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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43화 (243/250)

제243화

제243화

옆구리와 허벅지로 날아드는 낫의 기괴망측한 공격은 검왕의 부드러움과 면면부절의 묘리만으로는 전부 쳐 내기 어려웠다.

피잇! 핏!

닿을 때마다 화상 자국처럼 그을린 상흔이 남아서 지혈을 해도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검왕 청강진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절대 고수,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내력이 다할 때까지 신체의 회복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어지간한 상처는 지혈만으로도 금세 수복이 될 정도로 신체를 회복할 수 있는데.

‘무량수불, 이래서 누구보다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평가하는 것이었나.’

패착이다.

조금 더 수세를 취하며 상대를 알아봤어야 했나. 사신의 기괴망측한 낫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자신에 비해 사신은 아직 멀쩡해 보인다.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청강은 저도 모르게 다시 침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천마신교의 군단도.

북해빙궁의 무인도.

아군으로 보이는 살수와 초절정의 고수들도.

이제는 모두 지쳐서 겨우겨우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겪어 본 적이 있었나.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제외하고는 이토록 살갗을 깊숙이 파고드는 한기 아래에서 싸워 본 적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

그리고 검왕, 본인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하얀 눈밭 위에 자욱하게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별 하나가 천천히 떨어진다. 보란 듯이 떨어지는 별빛을 보는 검왕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그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아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온다.

평생을 함께해 온 친우이자 동반자이며, 한때는 무의 정점을 다투는 경쟁자라고 여겼던.

자신의 둘도 없는 친우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떨어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는 검왕 청강진인이 멈춰 버린 자세로 멍하게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리도 먼저 가는가.

나를 두고 가는, 이 의리 없는 사람아.

어찌 같이 가지 않고 먼 길을 홀로 떠나는가.

대체 무엇이 그리 급하여 그리 먼저 간 겐가.

홀로 남겨진 세상을 나보고 어찌 살아가라고.

어찌 살아가라고…….

처억.

검왕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추욱 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크키키키키. 뭐냐. 포기한 건가? 조금 더 발악할 줄 알았더니 검왕이라는 이름도 모두 허명이었구나.”

“…….”

“그렇다면 이만 죽어라.”

스스슷!

허공을 유령처럼 날아드는 사신의 낫이 청강의 상흔에서 피 맛을 보고 시뻘겋게 변해 형형한 혈광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짝 다가가 사신의 낫이 베어 가르려는 그 순간에도 검왕의 두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친우여, 그리고 대사여, 무량수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게.”

검왕 청강진인은 전에 했던 혜공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 아미타불, 청강진인. 기억나십니까? 」

청강이 다급히 북해로 달려가기 전에 혜공이 남긴 이야기가 떠오른다.

「 전에 사천무관과 녹림의 결전에서 우리는 무엇이 그리 겁이 났을까요? 」

「 ……무량수불, 그야 섬서에 여력이 없었지 않았습……니까? 」

「 아니요. 두려웠던 겝니다. 진인.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혹시나 이 한 번으로 와르르 무너질까 노심초사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나더이다. 악교운 시주가 남긴 이야기가 폐부를 찌르고 심장까지 파고들어 이 불초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미타불. 」

「 ……. 」

「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털어 내지 않고서는 사천과 마주하지 말라고 하였던 악교운 시주의 그 말에 이제는 당당히 나서려고 하니 청강진인, 아니, 검왕께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나서십시오. 당신이 가는 길이 곧 섬서무관의 길이자 방향일지니. 」

「 ……같이 나아가시지요. 대사. 」

「 진인께서 나아가시면 제가 뒷받침을 하겠습니다. 아미타불. 그러니 뒤는 걱정 말고 나아가시지요. 」

중원 무림의 거파라고 불리는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이었던 두 사람이 섬서무관의 공동 관주라는 이름으로 함께 일궈 낸 지난날이 검왕의 눈앞에 마치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가 자신을 대신하여 정파 무림을 지키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무량수불. 그렇게 나아가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조금만 기다리시게. 내 금방 따라가겠네.”

살아생전에 단 한 번도 격식을 차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소림과 무당, 무당과 소림이라는 거파의 주인이자 관주라는 직책.

그리고 나아가 왕이라는 별호를 각각 단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친우였지만, 단 한 번도 편하게 말을 놓아 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제는 다르다.

이제야 목 놓아 외칠 수 있었다.

“허허허허.”

친우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해 온 혜공에게 편하게 말을 하면서.

“크키키키키! 미친놈! 이제 그만 죽어라!”

파앗!

스산한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낫을 바라보던 검왕의 검이 서서히 궤적을 그리며 올라간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혈광을 빛내는 낫이 당장이라도 검왕의 목을 베어 가르고 그 피로 흠뻑 목욕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이건만.

‘왜 느리게…….’

사신의 두 눈이 서서히 커졌다.

분명 자신이 더욱 빠르게 나아가 빈틈을 노렸다. 그런 와중에 검왕이 보여 주는 검의 궤적은 느렸다.

그것도 그냥 느린 것이 아니라 더럽게 느렸다.

검의 궤적이 천천히 원을 그려 낸다.

허공에 그려진 원이 완연한 형태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할 즈음에도 도달하지 못한 낫의 움직임은 마치 혼자만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태극이란.

무릇 음과 양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일원(一元)이라는 근원이 반복되는 것.

무당의 모든 무학을 가져다 대도 이 태극의 진정함을 담은 태극혜검을 표현할 수는 없으리.

검왕의 검 끝이 그런 태극의 정수를 담아 음과 양의 조화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당의 정수와는 또 다른 묘리가 담겨 있다.

검왕은 부드러운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추구하는 바는 패도적이고 직선적인 것이었다.

그런 이가 태극의 묘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무학의 정수를 깎아먹는 것.

그래서 검왕은 자신만의 태극을 그려 낸다.

꾸구국!

사신의 온몸이 자신만 다른 세상에 갇힌 듯 강한 압력에 짓눌린다.

낫은 요지부동이고, 저 혼자만 발걸음 하나 뗄 수 없을 정도인 세상에 놓여 있는 듯했다.

그리고 사신의 두 눈이 천천히 커졌다.

다가온다.

검왕의 검이 느릿하고 느릿하게 서서히 사신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온다.

멈춰 버린 그 공간 속에서 어찌하여!

발악을 하던 사신은 전심전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서거걱.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검왕의 검을 향해 뻗었던 손이 그대로 잘려 나간다. 허무하리만치 자신의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느릿하게 느끼는 것만큼 끔찍한 고통은 없으리라.

‘……미, 미친놈!’

사신은 그제야 느꼈다. 검왕의 두 눈에서 시뻘건 피눈물이 흐른다.

친우를 잃은 슬픔, 자신과 평생을 함께해 온 이를 잃은 슬픔을 이 검 끝에 담아내고 있는 그의 눈과 온몸이 마치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선천지기까지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을 사신은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푸화아아악!

사신의 목덜미가 휑해진다.

동시에 피분수가 그대로 솟구치며 검왕 청강진인의 온몸을 적셨다.

털썩.

한참 동안 피를 뿌려 대던 사신의 시체가 새하얗고 소복하게 쌓인 눈밭 위로 무너지고 나서야 청강진인의 흐려졌던 눈빛이 돌아왔다.

“…….”

전심전력.

모든 것을 끄집어 낸 청강진인이다.

제 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선천지기를 끌어낸 탓에 청강진인의 생명력 역시 상당 부분 소실되었다. 선천지기를 끌어다 쓴 대가는 실로 혹독했다.

“쿨럭! 쿨럭!”

몇 번이나 핏물을 뱉어 내고 나서야 청강은 겨우 바로 설 수 있었다. 그러고는 고갤 돌려 이 전장을 훑었다.

여전히 천마신교의 무리가 그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황망한 눈길로 이곳을 바라보던 이들에게 자비심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친우여, 내가 가는 길이 자네가 가는 길이라 했는가.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쓸쓸하지 않도록 많은 이들을 동반자로 보내 주겠네.”

저벅, 저벅.

혜공이 가는 길이 부디 외롭지 않도록.

후에 자신이 혜공에게 갔을 때 잔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청강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검객과 그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권사.

파천대구검(破天大九劍).

단 아홉 가지의 초식만으로 정파 무림의 일인자가 된 독고황은 파천검황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그런 초식을 무려 일곱이나 겪고도 패왕에게는 수많은 생채기와 검흔만 남았을 뿐, 치명상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무위를 전부 회복하진 못했군.”

그에 비해 패왕의 패왕진천권에 몇 번이나 당한 파천검황의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무려 십여 년이다.

패왕에게 승기를 잡았던 시절 이후, 병마와 싸우며 제대로 된 무위를 보이지 못했던 독고황이다. 그런 그와 반대로 지난날 파천검황에게 패배한 이후 절치부심하며 부단히 노력해 왔던 패왕이었기에 이와 같은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후후, 몸이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는군.”

그리고 두 사람 역시 자욱하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빛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먼저 간 친우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게 느껴지는군.”

“거인(巨人)이 갔는가?”

독고황의 탄식에 패왕 역시 잠깐이나마 눈을 감는 것으로 예를 다했다.

평생 동안 검을 잡고,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를 살렸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기로에 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고.

때로는 어느 누구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아갈 힘을 얻었다.

누군가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고.

누군가는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느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별이 사라지는 동안에 느끼는 독고황과 패왕의 감정은 일맥상통했다.

“부디 우리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는 하나.”

“되돌아보면 같은 길을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네.”

고개를 끄덕거린 두 사람은 다시 제각각 검과 주먹을 든다.

“모든 것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주저 없이 나아가서 한평생 일궈 낸 삶에 대해 노래해 보세.”

파앗! 타다닥!

땅을 박찬 두 사람의 주먹과 검이 다시 맞부딪친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아아아아앙!

강하고 약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무위를 떠나 두 사람은 평생을 바쳐 가꿔 온 무위를 마음껏 펼쳐 냈다. 그 결과가 비록 죽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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