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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사막일전(沙漠一戰) (13/43)

  第 三 章 사막일전(沙漠一戰)

  송현의 예상대로 삼모족 전사들은 쉽게 타이라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족의 모든 전사들이 추격에 나섰다. 일행은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대륙을 향해서 달렸지 만 이곳은 그들의 고향이었다.  그에 반해 사막에 무지한 송현 일행은 곧 따라잡히게 되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영호인의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방금 전에 조우한 이십여 명의 삼묘족 전사를 처리한 일행은 가쁜 숨을 돌리기도 전에 그보다 더 많은 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막의 모래가 만들어 놓은 능선을 바라보는 일행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저기 능선을 까맣게 뒤덮은 게 사람이란 말이야?" 

  막여위가 휘파람을 불자 양명이 막여위의 뒤통수를 쳤다. 

  "지금 장난이 하고 싶어?"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며 분위기가 가라앉자 타이라가 송현을 향해 말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저예요. 저만 간다면 별 탈은 없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눈치로 알아차린 왕백이 타이라를 붙잡았다. 그리고 눈을 들어 송현에게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훗! 녀석도. 걱정 마라.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송현이 다부지게 말하자 왕백의 굳은 얼굴도 풀렸다.  

  "그나저나 이제 화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저놈들을 따돌리지?" 

  맥궁의 위력을 톡톡히 보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그나마도 도움을 받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에 송현은 미간을 좁혔다. 

“나도 큰소리는 쳤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 혼자 빠져나가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왕백과 타이라는 확실히 짐이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짐이니 송현은 어깨가 무거워 졌다.  

  눈빛이 마주치자 영호인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젠장! 여기까지인가?' 

  잠시 나쁜 생각을 가져 보았던 송현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황궁이 아니다. 내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거라고 말해 놓고서 또 나쁜 버릇이 고개를 들려고 하는군,' 

  송현은 이를 악물고 묘족의 반월도를 꺼내 들었다.  묵직한 반월도의 무게를 느끼며 송현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손에 맞는 검을 마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행 돌파뿐이겠어!" 

  "동감이다!" 

  송현과 영호인이 의견 일치를 보자 막여위와 양명도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왕백과 타이라를 가운데 두고 마름모꼴의 진을 만든 송현은 쉬지 않고 달려서 능선을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게, 어차피 오늘이 아니면 다시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여부가 있나!" 

  다들 각오를 단단히 하고 고삐를 손에 감았다.  

  “한 사람이라도 낙오하면 내가 지옥 끝까지 쫓아갈 테니 알아서들 해! 이럇!" 

  송현이 박차고 나가자 모두가 뒤를 쫓았다. 이를 본 능선 위에 묘족 전사들도 반월도를 머리 위로 흔들면서 달려왔다.  얼핏 보기에도 기백이 넘는 숫자였다. 멀리서 보니 수백 마리의 늑대 무리로 뛰어드는 형상이었다.  고삐를 놓고 양손으로 화살을 날리던 양명이 소리쳤다.  

  "이제 화살은 없어!"

  “나도 마찬가지다!" 

  막여위와 양명이 화살이 떨어지자 송현은 눈앞으로 새카맣게 몰려오는 묘족 전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장 위에 올라서 다리를 박차고 날아오르자 묘족 전사 무리에서 철시 세례가 퍼부어졌다.  송현이 일부러 주의를 끌기 위해서 몸을 내던진 것이다.  

  "송현! 무슨 짓이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어서 가, 호인. 제발 부탁이다!" 

  "저 바보가 기어이!" 

  그러나 영호인은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멈추면 진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송현이 자신을 희생하려 하는 것에 화가 났지만 우선은 다른 동료들의 안전이 먼저였다.  잠시 뒤를 돌아본 영호인은 송현이 언덕 아래로 사라지자 이를 악물고 낙타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채찍질했다.  전사들의 시선이 송현에게 잠시 뺏긴 틈을 타서 나머지 일행은 전사들의 일차 저지선을 그대로 통과했다.  

  뿌우우~ 뿌우우~ 

  다급하게 울리는 뿔고동 소리에 전사들도 실수를 알아차리고 낙타를 돌렸다.  그러나 탄력을 받고 내달리는 일행은 이미 능선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전사들은 사막의 모래 위에 홀로 서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무모한 선비를 보았다. 

  두두두두! 

  사막을 울리는 기백의 낙타 발굽 소리와 함께 먼지를 피워 올리며 달려오는 삼묘족 전사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 압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버티고 있는 송현 또한 대단했다. 하루가 다르게 송현의 기세가 달라지고 있었다.  첫 번째 열이 송현과 조우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 사자 후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고 주변 십 장 부근의 모래들이 튀어 올랐다. 

  깜짝 놀란 낙타들이 날뛰거나 쓰러지는 바람에 전열이 흩어졌고 뒤에서 달려오던 두 번째 열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바람에 끔찍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전사들의 지휘관들이 악을 쓰며 독려하자 몸이 성한 전사들이 분노하여 송현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손에 든 반월도를 낯설게 바라보던 송현이 검을 팽그르! 돌리며 뛰어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팔괘 비룡검 !" 

  유자강이 무림영웅대회에서 당천악의 독질려를 막아 낼 때 썼던 초식이었다.  난전(환탄)의 상황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가장 알맞은 검초였다.  원래는 가벼운 청명검으로 유려하게 펼치는 초식이었지만 커다란 반월도가 들린 송현의 손에서 시전 되는 팔 괘비룡검은 파괴의 신, 그 자체였다.  검끝에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베고 부쉈다.  실제로 검에 베이는 전사들보다 검에 맞아서 쓰러지는 이들이 더 많았다.  유자강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 무식함에 탄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송현의 잠재력이 최대치로 끌어 올려진 상태였다. 이상하게도 위험에 닥치면 그 능력이 배가 되었다.  삼묘족의 전사들은 송현을 쓰러뜨리고 싶었다. 정말로 간절하게 그를 쓰러뜨리고 싶었지만 전열이 무너지면서 절반 이상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고 나머지 전사들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휘둘러 대는 송현의 검 을 맞고 쓰러졌다.  

  "어떻게 사막의 모래 위에서 저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거지?" 

  다른 전사들과 달리 붉은 깃털을 단 모자를 쓴 전사가 믿고 싶지 않은 송현의 신위를 보고 이를 갈았다.  

  "야크! 내 궁을 다오!" 

  보통의 삼모족 전사들의 궁보다 배는 커보였다. 게다가 그는 철시를 세 개나 시위에 올려놓았다.  

  “전사의 혼을 담은 이 철시를 피한다면 네 녀석도 전사라 불러 주마!" 

  시위가 끊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웅웅'거렸다. 송현이 자신이 둘러싼 세 명의 전사를 쓰러뜨린 순간을 노리고 시위가 놓아졌다.  

  쉬이익! 

  다른 철시와 달리 소리도 없었다. 그래서 송현은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철시가 가까이 근접해서야 살기를 느끼고 몸을 피했다. 

  퍼버벅 ! 

  철시가 사막의 모래에 꽃히는 소리가 상당히 묵직했다.  그리고 마지막 철시는 사막의 모래를 붉게 물들였다.  

  "크흑, 동시에 세 개라니 괴물이로군." 

  두 개의 철시를 피한 송현은 마지막 뒤에 숨어 있던 철시를 미처 보지 못했다.  송현의 학사복 왼쪽 어깨 죽지가 꽃무늬처럼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송현의 신형이 비틀거렸다.  붉은 깃틸의 전사가 다시 한 번 철시를 활에 재우자 송현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기혈이 마구 들끓고 있어서 더는 상대할 요량이 없자 남은 내력을 이용해 달라붙는 전사들과 괴물 같은 무성시(無聲矢)를 뿌리치고 낙타 위에 올랐다.  머리 뒤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고 철시들이 날아와 스쳐 지나가는 소름끼치는 상황이었다. 왼쪽 어깨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몸을 피하는 것이 문제였다.  능선을 넘은 송현은 일행들 아직 그 자리에 있자 소리쳤다.  

  “도대체 뭘 하느라 아직 피하지 않은 거야?”

  화가 난 송현이 악을 쓰자 영호인이 앞을 가리켰다.  

  "저럴 수가!"

  능선아래에는 송현이 상대하는 전사들보다 더 많은 전사 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게다가 능선 위쪽에서도 송현이 잠시 붙들어 두었던 전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끝장인가‥‥‥”  

  막여위가 애써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모두들 등을 맞대고 둥글게 만들었다. 왕백이 부처님을 찾는 소리가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졌다.  

  투두두둥! 

  그때 갑자기 북소리 비슷한 것이 사막을 울렸다 

  "이 소리는‥‥?" 

  양명이 금세 알아차리고 반색했다.  다시 한 번 거문고 현을 때리는 소리가 울리자 잠시 후 하늘이 검은 비로 뒤덮였다.  

  콰콰콱! 

  검은 비가 묘족 전사들을 덮치자 지옥도가 펼쳐졌다. 눈먼 화살은 낙타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공격했다.  우왕좌왕 하며 모족의 전사들은 살기 위해 사막의 언덕으로 기어올랐다.  

  그러나 잔인할 정도로 화살 세례는 멈추지 않고 퍼부어 졌다. 

  "명군의 궁병들이다." 

  양명은 그 소리의 정체가 명군의 궁수대에서 화살을 쏘아 올리는 소리임을 진즉에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함성과 함께 명나라의 군대가 들이닥쳤다.  삼묘족의 전사들이 아무리 용맹스럽다고 해도 정규군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삼묘족의 전사들은 사막의 모래 위에 시체들을 남겨 두고 살아남은 이들만 구차하게 목숨 을 건지고 도망쳤다.  

  뿌우~ 

  군령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어지럽게 울리자 명군은 진영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등에 깃발을 꽃은 전령이 송현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대들은 누군가?" 

  투구 속 얼굴이 보이지 않아 상당히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천하의 주인이신 건문제 폐하의 백성들이오. 그대들 덕에 목숨을 구했소." 

  영호인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자 전령도 곧 이들이 소수민족이 아니라 한족임을 알고 깃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다친 사람이 있는데 도와주실 수 있겠소이까?”

  피를 흘리며 신음fi는 송현을 보고 전령은 곧 호각을 불었다.  

  "겨우, 살아난 건가?" 

  "송현, 이 친구야! 정신 차리게!" 

  영호인이 송현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기겁했다.  

  “다행 이 야 모두 무사‥‥‥”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송현이 정신을 잃자 모두들 송현의 이름을 외쳤다.  

  시타르가 당천악과 어울려 숨 막히는 승부를 다투고 있는데 송현은 웬일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몇 수 다음이면 당천악이 만천화우로 빙정을 날릴 텐데 송현은 제아무리 피하라고 악을 써도 목에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사례감 왕유와 흑신마가 웃음을 터뜨리며 송현을 조롱했다. 그리고 수백 번이나 보아 왔던 그 장면이 다시 펼쳐졌다.  

 시타르의 몸이 서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안 돼!" 

  온몸이 땀으로 젖은 송현은 갑자기 한기가 엄습하자 저도 모르게 기침을 했다.  

  “하아, 하아, 꿈이었나? 윽!" 

  몸을 움직이려 하자 왼쪽 어깨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 손을 들어 만져보니 붕대가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여긴 어디지?” 

  흐릿했던 시력이 돌아오자 이곳이 천막 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자 초췌한 얼굴이 왕백과 타이라가 구석에서 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 하고는!"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아서 한기를 느낀 송현은 몸을 덮고 있는 담요를 두르고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잠시 힘겨웠던 송현이 비틀 거리며 천막 입구의 가리개를 들어 올리자 수많은 천막이 나타났다.  그리고 명군의 복장한 군인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오고 가는 광경 이 보였다.

  "정말 제때에 도움을 받았어." 

  부르트고 갈라진 입술 사이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 송현은 깨달았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한 순간 죽음이 찾아오고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또 살길이 열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알게 되었다.  

  "아직 일어나면 안 된다고 이 고집불통아!" 

  뒤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송현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다들 무사했구나!"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송현이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을 향해서 화난 얼굴로 서 있었다.    "내가 미쳐! 잠시 한 눈 팔면 이 모양이라니까! 어서 들어가세요."

  왕백이 잔소리를 늘어놓자 송현은 상처가 도지는 것 같았다. 왕백의 손에 이끌려 천막으로 돌아온 송현은 그간의 상황을 전해 듣고 자신들이 정말 위험했음을 알았다.  타이라가 계속 눈물을 흘리자 송현은 그녀는 품에 안고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쉬! 그만 울거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이제 모두 지난 일이니 슬퍼하면 안 된다."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하자 왕백이 그녀를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정말이지 아슬아슬했어." 

  막여위가 그때 생각을 하며 호들갑을 떨자 양명도 명군의 활시위 소리가 그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며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우리의 운이 좋았던 거야." 

  송현이 쓰게 웃으며 말하자 영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양명의 말이 옳아 하늘이 도왔어. 이 부대의 장수가 누군지 아나?” 

  "내가 어찌 알겠나? 누구기에 이렇게 심각한 거야?" 

  세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보고 송현은 의아해했다. 

  "휴, 자네가 깨어났으니 그분을 뵙는 것이 좋겠군,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자네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 나을 거야." 

  아리송한 말로 대답을 픽한 영호인은 송현을 부축하여 군영에서 가장 큰 막사로 안내했다. 영호인은 같이 들어가지 않고 송현만 들여보냈다. 젊은 무장이 송현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숙여 천막의 휘장을 피한 송현이 고개를 들자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대장군의 갑옷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사람은 십 만 금의위의 수장이었던 임충이 었다 

  "임 교두님!" 

  송현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부상을 당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었다. 사실 그렇게 된 데에는 송현이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임충은 조정에 적이 많았고 정치를 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송현은 그에게 낙향할 것이 권했고 임충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왜 그가 대장군이 되어 이곳에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입니까?" 

  오랜만의 해후였지만 표정들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뒷짐을 지고 돌아선 임충의 등이 유난히 작게만 느껴졌다. 

  "폐하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부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네. "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송현은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그 바람에 동여맨 붕대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죽을 줄 알면서도 또다시 황궁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송현의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장수가 뼈를 묻을 곳이 어디인가? 바로 전장(戰場)이네. 고향 땅에서 아이들이나 돌보는 것은 이미 죽은 인생 일세." 

  왠지 처연하게 느껴지는 임충의 음성이 송현은 듣기 싫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철보신(明哲保身)하여 제 한 몸 추스르는 것이 제일 중하다고 여기는 송현으로서는 임충의 고집스러운 충정이 미울 수밖에 없었다.  

  "늑대 우리에 던져진 양처럼 물어뜯길 겁니다." 

  송현이 악에 받쳐 소리쳤지만 임충은 요지부동이었다. 송현은 불편한 몸으로 임충의 등에 대고 절을 하였다.  

  일배, 이배, 삼배‥‥‥ 

  죽은 사람도 아니고 산 사람에 그런 절을 하는 송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충고를 하겠습니다. 아니 친구로서 마지막 부탁입니다 ” 

  송현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곧 하늘이 바뀔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니까요. 조정 은 또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이고, 늘 그래 왔듯이 간신의 무리가 황제폐하의 귀를 어지럽히거나 아니면 새 황제께 서 변방의 장수를 두려워하시게 될 겁니다." 

  목이 메는지 송현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 번의 부름을 피하십시오. 일부러 오랑캐 토벌을 나가시든지 전쟁을 일으키시든지 해서 어떻게든 세 번의 부름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결코 황궁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예언과도 같은 송현의 다짐에 임충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말없이 등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나왔다.  변방을 토벌하기 위한 원정군은 서쪽으로 떠나야 했고 송현과 일행들은 동쪽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헤어져야만 했다. 송현은 멀어지는 임충의 군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송현, 이제 떠나야 하네." 

  영호인이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어렵게 입을 열자 송현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기에서 목숨을 구했지만 길을 떠나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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