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七 章 진가장원(眞家長院)의 비밀 (17/43)

  第 七 章 진가장원(眞家長院)의 비밀

   개봉부의 신민현 지사인 장승효의 사택은 어둠이 짙게 깔리며 고요 속에 빠져 들었다.      축시(丑時)를 울리는 순라꾼들의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때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어서 천지간의 분간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하나의 인형이 날듯이 움직였다.  담장과 담장 사이 그늘진 곳에 숨어 있던 송현이 야행 복을 입고 어딘가 다녀온 영호인을 맞이했다 

  "빠짐없이 다 했나?" 

  영호인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였다.  

  "그럼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송현이 초조해하자 영호인도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지사에게 알렸어야 하는 거 아닐까?" 

  "뭐라고 할 건데?" 

  "그야‥‥‥" 

  생각해 보니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만에 하나 나타나면 모르지만 화화공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어?"    송현이 말마따나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님을 깨달은 영호인은 입을 다물었다.  

  "괜한 일에 끼어들자고 한 사람은 자네들이니까 고생스럽다고 나를 탓하지 말라구." 

  새벽의 찬바람에 영호인이 옷깃을 여미자 송현이 짓궂게 장난을 쳤다.  

  "사람도 참 싱겁기는!" 

  어둠 속에서 그렇게 마냥 기다리자니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심심하고 할 일도 없으니 자연히 수다를 풀게 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네." 

  "뭐가 그리 궁금한가?"

  영호인이 그림의 비밀을 월하에게 알려 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자 송현은 크게 웃지도 못하고 숨죽여 키득거렸다. 

  "왜 그러는가?" 

  의아해하는 영호인에게 송현은 월하에게 알려준 장소를 말해 주었다.  

  "뭐? 그곳은‥‥‥ 하하하, 월하가 월아천에서 허탕 칠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 

  영호인은 송현이 엉뚱한 곳을 알려 주었다는 말에 과연 송현이라고 생각했다. 영호인의 궁금증을 풀어준 송현은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나는 이번에 강호가 무서운 곳이라 걸 배웠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영호인은 송현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개방 방주 구걸신개도, 화선루의 월하도 모두 화화공자의 정체를 알거나 혹은 대충이라도 그의 존재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었어." 

  영호인은 송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서워." 

  "그게 강호의 법칙이네!" 

  영호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송현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던 협. 의. 충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송현의 물음에 갑자기 사문 앞에서 그 무엇도 옳지 않다고 말하던 스승 유자강이 떠오르자 영호인은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게 무림인의 협의네, 공명정대, 정의 그 모든 것도 사문보다 중요하지 않네, 사문의 이익 앞에서 법과 질서는 무시되는 것이 중원 무림이라고 할 수 있지."

  영호인의 무덤덤한 말투에 송현은 소름이 돋았다. 영호인에게서 가끔씩 느껴지는 냉정하고 차가운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알았다.  그에게도 알게 모르게 무림인으로서의 속성이 물들어 있는 것이었다.  

  "구걸신개 그자는 영웅호걸인가? 아니면 효웅인가?" 

  송현이 자신을 보자 영호인은 모호한 말로 대신했다.  

  "개방도에게는 영웅일 테고 다른 문파의 입장에서 본 다면 효웅이다. "

   "그런 것이 무림의 영웅이로군." 

  씁쓸한 표정의 송현을 곁눈질한 영호인은 자신이 느꼈던 실망을 송현도 지금 느끼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웠다.  게다가 송현의 경우에는 너무 일찍 무림의 이면을 알았 다는 것이 염려됐다.

  "자네는 이번이 강호초출인데 너무 많이 알아 버렸어," 

  영호인의 넋두리를 끝으로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달빛 아래 드러나 지붕들만 노려보았다.

  딱!딱! 

  순라꾼들이 딱딱이를 치며 인시(寅(時)를 알리자 졸고 있던 송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그런 송현의 어깨 위로 외투가 걸쳐져 있었다.  

  "내가 보고 있으니 걱정 말고 눈 좀 붙이게." 

  영호인의 말이 따뜻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그의 등이 오늘처럼 넓어 보이는 적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다고 송현은 생각했다. 

  "아니야, 내가 깜빡 졸‥‥‥" 

  "쉿!"

  송현의 입을 막은 영호인의 손가락이 지사의 사택 건너편 집의 지붕을 가리켰다.  

  꿈틀! 

  검은 형상이 지붕 위에서 움직였다 분명히 고양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목에서 침 넘기 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검은 인영은 지붕 위에서 한동안 지사의 사택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조심스러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켜보던 이들마저 지루해할 때쯤 검은 인영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날았다.  대단한 경신법이었다.  기찰포교들이 하늘을 날았다고 호들갑을 떤 것이 괜한 일이 아니었음을 송현은 알았다.  그 긴 거리를 뛰어올라 착지했음에도 기와지붕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미리 사전답사라도 했는지 검은 인영은 주저하지 않고 별채를 내려갔다. 침입자가 별채의 방으로 들어가자 송현과 영호인의 검을 뽑고 천천히 담을 넘었다.  자신을 노리는 이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검은 인영은 여인의 향기가 가득한 방에 들어와 잠자고 있을 침소를 노렸다.  

  "흐흐흐흐!"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복면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이불을 걷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툭! 

  서늘한 검기가 느껴지는 시퍼런 검신이 목덜미에 닿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만나서 반갑구나, 화화공자!" 

  장난기 섞인 음성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다 그가 화화공자가 틀림없었다.  

  "겨우 잡았구나.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굵은 동아줄이 보이자 화화공자는 몸을 틀어 도망치려 했다.  

  "아니지 아니야. 자네는 갈 곳은 감옥뿐이야. 영호인이 어느새 나타나 앞을 가로막자 화화공자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뭐가 그리 무서워 복면을 다 하셨을까? 어서 벗어 보게!" 

  이죽거리는 송현을 보며 화화공자는 분노에 떨었다. 하지만 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주 작은 빈틈이 있었고 화화공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펑! 

  갑자기 폭음이 나며 하얀 연기가 방안을 뒤덮었다.  

  "조심 !" 

  영호인의 경고성이 아니더라도 송현은 제운종의 수법으로 크게 뒤로 물러났다 

  서걱! 

  어느 틈에 무기를 빼 들었는지 송현의 옷소매가 보기 좋게 잘려 나갔다. 

  잘린 옷소매를 찢어 버린 송현이 기합을 외치며 화화공자를 베어 나갔다.  

  챙! 

  "큭! 송현, 나라고! 나야!" 

  검을 부딪친 사람은 화화공자가 아니라 영호인이었다.  연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밖으로!" 

  짧게 외친 송현과 영호인이 경신법을 발휘해 지붕 위로 뛰어 오르자 큰 소리에 놀란 지사의 사택도 밤에서 깨어나 불을 밝히며 소란스러워졌다.  두 사람이 지붕에 올라오자 화화공자는 벌써 저만큼 앞서 가고 있었다.  

  "호인 자네는 증거를 수집해 주게. 녀석의 뒤는 내가 쫓을 테니까." 

  "괜찮겠나?" 

  "달리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송현은 영호인에게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후에 화화공자를 향해 질주했다.  108개의 번뇌를 담은 풍보가 무당의 제운종과 하나가 되어 바람을 탔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바람인지도 몰랐다. 개봉부의 지붕을 뛰어넘는 추격전이 달밤 아래서 전개되었다. 

  화화공자는 사력을 다해서 도주했고 송현은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쫓아갔다. 대단한 경신법을 발휘해서 개봉부를 질주한 화화공자는 오래된 장원 앞에서 잠시 주변을 살피다 담장을 넘었다.  

  "진가장원이라‥‥‥ 대체 뭘 하는 곳이 길래 천하의 개방 장문인이 알고도 모른 척을 했고 화선루의 루주는 이름을 밝히기 두려워했을까?"

  건너편에서 화화공자가 장원으로 몸을 숨기는 것을 확인한 송현은 날이 새도록 장원을 지켜보았다.  더 이상 화화공자의 움직임이 없자 송현은 모습도 사라졌다. 

  개봉부 이가현에 위치한 진가장원(眞家長院). 

  이튿날부터 이곳에 대해서 조사를 하던 송현은 미심쩍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 좀 알아봤나?" 

  객잔에서 늦은 아침을 들고 있던 송현은 영호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밤새 잠을 못잔 영호인의 두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자네 말대로 이상한 곳이더군. 주변 사람들은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네." 

  "흠, 역시나 그렇군" 

  송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영호인을 위해 아침을 주문한 송현은 지사 장승효를 찾아가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진가장원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장승효는 딸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물론 송현이 정주부 판관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송현은 오후에 이가현의 관청에 들렸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수사를 중단하라는 명이 내려 왔습니다." 

  장승효가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숙이자 송현은 일이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을 해서 그런지 놀라지 않았다.  

  "어디서 내려온 명령이오?" 

  장승효는 밖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연후에 송현의 귀에 속삭였다.  

  "설마?" 

  송현이 크게 놀라자 장승효는 서찰을 보여 주었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직인을 본 송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송현의 부탁으로 진가장원에 대해서 알아보러 나갔던 이가현의 지사 강우찬이 돌아와 자신이 알아온 사실을 말해주었다.  

  "순라꾼들의 말에 의하면 낮보다 사람의 출입이 잦고 요사이는 많은 짐마차들이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운반하고 있다고 합니다." 

  송현은 잠시 눈을 감고 상황을 정리했다. 현의 지사에게 수사 중단의 압력이 내려오고 밤이면 사람의 왕래가 많아지는 이상한 장원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범인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진가장원을 수색할 수 없을까요? 그 핑계를 대고 장원을 둘러보고 싶은데요?"

  송현의 계획에 이가현의 지사 강우찬이 고개를 저었다.  

  "진가장원은 장원의 허락을 받지 아니한 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도찰원의 위사들입니다. 그것으로 보아 왕부의 장원이 분명합니다." 

  강우찬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왜 현판이 없느냐는 이야기인데‥‥‥" 

  송현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인상을 썼다. 뭔가 잘 풀리지 않으니 나쁜 버릇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윌 숨기고 있는 걸까?" 

  송현은 이 사건의 배후를 파내 볼 가치가 있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서 스스로 뺨을 때렸다. 

  "내가 지금 무슨 마음을 먹은 거지?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렇다면 나는 개방의 장문인이나 화선루의 루주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현실과 타협하려 했던 송현은 부끄러웠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은 송현은 결심을 단단히 했다.  

  "진가장원‥‥‥ 내가 정체를 밝혀 주마. 화화공자, 네 녀석도 마찬가지야!" 

  송현이 눈빛을 빛냈다. 오늘로서 명철보신이라는 송현의 인생관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대의를 생각하며 살게 된 것이다. 

  진가장원의 심처 전각에서 노학사의 책 읽는 소리가 노랫가락처럼 음율에 맞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민망한 불협화음이 책 읽는 소리 중간 중간에 끼어드니 노학사의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자의 제왕학에 따르면 제왕은 도와 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드르렁! 피유!" 

  "왜냐 하면‥‥‥" 

  "아음. 유모, 사탕이나 좀 줘 봐! 음냐!" 

  결국 노학사는 더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하!" 

  "아이쿠! 놀래라. 간 떨어질 뻔했잖아!" 

  "지금 열심히 공부하셔야 나중에 훌륭한 인재가 되실 수 있습니다." 

  노학사가 훈계하듯 말을 하자 어린 군왕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혀를 내밀며 심통을 부렸다.  

  "흥!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면 제일 먼저 그대부터 잘라 버릴 거야!" 

  "헉!" 

  어린 소년의 안하무인격의 태도에 노학사는 됫목을 부여잡고 갑자기 찾아온 혈압 상승을 참아 내야만 했다. 얼굴에 심술이 가득한 어린 소년의 철없는 행동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더는 못 참습니다. 저 말고 다른 글 선생을 구하도록 하십시오." 

  벌떡 일어서는 모양새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방문을 나서는 노학사는 방 문 앞에서 간곡하게 만류하던 총관의 손길을 뿌리치고 나가 버렸다.  

  총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마저 그만둔다면 당분간 개봉부에서 글 선생 구하는 길이 요원해지기 때문이었다.  연신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나가는 글 선생 뒤를 건장한 장한이 따라 나섰다.  

  "이 학사님, 배웅해 드리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커흠!" 

  배웅을 해 주겠다는 말에 노학사는 화를 내고 나온 것이 괜히 민망하여 표정이 누그러졌다.  책 보퉁이를 들고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전각을 빠져나가던 노학사는 그곳이 평소 출입하는 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의아해했다.  

  "아니 이거 보시게 여기는 막힌 길이지 않나?" 

  노학사가 뒤를 돌아보자 친절한 미소로 배웅을 하던 장한의 손에 검이 들려 있었다. 

  "좀 더 참지 그러셨수!" 

  진득한 살기에 노학사는 벌벌 떨며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검은 인정사정없이 휘둘러졌다.

  

  어린 소년과 꼭 닮은 중년인이 역정을 내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일다." 

  "어떻게 글 선생이 하루를 멀다 하고 바뀌는지 그 이유를 말해 보거라!" 

  이 정도 호통이면 주눅이 들어 울기라도 해야 정상이건만 소년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흥! 지루하고! 재미도 없고. 공자 왈 맹자 왈 딱 질색입니다. 그런 것보다 무사숙의 얘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하~" 

  중년인은 자신을 붙잡고 떼를 쓰는 소년을 보며 노기가 치밀어 올라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렸다.  

  "안 됩니다 제발 벌을 거두어 주십시오." 

  아름답지만 두 눈에 왠지 교활함이 숨어 있는 중년 미부가 소년을 감싸고 애원했다.  

  "이‥‥‥ 이." 

  뺨을 치려던 손을 어쩌지 못하고 내린 중년인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다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여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글거리며 소년의 얼굴을 매만져 주었다.    "괜찮으냐?" 

  "네, 어머니. 소자 무탈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씩씩하게 대답하는 소년을 여인은 사랑스럽게 끌어안았다.  왜 소년의 성격이 무뢰한지 그 어미를 보니 알 수가 있었다. 

  밖으로 나온 여인은 총관에게 눈길을 주었다.  

  "잘 처리했으니 심려 마십시오." 

  짧고 간결한 대답에 만족했는지 그녀는 표정이 밝아졌다 

  "새로 글 선생을 구하도록 하게. 이번에는 좀 나이가 어린 학사로 구하도록. 나이든 노인들은 우리 아이하고 맞지 않아."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진가장원 총관은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진가장원의 총관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새 글 선생이 자신이 알고 있는 학사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학사가 맞기는 한가?" 

  총관이 물어 오자 뒤에 시립해 있던 검은 무복의 사내가 진사에 급제한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하하하, 제가 좀 머리가 좋습니다. 장원 급제도 따 놓은 당상이었는데 취선루 이화 고년이 어찌나 몸살 나게 유혹하던지 그만 시험을 보러 가는 날 늦잠을 자고 말았지 뭡니까. 으하하하!" 

  총관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의 오른쪽 뺨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인내에 한계점까지 도달한 듯 싶었다.  

  "황궁에 확인을 해 보았더니 한림원 학사까지 지낸 자였습니다." 

  "그런 자가 왜?' 

  총관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검은 무복의 사내도 한숨을 쉬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입니다. 괴짜라고 소문이 자자한 자입니다." 

  총관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였다. 평소라면 절대로 이런 인간을 장원에 들이지 않겠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글 선생이 진가장원에 들어왔다가 돌아가지 않아 이곳에 오려는 학사들이 전무한 상태였으니 선택의 폭이 좁았다.  

  "집은 어디시오?" 

  총관이 애써 참으며 물어보자 학사는 침을 튀겨가며 쉴 새 없이 떠벌였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총관이 막지 않으면 밤새 떠들 것 같았다.  

  "그만, 그러니까 묶을 곳이 없다는 건가?" 

  "아니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끙! 자네가 지금 말하지 않았나?" 

  "아, 그랬나요. 제가 이렇습니다. 아하하하!" 

  젊은 학사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그칠지 몰랐다.  

  "좋아, 내일부터 공자님을 가르치도록 하게. 숙소는 밖에 있는 하인이 안내해 줄 걸세." 

  "하하하, 저기 그런데 말씀입니다. 이런 얘기하기 좀 민망스럽기는 하지만 선불 좀 당겨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깔아 놓은 빛이 좀 있어서‥‥‥" 

  넉살도 이 정도면 가히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총관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가불까지 받은 젊은 학사는 휘파람을 불며 숙소의 침상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성공했는데 문제는 이제부터라 이거지. 화화공자가 누구인지 이곳이 뭐하는 곳인 지 서서히 비밀을 벗겨 볼까?' 

  가불 받은 돈주머니를 책상 위에 내던진 송현은 정좌를 하고 무극무해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거미가 거미줄을 넓게 펴서 먹이를 걸려들게 하듯이 송현은 한밤의 장원 구석구석의 자신의 기운을 실처럼 퍼뜨려 곳곳에 거미줄을 치듯 함정을 놓았다 

몇날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지루한 기다림과의 싸움이 이었다. 

  진가장원에 새로 들어온 글 선생 때문에 조용하던 장원이 매일매일 소란스러워졌다.  평소 말이 없는 하인들마저 송현이 나타나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송현이 가르쳐야 할 공자라는 소년에게도 해당되었다.  

  "송현 학사님, 오늘은 뭐부터 배울까요?" 

  지나가던 소년의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하였다. 매를 들어도 소용이 없던 소년의 변화에 부모들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수업의 내용을 자세히 들었더라면 결코 송현에게 칭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승님, 그 왜 있잖아요. 소림사 땡중하고 무당파 도사하고 대결한 거 다시 들려줘요." 

  "그럴까요? 그럼 제왕학은 다음에 하기로 하죠." 

  제왕학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잡서들에 실려 있는 소설을 들려주니 소년은 신바람이 나서 막대기를 들고 무림의 고수를 흉내 냈다. 그런 소년을 지켜보는 송현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개봉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취선루 삼층 전각에서 시전 거리를 내려다보는 유생 차림의 사내는 식은 차를 무의미하게 들이켜고 있었다. 잠시 후 존재감이 거의 없는 방갓 쓴 사내가 예의 없이 허락도 받지 않고 탁자맞은편에 앉았다.  

  "하필이면 이렇게 눈이 많은 곳을 택하시다니 이목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후후후, 자네야말로 무슨 첩자 놀이라도 하나? 방갓까지 쓰고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그리 변장을 다 하셨나. 하하하!" 

  유생 차림의 사내가 크게 웃자 방갓 사내는 당황하여 주변을 살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클클클, 사내가 그리 소심해서야 어디 쓰겠나." 

  유생 차림의 사내가 뭐라 하던 방갓 사내는 주변 시선을 의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시체는 아무 이상 없이 모두 처리했습니다. 다만‥‥‥" 

  "다만? 다만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인가?" 

  "네, 개봉부의 포청에서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뿐인가?" 

  "네" 

  방갓 사내가 장담을 하자 유생차람의 사내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문제 되지 않는 다는 투였다.  

  "그거라면 대수롭지 않군." 

  "아닙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이 일 때문에 황궁에서 사람이 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황궁에서? 누가?"

  유생 차림의 사내가 의아해하자 방갓 사내는 주변을 살피며 낮게 속삭였다.  

  "저도 얼핏 들은 거지만 금의위 위사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하니 당분간 몸을 사리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사부님께서도 몸조심하라고 이르셨습니다. 그 일 때문에 세가에서도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상태입니다." 

  "흥!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방갓 사내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유생 차림의 사내는 더 들을 것 없다며 동전 두 문을 탁자 위에 던지고 일어섰다.  

  "흥, 열이든 백이든 보내라고 해! 모두 없애 줄 테니까!" 

  유생 차림의 사내는 부채를 펼쳐 하늘거리며 취선루를  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삼 층 전각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 중 누구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모처럼 장원의 주인 일가가 외출을 하자 송현도 할 일이 없어졌다.  하인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지만 송현은 빈둥거리며 장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출입이 특별히 금지된 곳도 없고 달리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왜지?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숨어 지내는 걸까?' 

  송현은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하자 고민에 빠졌다.  그나마 하인들 중에는 발걸음이 가볍고 눈에 깊이가 느껴지는 이들이 서넛 있었고 이 장원의 총관은 태양혈이 불거져 있는 것이 내공을 익힌 내가고수였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평범한 장원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화화공자로 의심되는 정도의 고수는 없었다.  그날 밤 지붕을 뛰어넘는 놀라운 경신법을 구사할 정도의 고수라면 송현이 금세 알아보았을 것이다.

  오늘도 송현은 무극무해의 기운을 끌어 올려 실타래처럼 늘이고 있었다. 상대가 움직여 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웅! 

  "응?" 

  장원의 안채에서 반응이 왔다. 송현은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즉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아무도 없어야 할 안채에 횃불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누구지? 모두가 낯선 이들 뿐이다.' 

  송현은 안채에서 뭔가를 옮기려고 하는 이들이 장원의 식구들이 아님을 알았다. 숨을 죽이고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참 후에야 일이 끝났는지 수레에 짐을 싣고 장원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획! 

  "누구냐!" 

  어둠 속에서 비수를 던진 사람은 총관이었다. 그는 몸을 날려 기척이 느껴진 곳에 내려앉았다. 대들보에는 비수가 손잡이까지 박혀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장원의 하인들이 날카로운 장검을 들고 뛰어왔다.  

  "아니다, 내가 신경이 좀 과민했던 것 같다."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다음 총관과 하인들은 안채에 남은 흔적들을 지우고 사라졌다.  

  "휘이, 하마터면 일을 망칠 뻔했군. 총관이라는 작자의 실력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놈들을 놓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송현은 재빨리 담장을 뛰어넘어 수레의 흔적을 뒤쫓았다.

  그믐밤의 달은 사위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밤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숲을 울리자 귀신이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수레를 밀고 가던 이들 중 깡마른 사내가 손을 들어 수레를 멈추게 했다.  아무것도 없는 숲을 향해 사내는 양손을 뻗었다. 반달 모양의 비수가 빙글빙글 돌려 잣나무 사이를 비행했다.  

  투두둑!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비수에 잘려 나가며 고요한 숲을 깨웠다. 날아간 비수는 전나무 몸통에 큰 소리를 내며 꽂혔다.  

  "누구냐? 그 앞에 있는 것 다 아니 모습을 드러내라!" 

  챙! 챙! 챙! 

  수레를 끌던 이들이 모두 검을 꺼내 들었다. 깡마른 사내가 다시 한 번 양손을 앞으로 내뻗자 초승달 모양의 비수 십여 개가 동시에 발출되었다.  

  따다당! 

  금속음이 요란하게 나며 숲에서 야행복을 입은 사람이 튀어나왔다.  

  "웬 놈이냐?" 

  "너라면 말을 할까?' 

  이죽거리는 듯한 말투에 즉시 반응이 왔다.  

  "건방진 애송이!" 

  "누가 애송인지 손을 섞어 보면 알겠지." 

  깡마른 사내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세상에는 늘 저런 바보가 있는 법이지. 쳐라!" 

  명령이 떨어지자 수레를 끌던 장한들이 어지럽게 보법을 밟으며 송현을 베어 갔다.  단칼에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쾌검이었다.  

송현은 평범한 기수식을 취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한들과 그가 한 점이 되었을 때 검이 번뜩였다.  

  슈각! 가가각! 

  거짓말처럼 장한들은 변변히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저, 저!" 

  그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깡마른 사내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일개 산적이라고 생각했던 송현의 검세는 결코 시정잡배의 검술이 아니었다.  

  "맙소사! 내가고수?" 

  깡마른 사내는 얼이 빠져 버렸다. 수하 십여 명이 단 몇 합에 모두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으니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네놈의 정체가 뭐냐?" 

  "법 집행관!" 

  "닥쳐라! 기찰포교 중에 이런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언제 기찰포교라고 했나?" 

  송현의 차가운 냉소를 받은 깡마른 사내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모두 조심해라!" 

  "존명 !" 

  남은 십여 명은 죽은 동료들과 달리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저 평범한 기수식 뒤에 숨은 가공할 검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수레들 사이로 뛰어들자 장한들이 그를 둘러쌌다. 

  "타핫" 

  기다릴 것 없다는 듯이 거친 기합성과 더불어 장한들이 동시에 덤벼 왔다.  

  "무룡승천? 이놈들 남궁세가로구나!" 

  송현이 무림영웅대회에서 보았던 초식이 튀어나오자 즉시 알아보았다.  

  "흥! 우리의 정체를 알았으니 네놈은 결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누가 할 소리 !" 

  수하들을 잃은 깡마른 사내는 일신의 내력을 전부 끌어 올렸다.  수하들로 하여금 송현의 발을 묶고 자신이 최고 절기로 숨통을 끊겠다는 전략이었다.  전략은 주효해서 압박을 받자 송현의 보폭이 좁아지고 손이 어지러워졌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 깡마른 사내가 검을 높이 치켜들고 몸을 날렸다 

  "일도만파(一刀萬波)!" 

  검의 환영이 수백 개로 나누어지더니 목표로 삼은 송현을 무참히 난도질을 했다.  과연 초식의 이름처럼 일 검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서운 초식이었다. 수레가 부서지며 그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성공이다!" 

  승리를 확신한 깡마른 사내의 눈에 기쁨이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파편들 사이로 사물이 정지한 듯한 환영 속에서 송현의 잔인한 미소가 보였다.  

  푹! 

  "허억!"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검과 주인을 번갈아 쳐다보던 깡마른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초식은‥‥‥ 설마하니 우리 세가의 무룡비천(武龍飛天)?" 

  깡마른 사내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초식의 정체를 알아내고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억울한 표정으로 죽은 깡마른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송현은 속이 울렁거렸다.  

  "제길! 이 기분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군."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전혀 익숙해지지 않아 송현은 괴로웠다. 

  "으....." 

  깡마른 사내가 송현에게 패하여 목숨을 잃자 수하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송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는 저항하지 못할 무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무공을 익힌 자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리석기는......"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장한들을 향해 송현은 내키지 않는 검을 휘둘렀다.  잠시 후 더 많은 시체를 만든 후에야 송현은 복면을 벗을 수 있었다. 밤공기에 실려 오는 비릿한 혈향이 속을 뒤집어 놓았지만 송현은 할 일을 해야만 했다. 부서진 수레에 실려 있는 짐을 확인하기위해 뒤집어진 수레를 바로 돌렸다.  큰 소리를 내며 뒤집어진 수레에서 기름 먹인 종이로 싼 짐이 떨어졌다.  

  "무엇을 숨기려고 이렇게 꼭꼭 동여맸을까?" 

  송현은 검을 들어 조심스럽게 줄들을 잘라 냈다. 

  투툭!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들이 끊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기름 먹인 종이까지 들어내자 뭔가가 썩어 들어가는 악취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이런 빌어먹을!" 

  기름종이에 싸여 있던 것은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시체들이었다. 

  "화화공자! 이 미친 자식!" 

  부패가 심하게 되었지만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송현의 분노가 폭발했다.  힘없는 여자들을 납치하여 잔인하게 윤간하고 시체를 유기하려는 만행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범인은 바로 아이의 아버지였나?"

  인자하게 보이던 소년의 아버지의 웃음이 역겹게 졌다. 이제 그의 정체를 밝힐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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