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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50화 (완결) (250/250)

제250화

제250화

자욱하게 내려앉았던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내려앉았던 어둠이 걷히고 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밝은지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자욱한 어둠이 내려앉은 그곳에 뿌연 안개와 같은 입자로 이루어진 남자가 서 있다.

“여전히 그 망할, 분칠한 것 같은 얼굴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역천의 세상을 만들어 낸 그대에게 이 정도의 활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거늘.”

분칠을 한 것 이상으로 허여멀건 피부에 거뭇한 눈 밑을 한 저승사자였다.

그의 말에 천무린이 새하얀 이를 드러낸다.

한껏 비아냥거림을 담아서.

“거, 하늘에서 죽엽청 한 잔에 보기 좋은 안줏거리였겠네.”

“나쁘지 않았지.”

씰룩.

……이 양반이.

천무린의 비아냥거림을 저렇게 받아친다고.

“느낀 것이 있는가?”

“흥! 느낀 것이 있긴 개뿔. 애송이들이랑 어울리게 해 놓고 뭘 느꼈겠어? 더럽게 힘들기만 했지.”

투덜거리는 천무린의 모습에 저승사자가 처음으로 입가를 말아 올린다.

“뭐야. 웃는 거야, 지금?”

“후후후. 그대는 여전히 거짓말에 능하지 못하군.”

“뭐라는 거야.”

천무린이 자기 자신의 몸 상태를 보여 주면서 툴툴거렸다.

“이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고?”

살갗이 벗겨져 뼈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심각한 부상에다 온 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 단전은 당장이라도 깨질 듯했고, 온몸의 근육이 고통 어린 비명을 마구 질러 댔다.

이게 어떻게 정상인의 모습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저승사자가 천무린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그대의 표정에 쓰여 있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게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투덜거림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정작 천무린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고생했네. 소원이 있는가?”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뭐야? 이제 와서 무슨 소원? 그때 마도일통을 했으면 그걸로 됐을 텐데.”

“다시 한번 묻겠네. 소원이 있는가? 우화등선을 원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승천하여 그대의 심상 끝을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네. 혹은 다시 전생의 천마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엄청난 이야기다.

그만한 능력이 저승사자에게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누구나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갈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소원이라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천무린이다.

“애당초 내가 그딴 거에 관심 없는 거 잘 알면서 괜히 떠보는 거지? 그거 정말 악취미야.”

그 말에 저승사자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약관도 됐겠다. 귀찮은 일들도 다 끝났겠다. 술이나 마시면서 강호나 주유해야지.”

“그게 가능할까?”

“이거 왜 이래? 나 또 얼마나 굴리려고?”

“후후후.”

저승사자는 정말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띤다.

저승사자, 본인을 대하는 어느 누구도 이처럼 푸념을 하거나 불만을 내보이는 작자는 없었으니까.

“어휴, 나 피곤해, 우리 다음엔 만나지 말자. 절대로.”

심지어는 축객령까지.

그러나 저승사자는 도리어 좋았다.

“그리하게나.”

간단명료하다.

그 모습에 천무린이 혀를 차며 저승사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막상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면 저승사자의 멱살을 잡고 천마신권이라도 제대로 먹이려 했는데, 당최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왠지 당한 느낌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건데?”

천무린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는 일렁이는 검디검은, 불길하고도 음험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저승사자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갈천중의 흔적이다.

“인재(人災)의 죗값을 물어야겠지.”

“그 녀석에게도 죗값을 치러 줄 기회를 주게? 난 반댄데.”

회개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회개라는 게 가능했다면 애당초 전혼대법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저지르진 않았을 테니까.

“그것은 위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내 생각도 그대와 같다.”

“그런가.”

“말이 길어졌군. 어느새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많군. 이번 생에서 그대는 제법 행복하겠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한 마디 더 하려는 찰나.

“잘 지내시게. 친우여. 고마웠네. 부디 남은 생에는 그대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게나.”

번쩍.

* * *

“끄응…….”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이럴까. 온몸이 삐거덕거린다.

끔뻑, 끔뻑.

눈을 겨우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두 여인의 얼굴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두 여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천무린의 양옆에서 하염없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 눈떴어?”

“무, 무린아!”

와락.

설화린과 당지혜의 두 눈이 급격히 커진다. 동시에 두 사람은 천무린의 품 안에 안겨 들어온다.

달달한 꽃향기와 함께 이어진 것은.

덥석.

……자신들의 몸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천무린에게는 이조차도 버거웠다.

“끄아아아아! 자, 잠시만! 잠시……!”

그 모습에 두 여인이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졸지에 두 여인이 천하제일인의 목숨을 앗아 갈 뻔했다.

“막타 치려고 기다린 것도 아니고…….”

천무린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아 냈다. 그만큼 아팠다는 소리다.

“그나저나 다들 왜 이러고 있어요?”

사천무관으로 보이는 낯익은 건물 천장과 함께 상체를 세운 천무린의 주변으로 보이는 이들.

무림맹주 독고황을 비롯해 천성검협 하후성, 사천무관주 당백진, 산동무관주 남궁도, 섬서무관주 청강.

북해빙궁주 설종량과 태양천자 남선, 그리고 위사검과 신준건, 이검과 이용, 이호 형제까지 천무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악교운과 담진, 배단아에 이어 송무를 비롯한 사천무관 생도들은 물론이거니와 섬서무관과 산동무관의 생도들도 일부 보였다.

사실상 정마대전의 모든 주역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거, 보니까 나보다 더 험한 꼴을 많이 겪은 것 같은데.”

천무린의 말대로 최소 경상(輕傷), 크게는 중상(重傷)을 입어서 심각한 상태의 이들도 다수 보였다.

“천하제일인의 탄생을 모두가 축하해 주러 온 것 아니겠는가.”

대표자로 나선 독고황이 천무린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뭘 또 그런 축하까지. 또 얼마나 날 굴려 먹으려고.”

“벌써 눈치챘는가. 얼마나 굴려 먹을지?”

“……그새 능구렁이가 되셨네, 우리 맹주님이.”

“포장해서 세대교체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겠는가.”

“난 그런 꼴 못 봐요. 아직 창창하신 분들이 유유자적하는 거!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 제일 열심히 굴려 버릴 거야.”

“……끔찍하군.”

독고황의 말처럼 당백진과 남궁도, 청강진인 세 사람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아무튼.”

천무린이 고갤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 하나하나와 시선을 마주한다.

온몸을 적신 핏자국을 채 지우지도 못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아마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최후의 최후까지 승부가 난 것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으리라.

나아가 눈앞의 이들은 강약을 떠나 정파 무림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었다.

“고생했어요. 모두.”

천무린이 빙긋 웃으며 꺼내는 말.

정말로 정마대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좀 쉬자고요. 서로 들들 볶는 것도 그만하고. 먼저 간 사람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혜공을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 천무린의 말에 모두들 숙연해진다. 그 모습에 천무린이 고갤 젓는다.

“우울해지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살 사람은 살아야지. 슬퍼하는 건 오늘까지로 하고.”

그러면서 천무린은 독고황을 비롯한 삼대 무관주를 쭉 바라본다.

“삼대 무관으로 나눌 게 뭐가 있어요? 지역감정만 조장할 뿐이지. 정파 무림은 정파 무림 하나지 안 그래요, 무림맹주님? 그리고 우리 삼대 무관주님들?”

그 말에 모두의 고개가 슬며시 끄덕여진다.

“새로운 시대. 그거 한번 우리가 만들어 봐요. ……아유, 오글거려.”

마지막에 혼자 진저리를 치는 천무린의 반응에 모두가 미소를 띠었다.

“하여간! 멋있는 척은 혼자 다한다니까!”

“누가 아니래! 오늘만은 봐준다.”

익숙한 생도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미소에 이은 박장대소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정마대전이라는 대격전은 드디어 끝이 났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 * *

이십 년 후.

“더 빨리!”

“후욱! 후욱!”

수많은 아이들이 똘똘 뭉쳐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좌로 굴러!”

“으아아아아!”

“우로 굴러!”

“으갸갸갸가!”

먼지투성이에다 입에 모래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서운 교관들의 일갈에 생도들은 정신없이 구르고 또 굴렀다.

그 모습을 세 장년인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월이 무색하군요.”

서글서글한 얼굴에 담담한 말투가 인상적인 장년인이 흐뭇한 얼굴로 생도들의 모습을 훑었다. 그는 다름 아닌, 한때 검귀라고 불리던 담진이었다.

무려 이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삼대 무관이 하나로 통합된 ‘백도무관(白道武關)’의 장로직을 맡고 있다.

동시에 그의 옆에서 부인이자 그를 돕고 있는 여인이 미소를 띠었다.

배단아였다. 그녀 역시 장로직을 맡아 악교운을 도와서 담진과 함께 백도무관을 이끄는 주축이었다.

“먼저 떠나신 맹주님과 관주님들께서 고생 많이 하고 가셨죠. 뭐.”

그녀의 말마따나 독고황, 당백진과 청강, 남궁도는 백도무관의 창설에 온 힘을 기울였고, 차례로 1대부터 4대 관주를 역임했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었는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남궁도가 관주를 맡아 달라고 요청한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그렇죠, 악 관주님?”

악교운이었다.

“두 장로께서 도와주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힘들었겠지.”

세 사람의 넋두리가 끝이 보일 무렵,

똑- 똑-!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고윤이 고개를 숙이고 정돈된 걸음으로 들어온다.

“관주님.”

“말하게.”

“다음 해에 들어올 후보생 명단입니다.”

“특이한 인물들이 눈에 보이던가?”

“그게 저어…….”

고윤이 우물쭈물하자, 악교운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한다.

“요주의 인물이라고 표시하여 적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요주의 인물?”

촤락-!

악교운이 명단을 넘기는 순간, 눈에 띄는 이름.

“천연화, 천화운.”

피식.

“……천 씨라. 그 녀석의 자식들인가.”

악교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전 중원 무림을 통틀어 천씨 성을 쓰는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비고란을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지원 내용이 있습니다.”

고윤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긴 악교운은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파하하하하하!”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악교운의 모습에 담진과 배단아가 궁금하다는 듯 명단을 받아서 살펴본다.

대체 뭐라고 써 있길래 야차라는 인간을 저리 박장대소를 하게 만든단 말인가…….

스윽.

“푸훗.”

“호호호호호! 정말 그 녀석답네요.”

보자마자 두 장로 역시 박장대소를 한다.

그 내용에는.

「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천가장주의 아들과 딸임. 혈연, 지연, 학연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최고의 대우를 해 주길 바람. 안 그럼 당가와 빙궁 아내들 등쌀에 나 거기 쳐들어가야 하니까 그런 일 없도록 엄히 경고함.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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