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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40화 (240/250)

제240화

제240화

“방주!”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개방의 장로급 거지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발발한 정마대전으로 인해 쏟아지는 정보의 늪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개방의 방주 협견이 이를 앙물었다.

저토록 헐레벌떡 들어온 이들치고 긍정적인 정보를 물어다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무슨 일이냐?”

“그게……!”

“답답하게 속 태우지 말고, 어서 거두절미하고 말해.”

“북해에는 사신과 구유비마가! 남해에는 패왕이! 장강과 사천 주변에서는 마황…… 아니, 천마와 검마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결국 올 게 왔군.”

수룡왕과 벽력왕이 사천 언저리에서 부딪쳤고 움직였으니.

“……수룡왕은 만독암제에게 무너졌고, 벽력왕은 멸마에게 무너졌으니 그들을 상대하려면…….”

등장한 이들이 얼마나 강한 무인인지 협견은 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그만 사색이 되었다.

“무림맹주님께 연통을 넣고…… 혜공대사와 청강진인, 남궁 대협, 그리고 당백진 대협에게…….”

“그럴 필요 없소!”

콰앙!

개방의 방주실을 박차고 들어오는 이들은 개방의 거지 차림이 아니었다.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이들의 모습을 본 협견의 표정이 아리송해진다.

“……쥐소굴주?”

그랬다. 쥐소굴이라는 암흑가에서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개방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일컬리는 쥐소굴주 공야찬과 조수강이었다.

“남해에는 무림맹주가, 북해에는 검왕이, 사천과 장강에는 창천검존과 주군이! 이미 모두 적들을 맞이하고 있소이다.”

“…….”

개방보다 더 빠른 정보력으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는 협견의 자존심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탁궁.”

“음?”

“탁궁 생도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주었소이다. 개방의 사결개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개방의 거지, 그것도 젊고 촉망받는 탁궁의 이름이 나오자 협견의 두 눈이 가느다랗게 떠진다.

“……그렇소만.”

“개방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허흐흠, 도움이 되었다니 참으로 다행이오.”

공야찬과 조수강은 개방의 도움 없이는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아 말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거두절미하고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낙양의 모든 이들을 풀었고, 낭인들의 정보망까지 이용하고 있지만, 개방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공야찬의 다급한 말에 협견은 입을 다물고, 그들의 표정을 바라봤다.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이들.

그리고 힘을 합치자고 하는 공야찬과 조수강의 말에 협견은 생각에 잠겼다.

이미 여덟 고수가 맞서고 있다. 대체 무엇을 더 도와 달란 말인가.

‘……뭔가 놓친 것이 있나? 놓친 것이……. 아!’

“설마 폭산혈산(爆散血山)을 찾는 것이오?”

천마신교의 다섯 장로를 비롯해 부교주 갈천중까지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단 한 사람.

다름 아닌 사장로 폭산혈산이었다.

“그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소이다.”

“…….”

폭산혈산의 행적을 찾아내지 못하면 여덟 고수의 전투의 균형도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그의 행방을 서둘러 알아내야 했다.

“……혜공대사께 연통을 넣으시오. 개방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하겠소이다.”

“감사합니다.”

공야찬과 협견은 서로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비록 정마대전의 승패는 절대 고수의 승부에 따라 결정이 날 테지만.

내부도 이토록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공동의 적을 맞이하여 협력하였고, 이는 곧 중원 무림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될 터였다.

* * *

“나무아미타불.”

혜공대사는 두 눈을 반개한 채 뒤에 선 생도들을 쭉 훑었다.

창천검존 남궁도와 검왕 청강진인, 그리고 만독암제 당백진이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는 동안, 이제 남은 이는 혜공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사천, 섬서, 산동까지 삼대 무관의 남은 생도들이 쭉 도열해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 결연한 의지 등이 뒤섞인 감정을 품고 있는 생도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혜공이 불호를 외웠다.

“나무아미타불.”

사방에서 벌이지고 있는 혈전으로 인해 혜공은 그 격전에 참여하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살기와 투기에 몸이 저릿저릿해질 정도였다.

“결국 끝을 보아야 하는 건가.”

저벅, 저벅.

불호를 외고 있는 그의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온다.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저릿해지는 마기의 기운에 혜공이 침음을 흘렸다.

“……시주가 폭산혈산이오? 듣던 대로 사장로라 불릴 만하오.”

그 말에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하얀 이를 드러내는 사람.

그 모습을 보자마자 혜공의 두 눈이 놀라서 커졌다.

‘……여인?’

호리호리한 데다 머리가 치렁치렁했지만 느껴지는 특유의 마기에 폭산혈산이라고 어림짐작했던 혜공의 두 눈이 흔들렸다.

분칠한 듯 허여멀건 얼굴에 입가가 빨간 여인이었다.

“호호호호호, 당신이 권왕?”

“……나무아미타불. 그렇소만.”

“잘 찾아왔네. 호호호호.”

콧소리가 섞인 웃음으로 여인이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자, 혜공은 다시 한번 불호를 외울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치장을 한 그녀의 얼굴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주 아름다웠다.

소림의 방장이었던 혜공은 여인 때문에 마음이 이토록 흔들린 적이 없었거늘 그녀를 보자마자 면벽수련을 통해 쌓아 온 그간의 노력이 일시에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호호호! 스니임, 나 좀 봐 봐요. 왜 그렇게 흔들리는 표정을 하고 있어요?”

“갈……! 나무아미타불!”

귀를 파고드는 그녀의 교성을 단박에 지워 버리는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린 혜공은 침음을 흘리며 눈썹을 역팔자로 꺾었다.

“시주께서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시오!”

“……하아아아, 아쉽네. 스님까지 홀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쉽지 않아. 폭산혈산은 쉽던데.”

그녀의 말에 혜공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폭산혈산이라고?

“지금 폭산혈산이라고 하셨소, 시주?”

“맞아. 그 폭산혈산. 천마신교의 네 번째 장로.”

“그를 당신이……?”

“이 미모에 반해서 아주 정신을 못 차리던데. 호호호호.”

콧소리를 간드러지게 내는 그녀의 말에 혜공은 덜덜 떨리는 턱을 애써 다잡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신교의 사장로, 폭산혈산.

패왕 다음으로 패도적이고 거침이 없기로 소문난 작자다.

어느 호사가가 산 위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패악스럽고 무도한 그의 무공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경악한 나머지 붙여 준 별호였다.

그런 절대 고수를 이 가냘픈 여인이…….

“당신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오?”

“……아아, 재미없어. 내 정체를 꼬치꼬치 묻다니 너무 딱딱하고 고지식한 스님이라니까.”

그런 그녀가 머리를 쓸어 올리자, 혜공의 뒤에 서 있던 생도들의 목젖이 꼴깍 하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미모에 홀려 버린 이들이 다수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마주하던 혜공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폭산혈산은 어떻게 되었소?”

“호호호호, 폭산혈산. 그 아저씨 너무 날 덮치려고 하길래 짜증 나서 그냥 죽여 버렸지. 생긴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어찌나 멧돼지처럼 달려들던지.”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는 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 생도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를 따라 함께 화를 내는 것이었다.

“갈! 생도들은 현혹되지 마라!”

파마의 기운이 담긴 사자후(獅子吼)가 다시 한번 터져 나오더니 현혹된 생도들의 정신을 깨부쉈다.

그런 후 혜공은 반장(半掌)을 한 채 여인을 바라본다.

위험하다.

폭산혈산보다 더 위험하다.

그녀를 본 순간, 혜공마저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존재 자체가 요녀이자 요마(妖魔)임이 분명했다.

“호호호. 제법이야, 제법. 나만 보면 하나같이 달려들고 싶어 하던데. 어떻게든 덮치려고.”

“……나무아미타불.”

“상으로 이름을 말해 줄게. 난 말이야.”

그녀의 꽃잎 같은, 붉디붉은 입술이 서서히 열린다.

“홍이야.”

* * *

“……폭산혈산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이오?”

“폭산혈산이 천마신교에서 나왔다는 정황 보고에 따라 움직여 보았습니다. 절대 고수들의 이목을 피해 따로 정파 무림에 쳐들어올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계속 말해 보시오.”

공야찬과 조수강, 그리고 협견이 심각한 표정으로 방주실에 앉아서 정보를 막 물어온 장로급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런데 폭산혈산이 머물렀다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산서성.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단숨에 몰아쳐 내려올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서성……. 지척까지 도달했는데, 파악하지 못했다니.”

“아무래도 산등성이를 타고 움직여서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폭산혈산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오?”

“그게 저어…….”

개방의 장로 하나가 말을 길게 늘어뜨리자, 협견은 답답하다는 듯 다탁을 두드렸다.

“빨리 말하지 못하겠는가!”

“……죽었습니다.”

“……!”

폭산혈산이 죽었다니.

천마신교의 사장로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절대 고수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포, 폭산혈산이 죽어?”

“예. 죽었습니다…….”

“누가! 누가 죽였단 말인가.”

“……그것이.”

“어허!”

“여,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인?

협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현 중원 무림의 여고수 중에 절대 고수는 없었다. 있다고 한들 초절정이라는 경지에 이른 이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설마?”

공야찬과 조수강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가 장로를 바라본 공야찬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죽은 사람들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었소?”

“아! 예.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손톱에 사분오열이 되어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구음백골조(九蔭白骨爪)!”

운남에서 천무린의 눈을 피해 달아났던.

규화보전과 구음백골조로 설화린과 당지혜, 그리고 악교운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그녀가 정마대전이 벌어지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불과 일 년하고도 더 지난 이 시점에.

누구보다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

그것도 미완성이었던 규화보전(葵花寶典)과 구음백골조(九蔭白骨爪)를 완성시켜 그 누구보다 강한 무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정마대전의 한가운데에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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