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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용담호혈 (30/43)

  제8장 용담호혈

  용담호혈

  웅의 쓸개처럼 쓰고 호랑이의 입처럼 담긴 것처럼 위태롭다

  무림맹에서 중원의 정세를 살피는 사공혜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맹에서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서기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소식들을 추리느라 부산스러웠다. 그 가운데 중요한 내용들은 황지에 적혀서 사공혜미에게 직접 전해진다.

  근 일 년간 오늘처럼 많은 황지가 그녀의 책상 위에 놓인 적은 없었다. 한 장을 집어 들기 무섭게 또 여러 장이 그녀의 앞에 올라왔다.

  사공혜미의 고운 아미가 주름살을 만들었다. 그녀의 영활한 머리가 기민하게 회전한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나무뿌리에서 가지로 뻗어나가듯 들어온 정보들을 책상 위에 나열해 갔다.

  마치 조각난 그림을 맞추듯이 들어온 정보들을 조합해 나갔다. 주로 태산에서 벌어진 참극에 대한 소문과 그 소문의 진위에 대한 보고서들이었다.

  “오악검존이 자취를 감췄다니 그들은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겠지.”

  가치가 사라진 내용들과 시간이 흐른 정보들은 가차 없이 버려졌다. 새로 올라오는 정보들이 책상에 자리를 차지했다.

  “수백 개의 사찰에서 천여 명이 사라졌다. 도가의 무공을 익힌 도사들을 상대로 하룻밤 사이에 일을 벌인 집단은 도대체 누굴까? 자, 어서 그 정체를 드러내 보라고!”

  사공혜미는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미지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드러나지 않는 진실은 없다. 그것이 그녀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소신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작은 것들을 모아 놓으면 숨겨진 비밀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바로 사공혜미가 가진 신비한 혜안의 능력이었다. 지금 그 혜안이 조각난 그림을 순서대로 맞춰 나가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기이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급전입니다.”

  붉은 수실로 묶인 두루마리는 일급 기밀이다. 그녀의 손길이 빠르게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무슨 일이지? 어째서 소림의 십팔나한이 움직이는 걸까?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절대로 경내를 벗어나지 않는 십팔나한이 움직였다?”

  소림의 움직임은 의외였다. 많은 도교의 문파들이 태산으로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소림의 출도는 그녀로서도 전혀 계산 밖의 변수였다. 그림 맞추기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한 통의 붉은 수실 두루마리가 도착하자 그녀는 주저 없이 뜯었다.

  “이럴...... 수가! 십팔나한의 수행승이 공지대사라는 말인가?”

  공지대사!

  천년 소림 무학의 기재라 불리는 무승 중의 무승으로 그의 장법은 거의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알려진 소림의 절정 고수였다.

  그러나 사공혜미가 놀라는 것은 단순히 그의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소림이 무승들을 출도 시킬 때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부녀자를 간음하는 무림의 간적을 추포할 경우에는 혜자 법명의 무승들이 법포를 위해 나서고 사파의 광마들이 무고한 살행을 저지를 경우 이를 막기 위해 원자 배분의 무승들이 나선다. 공자 배분의 무승이 소림 문 밖으로 나선 것은 과거 마교가 준동하였을 때 한 번 뿐이었다.

  지공 대사는 다음 대 소림의 주지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불심이 깊음은 물론이요 무공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알려진 신비한 인물이었다.

  “뭔가가 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사공혜미는 정보를 모두 손에 넣고 있지 않는 상황이 답답했다.

  “총군사님, 태산에서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무림맹의 비룡대주가 급히 그녀에게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작게 말린 종이를 참을성 있게 펼쳐 보았다.

  “오악검존이 소림과 함께 움직인단 말인가?”

  소스라치게 놀란 사공혜미는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다는 사실도 잊은 채 여러 번 읽어 내렸다. 그런다고 글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읽고 또 읽었다.

  “태산으로 가는 건가?”

  그녀의 물음에 비룡단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이 사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사천......?”

  점점 미궁 속으로 전개되는 상황이 그녀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태산이 아니고 사천? 왜 사천이지 사천에 뭐가......”

  사천 지역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린 그녀의 봉목이 부릅떠졌다.

  “설마?”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불안한 듯 손을 잠시도 가만 두지 못하더니 책상 위에 모든 황지를 모았다.

  “아진!”

  그녀의 부름에 수족이나 다름없는 서기가 재빨리 다가왔다.

  “모두 불태우도록 해!”

  아진은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귓가로 전해지는 소곤거리는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아진이 일하는 모든 서기를 불러 모으는 것을 지켜보던 사공혜미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비룡대를 당장에 준비해 주세요!”

  그녀의 다급한 명령에 비룡대주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사천으로 갑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집무실을 벗어나자 서기들에게 그녀가 시킬 일을 모두 지시한 아진이 전서구 한 마리를 꺼내서 사공혜미가 급히 건네준 쪽지를 전서함에 잘 집어넣었다.

  전서구는 아진의 손에서 벗어나자 높이 날아올라 무림맹 주위를 몇 차례 돌더니 사천성 아미산 방향을 향해 재빠르게 날아갔다.

  사천당문의 내당으로 뛰어든 송현은 시종일관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던 사이한 기운이 갑자기 사라지자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 다급히 무극무해의 내력을 끌어올린 다음 촉수처럼 사방으로 퍼트렸지만 돌아온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곽무헌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사악한 기운도 종적을 감췄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그 시기가 너무나 절묘했다. 전신에 감도는 기분 나쁜 여운을 털어내며 과거의 기억을 떠 올렸다.

  마귀가 영혼을 갉아먹으려 했던 끔찍한 순간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황궁에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달콤한 유혹의 속삭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만약에 그때 사부인 시타르가 없었다면 송현은 인성을 잃고 흉측한 괴물로 변해서 사랑하는 이들을 해쳤을지도 모른다.

  잠시 무서운 상상을 해 본 송현은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나쁜 기억을 털어 내려 했다. 그리나 그 상상속의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주변에서 혈향이 짙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건 좋지 않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는 일이지만 사부인 시타르의 바람이었고 무당의 장 진인이 죽음으로서 묻고 싶어 하던 망령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곽무헌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한편으로 송현은 당천악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몰랐다.

  그냥 이대로 무극무해의 비밀이 영원히 덮이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운명은 송현을 냉정한 현실 앞에 끌어다 놓았고 도망치지 못하게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 송현은 곽무헌의 종적이 사라진 것과 당문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일의 배후에 당천악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했다.

  당천악의 집요하고도 무모한 집착을 떠올린 송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아이에게 폭죽을 쥐어 준 것처럼 무공에 미쳐 있는 사람이 무극무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자신의 염원을 위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송현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당문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점점 더 송현의 마음을 짓눌렀다.

  엄습하는 불길함을 지우며 송현은 곽무헌의 기척을 찾기 위해 경신법을 운용하여 사천당문의 구중심처로 뛰어 들었다.

  이각여 동안 당문을 헤집고 다녔지만 결국 허탕만 치고 말았다. 한참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송현은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아무리 봉문을 했다지만 그 많은 당가의 사람들이 하늘로 사라졌을 리도 없고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지 모르겠어.’

  사천성의 패자로 군림하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당문의 화려했던 역사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당시의 위세를 느끼게 해 주는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람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내당의 별원으로 들어가는 문에 손을 대자 먼지가 묻어났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독을 사용하던 일가가 독 때문에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 송현은 미로 같은 당문의 건물 구조 때문에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맹주님!”

  빈 건물의 문들을 열어젖히며 곽무헌을 불러 보지만 귀신처럼 사라진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점차 하늘이 어둑어둑 해졌다.

  끼이익!

  독한약초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건물에 들어선 송현은 고약한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서 나오려 했다.

  바스락!

  인기척이었다.

  풍보의 백팔 걸음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거리를 좁혔다.

  “꺄악!”

  앳된 비명을 지르는 작은 인영이 탁자 아래 밑으로 재빠르게 도망쳤다.

  “어딜!”

  안력을 돋운 송현은 어둠 속에서도 도망치는 작은 물체를 금나수의 수법으로 낚아챘다.

  “살려 주세요!”

  송현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은 어린 아이였다. 얼마나 씻지를 못했는지 뗏국물이 흐르는 얼굴 때문에 사내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등바등 어찌나 몸부림치는지 옷이 찢겨 나갈 판이었다.

  “요 녀석이, 얌전히 있지 않으면 혼내 줄 테다.”

  짐짓 송현의 으름장에 겁에 질린 아이가 말도 못하고 고개만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안 되어 보이기도 했다.

  꼬르륵!

  아이의 뱃속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겁에 질렸던 아이도 민망했던지 배시시 웃었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내려 주마.”

  송현이 품속에서 말린 건량을 꺼내서 흔들자 아이의 눈빛이 빛났다.

  건량 때문이라도 도망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자 송현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과연 아이는 송현의 손에 들린 건량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상당히 오래 굶주렸단 뜻이었다.

  “자, 네 것이다.”

  건량을 건네주자 아이는 허겁지겁 입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칵, 커윽!”

  너무 급히 먹어 사래가 들리자 송현이 기운을 끌어올려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등으로 따스한 기운이 흘러 들어오자 파리해졌던 아이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나 원. 욘석아, 그러다 숨 막혀 죽을지도 몰라.”

  송현은 봇짐에서 호리병을 꺼내 마개를 따자 아이는 미친 듯이 물을 들이켰다. 고 작은 몸에 어찌 그리 많이 들어가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아, 하아”

  미친 듯이 건량을 먹어 치운 아이는 배가 부르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송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 못해 기름져 보기 흉했고 얼굴은 시커멓게 물들었다. 하얀 흰자위가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잘 보였다.

  “이제 대화를 나눌 상태가 된 것 같구나.”

  의자를 당겨서 아이 앞에 놓고 엉덩이를 걸친 송현이 눈높이를 맞추었다

  “네 이름이 뭐지?”

  부드러운 음성에 맑은 눈을 가진 송현에게 설득당한 아이는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입을 열었다.

  “당소혜라고 해요.”

  아직 무림의 가계를 잘 모르는 송현이었기에 그저 당소혜라는 이름을 듣고 그러려니 했지만 다른 무림인이 들었다면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당해미와 더불어 사천당문의 천독신녀라 불리는 당문의 후예였다. 그러나 그걸 알 리가 없는 송현은 그저 당문의 식솔 중 하나라고 여겼다.

  “당소혜? 참 예쁜 이름이구나!”

  송현은 그제야 아이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사내아이도 아니고 여자 아이가 홀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니 놀랄 따름이었다.

  송현은 손수건을 꺼내서 호리병에서 남은 물에 적신 다음 당소혜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손수건이 검게 물드는 대신 당소혜의 뽀얀 피부가 드러났다.

  “이런 당소혜가 이렇게 어여쁜 아가씨인 줄을 꿈에도 몰랐는걸!”

  송현은 어린 동생 같은 마음으로 행동했지만 정작 당소혜는 목까지 붉게 물들어 어쩔 줄 몰랐다.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소리를 들킬 것 같아 더욱 움츠려 들었다.

  대충이나마 닦아 내자 귀여운 소녀가 나타났다. 송현은 만족스러웠다.

  “자, 예쁜 아가씨 나는 송현이라고해.”

  “송...... 현?”

  고개를 끄덕이는 맑은 눈의 청년을 당소혜는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소혜야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지 않을래?”

  부르르!

  당소혜는 갑자기 신형을 격하게 떨었다. 누가 봐도 공포에 질린 가엾은 소녀였다. 이빨까지 부딪히며 두려움에 빠진 당소혜를 송현은 가슴에 안았다. 역한 냄새가 올라 왔지만 겁에 질린 어린 소녀를 내려놓지 않았다.

  우웅!

  송현의 몸에서 흘러나온 따스한 기운이 따듯한 목욕물처럼 당소혜를 감싸자 비로소 떨림이 잦아들었다.

  “쉬! 괜찮아. 아무 일도 없으니까 안심하고.”

  여러 차례 송현이 달래주자 당소혜의 안색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었다.

  물어보는 송현의 마음도 편치 않았지만 진상을 알아내야 했다.

  송현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당소혜를 안고 다시 물어 보자 당소혜는 울먹이며 한 가지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당문 전체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당소혜의 작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든 내용들의 연속이었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다 보니 눈으로 본 것을 받아들이는 데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송현은 여겼다. 다소 황당한 것들을 무시하며 당소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장로 할아버지들까지 힘을 모았지만 그 괴물은 더 강했어요.”

  울먹이는 당소혜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송현은 모질게도 어린 소녀에 가혹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지?”

  잠시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당소혜는 다시 몸을 떨었다.

  “문주님과 언니, 그리고 장로 할아버지들께서 겨우 괴물을 쓰러뜨렸는데...... 쓰러뜨렸는데......”

  마치 그날의 현장으로 돌아간 듯 당소혜는 작은 주먹을 움켜 쥐고 흥분했다.

  “그런데, 더 많이 나타났어요.”

  겁에 질린 당소혜보다 송현이 더 놀랐다.

  “뭐라고? 더 나타났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화들짝 놀란 송현이 당소혜를 다그치자 가뜩이나 겁에 질린 그녀는 또다시 울먹였다.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송현이 진정하고 그녀가 다시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게, 하나...... 둘...... 열, 수십이었어요. 그 괴물들은 쓰러뜨린 녀석보다 더 강하고 빨랐어요. 결국 힘이 다 한 문주님과 언니도 놈들에게 당했고 장로 할아버지들이 저를 숨겨 주었어요.”

  전말을 알게 된 송현은 신음을 흘렸다. 당천악이 무리하게 무극무해를 익히다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거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이 미친 작자가 도대체 무슨 흉괴를 꾸미고 있는 거지?”

  당천악을 떠올리며 분노하고 있던 송현은 당소혜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몸부림치는 바람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왜 그러니?”

  절박해 보이는 당소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송현을 잡아 흔들었다.

  “어두워지면 놈들이 나타나요. 숨어야 해요.”

  “놈들?”

  당소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송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송현은 당소혜가 하자는 대로 따라나섰다. 그녀는 마룻바닥의 한쪽을 뜯어내더니 익숙한 솜씨로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이곳에서 숨어 지낸 모양이구나.”

  저도 모르게 감탄한 송현은 작은 구멍에 몸을 구겨 넣어야만 했다. 아래로 내려서니 사람 하나 지나갈 공간이 길로 나 있었다.

  “비밀 통로인가 본데 어디로 향하는 거니?”

  저만치 앞서 갔던 당소혜가 되돌아와 손짓을 했다. 빨리 따라오라는 뜻이었기에 별수 없이 바닥을 기어야만 했다. 등이 아파올 무렵 어두웠던 굴이 끝나 가고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끝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인기척?’

  소리가 나는 곳에 가까워지자 송현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빛이 흘러나오는 곳을 당소혜는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해 구멍을 안쪽을 살핀 송현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같으니라고!’ 

  그곳은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구멍 아래는 거대한 석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석실에는 돌로 된 침상이 수백 개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위에 사람들이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건장한 사내에서 아이를 가진 임산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끔찍하게도 그들의 전신 요혈에는 가느다란 관들이 꽂혀 있었다.

  안력을 돋우어 자세히 살피니 그 관으로 무언가 흘러나왔다. 그것들은 석실 가운데 있는 대리석 욕조 안을 채우고 있었다.

  역한 냄새 때문에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신보다 어린 소녀도 참고 있기에 송현은 억지로 삼켰다.

  “저들이 당문 사람들이니?”

  아주 작게 속삭이자 당소혜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모르는 곳을 눈여겨 보니 중년의 남녀가 누워 있었다.

  “가족들이로구나.”

  당소혜의 표정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변하자 송현이 얼른 그녀의 입을 막았다. 침상주위를 오가며 사람들을 살피는 자들이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지금 들켜서는 곤란했다. 그랬다가는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통로 안으로 들어간 송현이 눈가에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중에 꼭 가족들을 구해 줄게.”

  “정말이요?”

  “그럼 꼬마 아가씨! 자, 약속!”

  송현이 새끼손가락을 걸어 주자 당소혜의 얼굴에 금세 웃음이 피어났다.

  “그러려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야만 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무섭고 겁이 날 텐데 애써 밝게 웃는 당소혜를 보니 송현은 마음이 무거웠다. 어린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극무해를 아는 자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고심하는 송현을 보던 당소혜가 머리를 쳤다.

  “아, 이런 바보! 얼마 전에 반대편 석실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기운을 되찾은 당소혜가 뭔가 기억해 내고는 알려 주었다.

  “그래, 그리로 가보자꾸나!”

  내키지는 않지만 송현은 또다시 어린 당소혜를 앞장 세워야만 했다. 오른쪽, 왼쪽으로 돌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좁은 통로에서 혹사를 한 후에야 또다시 빛이 흘러나오는 통로를 찾아냈다.

  당소혜가 자랑스럽게 손가락을 치켜드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들여다본 송현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두 번째 석실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관 복장을 한 도사들이거나 수련생들이었다. 그들 역시 몸에 가느다란 관에 꽂힌 채 누워 있었다.

  당문 사람들과 굳이 다른 점을 찾으라면 이들이 당문 사람들보다 더 생기가 돈다는 정도였다. 그걸로 미루어 이들은 이곳에 끌려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 많은 사람들을 잡아 왔을까? 아니 그보다 이 정도 대규모 납치라면 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이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분명히 사천당문의 정문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는데 석실 안에 있는 이들이 너무나 태연하다는 점이었다.

  숨어서 이런 짓을 벌이는 자들이라면 침입자 때문에 경계가 삼엄해져야 옳을 일인데 침상을 오가며 관에서 체액이 제대로 흐르는지 검사하는 복면인들은 너무나 여유로워 보였다.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맹주 곽무헌의 성정으로 보아 지금쯤 큰 소란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아니 그보다 우리 보다 먼저 당문을 찾은 이들의 숫자가 꽤 많아 보였다. 그 많은 인원이 찾아 왔다면 의당 저들은 경계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송현은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당소혜는 그런 송현을 데리고 당문의 지하 깊숙이 어디론가로 향했다.

  똑! 똑!

  비좁은 통로를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음습한 동굴이었다. 동굴의 천정에서는 어디선가 물이 떨어져 내렸다.

  간혹 이마에라도 물방울이 튀면 그 차가움에 몸서리쳤다. 당소혜는 빛 한 점 없는 동굴을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듯 자유롭게 다녔다.

  송현도 내력의 힘으로 겨우 겨우 앞을 분간할 뿐이었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곧 송현은 당소혜의 두 눈이 일반인들과 달리 어둠 속에서 아주 검게 빛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송현이 뒤처지자 뒤를 돌아본 당소혜의 두 눈은 자수정처럼 빛이 나고 있었다.

  ‘이 아이 보통 아이가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일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을 하게 되니 어린 소녀 혼자서 몰래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었다.

  손을 잡아 준다는 핑계로 당소혜의 손을 잡은 송현은 은밀히 맥문을 통해 무극무해의 진기를 흘려보냈다.

  ‘역시, 기혈이 뒤틀려 있다. 이런 몸으로 살아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무언가 인위적인 힘이 이 아이를 보호하고 있어.’

  무극무해의 기운이 체내로 침입하자 당소혜의 몸속에 있던 기운이 득달같이 달려와 경계했다. 그러나 무극무해의 기운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더니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무겁고 사이하기는 하지만 순수하다. 그리고 영기마저 가지고 있어서 주인의 몸을 지키려고 하는구나.’

  송현은 정신을 더욱 집중해서 당소혜의 몸속에 숨어 있는 기운과 접촉했다.

  ‘그래 그렇군. 너는 독이로구나!’

  두 개의 이질적인 기운이 당소혜의 몸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소혜의 몸속에 숨어 있던 정체불명의 기운은 송현을 보자 마치 말 많은 여인네처럼 수다를 떨었다.

  ‘그래, 그렇구나! 너는 독정이야.’

  무극무해와 전혀 다른 낯선 기운과의 교감을 통해 당소혜의 체내에 잠들어 있던 것이 순수한 독의 결정체인 독정임을 알게 되었다. 뜻밖의 사실에 고개를 주억거린 송현은 자신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이 아이가 사천당둔의 백년 정화가 담긴 독인지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맙소사! 그렇다면 이 아이는 이미 백 살이 다 되어 간다는 뜻이잖아.’

  화들짝 놀란 송현은 어둠속에서 당소혜를 다시금 살폈다. 아무리 보아도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녀였다

  ‘웅! 웅!’

  송현이 다른 생각을 하자 당소혜의 독정이 심통을 부리 듯 반응을 보여 왔다.

  ‘후후후, 소혜처럼 독정의 기운도 순수하구나. 독이라는 것이 이렇게 순수한 힘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기는 할까?’

  생명을 해치는 독이 원래는 가장 순수한 생명이라는 진리에 송현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곧 그것이 바로 자연의 무서움임을 깨달았다.

  ‘그래, 가장 순수한 힘이기에 그것이 변질되면 가장 무서운 힘으로 바뀔 수도 있는 거야.’

  독이란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순수한 생명으로 남을지 남을 해치는 무서운 무기가 될지 결정이 되는 것이다. 그때 송현의 뇌리로 무극무해의 심상 편에 수록되어 있던 고대의 문구들이 떠올랐다.

  ‘그래, 이것은 무극무해의 자연기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무릎을 내리치며 감탄한 송현은 심상 편에 수록된 모호하고도 풀 수 없는 비문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았다.

  ‘무극무해의 자연기는 말 그대로 자연의 위대한 힘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겸허해야지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무극무해는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변하게 되는 것이었어!’

  왜 수많은 절정의 고수들이 심상 편을 뛰어넘지 못하고 흉측한 괴물로 변했는지 송현은 깨달았다.

  ‘아, 아!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란 말인가? 위대한 대자연의 순리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미약한 생명일 뿐인데.’

  심상 편의 모든 구절들의 의문들이 모두 풀어져 송현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송현은 기쁨에 떨었고 감고 있는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는 송현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당소혜는 갑자기 송현의 몸이 빛난다고 느꼈다.

  화악!

  송현의 몸에서 강력한 빛이 새어 나오자 당소혜는 깜짝 놀랐다.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선 당소혜는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에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칠흑과도 같이 어두운 동굴에 태양이 뜬 것 같았다. 동굴 속에 숨어 있던 박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사천당문의 현판 아래 늘어선 건물들 주위로 수많은 시체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한 결같이 신분을 숨기기 위한 야행복 차림의 무사들이었다.

  여기저기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고 아직 쓰러지지 않고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단내가 풍겨져 나왔다.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짐작케 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아직 피가 모자라는 장내는 머리카락이 곤두 설 정도로 살기로 가득했다.

  “아미타불......”

  한 손에는 봉을 다른 한손으로는 합장을 하며 명을 기리는 장년의 승려는 피로 물든 승복을 보며 연신 불호를 외웠다.

  쿵!

  봉을 내려놓자 바닥에 깊게 패이며 큰 소리를 냈다. 곧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적들을 베어 넘긴 도사들이 다가왔다.

  “공지대사, 이처럼 지독한 놈들은 난생 처음이외다.”

  초로의 도사는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털어 내며 착잡한 표정이었다. 승복을 물들인 핏물을 보며 불심을 일깨우던 지공대사의 눈을 떴다.

  “축생에도 들지 못할 마귀를 만들어 냈으니 저들 또한 부처님의 자비를 포기한 지옥의 나찰들일 뿐입니다. 아미타불!”

  그러나 명복을 비는 것만은 잊지 않는 지공대사를 보며 도관들은 그의 깊은 불심에 탄복했다.

  “오악검존께서 함께해 주셔서 소승은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높은 위명처럼 겸손함을 잃지 않는 공지대사의 높은 덕목에 오악검존은 소림의 미래가 밝다며 저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 공지대사의 표정은 너무나 어두웠다.

  주변은 여느 곳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하늘에는 의당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밤하늘의 별도 한낮의 태양도 없는 회색의 잿빛 하늘뿐이었다.

  이곳은 십여 장도 넘게 내려온 지하의 동혈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를 보며 공지대사는 상대를 너무 과신하지는 않았는지 후회가 들었다.

  자신과 십팔나한 그리고 오악검존! 일견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무력인 듯싶었지만 지하로 내려온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 그 괴수가 사천당문의 무공을 사용했다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뻔한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 도대체 누굴까?’

  공지대사는 지난 십여 일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태산의 사태를 전해들은 소림의 장문인은 지체 없이 지공대사와 소림의 최고의 무승들로 이루어진 십팔나한을 내놓았다.

  ‘장문대사께서는 뭔가에 쫓기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불심이 깊으신 장문대사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떠나기 전날 공지대사는 장문인이 은밀하게 당부한 일들을 떠올렸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과연 그런 것이 있다는 말인가? 후, 나중의 일을 지금 걱정하며 근심을 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선은 괴인을 만들어 낸 자들의 정체부터다.’

  공지대사는 불호를 외우며 스스로를 다독인 후 시체를 넘어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그들은 길의 끝에 나 있는 사천 비역의 문 앞에 섰다. 그곳은 막다른 곳이었다. 주변은 거대한 절벽으로 완벽하게 사위를 막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동굴에 어떻게 이런 시설들이 들어섰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연 사천당문은 음흉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지하 깊은 속에 이런 엄청난 비역을 마련해 두었으니 만에 하나 그들이 성세가 하늘에 닿아 그 힘이 구파일방을 뛰어 넘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오악검존의 막내 오존 청일수 도장이 근심이 가득하여 탄식하니 다른 검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라도 그들의 흉계를 알았으니 무림의 정의에 따라서 처벌해야만 하오.”

  일존 청수자가 검을 고쳐 잡고 석문을 노려보았다.

  “아미타불, 청수자 어른의 말씀이 옳습니다. 문은 소승이 열도록 하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 내려는 듯 공지대사가 계장을 팔뚝에 올리더니 석문을 양쪽에서 잡았다.

  두드드드!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석문이 흔들리며 굉음을 냈다.

  “과연 금강대력신공!”

  청수자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불문 무공의 정화인 금강대력신공의 막대한 내력 앞에 검존이라고 불리는 오악검존도 혀를 내둘러야 했다.

  고오오오!

  석문이 열리자 어두운 내부에서 털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말없이 그 안을 노려보고 있던 지공대사는 불경을 나직이 외무며 안으로 들어섰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각오를 다진 오악검존과 십팔 나한마저 석문 안으로 사라지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잠시 후 날듯이 중년인이 석문 아래 내려섰다.

  “땡중 녀석이 힘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나. 나도 이 문을 열려면 진땀 깨나 흘려야 할 텐데. 후후후.”

  두꺼운 석문을 두드려 본 곽무헌은 기운을 죽이고 그들의 뒤를 몰래 쫓았다. 곧이어 적막함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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