 모두들 사색이 되었다.

  강호라는 곳은 얽히고설킨 인과관계로 맺어진 세상이다. 건너서 건너보면 누군가와는 인연이 있는 곳이란 뜻이었다. 

 곽무헌이 살짝 부추겼을 뿐인데도 이미 각파의 원로들 과 장로들은 누가 당문과 친분이 있는지 따져보고 있었다.

 곽무헌은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어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 자! 여러분 이제 더 큰 참사는 막아야 합니다. 모든 문파의 수뇌부들은 과거 당문과 인연이 있거나 교류가 있었던 이들을 살펴 주세요. 그리고 본 맹주에게 그들의 명단을 넘걱주시기 바랍니다. 이 곽무헌이 바르고 정대한 눈으로 작금의 사태를 처리하도록 하겠소이다."

 곽무헌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끌어 나갔다.

  이미 모든 문파의 장문들이 곽무헌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고 무림맹의 권한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무림맹은 과거처럼 껍데기만 있는 유명무실한 조직이 아니라 실세를 가진 단체로 변신하게 되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곽무헌이 있었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계획이 성공했음을 기뻐하는 곽무헌을 보며 사공혜미 역시 밝게 웃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힘없이 고개 숙인 정인사태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갑자 기 늙고 초라한 노파처럼 보였다.

  ‘당신은 스스로 상처 받은 인생이라고 여기겠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죄악으로 여러 사람을 괴롭혔으니 그 죗값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고 마음대로 휘두른 정인 사태에게 사공혜미는 일체의 온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공혜미가 그렇게 과거의 연을 끊어내고 있을 때, 송현은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연단을 바라보았다.

  "남궁성현?“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남궁성현의 차가운 눈동자가 송현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남궁휘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하던 남궁성현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를 울 리는 듯했다.

  "너무 변해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

 송현은 악연으로 시작된 남궁세가와의 인연이 언제쯤이나 끝날까 생각해 보았다.

  곽무헌에게 눈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줄을 선 이들과 달 리 남궁세가 사람들은 이방인처럼 연단 위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송현은 남궁성현에게서 눈을 떼고 그 옆의 중년 장한에 게 눈을 돌렸다 남궁연! 정주부에서 자신의 딸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도륙하던 무정한 사내를 다시 만난 송현은 눈매를 사납게 만들었다. 

  늘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자식마저 희생시킨 무정한 아버지 남궁연이라는 존재를 송현은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남궁연, 당신은 도대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 거지? 송현은 당장에라도 그날의 죗값을 묻고 싶었다. 그날의 판결에 남궁연의 죄목도 집어넣었어야 했다. 왕부의 일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송현은 여전히 남궁세가와 자 신의 악연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남궁세가를 주의해야 함을 절감했다.

  '설마 하니 이 일에 남궁세가도 연관되어 있는 걸까?' 송현은 어수선한 장내 분위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꽤 많은 무림인들이 자신에게도 인사를 건네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송현은 태평문의 문주로서 강호의 인연을 맺기 바빴다.

  이를 지켜보던 정인사태는 손톱이 살에 괘이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공혜미가 다가왔다.

  "뜻을 이루지 못해 화가 많이 나셨군요."

 "감히 네 따위 계집이!"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이 자리에서 손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키우던 개에게 물렸으니 정인 사태로서는 이런 치욕이 없었다. 감히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어린 계집이 자신을 가르치려 하고 있으니 뒷골이 당겨 오는 것은 당연했다.

   "앞으로 무림맹은 달라질 것입니다. 함부로 맹주님을 대하시는 버릇도 고치셔야 할 겁니다."

  사공혜미의 거침없는 언사엔 정인사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혜인사태가 사공혜미를 나무라자 그녀는 코 웃음을 쳤다.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아미파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겁니다. 분명히 경고했으니 머리가 있다면 알아들었을 겁니다." 결국 정인사태는 치밀어 오른 혈압을 견디지 못하고 제 자들에게 부축 받아 자리를 떠났다.

  초라한 아미파의 뒤 모습을 보는 사공혜미의 어깨에 송현이 손이 올라오자 그려는 비틀거렸다. 

 "이런, 좀 전의 그 용기는 어디 가고 이리 떨고 있소?' 송현이 식은땀을 흘리는 사공혜미의 땀을 닦아 주자 그녀는 볼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였다. 

 "저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당신 때문이에요, 송현.' 

차마 할하지 못하고 안으로 삼킨 사공혜미는 송현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어서 더욱 고개를 수그렸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송현은 그녀가 그 동안 일을 준비 하느라 너무 힘들어 병이라도 난 줄 알고 걱정을 하여 자꾸 물어보니 그녀의 목덜미는 점점 붉게 물들었다.

  “허어, 이거 열이 많아 보이는데, 어서 의원에게 보여 야겠소."

 송현이 호들갑을 떨자 누군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크흑!"

 송현이 머리를 잡고 아파하자 혀를 차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찡그린 눈을 들어 보니 곽무헌이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무림맹주다워지나 했더니 이게 무슨 추태 입니까?"

 버럭 화를 내는 송현에게 곽무헌은 후벼 파던 코에서 오물을 던졌다.

  화들짝 놀란 송현이 몸을 피하자 곽무헌은 배를 잡고 껄껄 댔다. 자신이 놀림을 당한 것이라는 사살에 송현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내가 정말 맹주님 때문에 화병에 걸려 쓰러지겠습니다." 

  쓰러진다는 말이 나오자 곽무헌은 무릎을 쳤다.

  "아! 내 깜빡 잊고 있었구나!"

 "윌 말입니까?"

 뒤통수를 어루만지던 송현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곽무헌은 사공혜미를 보면서 눈치를 주었다.

 "큰일도 잘 넘겼으니 이제 자빠뜨리기 신공을 쓸 때가 되었거든!"

 깽주님!" 

사공혜미가 빽! 하니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자 곽무헌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한다."

  곽무헌하게 웃으며 송현의 어깨를 앞으로 밀었다.

  영문을 모르는 송현은 그저 얼떨결에 곽무헌을 따라서 밖을 향했다. 이미 모두가 퇴청한 후라서 비선당은 이내 침묵에 쉽싸여 있었다.

  

  비릿한 내음이 가득한 비선당에 촛불마저 꺼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고수들이 내려섰다.

  "살피거라!"

 진득한 살기를 머금은 음성에 뒤에 시립한 이들이 수레에 실린 철창을 살폈다. 그들은 품에서 사기병들을 꺼내어 철창 바닥에 눌어붙은 진액을 긁어 담는가 하면 냄새를 맡아 보는 등 아주 세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어떻소이까?" 

  인기척이 없던 단상 위에서 난데없이 말소리가 들려 왔지만 사내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수하들이 철창 내부를 살피를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지시할 뿐이었다.

  단상 위에서도 사내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비선당에 가라앉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형형한 눈빛들만이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일각여가 흐르자 수레 주변을 살피던 인영들이 조용히 물러났다. 그중 하나가 진액을 담은 호리병을 사내에게 건네자 그는 호리병 입구를 막은 천뭉치를 빼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음.......”

  억눌리고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오자 다시 단상 위에서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설마 하니 정말 저놈들이 해독제를 찾아낸 것이오?”

   이번에는 물어보는 음성에 흔들림이 뚜렷했다. 호리병을 틀어막아 수하에게 건넨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팔짱을 끼고 턱밑을 매만지던 사내는 단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휘릭!

   가벼운 발동작만으로 단상 위에 내려선 일련의 동작은 사내의 공부가 상당히 깊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속임수!" 

 사내는 짧게 이야기 했고 단상의 그늘 속에 숨어 있던 인영은 격하게 반응했다.

  "속임수라니?"

 사내는 그 반응에 말로 하는 설명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손가락을 튕기니 수하 하나가 다가왔다. 그가 손을 내 밀자 수하가 팔을 걷어 맨팔을 드러냈다. 사내는 수레의 철창에서 채취한 진액을 호리병에서 조금 덜어서 수하의 팔에 떨어뜨렸다.

 치이이이이~

  메케한 냄새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워 올랐다.

  뚝! 뚜둑!

  역겨운 냄새와 함께 뭔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정체는 진액이 수하의 팔뚝을 뚫고 비선당의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것이었다.

  "독?“

  그늘 속의 음성이 의아해하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강한 산성분을 포함한 맹독이오. 사람을 중독시키기 위한 독이 아니라 닿는 즉시 녹아버리는 효능을 가진 독이오." 

 사내의 설명에 이해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괴물로 변한 개들을 녹인 것이 그 독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개들을 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오. 설마 하니 우 리 쪽에서 유출된 것은 아니오?“

   질책의 성격이 강한 물음에 사내는 인상을 굳혔다. 딱딱해진 안색으로 보아 상당히 불만이 있어 보였다.

  "당문에서 철수하면서 칠칠치 못한 누군가 흔적을 남긴 모양이오. 그걸 곽가 놈이 운 좋게 입수한 모양인데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군."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오히려 질문을 한 쪽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소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곽가 놈이 해독제 어쩌고 한 것이 거짓이라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오."

 재차 확인을 요구하는 질문에 사내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애초에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실험한 것이 아니지 않소. 진경에도 그런 말이 없다는 건 당신도 알고 나도 아오."

  사내의 확답을 듣자 다시금 그림자 속fl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곽가 놈이 제법 머리를 쓰기는 했군. 정인사태 고년이 목을 조르니 죄를 낸 모양인데 정말 그럴 듯해!"

 결과가 만족스러운지 그림자 속의 존재는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그대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제아무리 우산파의 인피면구라지만 이곳에 모인 인간들이 어 디 보통내기들이오. 거사 전까지는 항시 조심하시오."

  그림자 속의 존재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비선당에서 인기척이 없어지자 사내의 입에서 어금니 부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써 분을 참고 있음이었다.

   "무림맹의 군사들이 순찰을 돌 시간입니다."

   수하 하나가 사내에게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고하자 사내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네놈에게 모든 걸 다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네놈이나 나나 서로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니까." 사내는 그림자 존재에게는 보여 주지 않은 푸른색 자기 병을 꺼내 보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빛냈다.

  "정말로 시독을 중화시키는 방법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놈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후후후!" 

  비선당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약하게 느껴지던 인기척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낯선 기운을 느끼고 뛰어든 군사들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수레 두 개만을 발견 한 채 별 소득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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