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 一 章 회복(恢復)
"당. 천. 악!"
하늘에서 날벼락 치는 소리가 공동구를 덮쳤다. 목소리에 실린 내력의 충격파가 메아리치자 석상들이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크흑!"
사내의 호위를 맡은 적혈마대의 고수들이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왔다. 삼십 명 모두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끼이이 ‥‥‥
소름 끼치는 귀곡성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당천악의 얼굴은 금세 흙빛이 되었다.
"흑신마 영감이 당했나 보군!"
당천악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천하의 그가 겁을 집어먹고 물러설 정도로 무서운 기운을 흘리는 존재는 바로 송현이었다.
"더 있었어 "
사내는 송현이 무극무해를 익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적혈마대, 놈을 제압해라!"
사내의 명령에 삼십 명의 마교 고수들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송현의 주위를 둘러싼 적혈마대들은 몸들이 가볍고 발걸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실험용 쥐가 필요했는데 잘되었군. 사로잡아라!"
사내가 흥분하여 소리치자 당천악은 코웃음을 쳤다.
'사로잡으라고? 여기서 살아 나가면 다행이거늘! 아직 무극무해의 무서움을 모르는 애송이로군 '
당천악은 사내가 무극무해를 실제로 접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팔이나 다리 하나쯤 없어도 된다. 목숨만 살아 있으면 되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명령이 떨어지자 적혈마대 전원이 어지럽게 보법을 밟으며 송현을 공격했다.
단칼에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송현은 마치 잠에 취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적혈마대와 한 점이 되었을 때 빛이 번뜩였다.
후드득!
거짓말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적혈마대의 고수들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하늘에서 편육과 함께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우욱!"
역겨운 광경에 당천악 마저 고개를 돌렸다
"저, 저!"
사내는 한순간에 수하들을 잃자 분노하여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파천마황(破天魔皇)!"
그의 쌍장에서 강맹한 기운이 흘러나와 송현을 가격했다.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며 송현의 신형이 크게 뒤로 밀려 났지만, 그뿐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구성의 파천마황에 격중 되고도 상처조차 없다니."
사내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본 후에 오기가 발동했는지 내력을 끌어 올렸다.
"타핫!"
기세 좋게 뛰어오른 사내의 손에서 천년 마교의 무학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크아아악! 당천악!"
오로지 당천악의 이름만 외치는 송현은 괴수나 다름없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사내는 무극무해의 가공한 신위에 몸을 떨었다.
"괜히 기운 빼지 말라고. 곧 우리 차례일 테니까."
사내에게 여러 차례 가격당한 송현은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동굴 벽을 내리치고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사내의 공격으로 흉폭한 마기가 날뛰자 송현의 손톱이 장검의 길이만큼이나 길어지고 귀도 무섭게 변했다. 사내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일개 광인이라고 생각했던 송현은 결코 자신이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맙소사"
사내는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다. 수하들이 단 몇 합에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고 무림 최고수라 생각했던 자신이 무공이 무용지물이 되니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저, 저놈의 정체는 대체 뭐야?"
"주해서 없는 무극무해를 익힌 멍청한 녀석이지."
"당천악, 내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구나!"
"너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당천악의 차가운 미소를 본 사내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당천악과 사내는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느릿해 보여도 일단 움직이면 자신들의 경신술로는 평범해 보이는 송현에게 잡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송현은 석단이 있는 곳으로는 왠지 오기를 꺼려해서 당천악과 마교의 교주는 무사할 수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게 되자 당천악은 집중력을 최대치로 올려서 주변을 재빨리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당천악은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위해 사력을 다했다. 송현이 이성을 잃지 않았다면 벌써 자신을 잡으려고 달려왔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적혈마대의 시신을 무의식 상태에서 짓이기고 있는 송현이 언제 자신들을 노릴지 몰랐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응?"
당천악의 눈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 그는 재빨리 엎드려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와 흙먼지를 치웠다.
"이, 이건!"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았던 진법의 정체를 알아낸 당천 악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이었다. 묘를 지키는 마흔 하나의 석상들은 사당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왜 무당에 제걸량의 사당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천악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진법이 발동만 되면 되는 것이었다.
"이봐, 친구!"
당천악이 큰 소리로 부르자 사내는 화들짝 놀라서 노려보았다.
"당신 미쳤어?"
당천악과 달리 사내는 나직이 속삭였다. 그런 사내를 보며 당천악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협공한다고 해도 저 괴물에게는 흠집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사내에게 당천악이 제안했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다 "
"뭐?"
감히 그 기운에 맞서지 못하고 겁에 질려 있던 사내는 당천악을 믿을 수 없었지만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협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뭐지?"
관심을 드러내자 당천악이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자연히 시선이 아래로 향한 사내도 진을 발견했다.
"장도인이 왜 이곳에서 무상선사와 수련했는지 알았다. 그들은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작정이었다."
"설마?"
"아니, 그 설마가 맞다. 이곳엔 제갈량이 남겼다는 팔괘구궁진의 묘리가 담겨있다. 대신 양생의 의미가 아닌 파괴를 위해 변형된 구궁의 진이다."
천천히 바닥의 그림들을 살펴본 사내가 당천악을 향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발동시킬 수 있나?"
당천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뭐지? "
"놈을 진 안으로 누군가 유인해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진법을 발동시켜야 하니 안 되고, 그럼 남은 사람은 바로 자네라는 이야기인데‥‥‥‥ "
말끝을 흐리는 당천악을 보며 마교 교주보다 더 독한 인간을 만난 것에 치를 떨었다.
"좋아, 내가 하지. 그러나 만에 하나 속임수가 있다면 너는 마교의 척살령을 받게 될 거다."
"와우, 살 떨리게 무섭군. 말 다했나? "
당천악이 송현을 가리키자 사내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글자가 위로 튀어 오르면 잽싸게 몸을 빼라고 늦으면 저 괴물과 함께 펑! 하는 거야."
마교의 교주는 크게 심호흡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이 괴물, 여길 봐라!"
쌍장을 교차하며 내력을 발출하자 송현의 몸이 연속적으로 충격을 받으며 뒤로 물러났다. "크으으으!"
초점 없는 눈동자가 시체를 짓이기고 있다 갑자기 받은 공격에 화가 나서 주변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이크!"
무시무시한 풍향음과 함께 머리 위로 송현의 팔이 스쳐 지나가자 마교의 교주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독한 괴물! 혈마장을 그렇게 맞고도 끄떡없다니. 내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군!"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교의 교주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이 송현 주위에서 경신법을 최대로 발휘하며 주위를 끌었다. 마침내 송현이 마교의 교주를 찾아냈다.
"카아악!"
황급히 몸을 뒤로 날린 마교의 교주는 진안으로 들어와 석단에 등을 기댔다. 고개를 돌리니 당천악이 진을 만지고 있었다.
"좀 더 버터라!"
당천악이 악을 쓰자 마교의 교주는 송현의 살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크흑, 이런 제기랄!"
감당하지 못할 기운이 폭사되어 오자 마교 교주의 칠공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으아아!"
뭐라도 해야 견딜 수 있었던지 잠력을 끌어 올려 혈마장을 마구잡이로 쏘아 댔다. 그러나 무림에서 악명을 떨치는 혈마장도 송현이 걸친 옷만 찢어 놓을 뿐, 조금도 충격을 주지 못했다. 어느새 송현의 긴 손톱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졌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구역질이 나을 지경이었다.
"빨리 좀 해. 이러다 모두 죽겠어!"
마교 교주의 악다구니를 들었는지 당천악이 무언가를 들어 올리며 기합을 내질렀다.
그그그긍!
기관이 발동되는 소리였다. 바닥에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자들은 곧 하나의 진법으로 변했고 파괴되었던 마흔 한 개의 석상들이 살아 움직이며 구궁과 팔진을 형성했다. "으아아악!"
진법의 한가운데 위치한 마교의 교주는 몸이 분해되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제갈량의 신묘막측한 구궁의 팔괘진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구궁의 힘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스스스!
사람의 육신만 빼놓고 주변의 사물이 먼지로 변하기 시작했다. 벌 떼들이 웅웅거리는 기이한 소음이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으......!"
마교주가 고개를 돌려서 당천악을 찾으니 그는 교활한 미소를 한 채 진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개자식!"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늦은 후였다.
"이봐, 마교의 교주 나리. 내가 비밀 하나 알려 주지? 난 그 어떤 책도 가지고 있지 않아."
재미있는 표정으로 웃어 대던 당천악은 마교 교주를 향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마지막 한 권은 어디로 갔을까? 바로 사례감 왕유가 황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이 말이지. 자, 그럼 행운을 빌겠네! 나는 왕유를 잡으러 가야 하거든. 크하하하!"
당천악의 웃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속은 것이 너무 분해서 마교주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송현이 머리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주변에 걸리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집어던졌다. 그것을 본 마교 교주의 눈빛이 빛났다.
"제기랄!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마교 교주는 마지막 남은 잠력을 송현에게 향했다. 다음순간, 엄청난 빛 무리가 터지며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쿠우웅!
무당산 기슭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얼마나 강한 폭발이었으면 호북성 일대에서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폭발이었다.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이 흔들리자 모두들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송 학사님!"
바닥에 쓰러졌던 왕백이 벌떡 일어나며 울먹였다.
"제길! 어서 가 보자!"
막여위와 양명이 기겁하고 위를 향해서 달렸다. 왕백도 눈물을 닦아 내고 타이라와 함께 뒤를 쫓았다. 그러나 이미 무당산 남안궁 앞에서는 사람들이 당도해 있었다.
"하연아, 괜찮니?"
서희가 얼굴이 창백해진 하연을 돌봤다.
"괜찮아. 그런데 방금 전 그 폭발은 뭐였을까?"
"나도 모르겠어. 지금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어."
그녀들이 고개를 들어 남암궁을 바라보니 절벽 위에 고고히 세워져 있던 고색창연한 건물 반이 날아가 흉측하게 매달려 있었다.
"송현‥‥‥ 당신이 저곳에 없었기를 바라요."
서희의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 떨리고 있었다.
똑! 똑! 또르륵!
차가운 기운이 계속해서 이마를 건드리자 일어나기 싫었지만 더는 참을 수 없어 일어나야만 했다. 천근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육신이 버겁기만 했다.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은 송현이 겨우 정신을 차리자 백발의 노도장이 자신을 보며 안도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여긴 어디죠?"
"나도 모르겠네. 폭발이 있은 다음이 정신없이 추락했으니까."
폭발이라는 말에 송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찌잉!
"윽!"
그러다 그는 머릿속을 밀려들어오는 기억의 편린 때문에 괴로워했다.
"끄으으!"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등 뒤에서 따뜻한 기운이 밀려와 아득해 지려는 정신을 붙들었다.
"하아, 하아‥‥‥ 감사합니다."
노도장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송현은 자신이 또다시 마기에 사로잡혀 광인이 되었던 사실을 알게 되자 참담했다. 그리고 그렇게 변했으면서도 당천악을 놓친 사실에 더 분노했다.
"교활한 인간!"
이를 가는 송현을 보며 노도장은 껄껄껄 웃었다.
"그대가 송현인가?"
갑자기 노도장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송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아십니까?"
노도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내 제자를 무척이나 놀라게 했더군. 그래, 영호인과 친구라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송현이 낯빛을 굳히며 경계하자 노도장은 뜨나 마나 한 눈으로 송현을 바라보았다.
"장사인이라고 하네."
"장사인‥‥‥"
"장사인 이라면 헉! 무당의 장문인?"
송현은 당금 무당의 장문인 앞에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났다.
쿵!
"윽!"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것은 괜찮지만 천정이 낮다는 것이 문제였다.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송현에게 노도장이 장포를 건넸다.
"이거라도 걸치려무나."
송현은 얼른 장포를 알몸을 가렸다. 장문인은 비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송현은 몇 가지 사실을 숨긴 채 나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었군. 결국 그렇게 가셨구나!"
한탄 하듯 장문인은 무상선사와 장 도장을 위해 기도했다. 몸이 불편한 장문인을 업고 곧이라도 무너질 듯한 동굴을 기다시피해서 빠져나온 송현은 한참을 걸어서야 한 줄기 빛이 흘러 들어오는 틈을 찾을 수 있었다. 빛을 따라서 걸으니 그곳은 폭발로 인해 생긴 절벽에 생긴 구멍이었다.
"후우, 여기서 잠시 쉬도록 하죠. 아니?"
장문인을 내려놓던 송현은 그의 안색이 창백해 보이자 크게 놀랐다.
"자네를 구하기 위해 내상 입은 몸으로 무리를 했나 보네. 그리고 진법을 빠져나을 때 충격도 엄청났다네."
"저 때문에‥‥‥ "
송현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무리하여 내상이 심해진 장 문인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혹시나 장문인에게 태청신단이 더 있을까 싶어서 뒤적거렸지만 장문인은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얼른 가서 사람들을 불러 오겠습니다."
송현이 급히 나가려 하자 장문인이 붙잡았다.
"이미 틀렸네."
"하지만‥‥‥‥ "
송현이 재차 나가려 하자 장사인 장문인은 송현을 만류 하고 그를 자리에 앉혔다.
"무당은, 오랜 세월 동안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네. 장삼봉 진인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구궁의 도리를 지키지 못한 게지."
모든 것이 무상한지 장진인은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았다.
"사숙이신 장 도장께서 그 먼 천축에서 그 몹쓸 것을 중원에 들여오고 결국 그것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시더니, 결국 그 힘을 가진 아이가 모든 것을 없애 버렸도다. 이 또한 하늘의 이치던가!"
처연한 눈으로 송현을 바라본 장진인은 송현의 눈을 통해서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원하는 것을 얻었는지 처음과 달리 밝은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복수를 하고 싶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송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 힘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장진인은 송현이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 죽일 수도 있었다. 그는 송현이 무극무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을 희생해 가며 송현을 구했다.
"왜 저를 살리셨습니까?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무당의 치부를 알고 있는 제가 죽는다면 이젠 무당은 영원히 무림의 태산북두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장진인은 송현의 질문에 그저 미소로 답했다. 그러더니 몸을 가누기도 힘든 사람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안 됩니다."
송현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억지로 일어서서 운기조식을 했다.
"죽으시려고 작정하셨습니까? 무리하게 운기하면 죽는단 말입니다!"
송현이 악을 썼지만 장문인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가 명이 다해 시간이 없어서 한 번씩만 보여 줄 것 이야. 귀를 열고 마음을 열도록 하게!"
송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말이 아닌 몸으로 남기는 유언이었기 때문이다.
"자! 먼저 태극권일세"
장진인의 손이 천천히 태극의 원리를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에서는 구결이 흘러나왔고 장사인은 그렇게 송현에게 무당의 아픔을 전했다. 해가 질 무렵에 서야 장사인의 양의검 시연과 구결이 끝이 났다.
"어떤가?" 장진인은 몸에서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아름, 다웠습니다."
목이 멘 송현이 힘겹게 말하자 장사인은 송현의 손을 잡아 주었다.
"송현이라고 했지?" "네‥‥‥"
잠시 괴로운 듯 마른기침을 하던 장사인은 고통스러워 했다.
"하아, 하아‥‥‥ 아까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 그 답을 내가 주지."
한마디 한마디가 힘에 겨운 장사인은 송현의 눈을 보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너의 삶에 진실하여라!"
털썩!
"장 진인!"
자신의 모든 내력을 써서 무당의 평생 절학을 사인은 편안한 얼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 앞에 무릎 꿇은 송현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밤이 새도록 곁을 떠나지 않은 송현은 이튿날 아침의 태양이 밝아 오자 장 진인에게 구배지례를 올렸다.
"비록 알게 된 시간은 찰나와 같이 짧았지만 그 가르침은 평생을 배운 것보다 더 길고 황금보다 더 값진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글공부를 하고 절세신공을 배웠지만 송현이 정작 배웠어야 하는 것은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무위자연의 삶이었다. 자신의 삶에 정직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정으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장 진인은 송현에게 있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르침을 준 셈이었다.
송현은 장 진인의 시신을 들어 무당산을 덮고 있는 구름 속으로 보내 주었다. 무당산의 구름은 장 진인을 어미가 자식을 품듯 안았다.
"극락왕생하소서."
송현의 기도가 무당산을 휘도는 바람 소리에 묻혀 잦아들었다.
재앙이 닥쳤던 무당산도 시간이 흐르자 점차 안정을 찾아 갔다. 관과 백성들이 무당산의 어려움에 모두가 나서서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했다. 그간 무당이 백성들을 위해 노력한 대가였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무당산을 적셨던 피 냄새가 사라질 때가 되자 송현은 떠날 결심을 했다. 파괴된 남암궁은 그대로 있었다. 절벽 위에 세워진 건축물에 금이 많이 가서 손을 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데 그렇기에는 무당의 추억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위태로운 건물의 잔해 속에서 송현은 건물의 일부처럼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여기 있었네요?"
모든 근심을 잊게 해 주는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당신이군요."
송현은 서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상하게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송현은 편안함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무당산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많이 서로를 알아 갔다. 지금도 서로를 보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었어요?"
송현은 차마 서희에게 당천악과 마교의 교주를 찾아가 복수를 할지 아니면 일행들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떠나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송현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전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서희는 얼른 송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호호호, 놀라지 마세요. 영호인 대협이 깨어났대요."
"정말이 에요?"
"네, 당신을 찾고 있으니 서둘러요!"
송현에게 있어서 그보다 좋은 희소식은 없었다. 서희의 손을 잡고 경신법을 펼쳤다. 두 사람은 바람을 타고 나는듯이 달려갔다.
자소궁에 도착한 송현은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호인, 깨어났는가?" 송현은 반가움에 영호인을 품에 앉았다.
"이거야 원, 누가 보면 오해라도 하겠네."
"그러라지? 뭐 어때!"
"그럴까!"
영호인!
평생의 친구였다. 송현은 그가 누워 있는 내내 그를 잃지 않게 해 달라고 매일 밤 기도했다.
"자네가 깨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거야."
"후후후 그럴 리가 있나, 태청신단을 먹은 몸이라고 자리에서 일어나 운기만 열심히 하면 일, 이 갑자는 문제도 아니라고."
영호인이 허세를 부리자 송현은 그가 건강해졌음을 느끼고 기뻐했다. 송현은 영호인의 미소를 보는 순간 무림의 은원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결국 탐욕의 진창에 빠진 자들과 허우적대다가 인생을 허비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장 진인은 그것을 말해 주려고 했는지 몰랐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막여위와 양명, 왕백, 타이라 등이 몰려와 영호인의 회복을 축하하느라 송현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해졌다.
장사인 진인이 죽자 그의 제자 유자강이 다음 대 무당 장문인이 되었다. 아직 장사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무림에서 무당이 갖는 이릉의 무게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고 그런 무당의 장문인 자리를 오래 비워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유자강은 원래는 직전 제자가 아니었지만 마교의 침입으로 무당의 많은 제자들이 죽었기에 유자강 밖에 대안이 없었다. 장로들 역시 대부분 운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상을 입어 무당은 인재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유자강은 영호인에게 무당을 위해서 남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지만 그는 끝내 거절하였다. 이미 황궁에서부터 영호인은 자신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송현은 장사인 진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무당의 마음을 전해 주지 않았다.
'아직은 무당이 장진인의 마음을 받을 준비가 되지 못했다. 언제고 무당이 다시 예전의 마음을 되찾으면 그때 전해 주리라.'
송현은 구름 속에서 인자하고 웃고 있는 장 진인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장 진인 역시 손을 흔들며 조심히 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송현의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예상보다 많은 사건을 겪었다. 그리고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은 값진 여행이었다. 대륙을 한 바퀴 돌아 그토록 가고자 했던 항주(杭州)에 도착을 하였다. 배가 항구로 들어서자 모두의 입에서 감탕성이 흘러나왔다.
"천하의 절경은 강남에 있고, 그중에 항주가 으뜸이다. 라고 하더니 틀림이 없음이야!"
막여위가 무릎을 치며 항주의 아름다움에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저녁놀이 붉게 물들자 모두들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에 취하자 송현은 저도 모르게 시 한수를 노래했다.
항주 맑은 물에 연 캐는 아이들아
잔 연 캐다가 굵은 연잎 다칠세라
연잎에 깃들인 원앙(鴛鴦)이 선잠 깨어 놀라니라.
강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배를 보고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하자 왕백과 타이라가 깔깔거리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보게 호인!"
"왜 그러나"
송현의 목소리가 젖어 있다는 걸 눈치 챈 영호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송현을 바라보았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곳은 처음일세."
감동받은 목소리에 송현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항주에 처음 오면 다들 그렇게 말하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영호인과 달리 송현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우리‥‥‥ 이곳에서 다 같이 살면 어떨까?"
송현의 제안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막여위는 머리를 긁적였고 양명은 눈을 감고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냉철하기로 소문난 영호인은 주저하지 않고 송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좋지!"
영호인의 대답의 뜻밖이었는지 모두가 놀랬다.
"어렵소!"
그러나 이미 모두의 마음이 같음을 서로들 알고 있었다.
"큰 집을 구해야겠는걸, 그 많은 식솔들을 다 데리고 살려면 말이야."
"그런데 돈은 있나?"
돈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송현을 쳐다보았다. 뜨거운 눈길을 받은 송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돈이야 뭐, 어떻게 되겠지. 일단 살 집부터 구해 보자고"
대책 없는 것이 송현의 대책이라는 사실을 알자 모두들 어이없어 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서희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그려졌다.
"언니, 저들은 보기 드문 사람들이에요."
"뭐가?"
하연이 코를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희는 또 하연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쳐다보았다.
"그동안 내가 보아 온 강호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상대를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는 것만 보아 왔는데, 저 사람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꼭 바보들 같아요."
재미없다는 투로 투덜거리는 하연의 어깨를 잡아 안아준 서희는 가슴 한쪽이 시린 걸 느꼈다.
"그래, 저들과 함께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무서운 사람들일지도 몰라."
알지 못할 말을 혼자 중얼거린 서희는 뱃전에 모여 즐거워하는 송현의 무리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학사장문인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