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八 章 남궁세가(南宮世家)
탕! 탕! 탕!
거세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던 장한은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검의 촉감에 눈이 크게 뜨였다.
"쉬! 조심해라. 밤새 날을 새웠더니 조그만 힘을 줘도 네 목쯤은 금세 날아갈 것이다."
꿀꺽!
목울대를 울리는 소리. 충분히 겁을 집어먹었다는 뜻이었다. 막여위는 장한의 옷깃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 기찰포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집 안을 샅샅이 뒤져라! 증거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찾아내라!"
준엄한 명이 내려지자 우렁찬 복명복창과 함께 기찰포교들이 진가장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무려 일백 명이 넘었다.
"무엄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난입하였느냐?"
진가장원의 총관이 대노하여 고함을 지르자 낮고 차가운 음성이 가로 막았다.
"여기가 어딘데? 황제폐하가 계시는 황궁이라도 되나?"
"감히 어느 놈‥‥‥ 너, 너는?"
총관은 말쑥하게 관복을 차려입은 얼굴을 보는 순간 경악했다.
"네가, 어떻게 네가?"
냉정하고 판단력이 빠른 총관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말을 더듬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어제부로 글 선생 그만두었는데 전해 듣지 못한 모양이군.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설마 화를 내는 것은 아니겠지?"
얄미울 정도로 생글거리는 송현을 보며 총관이 살기를 품자 사방에서 날카로운 창이 그의 목 언저리와 가슴을 눌렀다.
"왜, 한번 붙어 보겠느냐?"
씨익, 웃어 보이는 송현에게 총관은 이를 갈았다.
"네놈은 큰 실수를 했다. 목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궁지에 몰렸음이 분명한데도 총관이 너무 당당하자 송현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판관들의 각봉을 들어 총관의 턱을 치켜 올렸다.
"그 말 기억해 두마. 내일 해가 지기 전에 누구의 목이 먼저 떨어질지 기대하겠다."
송현이 노려보는 눈길을 총관은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겨우 학사 따위에게 내가 겁을 먹다니.'
총관은 자신의 행동에 놀랐다. 갑자기 안쪽에서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후 단발마의 비명 소리와 함께 장원의 하인들이 피투성이로 오랏줄에 묶인 채 끌려 나왔다.
"판관 어른 모두 주포하였습니다."
포교장 복장의 영호인이 송현에게 포권지례를 하며 한 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 뒤에는 막여위와 양명이 입고 있는 포교장의 옷이 어색한지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관아로 모두 압송하라!"
줄줄이 밧줄에 묶인 진가장원의 식솔들이 개봉부로 끌려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관도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구경을 하느라 난리였고 그 소문은 곧 개봉부 전체에 퍼져 나갔다.
저잣거리에서는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진가장원이 쑥대밭이 되었다며 호들갑이었고 화화공자에 대한 재판이 곧 열릴 거라는 소문이 돌아 연일 개봉부 앞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나 소란스러운 외부와 달리 개봉부 안은 조용했다. 개봉부의 동지사(洞志士) 하 대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하자 눈을 감고 있던 송현이 혀를 찼다.
"지사 대인, 하늘 안 무너집니다."
"허! 나는 지금 몸속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아서 죽을 지경인데 참 태평하시오."
"이왕지사 일은 벌어진 것이니 마음을 편히 하시고 기다리시지요."
송현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자 동지사 하 대인은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다.
"지금 우린 그분을 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만에 하나 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모두 참형을 면치 못할 것이오. 아셨소?"
하 대인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송현은 담담하게 소신을 피력했다.
"죄가 있으니 압송을 한 것이고, 곧 제 발 저린 인간들이 찾아올 테니 하 대인은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시지요. 만에 하나 잘못된다고 해도 제 목 하나면 족할 것이외다." 송현의 가시 돋친 말에 동지사 하 대인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다 나갔다. 홀로 남은 송현이 창가를 향해 나직이 외쳤다.
"구경 잘했으면 그만 가지 뭐 처먹을 게 있다고 남아 있는 게요?"
거칠기 짝이 없는 말투에 너털웃음이 화답했다. 창가 문이 열리더니 청죽봉을 든 구걸신개가 뛰어들었다.
"어찌하나 보았더니 아주 제대로 사고를 치더구나."
구걸신개가 송현이 따라 놓은 차를 홀짝거렸다.
"퉤! 이런 형편없는 차를 마시다니 네 취미가 참으로 고약하구나."
"거지 주제에 따지기는. 나는 그 차도 없어서 못 마시니 나를 놀림 셈이면 썩 꺼지시오." 송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구걸신개는 군소리 없이 차를 마셨다.
"솔직히 네 녀석이 이 정도까지 해낼 줄 몰랐다."
구걸신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자 송현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장원의 식솔들만 잡아 두었을 뿐이오. 정작 중요한 자들은 소재 파악도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니 괜한 공치사 마시오."
송현이 잘라 말하자 구걸신개는 송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독한 놈, 네 녀석이 그것을 가져갔으니 제 발로 걸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느냐? 그들을 직접 주포하면 문제가 커지니 스스로 걸어 들어오게 만들 속셈이겠지."
구걸신개가 콧소리를 내며 용정차를 즐기자 송현은 피식 웃었다.
"시전에 멍석이라도 깔아 드릴까? 이 기회에 개방의 방주 자리는 버리고 점집이나 차려 보시오. 돈 좀 만지겠소."
송현의 비아냥거림 정도는 얼굴이 두꺼운 구걸신개에게 간지럼 피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좋지, 대신 네 녀석이 개방을 맡아 준다면 내 기꺼이 물려주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구걸신개 때문에 송현은 눈을 떠야만 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야만 하는데 꼭 그렇게 방해를 해야만 속이 시원하겠소?"
송현이 구걸신개를 나무라자 차를 단숨에 마셔 버린 구걸신개가 청죽봉으로 등을 긁으며 투덜거렸다.
"원,그녀석. 도와주려 왔건만 떽떽거리기는‥‥ 너는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하겠지? 의를 중시하라고 입으로 떠들면서 제 한 몸 사리기에 바쁜 위선자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이 틀리지 않기에 송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무림에 명숙이라 불리면서 거드름이나 핀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강호란 네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곳이 강호란 곳이다. 때로는 사문을 위해서 불의인 줄 알면서도 참아야 하는 때가 있고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찻주전자에 찻물이 방울이 되어 흐르자 구걸신개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강호에서 한 방파를 이끌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번 일에는 황실과 강호의 명문정파가 얽혀있다. 이쪽을 편들자니 저쪽이 울고 저쪽을 편들자니 이쪽이 울게 생겼다. 너는 어찌하겠느냐?"
구걸신개가 송현에게 던진 질문의 무게는 상당했다. 그러나 송현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라면‥‥ 아니,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오. 명리명분에 얽매여 올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다면 군자라 할 수 없소. 당신들 말로 하면 대협이란 뜻이겠지." 구걸신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송현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충고를 하러 왔지만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우고 가는구나.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마."
경신법을 발휘해 창문을 훌쩍 뛰어넘은 구걸신개는 송현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말을 해주려고 왔다가 이야기가 길어진 것이었다.
"젠장, 산 너머 산이로구나!"
송현은 눈을 감고 사색이 빠졌다. 심리가 시작되면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내야 하기 때문에 송현은 최대한 힘을 아껴야만 했다
둥!둥! 둥!
개봉부의 북소리가 울리자 포청의 기찰포교들이 편전 을 둘러쌌다.
"개정(開廷)하라!"
영(令)이라고 적힌 패가 올라오자 심리가 시작되었다. 밧줄에 묶인 진가장의 식솔들이 줄줄이 끌려 나와 무릎을 꿇으니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는 소리가 심리의 시작이었다.
"진가장의 총관, 그대의 이름이 주송이 맞는가?"
"그렇소!"
독기를 품은 눈빛이 여전한 총관이 오늘의 판관인 송현을 노려보자 포교들의 곤장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죄인은 판관 어른께 예의를 지켜라!"
사정없는 매질이 이어졌다. 포청의 바닥이 피로 물들었지만 포교들의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죄인들을 깨워라!"
기절한 주송을 깨우라는 송현의 음성은 오싹할 정도로 감정이 없었다. 그 차가운 눈빛을 대하자 진가장의 식솔들은 기가 죽어 감히 송현을 바로 보지 못했다.
"하아, 하아, 우리는 죄가 없소이다."
찬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린 진가장의 총관은 다 죽어 가면서도 죄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본관이 증거를 확보하였거늘 무죄를 주장하다니 발칙하다!"
송현이 명을 내리자 여러 개의 들것이 실려 나왔다. 들것을 덮은 천들이 벗겨지자 총관 주송은 신음을 삼켰다. 십여 구의 시체에서 살이 썩어 들어가는 악취가 포청 안에 퍼져 나갔다.
"주송! 이래도 시치미를 떼느냐?"
송현이 다그치자 주송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 나는 모르오!"
"흥!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핑계를 대는구나. 이 시신들이 실려 있던 수레들은 모두 진가장의 것이다. 더구나 이 수레를 옮기던 자들 중에는 진가장의 식솔이 있었다. 어떻게 설명을 할 셈이냐?"
"그‥‥ 그건‥‥‥"
송현이 형(刑)이란 패를 손에 잡자 포교들이 작두를 앞에 대령했다
"헉!"
포교들이 주송을 붙잡아 작두에 머리를 집어넣으니 주송은 미친 듯이 악을 썼다.
"누가 범인이냐? 네놈이 아니라면 그 시신을 치우라 말 한 것은 누구냔 말이다!"
서늘한 음성은 일체의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끝없이 버틸 것 같던 주송에게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나는 죄인이 아니오. 그것은 ‥‥‥"
검을 들고 겨루는 와중이었다면 결코 입을 열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고문은 무림고수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인간은 참수형에 대한 공포가 가장 컸다. 주송이 겁에 질려 모든 것을 말하려는 순간에 밖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왕 주하진 전하 납시오."
번왕 중 하나인 주왕 주하진의 행차에 심리가 잠시 중단되었다. 송현도 단상 아래로 내려와 직접 주왕 하진을 영접했다.
"주왕 전하를 뵈옵니다."
주왕 하진은 판관의 얼굴이 낯익음을 깨닫고 모든 걸 알았다는 듯 송현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감히 황족을 능멸하다니 간이 부었구나!"
주왕 주하진이 나타나 대노하자 진가장의 식솔들은 크게 기뻐했지만 송현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내 사람이니 풀어 주도록 하라‥‥"
주왕은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절대 불가하옵니니다!"
송현이 잘라 말하자 주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의 말을 거역할 셈이냐?"
주왕이 분노하자 그를 따라온 수신호위들이 발검하려 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숫자의 병사들이 무기를 꺼내 들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감히 황족을 해하려 하다니!"
주황 주하진이 부들부들 몸을 떨자 송현은 콧방귀를 끼었다.
"가져와라!"
송현이 크게 소리치자 금으로 만들어진 현판을 포교들이 들고 나왔다. 현판을 본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황제를 칭송했다.
척사위정(斥邪爲政)!
사악함을 물리치고 올바른 것을 지킨다는 황제의 친필이었다. 주왕 주하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황명을 위배하는 것이 되어 대역죄가 되기 때문 이다.
"하실 말씀이 있사옵니까?"
송현을 죽일 듯이 바라보기만 할 뿐 번왕 주하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죄인은 말하라!"
믿었던 번왕마저 자신을 외면하자 총관 주송은 모든 것을 체념했다.
"그 시신들은 바로‥‥‥ 오씨 부인의 짓이옵니다."
총관주승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송현은 물론 이거니와 포청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특히나 번왕 주하진이 화화공자라고 내심 믿고 있었던 송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구걸신개의 경고가 생각났다. 남궁세가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 궁연이 개봉부를 찾을 것이다. 그는 세가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다.
왜 그가 찾아온다는 것인지 몰랐던 송현은 머릿속에 얽혀있던 실타래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시체를 옮기던 장한들이 남궁세가의 검술을 사용했다는 사실 역시 모든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총관 주송, 세간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아녀자를 납치 살해한 것이 바로 오씨 부인이란 말이렷다."
서슬 퍼런 작두의 날이 뺨에 차갑게 닿자 주송은 입에 개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그녀가 바로 화화공자입니다 저 시체들은 모두 그녀가 납치해서 죽인 규수들입니다.
"한 번 무너진 총관 주승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다 토설했다. 번왕 주하진은 다리에 힘이 빠지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송현의 매서운 질문에 그는 몸을 움찔거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은 이미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주승! 너는 남궁세가의 가솔이냐!"
이 대목에서 총관 주승은 잠시 주저하였다. 그리고 작두보다 더 두려운 것이 떠올랐는지 마구 몸을 떨었다. 마치 왜 그걸 잊고 있었는지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나는‥‥‥ 그러니까‥‥‥ 남궁 세‥‥‥"
총관 주승의 떨리는 입술 사이에서 진술이 나오려는 순간 포청이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정문을 지키는 기찰포교들이 나뒹굴었다.
"감히 심리를 방해하는 자가 누구냐? 주포하라!"
결정적인 순간에 난입한 자에게 송현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결례를 용서하시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연이라 화외다!"
우렁찬 목소리에 개봉부 전체가 들썩이는 듯했다.
'엄청난 내력이다. 음성이 낮고 멀리 퍼지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당천악 정도의 화후야.' 송현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연을 구걸신개가 왜 껄끄럽게 생각하고 척을 지지 않으려 했는지 지금에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자로군 용담호혈(龍膽虎穴))에 뛰어들다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송현의 속내를 감추고 남궁연을 질책했다.
"무엄하다! 감히 관의 심리 중에 난입하여 방해를 하다니 응당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죄목이다."
남궁연은 새파랗게 젊은 판관이 자신에게 주눅 들지 않고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자 내심 놀랐다.
'호, 애송이가 제법 배짱이 있구나. 그러나 이곳의 모두를 죽인다 하더라도 세가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
남궁연은 포권지례를 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본좌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예의가 아님을 알지만 이 사건이 우리 남궁세가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소. 만에 하나 후치무안한 놈들이 세가의 이름을 함부로 올린다면 가주로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를 지켜보아도 되겠습니까?"
한 마디로 억지였다. 남궁연은 이미 큰 죄를 지은 셈이었다.
"왜 아니 되겠나? 이리와 앉으시게. 내 평소 남궁세가의 가주가 대협이라는 소리를 듣고 보고 싶었는데 이리 만나게 되니 이 또한 인연이 아니던가?"
금새 죽을 것 같이 앉아 있던 번왕 주하진이 벌떡 일어나 남궁연을 곁에 앉히자 송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 되었다.
‘이것들이 미리 짜고 왔다 이거지!’
더 독기가 오른 송현은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다시 심리를 계속했다.
"진가장의 총관 주승, 그대가 남궁세가의 식솔임을 인정하는가?"
송현이 재차 물었으나 남궁연이 나타난 순간부터 주승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아니?"
게다가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다. 그의 눈은 남궁연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악"
공포심을 견디지 못한 주승이 결국 혀를 깨물고 자결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저, 저런"
깜짝 놀란 송현이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송현과 뜻을 같이한 개봉부 각 현의 주사들과 동지사 하대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영호인이 주승의 맥을 짚어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송현이 남궁연을 노려보자 그는 여유 자작한 태도로 변한 주하진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치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연기하는데 송현은 질려 버렸다.
‘흥! 끝났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천만에! 이제부터다!’
송현은 여패로 책상을 치며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자, 죄인이 자결을 하였으니 다음 심리로 넘어가겠다. 마침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자리해 주셨으니 이번 심리에 도움을 주시리라 믿소."
남궁연은 송현의 태도에 내심 당황하면서도 기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마!’
송현은 자세를 바로 하고 패를 내쳤다.
"오씨 부인을 대령하라!"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남궁연과 번왕 주하진이 놀라서 떨어뜨린 것이다. 특히나 남궁연은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로 송현을 노려보았다. 당장에 출수라도 할 기세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송현은 끌려 들어오는 오씨 부인을 향해 심문을 시작했다.
"죄인은 이름을 밝혀라!"
송현의 심문에 번왕 주하진이 벌떡 일어서려 하자 남궁연이 내력으로 그를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놀란 번왕 주하진이 쳐다보자 남궁연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내가 왜 끌려왔는지도 모르겠고 왜 내가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씨 부인은 사나운 눈매가 더욱 표독하게 보일 정도로 무섭게 노려보았다.
"쯧쯧쯧! 그대는 크게 착각을 하고 있구나. 이곳은 포청이고 그대는 포승줄에 묶인 죄인이다. 더구나 그대는 살인죄로 이곳에 끌려온 것이니, 더 이상 허세를 부리지 마라."
송현의 질책에 오씨 부인은 산발한 머리를 흔들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함부로 구는 것이냐?"
"그대가 누군지 묻고 있었다. 잊었느냐?"
송현이 장난 섞인 목소리로 놀리자 오씨 부인은 사납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주왕의 부‥‥‥"
그녀는 뭔가 말하려다 갑자기 몸을 떨며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중에는 두 손으로 귀를 가리고 엎드려 통곡을 하였다. 송현은 무극무해의 기를 끌어 올려 남궁연과 오씨 부인 사이에 벽을 만들었다.
"큭!"
"하아!"
몰래 전음을 보내고 있던 남궁연은 기가 뒤틀리며 사라지자 화들짝 놀랐다. 사방을 둘러보며 누가 자신을 방해 했는지 찾았지만 그만한 내력을 가진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오씨 부인 그대가 주왕전하의 부인이라도 된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이상하구나, 번왕이신 주왕께서는 이미 정실부인이 있고 첩을 두었다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거늘. 허어 참, 주왕 전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녀가 전하의 부인이 맞습니까?"
주왕은 송현이 정말 미웠다. 글 선생으로 잠입하여 이미 모든 것을 보아 놓고도 이렇게 자신의 피를 말리는 그가 미우면서도 두려웠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찻잔을 올려놓는 협탁을 주먹으로 내려치기만 했다.
"오씨 부인, 전하께서 말씀이 없는데 어찌된 일이지요?"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주왕을 바라보았다. 차마 부르지도 못하고 그녀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흥, 뭐 좋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대가 누구의 부인이라는 것이 아니니까. 총관 주승이 그대가 화화공자라고 밝혔다. 어찌하여 그 많은 규수들을 납치하고 살해했는지 자백하라!" 송현이 으름장을 놓았지만 오씨 부인은 그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모른다!"
그녀는 송현의 심문에 ‘모른다’로 일관했다. 송현은 이미 짐작한 상황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영호위, 그것을 가져오게!"
"네, 판관 어른!"
잠시 후 막여위와 양명이 수묵화를 그릴 때는 종이들을 가져와 바닥에 펼쳤다. 그것은 모두가 사람의 발자국 탁본을 뜬 것이었다.
"개봉부 신민현 지사 장승효는 나와서 이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딸을 납치당할 뻔했던 장승효는 앞으로 나와서 포권지례를 하며 좌중에게 종이의 발자국 탁본이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들이 당시 지붕의 기와에 있던 화화공자의 발자국 탁본이란 말인가?" "틀림없습니다. 당시 영호인 호위와 개봉부 기찰포교들과 함께 뜬 탁본 이옵니다"
송현은 무릎을 치며 오씨 부인을 가리켰다.
"그럼 발자국을 비교해 보면 오씨 부인이 화화공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렷다."
영호인파 막여위가 오씨 부인의 발을 잡아 올리자 그녀는 치욕스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한족의 여자가 사내에게 발을 보인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모욕이었다. 남궁연의 주먹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송현은 모르는 척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양명이 오씨 부인의 신발에 먹을 칠해 화선지 하나에 발도장을 찍어 송현에게 가져왔다.
"자, 모두 보시오! 이 두 개의 발자국이 서로 일치하오."
송현의 판결에 번왕 주하진이 참지 못하고 폭발하였다.
"발 모양이 똑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은 증거로서 부족해."
남궁연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내 당장 저것과 똑같은 발을 가진 여인네를 백 명을 대령할 수 있소이다. 이건 억지요." 송현은 빙그레 웃으며 영호인에게 눈짓을 했다. 송현의 신호를 받은 영호인은 보이지 않게 오씨 부인의 오랏줄을 느슨하게 만들고 자신의 검을 오씨 부인 쪽으로 향하게 했다.
사르륵!
"이 지독한 놈! 죽엇!"
밧줄이 풀린 오씨 부인이 참지 못하고 영호인의 검을 꺼내 들고 단청의 송현에게 날아들었다
"악!"
여기저기서 난데없는 상황에 비명을 질렀다. 나약한 문관인 송현이 오씨 부인의 검에 난도질당할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막여위와 양명의 검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뒤에서 노리고 있던 영호인에게 점혈 당하여 그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흠, 이것으로 '오씨 부인이 무공을 익히고 있음이 증명 되었소. 그리고 그녀가 화화공자라는 사실 또한 그녀 스스로 입증하였으니 그 죄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웅성거리자 영호인과 막여위가 바닥에 펼쳐 놓았던 화선지들을 모았다.
"이것이 화화공자의 경공술 흔적이고 아직 먹이 마르지 않은 이것이 오씨 부인이 펼친 경공술 보법자국이오. 이래도 아니라고 잡아떼겠소?"
번왕 주하진과 남궁연은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흑흑흑!"
모든 죄가 밝혀지자 오씨 부인은 서럽게 울었다. 눈물이 기도를 타고 흐르자 '꺽꺽'거리는 소리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송현의 심문은 가차 없었다.
"죄인은 수많은 여인들을 납치하여 살인하였기에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허나 그대의 범죄가 누군가에 의한 사주라면 정상 참작을 할 수 있으니 기회를 줄 때 말하도록 하라!"
범죄 사주라는 말에 포청 안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오씨 부인은 말이 없었다.
"그대가 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도와주지. 자, 남궁연 가주께서는 이 보법이 낯익지 않소이까?"
남궁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가 좁고 뻗어 나가는 모양이 좌우로 한 치씩 들고 나는데 혹, 이것이 남궁세가의 비전 경신 법은 아니오?"
갑자기 실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남궁연의 뒤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우르르!
그에 반응하여 포청의 포교들과 위사들도 창과 검을 꺼내 들고 대치했다.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남궁연의 눈에서 불길이 일어나자 송현이 암중에 잠력을 끌어 올렸다.
"모든 것은‥‥‥"
너무 쉬어 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흘러나온 여인네의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모든 것은 사랑에 눈이 먼 소녀의 어리석음에서 나온 일입니다. 저분들은 아무 연관도 없으니 소녀를 벌하여 주옵소서."
"어째서냐? 어째서 모든 죄를 너 혼자 짊어지려 하는 것이냐?"
송현은 그녀가 답답한지 고함을 질렀다.
"글쎄요, 왜일까요? 저는 단지‥‥‥ 단지‥‥ 그분의 정실이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세상에 떳떳하게 나서고 싶었을 뿐이었죠. 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하‥‥‥ 아악!" 누가 나서서 말리고 자시고 할 새도 없었다. 남궁연이 벼락같이 몸을 날려 오씨 부인을 검으로 베었다. 너무나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한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소희‥‥‥‥"
번왕 주하진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덜덜덜' 다리를 떨며 천천히 오씨 부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우욱! 끄윽!"
울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억누르는 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그가 그녀를 안으려 하자 굵은 팔뚝이 번왕 주하진을 붙잡았다.
"왕야께서 극악무도한 범인을 벌하라고 하명하였기에 내가 손을 썼소이다. 워낙 극악무도한 죄인이라서 나도 모르게 일을 저질렀으니 무례를 용서하시오."
너무나 차분한 남궁연의 음성에 번왕 주하진의 표정은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너는 악마다. 잘도 소희를‥‥‥ 어떻게 제 딸을 제 손 으로‥‥‥‥"
분노한 주하진이 남궁연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자 뒤에 시립해 있던 수신호위가 재빨리 수혈을 짚었다.
"보시다시피 왕야께서 충격이 매우 크신 듯하오. 훌륭한 판결을 잘 보았으니 우리도 돌아가도록 하겠소."
남궁연은 서둘러 주왕과 수하들을 데리고 포청을 벗어나려 했다.
'남. 궁, 연!"
맹수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자 남궁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천천히 몸을 돌리자 송현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무엇 때문이지?"
짧은 질문이었지만 남궁연은 피식 웃었다
"무엇도 사문보다 중요하지 않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송현도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더럽군, 강호라는 것은, 추악해. 무림이라는 것은 하지만 처음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송현의 말에 남궁연은 비릿하게 웃었다.
"꿈을 꾸고 있군. 강호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내가 물어뜯지 않으면 잠든 사이에 내 목을 물어뜯기는 곳이 강 호무림이다. 충? 의? 협? 개에게나 줘 버리라지."
남궁연은 세상을 조롱하듯 송현을 비웃었다.
"그렇게도 권력이 탐났던가?"
송현의 목소리가 힘을 잃었다.
"천하는 넓고 내 삶은 짧다. 천하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꿈이다."
"하지만 남궁연 당신은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권좌는 쉽게 무너지는 법이야."
이미 송현에게는 분노도 슬픔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송현을 보며 남궁연은 어린아이 타이르듯 말했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녀석이었구나. 잘 들어라!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교활하고 얍삽한, 그리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 가지만, 다음번에도 그럴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제 할 말을 다한 남궁연이 포청을 나가려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오씨 부인 아니 남궁소희를 잠시 바라보다가 거칠게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송현은 눈을 감지 못하고 부릅뜬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천만에, 당신은 틀렸어. 내가 보여 주겠어. 강호에도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협을 지키며 살아가도 강호에서 존경받으며 칭송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겠다."
무릎을 꿇고 소리치는 송현의 모습이 마치 죽은 남궁소희에게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 이제 어쩌죠?"
재판을 기록하고 있던 왕백이 시무룩해져서 영호인에게 물었다.
"잠시 혼자 두는 것이 좋겠다. 기찰포교들에게 포청을 정리하라고 이르마."
판결이 끝나고 보름이 지나서 송현은 정주부의 이자승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학사로 돌아왔다. 한동안 송현은 말수가 부쩍 줄었다. 좀처럼 왕백이나 막여위의 장난에 웃지도 않았고 오로지 타이라가 들려주는 삼묘족의 노래에만 감정을 드러냈다. 그런 송현을 보며 영호인과 막여위 등은 송현이 심마에 물들지 않을지 걱정했다. 계획보다 많은 시간을 하남성에서 보냈다. 송현이 두문불출하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일행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온 송현의 표정이 환하게 웃고 있자 비로써 웃어보였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있었지? 미안한걸!"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막여위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항주를 향해 다시 여행을 시작해 보자."
"이야호! 그동안 엉덩이에 곰팡이 생기는 줄 알았다고요."
"왕백 네 녀석의 엄살은 점점 심해지는구나!"
송현이 왕백의 머리를 헝클어 놓자 이제 애가 아니라면 심통을 부리는 통에 송현은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타이라를 부쩍 의식하는 모습에 송현은 힘을 냈다.
'그래, 삶은 계속된다. 실망할 필요는 없어. 세상이 잘못되었다면 내가 바꾸면 된다.'
좋지 않은 생각과 마음을 털어 버린 송현이 말에 오르자 모두들 밝은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여섯 필의 말이 개봉을 떠나 떠오르는 태양을 향했다. 어디선가 향초 내음이 송현의 발을 붙잡았다. 개봉부에서 세운 사당에는 여인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그 안에는 오씨 부인이라는 작은 위패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소. 지켜 봐 주시오.'
묵례를 마친 송현이 말고삐를 세차게 당겼다. 앞발을 들어 올리며 투레질을 한 말은 동쪽을 향해 질주했다. 눈부신 태양의 햇살이 이들의 미래를 밝혀 주는 듯했다. 개봉 홍등가 외곽의 하북천의 다리 밑이 소란스러워졌다. 일결은 물론이거니와 사결 제자들까지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었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떠나셨느냐?"
사유강 장로가 대노하여 다그치자 방주의 거처를 돌보는 일결 제자들도 울상이 되었다. "그것이‥‥‥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갈테니 찾지 말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허어, 붙잡지 않고 무얼 한게냐?"
"소인들이 어떻게 방주님을 막습니까!"
말을 한 사유강도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곧 무림맹의 회의가 있을 예정인데 한 번 나갔다 하면 기약이 없는 구걸신개의 기행에 사유강은 미칠 노릇이었다.
"전국의 모든 분타와 타주들에게 알려라. 방주님을 찾으라고, 어서!"
씩씩거리는 사유강 장로는 구걸신개가 즐겨 베는 나무토막을 발로 걷어찼다.
"내가 정말 미치고 말지. 사부님, 어디 계신 겁니까!"
공허한 메아리가 하북천 일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