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풍운천하
풍운천하
용이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영웅호걸들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세상이 크게 변하려는 기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산동성 중부에 위치하는 천하제일 태산.
가을이 되어 꽃들이 만발한 태산은 불어오는 바람에 산 내음을 실어 보낸다. 태산 입구인 일천문에서 중간 지점인 중천문까지는 건장한 사내의 걸음으로 한 시진 거리다. 육천 개의 계단을 모두 발로 디뎌야만 정상으로 불리는 남천문에 이른다.
가파르게 경사진 산길의 좁은 계단을 쉼 없이 오르는 일은 고행의 연속이다. 보고 또 보아도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예로부터 ‘영혼이 깃든 산’ 이라며 경원시 해 왔다. 태산은 화산, 숭산, 형산, 항산 등과 함께 오악으로 불리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일컫는다.
‘오악독존’이라 불리는 것도 태산이 도교의 성산인 까닭이다. 그런 연유로 태산 산기슭마다 도교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도사들만 있다는 건 아니다. 태산을 칭송하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인 공자는 일찍이 태산을 찾은 다음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 보인다.” 고 했고 시인 두보는 정상에 올라 “태산에 오르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는다.” 며 경탄했다. 그래서 수많은 영웅호걸과 현자들이 태산에 오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돌계단 위로 붉은 천이 산바람에 펄럭이며 서서히 나타났다.
깃발이었다.
북궁표국이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깃발을 등에 꽂은 표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잠시 멈췄다.
“두칠이 이놈아, 또 꾀를 부릴 참이냐?”
기다렸다는 듯이 걸걸한 목청이 터져 나오자 이내 인상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거 영감탱이가 기운도 좋지!”
무거운 다리를 다시 움직이며 막 고개를 넘어오는 표사가 맞장구를 쳤다.
“누가 아니래 젊은 것들도 숨을 허덕거리느라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저 망할 영감은 지칠 줄을 몰라.”
“끙! 누가 아니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어서 움직이자고 갈 길이 멀어.”
턱을 넘는 표사의 손을 잡아 준 두칠은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정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일세, 해 지기 전에 도착해야 저녁이라도 한 술 뜰 테니 서두름세!”
표사들이 턱을 넘자 그 뒤로 쟁자수들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칠 만도 했다. 그러나 허리에 붉은 띠를 두른 표사가 행렬을 독려하자 쟁자수들이 원망 어린 눈길을 보냈다.
“밤에 노숙이라도 할 셈들인가? 난 그렇고 싶지 않으니 어서 움직이게!”
소리는 나지 않으나 입모양을 보니 구시렁거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없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하는 법인데 이 무리한 표행을 강행하는 입장에서 더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미에서 쫓아온 머리가 희끗한 노표사에게 하소연을 할 뿐이었다.
“어르신, 태산행은 웬만하면 의뢰를 받지 말자고 말씀 드리시지 그랬습니까?”
“쯧쯧, 이보게 마운룡, 그게 어디 내 뜻대로 할 일인가? 요새 표국의 자금 사정이 빠듯한 판에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건 자네도 알지 않나?”
혹 떼려다 붙인다고 오히려 혼이 난 중년의 표사 마운룡은 괜한 말을 꺼낸 자신의 입을 탓했다. 그리곤 표물을 전할 산기슭을 눈으로 찾아보았다.
“부지런을 떨어야 겨우 시간을 맞출 게야.”
노표사의 으름장에 마운룡도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서둘렀다. 노표사의 말마따나 늦으면 표국의 신뢰가 떨어지니 큰일이었다. 마운룡의 목청이 커지자 쟁자수들의 입이 한 자나 더 나왔다.
“쯧쯧, 저 친구는 다 좋은데 융통성이 없는 게 탈이야. 그나저나 오늘 태산이 왜 이리도 썰렁한고?”
노표사는 계단의 위아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상시라면 벌써 사찰에 드나드는 도사들과 여러 차례 마주쳤어야 하는데 코빼기조차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다.
“중양절도 아닌데 거참 이상하구나!”
노표사는 가슴 한쪽으로 깎고 드는 불길한 마음을 애써 떨쳐 내며 계단을 힘차게 올랐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표사를 끝으로 북궁표국의 행렬은 중천문을 지나쳤다.
벽하사!
대문에 걸려 있는 편액에 선명하게 새겨진 벽하사 이 세 글자를 확인한 표국 일행들은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쟁자수들은 더 이상 등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표사들 역시 오늘 밤은 편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경험 많은 노표사는 눈빛을 번뜩이며 주변을 살 폈다.
“너무 조용해!”
그때 바람결에 묻어오는 짙은 혈향에 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좋지 않다!”
사단이 발생한 것이다. 노표사의 검이 빠져나오자 널 부러져 있던 쟁자수들이 기겁을 했고 표사들은 검을 꺼내 들고 사위를 경계했다. 고풍스러운 사찰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상한데요? 문이 닫혀 있을 시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마운룡이 잔뜩 긴장하여 다가왔다. 말을 건네면서도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기 여념이 없었다. 표사로서 특유의 위기 감지 능력이었다. 돌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이가 나은 법이었다.
시각, 후각, 청각 그 모든 것이 일생일대에 가장 큰 위험이 눈앞에 닥쳤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북궁표국의 노표사는 갈등했다. 이번 표행의 행수로서 이대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표물을 건네야 하는 사명을 완수해야만 하는지 잠시간 고민했다.
“이번 표행은 아무래도 길보다 흉이 많을 것 같다. 표사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게!”
“그리하겠습니다.”
마운룡이 노표사의 명을 받아 겁에 질린 쟁자수들을 다독이는 동안 표사 두칠은 노표사의 눈짓을 받아 굳게 닫힌 사찰의 대문을 열기 위해 검을 문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검을 위로 천천히 올리자 걸쇠가 검에 닿았다.
평소 덩치 값을 한다는 소리를 듣던 두칠이 끙! 하는 기합과 함께 힘을 쓰니 걸쇠가 버티지 못하였다. 나무 걸쇠가 바닥에 부딪혀 털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후원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노표사가 발로 대문을 강하게 걷어차자 표사들은 일제히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찰 안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걸로 보아 화급을 다투는 일이 벌어졌음을 알수 있었다. 검을 잡은 손에 진땀이 흐르고 입 안에 고인 침이 말라 왔다.
노표사의 수신호에 사찰 안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졌다. 선을 행하는 도교의 사찰 안에서 싸늘한 냉기만이 흘러나오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둑어둑해지며 밤의 그림자가 사찰을 뒤덮자 사찰은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표사 두칠과 자삼은 뒷골이 당기는 느낌에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표사들과 달리 자신들이 익힌 재주라고 해 봐야 힘 빼고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그저 검술이라고 돈 몇 푼주고 무도관에서 배운 것이 다인데 오늘 따라 손에 들고 있는 청강검이 영 미덥지 못했다.
사락!
뭔가 스치는 소리에 두 사람은 귀신이라도 본 듯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으아아!”
검을 허공에 대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비명을 지르던 두 사람은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 하.... 하하하!”
허깨비에 놀라 허둥댄 자신들의 꼴이 우스웠던지 긴장이 풀린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뜨렸다.
“나 원 참. 이거야 창피하구만.”
“그렇게 말이야, 이건 어느 누구한테도 발설해서는 안 돼.”
“암 여부가 있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로 동의한 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크으으...... 암 여...... 부가 있나...... 끄으으!”
자신들을 흉내 내는 기괴한 음성에 홀린 듯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무엇을 보았는지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끄으으...... 나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서걱!
피보라가 땅에 수를 놓았다.
툭!
떼구르르!
표사 두칠과 자심의 부릅뜬 눈이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벽에 부딪히며 멈췄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동료들이 본 것은 경련을 일으키는 두 표사의 몸뚱이와 무엇을 보았는지 공포에 질린 눈만 남은 두 개의 머리뿐이었다.
쿠오오오!
이윽고 괴물의 울부짖음을 시작으로 죽음의 사냥이 벌어졌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어쩌지 못하고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내달렸다.
뚝! 뚝!
이제 보니 숨이 차서 옆구리를 부여잡은 것이 아니라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기 위해서 누르고 있던 것이다.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상처는 마치 짐승의 발톱에 뜯겨 나간 것처럼 흉측했다.
그러나 상처를 돌볼 여력이 없는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면서도 용케 넘어지지 않고 내 달렸다. 성한 몸으로도 헤쳐 나가기 힘든 밤의 산길을 피로 범벅이 된 북궁표국의 표사는 쉼 없이 내달렸다.
“하아, 하아.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달 아래 드러낸 자는 표사 마운룡이었다. 잠시 나무 등걸에 기대어 방향을 가늠한 다음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척추를 타고 흐르는 끔찍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크윽!”
참아 보려고 했지만 악다문 입술 사이로 간간히 신음이 흘러나왔다. 애써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마운룡의 인내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어둠의 저편에서 지옥의 악귀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숨소리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했다.
“가야 해!”
한줌 남은 진기로 간신히 몸을 일으킨 마운룡은 그러나 전혀 움직이고 못하고 갑자기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스스스!
사이한 소리와 함께 뭔가가 대지에서 일어나 달빛을 가렸다. 크고 검은 존재는 두 개의 붉은 혈광만 번뜩였다.
“어, 어느새?”
필사의 도주가 소용없었음을 알게 되자 마운룡은 망연자실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던진 노표사의 희생 덕분에 마운룡이 자금까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너만은 살아야 한다.’라며 고집을 부리던 노표사의 모습이 가슴을 짓눌렀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 명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북궁표국의 표사로 입문해 가정도 꾸리고 지금의 자리에 겨우 올랐다. 그동안 헤쳐 나온 생사의 고난이 모두 덧없이 느껴졌다.
“갈 때 가더라도 죽은 동료들을 부끄럽게 할 수는 없어.”
부러져 반 토막이 난 검을 들어 올렸다. 몰골은 형편없었지만 기개만은 드높았다.
“크크크”
검은 그림자는 맹수가 토끼를 가지고 놀듯 마운룡을 툭툭 치며 이리저리 몰았다. 비틀거리는 마운룡은 끈 없는 연처럼 맥없이 흔들렸다.
털썩!
결국 힘이 다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마운룡은 악을 썼다.
“그만 놀리고 어서 죽여, 이 더러운 괴물아!”
괴물이라는 말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의 신형이 부르르 떨었다.
“내가 괴물?”
기괴한 짐승의 소리 대신에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마운룡은 놀라고 말았다.
“나...... 나, 나는 괴...... 물이 아니야.”
어눌한 말투였지만 확실히 이성이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저 괴물이 갑자기 왜 저러지?’
마운룡은 괴물이 주춤거리자 뒤로 내뺄 궁리부터 했다 엉금엉금 기어서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내 손이 어떻게 된 거지”
흉측하게 변해 버린 자신의 팔을 보며 경악한 괴물은 쾌 큰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렸다.
딸랑! 딸랑!
그때 신묘하고 기이한 방울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딸랑! 딸랑!
“끄아아!”
검은 그림자가 방울 소리가 날 때마다 견디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달빛 아래 드러난 검은 그림자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아이들이 꿈에서 보는 그 어떤 괴물보다도 공포스러웠다.
가재의 집게 같은 것과 맹수의 이빨보다 더 길고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괴수는 온몸이 털로 뒤덮였고 붉은 두 눈은 그 속에서 불길이라도 뿜어져 나을 것 같았다.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광경은 끔찍했다. 방울 소리가 커질수록 숲을 울리는 괴성도 점점 커져만 갔다.
괴수가 요동치자 근처에 있던 새들이 깜짝 놀라서 날아올랐다. 깊게 잠들었던 태산이 공포에 떨며 소란스러워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마운룡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고 부러진 장검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허벅지를 찔렀다.
“큭!”
허벅지에서 밀려오는 고통 덕분에 아득해지던 정신이 겨우 돌아왔다. 마운룡은 괴물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도망치려 했다.
“크으으...... 다 죽인다!”
방울 소리가 사라지자 괴물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특유의 낮게 그르렁거리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끝인가?”
바닥을 기던 마운룡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체념한 듯 돌아누웠다. 보통 사람보다 두 배나 커 보이는 괴수의 팔이 마운룡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치이익!
뭔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살이 타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아악!”
마운룡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불에 데인 듯한 통증에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차라리 죽여, 이 괴물아!”
그 말을 들었는지 반대편 집게가 하늘 높이 들렸다. 날카로운 끝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이제 마지막임을 느끼고 마운룡은 눈을 질끈 감았다.
카캉!
살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 대신에 금속음이 들려오자 마운룡은 의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날아올랐음을 깨달았다.
“으아아!”
추락하던 몸이 어느 순간 정지했다.
턱!
“괜찮나?”
중저음의 목소리는 그의 내력이 얼마나 심후한지 말해 주고 있었다.
“누구...... 설마 오, 오악검존?”
다 죽다가 살아난 마운룡은 아직 천지신명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다.
검은 장포에 머리를 틀어 올리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수염을 기른 다섯 명의 노도사. 등에 멘 청룡검이 오악의 전설이라고 알려진 오악검존이라고 알려주었다.
오악에 은거하며 거의 불출산한다고 알려진 은거기인들의 출현에 마운룡은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비롭게 나타난 오악검존 중 가장 키가 큰 도사가 청룡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태산의 정기를 흐리는 사기가 느껴져 달려왔건만 듣도 보도 못한 마귀가 날뛰고 있었구나.”
청룡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순한 기운이 싫은지 괴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무량수불! 어이하여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나 살육을 부르는 너의 마기를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오늘 살계을 범해야겠다.”
스르릉!
청룡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타핫!
오악검존 중 제일존 청수자가 나는 듯이 날아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듯 청룡검이 괴수를 향해 춤을 추었다.
내세에는 슬픈 처지를 바꿔 나서
악업은 죽고 선함으로 살아
천 리 밖 만리장성에서까지
이 마음 이리 슬픔을 알게 하고 지고!
노도성과 함께 괴수의 슬픈 운명을 위로하는 시구가 어우러졌다.
“크아악!”
자신의 기운과 반대되는 오악검존을 향해 적의를 드러낸 괴수의 혈광에서 살기가 증폭되었다.
가가각!
일존 청수자는 검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에 화들짝 놀랐다. 마치 대리석에 검을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성공하리라 믿었던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나뭇가지에 내려선 청수자의 눈매가 미미하게 떨렸다.
“이런 해괴한 일이 있나?”
이존 청매자, 삼존 청수인이 달려왔다.
“사형, 보통 괴수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영물이 되지 못해 이무기가 된 듯싶습니다.”
“이무기?”
청수자는 두 사제의 말에 공감하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사존과 오존이 합격을 하며 괴수를 공격하고 있지만 괴수의 화만 돋울 뿐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후! 한낱 미물에게 우리의 공부를 다 드러내야 한다니 우습지만 별수 없지. 저 끔찍한 괴수가 산을 내려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우리가 숨을 끊어 놓아야 한다.”
일존 청수자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결정하자 사존과 오존이 괴수에게서 떨어졌다.
일존 청수자를 중심으로 나머지 사제들이 사방위를 점했다. 검진이 완성되었음을 확인한 청수자가 청룡검에 내력을 실었다.
우웅!
청룡검이 울음을 토하자 오악검존의 입에서도 청명음이 튀어나왔다.
“오악이 천하를 호령하니!”
“천하가 그 아래 놓일 것이다!”
쇄애액!
오악검진이 펼쳐지자 괴수는 검기로 만들어진 그물망에 빠져서 몸을 허우적거렸다.
오악검존의 검기가 괴수의 전신을 사정없이 베었다. 자비심을 배제한 오악검존의 검세는 무시무시했다.
“크아아악! 다 죽인다! 다 죽여!”
괴성과 함께 몸부림치자 오악검존의 검기가 튕겨 나갔다.
“큭!”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오존 중 하나가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이건 말도 안 돼!”
자신의 상처보다 부러진 청룡검을 보며 그는 전율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더 놀라야만 했다.
괴수가 일정한 형식에 따라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무림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무...... 무공을 한다. 저 괴물이 무공을 해!”
오존 청일수는 사형들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가슴에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주저앉고 말았다. 대신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마운룡이 깨진 검진을 다시 구성하려는 나머지 검존에게 소리쳤다.
“놈이 무공을 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재빨리 소리친 마운룡은 상세가 중한 청일수를 부축하여 뒤로 물러났다. 자신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기에 한쪽으로 물러나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었다. 청일수는 부러진 청룡검을 놓지 못했다. 부릅뜬 눈으로 괴수의 행동을 노려보았다.
“저, 저건 삼양수! 그렇다면 저 괴물을 사천당가에서 만들어 냈단 말인가?”
오존 청일수의 경악에 허리에 천을 묶어 지혈하던 마운룡도 크게 놀랐다.
“사천당가라면...... 당문이라는 말씀입니까?”
두 사람이 놀라는 가운데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검진이 위력을 발휘했다. 네 개의 청룡검이 기운을 모아 내치니 괴수의 몸이 벌집이 되었다.
“쿠오오오!”
고통을 견디지 못한 괴성에 마운룡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오악검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괴수가 믿을 수 없게도 보법을 밟으며 검의 공세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두 발을 넓게 벌려 기마세를 취하더니 검존들을 향해서 털을 곤두세웠다.
살을 에는 살기를 느낀 일존 청수자가 사제들에게 경고 했다.
“몸을 보호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수의 몸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폭우이화정? 피해라!”
검존들이 일제히 몸을 날리자 그들이 서 있던 땅에 무수히 많은 침이 박혔다.
치이이!
그리곤 고약한 냄새와 함께 금세 녹아 내렸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하얗게 질린 청수자는 사지를 떨며 분노했다.
“도대체 당문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괴물을 만들어 냈는가?”
혼란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청수자를 대신해 이존 청매자가 나섰다.
“사형, 오악합일을!”
한숨을 내쉰 청수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매자의 뒤로 검존들이 나란히 섰다. 서로의 등에 장심을 올린 검존들이 내력을 끌어올리자 청룡검들이 검명을 토해 냈다. 검을 놓아주자 검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검존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고 내력이 약한 이들은 입가로 혈흔이 비쳤다.
“천하의 악한 것을 멸하리니. 오악합일!”
부르르 떨던 네 개의 청룡검이 괴수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괴수 역시 경신법을 운용하며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오악합일이 한 수 빨랐다.
콰득!
콰가각!
소름끼치는 파육음과 함께 청룡검이 차례차례 괴수의 몸에 적중했다.
“끼아아악!”
네 개의 청룡검이 정확히 신체의 주요 부위에 손잡이만 남기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성공이다!”
마운룡이 기뻐하던 얼굴이 곧 흙빛이 되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괴수가 집게발로 몸에 박혀 있는 청룡검을 잡아뺐다.
“괴...... 괴물!”
마지막 검을 빼내자 검에 박혀 있던 자리에서 검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는지 몸부림 칠 때마다 검은 피는 사방으로 비산했고 검은 피가 닿는 곳은 타들어 갔다.
“독?”
서둘러 코를 막고 호흡을 멈춘 검존들은 파리한 안색으로 다음 공세를 대비했다. 그러나 괴수도 힘이 다했는지 비틀거렸다.
“사형,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기뻐하는 청매자와 달리 청수자의 표정은 어두웠다.
“쿨럭!”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 낸 청수자가 무너지자 사제들이 기겁했다. 부상으로 빠진 청일자의 몫을 채우려 청수자가 무리하게 내력을 끌어올린 탓이었다.
“사형!”
오악검존 중 두 명이 쓰러지고 나머지 셋도 상세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저 괴수가 다시 덤벼든다면 승산이 없었다.
“크으으으......”
그러나 괴수도 상처가 큰지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딸랑! 딸랑!
또다시 방울 소리가 울리자 괴수는 크게 괴성을 지르더니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사형, 괜찮으십니까?”
각혈로 인해 안색이 창백해진 청수자는 손을 내저으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아무래도 산에서 내려가야 할 것 같구나.”
“네?”
“우리 힘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듯싶다. 소림으로 가야겠다.”
청수자가 힘을 다해 혼절하자 망연자실하던 검존들은 청일자와 마운룡을 데리고 서둘러 태산을 내려갔다. 오악 검존의 참담한 패배는 달빛 아래 드러난 부러진 청룡검들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흐르는 그곳에 잠시 후 많은 인영이 나타났다. 그중 장대한 기운이 흐르는 중년인이 반 토막 난 청룡검을 들어 올렸다.
“어떻소? 첫 출발 치고는 성공이라고 생각하오만.”
청룡검을 뒤로 던지자 다소 사이한 기운을 가진 중년인이 검을 받아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중간에 섭혼술이 잠시 흔들린 적이 있소. 분명히 아직은 보안해야 할 점이 있다는 뜻이오.”
“지나친 기우 같소만?”
뒷짐을 진 장년인이 못마땅해 했지만 중년인은 개의치 않았다.
“뒷마당에 풀어 놓은 미친개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건 큰 문제요. 확실하게 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가 녀석을 풀어놓을 시기가 될 것이오.”
물러서지 않을 고집이 얼굴에 보이자 장년인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의 말이 옳소. 풀어놓은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물어 대면 그건 곤란한 일이겠지.”
그는 중년인에게서 눈을 돌려 복면하고 부복한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워라!”
“복명 !”
수십 명이 괴수와 오악검존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사찰들은 어찌 되었나?”
이미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부복한 복면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년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제 내일이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게야.”
그의 기분을 맞추려는지 복면인이 거들었다.
“그동안 중원 무림은 너무 조용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읽고 가려운 데를 긁어 준 수하가 마음에 들었는지 장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이제 천하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것을 수습하는 이는 내가 될 것이다.”
두 팔을 벌리고 태산을 내려다보는 장년인의 뒤로 복면인들이 모두 머리를 숙였다. 어두운 밤은 그렇게 비밀을 간직한 채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