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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월하(月下) (16/43)

 第 六 章 월하(月下)

  화선루(花宣漏). 

  어둠이 찾아오자 낮에는 보이 않던 홍등(紅燈)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며 거리는 또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여인네들이 교태 섞인 웃음소리가 주객(酒客)들을 유혹했다.  홍등가의 맨 끝에 서 있는 오래된 건물이 묘한 자태를 자아내며 자리하고 있었다. 왠지 기분 나빠 보이는 건물 앞에 송현과 영호인이 서 있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웃어 댔다.  

  "뭐지 이 불쾌한 기분은?" 

  영호인이 몸을 떨며 나쁜 기분을 떨쳐 내려했다. 송현은 오 층짜리 전각 같은 건물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게 도대체 어느 시대의 건물이야?" 

  송현의 짐작대로 그 건물은 송나라 시대의 건축물이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이 홍루로 쓰이고 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수사를 해야만 하기에 송현과 영호인은 길게 늘어진 주렴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선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곳이었다. 

  "호인, 여기가 구걸신개가 알려준 곳이 맞아?"

   송현이 남다른 분위기에 잔뜩 경계하며 소리쳤다.  

  "두 번이나 확인했어.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은걸. 차라리 나가지?" 

  영호인도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 꺼려했다.  

  "동감이야!" 

  두 사람이 뜻을 같이하고 나오려 하는 순간에 귀신처럼 인기척도 없이 사람이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손님!" 

  남자의 것도 여자의 것도 아닌 음성과 가채를 머리에 얹은 얼굴은 창기보다 더 퇴폐적이 었다.  

  "으음!" 

  화선루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니오, 우리가 길을 잘못 찾은 것 같소." 

  영호인이 잘라 말하고 돌아서려 하자 낮고 끈적이는 목소리가 붙들었다.  

  "두 분이 화화공자(花火公子)시라면 제대로 찾아오신 겁니다." 

  우뚝! 

  밖으로 향하던 두 사람의 발길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지금 뭐라고 했나?" 

  송현이 눈빛이 번뜩였지만 미소를 대답을 했다.  

  "호호호, 기방을 찾으셨으니 꽃이 필요하실 테고 공자님의 즐거움이야 꽃을 불태우는 것밖에 더 있겠사옵니까?" 

  교태스러운 웃음과 함께 머리 위에 동아줄을 잡아당기자 벽인 줄 알았던 것이 병풍처럼 접히기 시작했다.  

  탁탁탁! 

  벽이 걷어지자 수십 개의 진열장이 나타났다. 영호인은 진열장의 물건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냉철한 영호인마저 아름다운 문양이 음각된 검에 마음 을 빼앗겨 진열장 앞에 멈춰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송현은 미동도 하지 않고 사내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이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호호호, 손님께서는 구경하지 않으십니까?" 

  손수건을 들어 입을 가리고 웃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여인네였다.  그러나 송현의 얼굴에서는 점점 미소가 사라지고 눈빛은 차가워지고 있었다.  

  "사내놈이 무슨 짓이냐?" 

  여인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무슨 속셈이지? 대체 어느 취객들이 이런 골동품을 찾는단 말이냐?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 물건들이 아닌데. 우리가 누구라고 처음 보는 이에게 이런 보물을 보여 주는 거지?" 

  송현의 싸늘한 질문에 구경하느라 잠시 마음을 빼앗겼던 영호인도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다.  

  "호호호, 무서운 분이시군요. 특별한 분들이라고 하더니 단박에 저희의 정체를 알아내시다니,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여전히 여인처럼 두 손을 허리춤에 대고 무릎을 사죄하는 이가 탐탁지 않은지 송현은 가늘게 눈을 뜨며 그를 경계했다.  

  "오신다는 기별을 받았지만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실내로 통하는 긴 주발을 한쪽으로 밀치자 복도가 나타났다.  

  "이봐요, 뭔가 크게 착각한 것 같은데 우리는‥‥‥" 

  송현의 어깨를 붙잡은 영호인이 상점의 여러 군데로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을 따라간 송현도 그 의미를 눈치 채고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한 두 사람은 낯빛을 굳히며 안으로 향했다.

  나무 바닥이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송현은 앞서 걸으며 안내하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복도의 끝 방으로 안내된 두 사람은 겉보기와 달리 쾌 큰 방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이국적으로 꾸며진 실내는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곧 주인님께서 오실 겁니다." 

  문이 닫히자 송현이 조용히 손짓했다. 영호인은 아무 말 없이 탁자 옆에 앉았다.  

  "정말 이상한 곳에 오고 말았어. 아까 복도를 걸을 때 보니 우리만 걸음 소리가 나고 그 이상한 사람은 전혀 소리가 나지 않더라고, 자세히 보니 그자는 가장자리로만 걷더군." 

  송현의 말에 영호인이 아는 체를 했다.  

  "침입자를 방지하기 위한 간단한 기관이지. 그리고 아까 상점에서도 곳곳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건 분명히 훈련 받은 자들의 호흡이었다." 

  잠시 주변의 기척을 살핀 영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필시 그대로 나가려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거야. 문제는 저들이 우리를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나 본데. 들통이 나는 날에는 피를 볼지도 모르겠어." 

  영호인은 아까 되돌아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들어온 이상 조심해야만 했다. 

  "송현, 각별히 조심해 아무래도 이들은 무림인들 같아" 

  영호인이 단단히 주의를 주자 송현은 무림인이라는 말에 긴장을 풀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시선이 문을 향했다. 영호인은 발검하기 좋은 자세를 잡았고 송현은 탁자에 앉자 기침을 했다. 

  "들어오시오!" 

  오랜 세월 광궁에서 밴 말투가 흘러나왔다.  

  사락!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이는 모습을 본 송현은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 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걸 보니 보통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닌 듯했다.  

  "우욱!" 

  영호인도 참지 못하고 송현의 등 뒤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월하(月下)라고 하옵니다." 

  확실한 남자의 음성이었지만 이름은 여자였다.  

  '제길, 뭐가 월하라는 거냐? 수염이라도 어떻게 하지 그랬어.' 

  송현은 탁자 맞은편에 앉은 여장 남자를 보며 욕지기를 참아 내야만 했다. 사각턱에 까칠한 수염이 적나라하게 보였고 다부진 인상은 산적 두목 같았다. 그런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입술에 연지를 발랐으니 괴물이 따로 없었다.  

  "호호호, 고매하신 학사님을 뵈오니 소녀 황망하옵니다." 

  뒤에서 욕지기를 참는 소리가 들려오자 송현은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것이 송현의 배속을 강하게 자극하였기 때문이었다. 

  '제발 그걸 교태라고 부리는 거라면 더 이상 하지 말아 줘!'

   송현의 간절한 바람도 소용없이 월하는 그 큰 몸을 배배 꼬며 제 딴에는 애교라는 것을 부렸다. 더 참지 못한  송현이 손을 들자 월하의 표정이 변했다.  

  "호호호,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말씀이군요. 급하기도 하셔라." 

  송현이 욕지기를 참기 위해 입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월하는 작은 목합을 건네받아 열었다.  그 안에는 오래된 서화가 잘 접혀 있었다.  월화가 서화를 펼쳐 송현이 잘 볼 수 있도록 돌려주었다.  

  '응? 아니 이건?' 

  송현은 탁자 옆에 등불을 들어 서화를 비추었다. 그 그림은 송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림이었다.  

  '아니 이것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송현이 영호인을 보자 영호인 역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얼른 표정을 바꾸고 내정한 모습을 유지한 송현은 천천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품에 있는 족자 속의 그림과 일치했다.  천 개의 바위 아래서 낚시하는 강태공의 그림이었다.  송현은 그림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월하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났지?"

  월하는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런 것은 묻지 않는 것이 예의지 않습니까?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 그림에 숨은 비밀입니다." 

 송현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구걸신개가 월하라는 여인이 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자신도 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자신을 이곳에 보내지는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제야 송현은 이 화선루의 정체를 대충 짐작했다. 개방이 중원의 모든 정보를 모은다면 이 화선루는 어둠의 정보를 모아서 팔고 사는 곳이었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 송현은 위험하지만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대가는?" 

  낮은 송현의 음성에 화선루의 루주인 월하의 표정이 급변했다.  

  "소문과 다르게 뒤끝이 있으시군요. 그림을 봐 주는 대가는 이미 은 한 관으로 정하지 않았나요?" 

  은 한 관이라면 대단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송현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어차피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었다.  

  "돈은 필요 없다. 정보를 다오!" 

  일체의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송현의 대화법을 알아차린 월하도 웃음을 지웠다.  

 "세상의 밤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화선루에 들어옵니다. 누구의 베갯머리송사가 궁금하십니까?" 

  월하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송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에 무참히 일그러졌다.  

  "화화공자(花火公子)!" 

  잠시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너는 누구지?" 

  월하의 목소리가 변하자 바닥과 천정에서 흑의무복을 입은 이들이 튀어나왔다. 잘 벼려진 검을 든 이들은 호흡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잘 키운 개들이로구나. 잘 들어라, 내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너는 이 그림의 비밀이 궁금한 것이고 나는 화화공자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사실뿐이다." 

  가진 패를 모두 내보인 송현은 월하를 흔들림 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잠시 그렇게 기 싸움을 하던 월하는 정말 여인네처럼 교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 진정한 사내대장부시구료. 애들아, 그 보기 흉한 것들을 치워라. 손님께 무례가 되지 않느냐!" 

  월하의 말에 흑의무복을 입은 자들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좋습니다. 거래는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지요. 제 조건은 이겁니다. 그림의 비밀을 풀어 주면 화화공자(花火公子)의 다음 목표를 알려 드리지요." 

 몸을 꼬고 앉아서 눈을 감은 월하에게서 더 이상 알아낸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눈치 챈 송현은 이쯤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개방에서 한바탕 소동을 겪었기 때문에 윽박지른다고 해서 통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 보람이 있었다.  그림을 펼쳐든 송현이 촛불 가까이 그림을 가져갔다.  

  "호호호, 그건 비밀문서의 기본이지 않습니까. 이미 해보았‥‥‥ " 

  월하는 자신들이 시도했을 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던 수묵화에 글자가 나타나자 기겁을 하였다.  

  "탱자에 잿물을 섞어서 사용하면 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드시 송진 가루가 필요하지."    수묵화에는 송현이 가진 그림처럼 이백의 시가 적혀져 있었다.

  월하는 그림에 나타난 시를 읽어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아시겠습니까?"

  월하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송현은 손가락을 들어 흔들었다. 

  "오호호, 내 정신 좀 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웃음으로 무안함을 대신한 월하가 이야기했다.  

  "내일 밤 달이 가장 밝은 때 화화공자가 현지사의 담장을 넘을 겁니다. " 

  "틀림없나?" 

  "화선루는 거짓을 모릅니다." 

  서로 필요한 것을 얻자 대화는 끝이 났다. 볼일이 사라진 송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다 월하를 쳐다보았다.  

  "그 그림이 어디서 났는지 말해 주면 그 시구의 수수께끼를 풀어 주지. 걱정하지 말게. 내 입도 상당히 무겁거든." 

  송현은 이제 한 걸음만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겁을 주었다.  월하는 이미 대화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항주의 꽃에게서 얻었습니다." 

  송현은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려 나갔다.  

  "감숙성에 월아천이라고 있네. 한번 들러 보게나, 풍경이 그만일세." 

  송현과 영호인이 그 말을 하고 사라지자 월하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저자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윌 하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알아내도록 해라." 

  "네!"

  수하들이 사라지자 월하는 그림을 펼쳐 보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물건을 되찾게 되는구나. 오호호호!"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송현과 영호인은 개봉의 홍등가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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