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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 위기일발(危機一髮) (7/43)

第七章 위기일발(危機一髮)

위기일발(危機一髮)

  쐐애액!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암기가 시타르를 노리고 날아갔다.

  따다당!

  시타르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크게 분노했다. 발치에 떨어져 깊숙이 박힌 것은 비수들이었다.

  “감히, 방해할 셈이냐?”

  영호인이 검을 막기 위해 다급하게 던진 것을 시타르가 쳐낸 것이다. 재빨리 경신법을 발휘하여 시타르를 가로막은 영호인도 검을 뽑았다.

  “후우, 후우!”

  어깨를 들썩이는 영호인을 보며 시타르는 헛웃음을 흘렸다.

  “비켜라! 네 녀석은 아무것도 몰라!”

  화가 난 시타르의 검이 왼쪽 어깨를 노리고 찔러 갔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영호인은 무당 칠성검의 절초인 유유낙선(幽幽落選)의 묘리를 살려 검의 방향을 틀어 시타르의 목덜미를 향해 번개처럼 찔렀다.

  절묘한 변초에 놀란 시타르가 재빨리 검을 세워 막자 금속음이 나며 불똥이 튀었다.

  ‘웅! 웅!’

  한바탕 충돌을 일으킨 두 자루의 검이 우는 동안 순식간에 십여 초를 다시 교환했다.

  영호인은 온힘을 다해 겨루고 있었지만 시타르는 표정변화 없이 점점 변하고 있는 송현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제길! 손아귀가 터져 나갈 것 같군. 괴물이야 괴물!’

  내력, 검술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 것을 느낀 영호인은 무력감이 밀려오자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갑자기 천축의 노승 시타르가 내력을 발출하여 영호인을 밀어낸 뒤 송현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시타르는 힘차게 외치며 청강검으로 송현의 머리를 양단하기 위해 내리쳤다.

  카캉!

  파륙음과 비명 대신 또다시 검과 검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빌어먹을!”

  어느새 영호인이 달려와 또다시 막아내자 시타르의 미간에 주름살이 늘어났다.

  “비켜라, 자꾸 끼어든다면 네 녀석도 베어 버리겠다.”

  서릿발 같은 노호성에도 영호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왜지?”

  “친구니까요!”

  영호인의 격한 외침에 시타르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친구...... 친구......”

  질끈 두 눈을 감은 시타르의 머릿속에 오래된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인자해 보이는 노승이 피범벅이 되어 이국의 승려 품에서 소탈한 웃음으로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천축의 젊은 승려의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너를 만나서 기뻤다고 말하며 생을 마감하는 슬픈 이별이었다.

  “빌어먹을 무상 땡중! 하필이면 이 순간에 떠오를 것이 뭐람!”

  챙그랑!

  시타르의 손에 들렸던 검이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살의를 거둔 시타르를 확인한 영호인은 긴장이 풀리며 안도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여전히 커지고 있었다.

  “크륵! 크륵!”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기운이 등 뒤에서 느껴지자 영호인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소, 송현!”

  영호인이 가까이 가려 하자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밀어냈다. 이질적인 기운과 맞닥뜨린 영호인은 내부가 진탕되고 기혈이 들끓었다.

  “큭!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영호인 어찌할 바를 모르자 시타르가 한숨을 쉬었다.

  “친구라 했느냐? 그럼 네 손으로 친구를 보내 주거라. 그 또한 친구의 도리가 아니냐?”

  시타르는 더는 보고 싶지 않은지 몸을 돌렸다.

  “지금 보내 주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친구라 부르는 송현은 무자비한 살육만 일삼는 괴물로 변할 것이다, 어찌하겠느냐? 그 잘난 우정이라는 것을 한번 보자꾸나!”

  시타르가 내뱉은 말은 영호인에게 가혹한 형벌이었다. 손에 든 청강검이 떨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주저하면 주저할수록 송현의 모습은 점점 흉측하게 변해갔다. 거칠어진 숨소리와 사람의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괴성이 송현에게서 흘러나왔다.

  “송현......”

  영호인은 오른손에 들린 검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살인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무수히 많은 죽음을 보았고 자신의 손에 셀 수 없이 많은 피를 묻혔다.

  그러나 오늘만큼 두려운 적은 없었다.

  “크아아악!”

  혈관이 터져 피가 흐르고 뼈가 어긋나며 기형적인 모습을 탈바꿈하는 송현은 고통이 너무 큰지 머리를 움켜쥐고 몸부림쳤다.

  “내...... 가! 내가......”

  부들부들 떠는 손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영호인은 주저했다.

  고통에 떨면서 송현의 그 이질적인 기운이 약해지자 영호인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가 되자 걸음을 멈췄다.

  〔영 교두, 도대체 이게 뭐요?〕

  〔영 교두, 장풍이란 게 정말 있는 거요?〕

  〔세상에 이것 좀 보시오, 영 교두. 사람이 물 위를 걷는다는데 그게 그대의 문파인 무당파의 고수라오. 혹시 아는 사람이오?〕

  피곤할 정도로 귀찮게 하는 주제에 세상에 더없이 맑고 고운 눈을 가진 송현의 모습이 떠오르자 영호인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우워! 우워!”  그때, 송현의 눈동자가 사라지자 시타르의 음성이 거칠어졌다.

  “이제 일다경이다. 일다경이 지나면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를 제압하기 위해 금의위 병력 대부분이 참담한 죽음을 맞이할 텐데, 어쩌려는 거지?”

  냉담한 음성에 영호인이 매달렸다.

  “방법이 없습니까?”

  간절한 절규에 시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있었다면 나 역시 친구를 잃지 않았을 테지.”

  씁쓸하고 처연한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영호인은 낙담했다.

  처연한 눈빛이 마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떨리는 영호인의 검이 송현의 가슴을 노리고 찔러갔다. 그러나 급히 장검을 거두면서 왼손으로 송현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큰소리가 나며 송현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송현!”

  영호인이 악을 썼다.

  “이제 보니 무공의 무 자도 모르면서 까불었구나!”

  절박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크으!”

  다시 마성에 젖어드는지 송현에게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익! 이제 보니 자네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군. 이럴 거면서 나한테 왜 무공 선생이 되라고 했는가?”

  마기에 맞서는 영호인의 의복이 찢어졌고 피부도 검게 물들어갔다.

  “젊다는 건, 조건 없이 무모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거지.”

  시타르는 영호인의 굴하지 않는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송현, 이 바보 천치야! 이대로 미쳐 버릴 셈이냐? 나보다 더한 고수가 되어 무당파에서 나를 놀려 먹겠다던 약속은 다 잊은 거냐!”

  영호인의 절규에 담긴 마음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영...... 호...... 인?”

  분명하지 않은 발음이었지만 또렷하게 나온 말이었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소스라치게 놀란 시타르가 달려왔다.

  “맞...... 아...... 무당산에......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래, 사내대장부라면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 약속......”

  어린아이처럼 몇 번이고 되뇌는 송현에게 눈물 섞인 목소리가 매달렸다.

  “송현 학사님,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요?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명철보신! 강조한 게 누구신데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언제 왔는지 어린 왕백이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눈물범벅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후원에는 막여위와 양명도 또한 찾아와 이 급박한 사태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송학사! 맛난 요리를 해 준다던 약속도 잊지 말라고!”

  “막가 놈 말은 다 잊어도 되지만 우리 고향에 가서 내 자식 놈들 글공부시켜 준다던 약속은 지켜야지. 어서 정신 차리라고!”

  살벌하기 그지없는 황실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송현의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모두들...... 나의 소중한 친구들...... 이지.”

  송현의 음성이 점점 또렷해지자 시타르의 표정이 변했다.

  “이 송현,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거짓말처럼 후원을 짓누르던 마기가 사라졌다. 아울러 징그럽던 송현의 모습도 점차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시타르는 불호를 연신 외쳤다.

  “송현!”

  “송 학사!”

  우르르 몰려가 쓰러지려는 송현을 부축한 이들이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그들을 뒤로 하고 시타르는 탄식을 하며 사라졌다.

  “무량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 네 가지이고 수불은 끝없는 지혜와 생명이지 않은가? 그처럼 간단한 것을 깨닫지 못했다니 허허허! 무극무해의 고해(苦海)란 바로 그런 것이었구나!”

  시타르의 소박한 웃음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자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축 처졌던 송현의 눈이 힘겹게 뜨였다.

  “고해(苦海)하니 고하(苦河)하리다. 인간사 아픔을 아는 이만이 무극무해의 고해(苦海)를 이해하리라.”

  시타르와 송현의 선문답 같은 어려운 대화는 다만 영호인만이 어렴풋이 그 안에 현묘한 묘리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기력이 떨어져 탈진한 송현을 막여위가 업고 후원을 벗어나자 이내 화원의 뒤뜰은 조용해졌다.

  생사의 기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송현은 달포가 흐른 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시타르가 머무는 자하원에 평상시처럼 나타나 음식을 차렸다.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명상에 빠져 있던 시타르가 눈을 떴다.

  “이제 나에게 볼일이 없을 터, 무슨 바람이 불어 또 찾아온 것이냐?”

  시타르의 냉랭한 반응에도 송현은 그저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국그릇에서 국자를 부지런히 움직여 고소한 국물을 덜어냈다. 국물 속에는 곤단포(滾蛋包)가 ‘둥둥’ 떠 있었다.

  “물만두?”

  송현이 흔하디흔한 물만두를 꺼내놓자 시타르는 의외라는 얼굴을 하였다. 송현은 항상 시타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특별한 음식만 가져왔었다. 저잣거리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을 가져온 송현의 의도를 몰라 천천히 살폈다.

  ‘흠, 확실히 무극무해의 고해 편을 넘어선 뒤로 기도가 달라졌다. 뭔지 모르겠지만 안정되었다고 해야 하나? 주변 풍경과 마치 하나 된 듯하군.’

  송현의 변화를 놀라워하면서도 시타르는 애써 모른 척하였다.

  “이 곤단에 무슨 뜻이 있는 줄 아십니까?”

  송현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형형색색의 물만두가 담긴 국그릇을 내밀자 시타르는 곤혹스러워했다.

  이제 송현과 정을 떼려 하는데 자꾸 이러면 곤란한 것이었다. 게다가 식탐이 많은 그로서는 이런 유혹에 약했다.

  “흠, 음식에도 의미가 있더냐?”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입맛을 다시는 시타르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송현은 나직이 웃었다.

  “소림에만 너무 오래 계셔서 그런지 이곳의 풍습을 너무 모르시네요. ‘곤단’은 ‘어서 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뭣이라?”

  시타르의 굵은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부르르 떨자 송현은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곤단’이 가끔 재미있는 표현으로 쓰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말은 아무래도 친한 사이에서만 농담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 같이 곤단포 먹자’는 친구가 먼 길을 떠나니 송별식을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송현의 설명에 화가 누그러진 시타르는 ‘후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곤단포와 국물을 맛나게 먹었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곤단포를 씹으니 향긋한 냄새와 함께 달콤한 만두소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훌훌, 기가 막히는구나! 그래 이제 나한테 볼일 다 봤으니 떠나라 이거냐? 고얀 놈 같으니라고!”

  국그릇에 코를 박고서 툴툴거리는 시타르에게 송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북방에는 영객면, 송객교자(迎客麵, 送客餃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손님을 맞이할 때는 국수를, 환송할 때에는 교자를 대접하라는 말입니다.”

  국그릇을 다 비운 시타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송현에게 잔소리를 했다.

  “흥! 네놈이 나를 떠나라는 말은 알겠다만 그러나 너는 나에게 국수를 먹여 준 적이 없다.”

  “국수는 소림에 오셨을 때 무상선사께서 주셨을 겁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너......”

  시타르의 눈이 무섭게 변했지만 송현은 여전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이제 그분들을 마음속에서 놓아 주시라는 의미에서 곤단포를 대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시타르는 질끈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괴로운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힘들어 하시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무극무해의 고해편에서 끔찍한 일을 당했듯이 그분들도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저를 죽이려 하셨겠죠. 그와 같은 고통을 다시는 겪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란 걸 저는 잘 압니다.”

  꼭 감은 시타르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허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천축의 신승이시니 부처님의 말씀 또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번민에 괴로워 마시고 모두 떠나보내시기 바랍니다.”

  송현이 할 말을 다하고 그릇을 치우는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시타르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중원에 왔을 때, 왕의 자리를 버린 것을 너무나 잘했다고 기뻐했다. 무상 땡중과 장 도장 같은 친구가 생겨서 부처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무극무해에 발을 들여놓은 다음부터 그날 그 객잔에 내가 있었던 것을 후회했고 왕자로서 왕위를 포기하고 밖으로 떠돈 나 자신을 저주했다.”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아련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후후후, 어서 꺼지라고? 하하하! 무상 땡중아, 엉터리 장 도사야 이제 훌훌 털고 저승길로 가시오. 우리보다 저 어린 놈이 세상사는 법을 더 잘 아는구료.”

  시타르는 남은 국물을 단숨에 들이켠 다음 벌떡 일어났다.

  “따라와라!”

  바람을 일으키며 휑하니 나가는 시타르의 행동에 송현은 의아해하면서도 부리나케 쫓아갔다. 그는 보름 전 소동이 일어났던 자하원 후원의 뒤뜰에 뒷짐을 지고 섰다.

  “왜 무공을 익히려는 건지, 왜 무극무해에 매달리는지 묻지 않겠다. 단......”

  시타르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운 다음 송현과 자신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런 다음 내력을 끌어 올리자 금의위에서 보여 주었던 그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팔이 길어지고 손톱이 비수처럼 길어지면서 등이 굽어진 괴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고해편을 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고해편 뒤에 있는 양생편과 무해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시타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깨달은 송현도 진지해졌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고해편까지는 인체를 닦는 법이니 그대로 산다면 평생 무병장수하며 보통 사람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선을 넘는다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포기해야 한다.”

  잠시 바닥에 그어진 선을 바라본 송현은 시타르와의 거리가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 만 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도와주시렵니까?”

  시타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송현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선을 넘어 시타르에게 무릎 꿇었다.

  “애초에 평범하게 살기는 그른 놈입니다. 제 별명이 뭡니까? 소마(小魔)이지 않습니까?”

  “웃지 마라! 정들겠다.”

  정작 말을 한 자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 시타르는 후원의 문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 짓도 안 할 테니 걱정 말고 나와라!”

  시타르가 나뭇가지를 버리며 소리치자 문 뒤에서 세 교위가 겸연쩍은 얼굴로 나타났다.

  “아니, 그대들이 어찌 여기에?”

  송현이 깜짝 놀라 하자 시타르가 한심하다는 듯이 주절거렸다.

  “멍청한 녀석. 네놈이 걱정되어 지켜보고 있었을 거다. 행여 내가 또 네 녀석의 목이라도 칠까 봐. 아니야?”

  “흠흠!”

  속내를 들키자 세 교위는 엉뚱한 곳을 보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

  “네가 부럽구나. 참으로 좋은 친구들을 두었어!”

  시타르가 부러워하자 송현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늘 투덜대고 급한 성격이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막여위 교위, 키 큰 사람이 싱겁다고 늘 허둥대는 양명, 그리고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고뇌하는 여린 영혼의 소유자 영호인. 이들이 오늘따라 아주 크게 보였다.

  “모두 고마워요!”

  송현의 목소리가 잠겨 들자 세 교위는 더욱 크게 헛기침을 하였다.

  “흥! 학사님의 모든 비리를 알고 있는 저를 빼놓고 이런 자리를 만들다니 서운합니다. 제가 입을 열면...... 읍! 읍!”

  여전히 관복이 커서 어색한 왕백이 송현의 손에 입이 막히자 발버둥을 쳤다.

  “하하하, 알았다 요 녀석아. 네놈은 나와 평생 함께 해야 할 팔자니라. 됐느냐?”

  열두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궁에 들어 온 후 십 년 동안 늘 외롭다고 생각했던 송현은 자신이 누구보다 부유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다란 젓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이자 왕백의 왕방울만한 눈이 젓가락을 쫓아다녔다.

  “어르신! 밥도 드시고 반찬을 드셔야죠!”

  딱!

  “악!”

  겁 없이 항의한 대가로 왕백은 이마에 커다란 혹을 달았다. 이마를 감싸고 고통에 힘겨워 할 때 송현이 혀를 차며 접시에 음식을 더 내놓았다.

  “어린애하고 음식 가지고 다툼을 하시다니, 이럴 때 보면 정말이지 왕족 출신이시라는 게 좀 의심스럽습니다.”

  송현이 혀를 차자 시타르가 밥풀이 튀도록 역정을 냈다.

  “이놈들아! 네 녀석들은  앞날이 창창하니 수많은 음식을 먹겠지만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당연히 맛난 것이 있으면 나에게 양보해야지.”

  “우쒸,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왕백이 꽤 분했던지 양 볼이 부풀어 올라 투덜거리자 시타르의 숟가락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

  “헉! 아닙니다. 이것도 드셔보시고 저것도 드셔 보십시오. 정력에 아주 좋답니다.”

  “씁, 그래야지!”

  두 사람이 아옹다옹하며 다투는 모습에 송현은 모처럼 즐거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하원에서 아예 송현의 거처로 자리를 옮긴 시타르 덕분에 매일 아침이 북적거렸다. 가족을 잃고 난 후 오랜만에 느껴 보는 안락함이었다.

  “송 학사! 안에 있소?”

  이런 이른 시각에 찾아올 손님이 뻔하기에 송현은 확인할 필요도 없이 문을 열었다. 언제 왔는지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을 길게 만들고 온 이는 영호인이었다.

  어깨 위로 쌓인 눈을 털어 내고 안으로 들어서다 시타르와 눈을 마주치자 영호인은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아직은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 시각에 웬일이오?”

  젓가락 다툼을 하던 왕백과 시타르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는 체를 했다.

  “흠흠, 다름이 아니라 오늘부터는 금의위에 매일 등청을 해 줘야 해서 알려주려고 왔소.”

  “황궁에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거요?”

  송현이 걱정을 하자 영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황상께서 무림영웅대회를 개최하셨소.”

  “무림영웅대회?”

  모두가 영문을 몰라 목소리를 높이자 영호인은 관모를 벗어 땀에 젖은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소. 나라님 하시는 일을 내가 어찌 다 알겠소만 우리야 명이 내려오면 따라야지 별 수 있나. 오늘부터 꽤 바빠질 것이오. 금의위에 글재주 좋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부족하니 꼭 등청해야 하오.”

  몇 번이고 다짐을 받은 뒤에야 다시 눈밭으로 나간 영호인을 배웅하러 송현이 나가자 시타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오호라, 이것 봐라! 그렇지 않아도 실전이 필요했는데 대련 상대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온다 이거지?’

  시타르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어깨를 들썩였다.

  탁!

  “헉!”

  왕백이 고기볶음에 젓가락을 몰래 가져가다 시타르의 젓가락에 의해 저지되자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랬다.

  “다 보고 있느니라!”

  “아하하하, 저는 그 건너편에 있는 나물을 집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어색한 웃음으로 모면하려는 왕백에게 송현이 다그쳤다.

  “왕백아, 서둘러야겠다. 황궁에 긴한 일이 생겼다니 창대사로서 모른 척할 수 없구나.”

  “아직, 밥을 다 먹지 못했는데요?”

  “그깟 한 끼 건너뛰었다고 죽기라도 한다더냐? 어서 등청하자꾸나!”

  송현의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서던 왕백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고기볶음을 밥 위에 올려놓는 시타르를 보며 울상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타르는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승천문을 지나 금의위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북적거렸다. 송현과 왕백이 금의위의 창대사 편전으로 들어서자 많은 관리들이 송현을 찾았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람?”

  내직염국, 어선방, 의선방 등 전부 다른 보직의 관리들이 아침부터 여기에 왜 있는지 송현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잠시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서 송현은 ‘껄껄걸’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모두 송현이 거쳐온 각 부의 수장이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그의 덕택에 목숨과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모두 이번 무림영웅대회 때문에 골치라는 말이군요.”

  “역시 송학사이십니다.”

  다들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치켜세우자 송현은 포권을 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과찬이십니다. 자 그럼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대책을 세워 봅시다.”

  송현이 마다하지 않고 반기자 관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관리들은 귀를 기울였다.

  육부(六部)의 수많은 직책을 돌며 쌓은 그의 풍부한 실무 경험에 관리들은 혀를 내둘렀고 황족들의 취향과 고위대신들의 경향까지 파악하고 있는 풍부한 자료에 모두 입을 떡 벌리고 다물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니 큰 행사를 맡은 예부의 부시랑까지 송현에게 찾아와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서 조언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송현으로서는 일감이 늘어나 피곤하겠지만 금의위로서는 행사의 경비를 책임진 마당에 모든 주무를 금의위가 주도해 나감으로 인해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창대사 하나 잘 두어서 예년에 비해 업무가 훨씬 수월하구나.”

  “그렇사옵니다, 총교두!”

  총교두 임충이 금의위 실무편전에 들렀다가 북적거리는 육부의 관리들을 보며 만족스러워 했다.

  “하하하, 이거야 마치 예부가 이곳으로 옮겨 온 것 같아.”

  “예부의 부시랑이 실무를 보는 환관들을 이쪽으로 등청시키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들이 쉽게 통제할 수 있어서 일손을 많이 덜었습니다. 게다가 예년처럼 꼬장꼬장하거나 심술을 부리는 일도 없이 잘 협조해 주고 있습니다.”

  금의위 경력사 부차감 좌위령이 조목조목 설명하자 임충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튼 덕택에 위사들의 훈련에 차질이 없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무림 인사들의 면면이 보통이 아니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무기 소지를 금했다고는 하나 손과 발이며 온몸이 무기인 자들이 아닙니까? 영웅대회를 치르는 시합장소와 황족들의 자리와의 거리는 겨우 사 장여에 불과합니다.”

  좌위령이 안전에 대해서 걸고 넘어가자 임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찰원의 고수들이 그림자처럼 경호를 할 것이니 우리는 무림인들의 동태를 살피고 연무장과 황족들의 연회 자리만 경계를 철저하게 지키면 될 것이다.”

  임충이 명을 내리자 좌위령의 얼굴도 많이 펴졌다.

  “하기사, 이번 일을 주도하는 것이 사례감 왕유 대감이니 어련히 준비하였겠습니까?”

  “지금 뭐라고 했나?”

  임충은 영웅전의 총책임자가 사례감 왕유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좌위령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임충은 표정을 재빨리 바꾸고 말을 돌렸다.

  “아, 아닐세.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임충이 서둘러 자리를 뜨자 좌위령은 위사들을 더 많이 배치해 줄 것을 부탁하려고 얼른 뒤를 쫓아갔다.

  편전으로 급히 들어서던 왕백은 총교두 임충을 발견하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 뒤를 좌위령이 급히 쫓아가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자신도 급한 일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송현 학사님, 큰일 났습니다.”

  손님들의 배치에 여념이 없던 송현에게 왕백이 다가와 귀엣말을 건네자 서류를 넘기던 송현의 손이 멈췄다.

  “틀림없느냐?”

  송현이 재차 확인을 하자 왕백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례감 왕유라고?”

  송현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왕백이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태감 별채의 소환에게 탕후루(糖葫蘆)를 열 개나 주고 알아낸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사례감 왕유가 총교두와 송현 학사님이 행사를 주관하도록 직접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왕백은 누가 들을까 봐 초조해하며 목소리를 낮췄지만 송현은 상관없다는 듯이 그저 웃어 넘겼다.

  “이번에는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와병을 핑계로 이번 일에서 빠지자구요.”

  왕백이 안절부절못하고 송현은 다시 책장을 넘기며 참가하는 이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일을 계속했다.

  “왕백아, 왕백아!”

  “네, 송 학사님!”

  황한 얼굴로 기뻐하는 왕백에게 송현은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대번에 울 듯한 얼굴이 된 왕백을 보고 농담하듯이 털어놓았다.

  “욘석아, 피한다고 어디까지 피하겠느냐? 도망친다고 과연 어디로 숨겠느냐?”

  “하오면 어쩌시렵니까?”

  왕백이 울먹였지만 송현은 대답 없이 그저 묵묵히 명단을 적고 자리를 배정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니 왕백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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