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章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
다른 무림인과 달리 송현이 특별히 배려한 숙소는 화려하고 큰 별채였다. 상당한 특혜였기에 무당파 식솔들은 크게 놀랐다.
“하하하, 제자 잘 둔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유자강이 즐거워하자 영호인은 송현이 자신을 생각해서 취한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참으로 볼수록 대단한 젊은이야.”
유자강이 송현을 잘 보았는지 눈길이 따스했다. 스승의 성품을 잘 아는 영호인이었다.
“지닌 바 재주가 대단한 자입니다.”
영호인이 저간의 일들에 대해서 소소히 이야기하자 유자강은 크게 탄복하였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일은 군자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걸 실천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그런 사람을 벗으로 삼았으니 내 너를 잘못 가르치지는 않은 것 같구나.”
스승의 칭찬에 영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걸 눈치챈 유자강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제자를 살폈다.
“그래, 너는 네 뜻한 바를 이루었느냐? 무당산을 내려갈 때 너의 포부는 크지 않았느냐?”
스승의 물음에 영호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스승의 옆에 자리한 사숙과 사제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음을 알기에 영호인은 더욱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제자 초심을 잃은 지 오래이옵니다. 사내대장부 관직에 올라 입신양명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근래에 와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습니다.”
풀이 죽은 영호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하는 유자강의 눈에는 따스한 정이 담겨 있었다.
“호인아!”
“네, 스승님!”
유자강이 눈을 감고 입을 열자 영호인은 귀를 기울였다. 그가 가르침을 내릴 때 버릇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극도설(太極陶說)에 이르기를 군자(君子)는 중정인의(中正仁義)의 도(道)를 닦아서 길(吉)을 얻고, 소인(小人)은 중정인의(中正仁義)의 도(道)를 거역하기 때문에 흉(凶)해진다고 말하였다.”
유자강의 강론은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당의 제자들은 모두 마음과 귀를 열었다.
“이는 하늘의 도(道)를 세워서 이것을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워서 이것을 유(柔)와 강(剛)이라 하였고, 사람의 도(道)를 세워서 이것을 인(仁)과 의(義)라고 말하는 것과 같음이다.”
유자강의 강론을 들은 영호인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 네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었느냐?”
영호인은 자신이 얼마나 우매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기에 부끄러웠다.
“알면 되었느니라.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각자의 길 또한 다른 것이다.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을 고민하지 말고 너의 마음이 가는 길을 가거라. 단 협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어야 하겠지.”
영호인은 스승의 가르침에 크게 감복하였다. 무당 제일협이라고 불리는 유자강의 명성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하하, 이 땡중이 오늘 크게 개안하였습니다.”
유자강은 이미 혜승 대사가 들어온 것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이들은 깜짝 놀라며 일어나 예의를 차렸다.
소림에서의 배분 분 아니라 무림에서 혜승 대사의 위치는 막역한 것이어서 무당의 제자들은 공손히 그를 맞이했다.
“무당산 아래 고고히 빛나는 학이 있으니 그것이 무당 제일협이라, 결코 헛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명성이란 다 부질 없는 것, 대사님이야말로 살아 있는 신승이라고 불리시질 않습니까?”
무림 명숙들이 자리하자 실내가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무림의 양대산맥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소림과 무당의 대표들이 자리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졌다.
“어인 일로 이 늦은 시각에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까?”
유자강이 차를 건네며 묻자 혜승 대사는 어두운 얼굴로 심경을 털어 놓았다.
“실은 의논할 것이 있기에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혜승 대사가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유자강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천악 그 효웅이 무슨 바람이 불어 왔을까요?”
유자강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자 혜승 대사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역시 알 수 없었습니다. 허나 유도장께서는 잘 아실 겁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중원에 불었던 피바람을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유자강은 과거의 참혹했던 무림사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영호인이 끼어들었다.
“이번 영웅대전의 초청장은 모두 사례감 왕유가 작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을 고른 것 역시 그가 직접 했다고 하니 뭔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영호인의 말에 크게 놀란 혜승 대사가 무릎을 쳤다.
“이런, 사천당문이 관(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풍문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사실일 줄은 짐작도 못했소.”
“저 역시 그런 풍월을 들은 바 있지만 설마하니 그것이 황실의 줄이었을 줄은 미처 몰랐군요.”
혜승 대사와 유자강의 표정이 어두워지니 실매의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다.
“대사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유자가의 물음에 혜승 대사는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이 영웅대전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더구나 장소는 황궁이오. 자칫 구설수에 오르거나 오해를 사는 날에는 대역죄로 몰려 사문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혜승 대사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모두들 근심 어린 얼굴이 되었다.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저희 소림과 무당이 뜻을 같이 한다면 다른 정파 무리도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터이니 일이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혜승 대사의 말에 공감한 유자강이 흔쾌히 승낙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소림과 무당이 뜻을 같이 하기로 하자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밤이 깊도록 무당과 소림은 영웅대전의 일로 대화가 길어졌다.
며칠 후 햇볕이 좋은 오후가 되자 건청궁 앞마당이 시끄러워졌다.
무림영웅대회!
무림영웅대회는 송현이 미리 짜 놓은 대전표대로 진행되었다. 영호인의 도움을 받아서 비슷한 수준끼리 시합을 하도록 조를 배정해 연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항상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덕택에 즐거운 것은 관전하는 사람들이었다.
매 시합마다 손에 땀을 쥐는 구경거리를 제공하니 모두들 추운 날씨도 잊고 환호하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좋아, 성공이다!”
영웅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자 송현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만 왕백은 쉬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뭘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저 무서운 사례감 왕유 영감의 머리에서 나온 일이니만큼 조심해야만 합니다.”
왕백이 어울리지 않게 신중하자 송현이 왕백의 귀를 잡아당겼다.
“욘석아, 어울리지 않게 심각하기는, 네 말대로 저 능구렁이가 하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일까? 하지만 너처럼 굴면 너무 티가 나지 않느냐?”
“네, 그게 무슨?”
왕백이 의아해하자 송현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맹수가 토끼를 잡을 때도 신중을 기하는 법이다. 이쪽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으면 저쪽에서 덤비지 않아. 그러니 즐기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휘파람까지 불며 유유자적 사라지는 송현을 보며 왕백은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다.
“자, 잠깐만요! 같이 가요!”
잠깐 사이에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송현의 뒤를 쫓아가기 위해 왕백은 벗겨지려는 관모를 눌러쓰고 뒤뚱거렸다.
연무대 위에서는 청포건을 쓴 중년인과 왼쪽 가슴에 붉은 매화꽃이 수놓아져 있는 장포를 걸친 청년이 대치하고 있었다. 둥근 연무대 위에서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투(鬪)!”
명이 떨어지자 서로의 간격 중간에서 충돌했다. 순식간에 수십 초를 주고받으며 검을 겨뤘다.
“매화 향이 저렇게 짙으니 청성파의 도사가 고생 좀 하겠구나!”
시합을 지켜보던 송현과 왕백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시타르가 언제 왔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연무대의 시합을 평가하였다.
“제가 보기에는 청성파의 문하가 훨씬 실력이 좋아 보입니다.”
“흥! 그것도 눈이라고 달고 다니느냐? 어쨌든 오늘은 아주 좋은 수업이 될 것 같구나.”
시타르가 음흉하게 웃으니 송현은 왠지 불안했다.
“갑자기 무슨 수업입니까? 당분간 제가 바빠서 수련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송현이 눈살을 찌푸리자 시타르는 바로 응징을 가했다.
딱!
“윽! 크흐, 애들도 보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라, 창피한 것도 알고 대견하구나.”
시타르의 비아냥거림에 송현이 버럭 성질을 냈다.
“제가 이 행사를 주관하는 창대사입니다. 얼마나 바쁜 줄 아세요?”
송현이 짐짓 눈을 부라렸지만 시타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창대사인지 고대사인지 뭔지 나는 관심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네가 무극무해의 고해 편을 익혔고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것만 안다.”
시타르가 무극무해를 들먹이자 송현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일은 다른 녀석들에게 맡기고 너는 영웅대전이 끝날 때까지 내 옆에서 보고 배워야 해!”
시타르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고 송현도 더 이상 장난하지 않았다.
“잘 들어라, 무극무해는 무공서이면서 무공서가 아니다. 그 말은 무극무해는 권각의 초식이나 검술의 초식 따위는 전혀 없다.”
송현도 익히 아는 사실이라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신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라면 초식이나 구결 따위에 구애 받지 않겠지만 네 녀석은 전혀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극무해를 익혔으니 거꾸로 익혀야 하는 입장이다.”
왕백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쏟아져 나오자 긴장한다던 자신의 말은 잊어버리고 옆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모든 배움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많이 보고 듣는 것이다.”
송현은 학문을 익히는데 있어서 보고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무공을 배우는데 있어서도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러니 너에게 이 영웅대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교육장이다. 무림의 문파에 찾아가서 보여 달라고 사정을 해도 어림도 없을 비기와 절기들이 쏟아질 터이니 너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거라.”
그제야 시타르의 의도를 알아차린 송현은 정신을 집중하여 연무대 위의 대결을 보기 위해 안력을 돋우었다.
시타르는 무극무해의 구결을 떠올리게 하여 송현의 몸이 열리게 만들었다.
“의식의 세계를 열어드는 법을 잊지 않았겠지?”
“네, 심상 편에서 확실히 익혀 두었습니다.”
송현은 무극무해의 심상편 구결을 떠올리며 머리를 맑게 만들었다.
‘천 개의 눈으로 보라, 만 개의 귀로 들어라! 천지만물은 자연의 언어로 말하노니 이를 들을 수 있다면 능히 신의 경지에 이르리라!’
무극무해의 구결을 따라서 심(心)과 신(身)을 이끄니 송현의 머리 위로 투명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시타르뿐이었다.
‘후후후, 그릇이 비었으니 이제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거로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시타르는 송현의 귓가에 대고 연무대에서 벌어지는 시합을 분석해 주었다. 검초 하나 보법 하나에 이르기까지 시타르의 해박한 설명은 놀라울 정도였다. 시타르의 속삭임에 따라 송현은 점점 현실 세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막여위와 양명은 시타르에게 미리 언질을 받아 연단 아래를 지켰다. 왕백이 졸고 있는 동안 송현은 철저하게 무의식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마른 대지가 빗물을 흡수하듯이 놀라울 정도로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무림영웅대회의 시합 무대 외에 송현의 머릿속에도 가상의 연무대가 펼쳐졌다. 대상은 시합에 나온 모든 무림이었고 상대는 송현이었다. 상대가 화산파 고수면 송현도 무당의 검술로 싸웠다. 심상의 대결이 그의 세포 하나, 하나에 각인되어 갔다.
곤륜, 화산, 아미, 청성, 무당, 소림, 점창, 공동, 화산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백 년 절학이 송현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었다. 물론 시타르의 적절한 풀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송현은 이제 극강의 무공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습득하고 있었다. 송현의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시타르가 무극무해의 기운을 다스려 주었다.
연무대에서 검투가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황제가 지루한지 하품을 하였다. 병부시랑이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폐하, 지루하시옵니까?”
건문제의 시선은 이미 연무대를 떠난 지 오래였다.
“차라리 금의위 위사들이 펼치는 시연이 더 보기 좋구료!”
옥좌 아래에서 읍을 하고 있던 사례감 왕유가 기다렸다는 듯이 황제 앞에 나섰다.
“폐하, 그러면 저 무림인들과 금의위들이 시합을 벌이면 어떻겠습니까?”
“응?”
건문제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사례감 왕유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번 기회에 황궁을 지키는 금의위의 실력이 백성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아보는 것도 영웅대전의 또다른 재미가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사례감 왕유의 제안에 병부시랑이 크게 놀라 아뢰었다.
“폐하, 금의위 위사들의 무공은 모두 외공을 익힌 병사들이옵니다. 집단 전투와 달리 개개인이 일신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무림인들과 박투는 말도 되지 않는 처사이옵니다.”
병부시랑이 불가하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사례감 왕유는 포기를 몰랏다.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가 아니올는지. 폐하의 옥체를 지켜야 할 금의위의 실력이 그처럼 미진하다면 이는 불충이오 대역죄가 아니겠습니까?”
“네놈이! 환관 따위가 감히 정사를 논하려 들다니 정녕 위아래를 모르고 날뛰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병부시랑이 분통을 터뜨리자 한림원 수찬 황자증이 그를 만류했다.
건문제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정녕 저 무림인들보다 금의위가 못하다는 것이냐?”
목소리에 실린 감정이 격하다는 것을 눈치 챈 병부시랑은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폐하, 그렇지 않사옵니다. 대명 황실을 지키고 수호하는 금의위는 천하무적이옵니다.”
병부시랑이 머리를 조아리며 읍소하자 건문제는 냉소했다.
“흥! 그렇다면 무에 두려운 것이냐. 어디 한번 보자꾸나, 저것들과 금의위가 뭐가 다른지 말이다.”
황제의 윤허가 떨어지자 사례감 왕유는 즉시 명을 내렸다. 영웅대전의 경비를 위해 나와 있던 총교두 임충은 황당한 명령에 연단을 바라보았다. 사례감 왕유와 눈이 마주치자 임충의 턱 근육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네 녀석이 노린 것이 이것이었더냐? 겨우 나를 찍어 내기 위해 꾸민 계략이 이따위 애들 장난이란 말이냐?’
임충은 분하고 분했다.
한낱 환관 따위에 휘둘리는 황실이 답답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황제의 명령이었고 자신은 황제의 충실한 신하였다.
소림의 무승과 무당의 검객이 한바탕 춤사위를 펼치듯 형식적인 시합을 마치고 나자 사람들의 입에서 의혹과 불신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의위 총교두 임충이 거의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쌍두봉을 들고 연무대 위에 섰기 때문이었다.
“금군 교두 임충이외다. 지엄하신 황상의 명에 의해서 이렇게 연무대에 서게 되었으니 가르침을 바라오!”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자 무림인들도 당황했다. 모두가 눈치를 살피는 이유는 괜히 시합에 임했다가 크게 상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질까 봐 지레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금군의 총교두였다. 게다가 그는 충신으로 백성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운 영웅호걸이었다.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기에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임충이 황제를 향해 아뢰었다.
“폐하, 어이 하면 되겠습니까?”
군중들 역시 건문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여 숨을 죽였다. 건문제는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화를 냈다.
“짐의 말이 우습게 들리나? 저 무림인이라는 자들은 나의 백성이 아니란 말인가?”
황제의 노성이 커지자 갑자기 주변의 전각 위, 연단 위아래에서 수천의 병사들이 나타나 활시위를 겨누었다. 갑자기 사태가 급박하게 변하자 군중들은 비명을 질렀다.
즐거웠던 축제가 삽시간에 난장판이 되자 군중들은 두려움에 떨며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저 죄인들을 빼고 모두 물러가라!”
황제가 소리치자 군중들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 아비규환을 벌였다. 금의위 위사들과 병사들이 호통을 치자 겨우 진정한 군중들은 서서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자 수천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연무대 주변은 질식할 것 같은 긴장감으로 뒤덮였다.
제아무리 고강한 무술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금강불괴 도검불침이 아닌 이상 수백, 수천 발의 화살비 속에서 무사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 목적이었을까요?”
무당의 유자강이 잔뜩 경계하며 가까이 온 혜승 대사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무림 전체에 경고를 보내기 위함도 아니고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정파 무림인들은 소림과 무당 주위로 모여들었다. 금군들의 활시위도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서 겨누어졌다. 재채기라도 할 치라면 고슴도치가 될 판이었다.
“지엄하신 황제폐하의 명이시다. 어서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대역죄로 다스리겠다!”
사례감 왕유의 노성이 울려 퍼지자 흑도문파들이 참지 못하고 연무대로 뛰어올랐다.
“그대의 이름을 익히 존경하고 있지만 지금은 부득이하게 출수를 하니 용서하기 바라오!”
녹림도의 의복을 입은 이들이 임충을 향해 검을 뻗었다. 질풍처럼 짓쳐 드는 검을 임충의 봉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쳐 냈다.
녹림도들은 임충이 검을 가볍게 쳐 내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임충의 실력을 한 수 아래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금군 교두 임충을 말할 때 신창(神倉) 임충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결코 우연히 십만 금군의 교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휘이이잉!
임충의 봉이 원을 그리자 뱀처럼 휘어지며 녹림도들의 검을 강타하자 견디지 못하고 손에서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봉술과 연결되는 것이 창술이다 이는 전쟁에서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간단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인간의 무기이다.
흔히들 봉술(奉術)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무림의 근간이라고 하는 소림에서도 봉술을 연마하는 데 쉬지 않고 있고 개방의 유명한 무공인 타구봉 또한 봉술의 한 종류이다.
무공을 익히는 자들이 귀가 닳도록 하는 ‘일촌이 길면 일촌이 강하고 일촌이 짧으면 일촌이 약하다’ 라는 말을 임충이 여실 없이 보여 주었다.
“핫! 이야야얍!”
경쾌한 기합성과 함께 임충의 봉끝이 무섭게 짓쳐 들었다. 봉임에도 불구하고 그 강한 관통력은 창을 능가했다.
“커헉!”
단발마의 비명 소리가 연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호기롭게 뛰어올랐던 녹림도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연무대 밖으로 떨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혜승 대사는 크게 탄복했다.
“열양지력(熱陽地力)을 이용한 봉술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과거에 화도문 이라는 봉술을 잘하는 가문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 분이 그 후예가 아닐지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유 도장,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요? 녹림도들이 나섰는데 우리는 지금 황명을 거역하고 있으니 나중에 사문에 큰 피해가 돌아갈까 두렵소.”
혜승 대사의 걱정을 잘 아는 유자강은 금의위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닌 듯싶습니다. 일단 지켜보시지요. 그자도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유자강이 사파의 연단 가운데를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당천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 다른 사파의 고수들이 연무대로 뛰어올랐고 다시 한 번 임충의 봉이 춤을 추었다.
임충은 커다란 구호를 외치며 마치 금군을 훈련시킬 때처럼 소리를 질렀다.
“손발을 익히고, 병기를 다루어 몸을 방어하고 적을 죽이며, 공을 세우고 나라를 보위하자.”
명(明)나라 군대의 훈련 중에는 화려한 자세는 배제되고 실용적인 무예만이 중요시되었다. 바로 임충의 봉술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양가창법과 조기창법의 장점만 따와 만든 이 창술은 패도적이고 바르며 또한 전투에 능한 무예였다.
퍼버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파의 고수들은 크게 낭패를 보며 연무대 박으로 밀려났다. 힘과 속도 그 모든 면에서 임충은 봉술의 대가였다.
짝! 짝! 짝!
갑자기 터져 나온 박수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과연 신창이라는 명호가 잘 어울리오.”
느릿느릿 걸어 나오는 노인을 보며 임충은 봉을 바로 세우며 예의를 지켰다.
“작은 재주일 분이오. 귀하께서는 어느 고인인지 말해 주시오.”
예의 바른 임충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안하무인인지 노인은 콧방귀를 끼었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다고 해서 실력도 그렇다는 법은 없다지만 그대는 예외로 해 두지. 내가 본 군인 중에 그대가 최고다. 허나, 그 명성도 오늘까지라서 안타깝군.”
노인이 고개를 꺾으니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나 당천악을 만난 것이 불운이라고 생각하시오. 미리 말해 두지만 당신에게 특별히 나쁜 감정은 없소. 어쩌다 저 늙은 너구리하고 척을 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인생사 아니겠소.”
당천악이 연단 위의 사례감 왕유를 바라보자 왕유의 고개가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그 옆에 늘어선 환관들의 눈빛이 매서웠다.
“쯧쯧쯧,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라오.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지. 당신은 적을 너무 많이 두었어!”
당천악의 장포가 크게 출렁이자 연무대 위로 바람이 불었다. 임충 역시 눈앞의 노인이 지금까지 상대한 무림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 내려는 듯 임충은 봉에 열양지력을 담아 강하게 휘둘렀다.
“격타산파(擊打山破)!”
커다란 산도 부순다는 수법으로 빙글빙글 도는 봉끝이 어디를 노리는지 알 수 없는 교묘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당천악의 말대로 임충은 운이 나빴다. 상대는 일대종사였다. 당천악의 소매가 부풀어 오르더니 그의 장심이 봉을 향해 내뻗었다.
펑! 펑!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며 임충의 몸이 연무대 밖으로 튀어 나갔다. 봉을 쥐고 있던 손아귀가 터져나가 피가 흘러내렸고 내상을 입어 그의 입에서도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쯧!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군.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부디 저승에서 나를 원망하지 마시게!”
임충 앞에 내려선 당천악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그의 천개령을 내려치려 했다.
“안 돼! 당 대인, 그를 해하면 아니 되오!”
사태를 파악한 유자강이 다급히 외치자 당천악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크크크, 말코 도사들도 납시었군. 그렇게 조바심 내지 말라고. 곧 네놈들도 처리해 줄 테니!”
당천악의 여유로운 표정에서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유자강은 고민했다.
애초에 영웅대전은 음모를 위한 술수라는 걸 깨달았지만 장소가 황궁이고 명을 내리는 것은 황제였다. 여기서 섣불리 움직인다면 중원 무림은 백만 대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힐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유자강은 연단 아래로 뛰어내렸다.
“폐하! 이는 누군가의 모략이옵니다. 아대로 놔두신다면 충신을 잃게 되시는 겁니다. 저 당천약이라는 자는 엄청난 무림의 고수입니다. 임충 장군이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시합입니다. 임충 장군은 장수지 무예가가 아닙니다. 이 점을 살피소서!”
목숨을 걸고 진언한 유자강은 황제의 처분만 기다렸다. 그러나 사례감 왕유가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감히 세치 혀로 위대한 황제폐하를 기만하려 들다니. 여봐라! 저자를 포박하라!”
사례감 왕유는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려 했다.
오늘은 그동안 미뤄 왔던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황궁에서 쓸어 내는 날이었다. 환관의 세력이 응집되자 무서울 정도로 힘을 발휘했다.
도태감이 명을 내리니 도찰원의 고수들이 유자강을 포박하려 했다. 그리고 정파 고수들 주위로 서창의 고수들이 조용히 나타났다.
“폐하, 아울러 이토록 불충한 무리를 황궁으로 불러들인 관리 또한 처벌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누군가?”
여전히 따분한 얼굴의 건문제에게 사례감 왕유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전각대학사를 지낸 송현 학사이옵니다.”
“송현......?”
송현이라는 말에 건문제가 몸을 돌렷다. 그가 어린 시절 송현은 그의 말동무이자 글 선생이기도 했다. 황제가 된 이후로 보지 못했지만 건문제는 몇 번의 말썽이 있을 때마다 송현을 감쌌다.
“그가 이일을 맡았나?”
건문제의 마른 음성에 사례감 왕유는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폐하께서 그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처럼 흑심을 품은 이들을 황궁으로 끌어들인 것은 대명황실에 대한 도전이며 대역죄나 마찬가지로 사료되옵니다. 저들은 하나같이 고강한 무공을 지닌 자들로 송현 그자가 무슨 역심을 품었는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역심이라니?”
건문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자 사례감 왕유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환관들이 들것에 시체를 싣고 나타났다.
“저들은 송현 학사가 각별히 대하던 무림인들인데 그들의 품에서 나온 서찰이옵니다.”
피묻은 서찰을 읽은 건문제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럴 수가!”
건문제가 어지러워하며 옥좌위로 무너지자 사례감 왕유는 이 모든 상황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 비수를 던졌다.
“듣거라! 황제폐하를 기만하고 역심을 품은 송현 학사를 주포하고 그와 역모를 도모한 교두 임충과 금의위 교위들 역시 주포하라! 아울러 한림원 학사 황자증과 병부시랑 또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뭐라고? 네놈이 미쳤구나!”
병부시랑 제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사례감 왕유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여봐라! 뭐 하느냐? 당장 저 환관 놈을 잡아들여라!”
병부시랑 제태가 악을 썼지만 누구 하나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문무대신들은 그저 사례감 왕유의 눈치만 볼 뿐 그를 외면했다.
“끝났소! 다 끝났단 말이오.”
“황 학사!”
병부시랑 제태와 황자증이 체념에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오. 저들은 생각보다 훨씬 뿌리가 깊고 질겼소.”
도찰원의 위사들이 동아줄로 포박을 하자 병부시랑은 황제를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폐하, 부디 밝은 혜안으로 살피소서! 환관의 감언이설에 나라가 위태로워지옵니다.”
충절이 느껴지는 충언이었지만 이미 건문제는 피 묻은 서찰에 정신을 빼앗긴 뒤였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불안감은 역대 황제 때부터 쭉 이어져 온 두려움이다. 늘 황족은 암살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실체가 나타나면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돌변하기도 한다.
“닥쳐라! 여기 이렇게 모든 증거가 있거늘 감히 어디서 변명이냐? 도대체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연왕이더냐? 아니면 주왕이더냐?”
건문제가 번왕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폭발하자 사례감 왕유는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눈짓을 받은 환관들이 재빠르게 주변을 정리하였다.
사례감 왕유가 손을 들어 아래로 향하자 당천악이 다시금 피를 흘리는 임충을 향했다. 그가 손을 한번만 더 움직이면 대명 황실을 지탱하던 충신, 임충은 더 이상 산 목숨이 아니었다.
“멈춰라!”
그러나 느닷없이 터져 나온 노호성에 일순 장내가 침묵했다. 그 음성에 실린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누구냐?” 사례감 왕유가 발작적으로 외치자 고요한 가운데 학사 한 명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폐하! 저를 기억하시옵니까?"
암살 음모에 잠시 혼란스러웠던 건문제는 송현의 맑은 음성에 정신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송현, 송현 그대인가?”
건문제는 도찰원의 위사들이 송현을 포박하려는 것을 멈추게 했다. 송현의 환한 미소가 건문제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폐하, 무엇이 그리 두려워 뒤에 숨어 계십니까? 폐하는 천하의 중심인 대명제국의 황제이시자 하늘의 주인이십니다. 당당하소서!”
연단 아래 무릎 꿇은 송현의 절절한 충언이 흘러나오자 건문제는 어느덧 황족으로서의 체통을 찾아가고 있었다.
공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사례감 왕유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역적이 괴이한 사술로 폐하의 심안을 흐리고 있다. 놈을 주포하라!”
사례감 왕유도 다급했는지 목소리에 쇳소리가 났다.
“닥쳐라! 환관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탐욕에 빠져 감히 천하의 주인이신 황제폐하의 눈을 가리고 사리사욕에 빠져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죄! 그것은 참형으로도 모자란 대 죄악이다. 너희들이야말로 대역죄로 다스려도 모자란 죄인들이다.”
송현의 음성에는 사람의 마음을 진탕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송현의 음성은 크지 않았지만 멀리 퍼져 나갔고 연단 위에 있는 건문제에게는 바로 옆에서 말하듯 또렷하게 들렸다.
“폐하! 옛 성현들의 말들을 기억하십시오. 자고로 훌륭한 군주는 백성들을 아끼고 신하들을 살피라 하였습니다. 충신과 간신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니 군주는 옳고 그름을 따져 현명한 결정을 내리라 하였습니다.”
송현의 충언에 건문제는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모두가 송현의 말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영호인과 금의위 교위들이 연단에 올아 황제 주위에 섰다.
깜짝 놀란 도찰원의 위사들이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황제는 금의위 교위들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었다.
“송현 그대의 말은 잘 알았다. 그럼 짐의 눈을 가리고 감언이설로 짐의 판단을 흐리게 한 대죄인이 누구인가?”
건문제의 노성에 송현은 말없이 사례감 왕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폐, 폐하! 이것은 모함이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저를 모략하는 것이옵니다.”
송현은 그런 사례감 왕유를 향해 무섭게 소리쳤다.
“증거가 필요하다 하였느냐? 오냐, 네놈의 사리사욕에 신음하는 만백성이 증인이다. 그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대감들도 더 이상 환관들과 유착하지 말고 선비정신을 되찾으십시오!”
송현의 구구절절 옳은 말에 문무대신들은 땅에 엎드려 죄를 뉘우쳤다. 한 사람이 시작하니 곧 수십의 대신들이 사례감 왕유의 죄를 고해 바쳤다.
“이...... 이...... 감히 네놈이 감히!”
분노한 건문제가 옥좌에서 일어나 사례감 왕유를 향해 소리쳤다.
“사례감 왕유의 모든 직책을 파직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할 것이며 환관들을 모두 주포하여 심문하라!”
건문제의 명이 떨어지자 무림인들을 향했던 금의위 궁사들의 시위가 사례감 왕유와 도찰원 위사들을 향했다.
“공공,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파랗게 질린 도태감이 왕유에게 매달리자 다른 환관들은 겁에 질려 엎드린 채 머리를 박고 황제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사례감 왕유가 송현을 노려보자 송현은 차가운 미소로 화답했다.
“큭! 덫을 판 것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네놈이었구나! 완벽하다고 생각했거늘......”
사례감 왕유가 눈을 감고 하늘을 보자 환관들은 곡을 하며 주위로 몰려와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도찰원의 위사들이 무기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자 도태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