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제236화
천무린은 악교운의 혈맥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어떻게 해서든 마기를 몰아내기 위해서.
그런데.
“왜 안 되는 건데! X발!”
흡성대법으로 흡수했던 무형노괴의 기운마저도 마기였다. 그런데 왜 천마신공의 마기는 흡수가 안 된단 말인가.
침투된 천마신공의 마기가 전혀 흡수되지가 않았다.
“……소용없다. 그만두어라.”
“헛소리하지 마요!”
천무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마기의 기운은 더욱더 악교운을 끈적하게 잠식해 갈 뿐이었다.
목젖까지 도달한 마기로 인해 얼굴을 제외한 모든 몸이 천마신공의 기운에 잠식되었다.
“……젠장! 젠장!”
대체 왜!
소림의 역근세수경을 발휘해 천마신공의 기운을 몰아내려 애썼다.
주춤거리는 천마신공의 기운.
“돼, 됐……!”
하지만 언제 주춤거렸냐는 듯 다시 강성해지더니 악교운을 더욱 강하게 잠식하려 움직인다. 감히 자신을 건드렸냐는 듯.
그 모습에 천무린의 표정이 창백해지며 이를 악물었다.
무공이 제아무리 고강하면 뭐하는가.
누구보다 강하면 뭐하는가.
눈앞에 죽어 가는 제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하는데.
천무린은 고개를 천천히 떨군다.
분명 지키겠다고.
이번만큼은 내 사람 누구 하나도 절대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눈앞에서 무기력하게 죽어 간다.
다름 아닌 자신의 방심으로 인해.
그때.
천무린의 뺨에 손을 올리는 차갑고 서늘한 손길.
“……울지 말거라.”
담담하고도 나직한 목소리였다.
“사람은 다 죽는 법이다. 그리고 이 죽음조차 내게는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그러면서 그의 손끝이 천무린의 뺨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닦아 준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내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 같구나.”
담담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되레 처연하고 애달팠다. 고개를 떨군 천무린이 입을 바르르 떨었다.
“……마세요.”
악교운이 고개를 떨군 천무린을 바라본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죽긴 누가 죽어요? 누가 죽는대?”
이를 꽉 깨물면서 두 눈이 충혈된 천무린의 뺨을 타고 흐르는 이슬.
태어나 처음으로 흘리는 그의 이슬이 턱을 타고 악교운의 가슴팍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때.
「 살인을 하지 못하는 금살(禁殺)을 각인시켜 놓겠다. 그리하여 네가 역천의 세상을 행하지 않을 마음을 먹게 되었을 때, 비로소 네가 가진 마(魔)의 무공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
천무린의 귓가에 들려오는 천둥과도 같은 소리. 자신이 환생하기 전에 들었던 소리가 아닌가.
「 이제야 비로소 그대가 그 뜻을 이해한 것 같으니 약속대로 해방시켜 주겠노라. 」
그 목소리에 천무린의 고개가 서서히 들린다.
「 그대에게 금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지니 그대의 뜻대로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도록. 」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그리고 거짓말처럼 해방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그의 손끝으로 악교운을 잠식하고 있던 천마신공의 기운이 아주 천천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
천무린의 손끝에 천마신공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하자, 악교운의 전신을 잠식하려던 기운이 딱 멈춰 섰다.
그리고 천마신공의 기운은 천무린의 손끝을 타고 그의 단전에 모이기 시작했다. 마치 잃었던 제 주인을 찾아서 반가운 듯.
“흐으읍.”
악교운의 입가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그의 표정은 한결 나아 보였다. 파리하던 안색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기현상이 실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천마신공의 기운이 침투를 멈추고 천무린에게로 흡수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무린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죠.”
천무린이 장포 자락으로 자신의 뺨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 낸다.
“저승사자가 약속 한번은 아주 기가 막히게 지켰다는 것을.”
그러면서 천무린은 손을 뻗어 악교운의 전신을 감싸던 천마신공의 기운을 능숙하게 흡수했다.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더없이 친숙하고 반가운 기운이다.
그리고 다시없을 강대하고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기운은 충만했고, 태산을 대번에 무너뜨리고 바다를 홍해처럼 가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무린의 전신에 드러나는 기운이 강성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악교운은 거친 호흡을 고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너란 녀석은.”
“쉬고 계세요.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천무린의 시선이 강 한가운데 떠 있는 배를 바라봤다.
“쪽팔리게 너희들 때문에 같잖은 눈물을 보였잖아.”
우우우웅!
오른손에 피어오르는 새까만 기운.
평생에 걸쳐 천마 천무린이 천무린일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은 천마신공의 기운과 천마신권이라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갈천중이 쏘아 낸 기운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운이었다.
갈천중의 기운이 음습하고도 불길한 기운이라면.
천무린의 기운은 더없이 시원스럽고 포악하며 창대한 기운이었다.
같은 천마신공임에도 불구하고 표출해 내는 기운이 이렇듯 달랐다.
그리고.
처억.
“받았다면 갚아 주는 게 도리지.”
천마신권의 압도적인 기운이 뭉쳐지자, 천무린은 갈천중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단숨에 날아갔다. 검디검은 염화(炎火)의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더니, 강 한가운데를 쩌억 하고 쪼개면서 날아갔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갈천중의 두 눈에 처음으로 경악의 빛이 어렸다.
“천마신공을…… 흡수했어?”
천마신공은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해 갈천중은 누구라도 손가락질을 할 짓을 범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어 낸 힘인데.
어떻게 저자가 쓴단 말인가.
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전혀 중요치 않다는 듯, 멸마 천무린은 단숨에 천마신공의 기운을 흡수하고 천마신권을 펼쳐 낸다.
기질이 다르고 형태가 다른.
갈천중과는 전혀 다른 천마신공의 기운이었지만.
압도적이고 패도적이며, 포악스러운 성질을 가진 이 기운은 중원 무림에서 단 하나밖에 없었다.
“……감히!”
갈천중은 오른손을 들어 음습하고도 불길한 기운을 한껏 뭉쳐서 천마신권을 다시금 펼쳐 냈다.
저자가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잔재주로 자신의 눈을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로 진정한 천마(天魔)이니라!”
갈천중, 그는 천마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로.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야 했다.
천마 갈천중이라는 이름으로.
후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장강을 쪼개면서 날아가던 두 기운이 강하게 충돌한다.
충돌한 기운의 여파로 하늘이 쪼개지더니 안 그래도 어두웠던 주위가 캄캄해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라는 듯.
천마신권의 두 기운이 충돌하자마자 그 소용돌이 속에서 두 인영이 검을 빼 들고 강하게 부딪친다.
콰가가가가가강!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강 한가운데 허공에서 두 검이 얽혔다.
“……제법입니다.”
“여유가 없어졌네. 아까처럼 실실 쪼개지, 왜?”
“어디까지 절 놀라게 할 속셈입니까.”
“내가 또 천마신교랑 깊은 인연이 있는 관계로 천마신교가 썩어 가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말이야.”
“……팔다리를 잘라 놓고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그런데 말이야.”
천무린의 입가가 비틀린다.
“내 사람을 건드려 놓고 멀쩡히 살기를 기대하지 마라.”
천무린의 온몸에서 터져 나오는 기운은.
고오오오오오오오.
천마(天魔) 천무린.
중원 무림을 주름잡고, 천하제일인으로 평가받던 천무린의 기운이 온몸에서 터져 나왔다.
위압적이고 패도적인 기운.
중원 무림 역사상 처음으로 마도일통을 꿈꾸며 나아갔던 절대자의 위엄.
그 모든 것이 천무린의 온몸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낀 갈천중의 두 눈이 가늘게 떠졌다.
“…….”
“그만 깝죽거리고 처맞을 시간이야.”
콰아아아아아앙!
천무린의 검 끝에서 피어오른 검디검은 기운이 단숨에 갈천중을 내리그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천마신권에 이어 가장 강력한 검공으로 널리 알려진 천마신검이었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천마신검을 막아 낸 갈천중의 신형이 그 기운을 전부 해소해 내지 못한 채 뒤로 튕겨 나가서 다른 배에 부딪혔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날아갔던 갈천중의 위치에서 쏘아진 기운이 안개를 헤치며 천무린의 코앞에 당도했다.
“흡!”
천무린은 급히 검을 들어 횡으로 천마신검을 펼쳐서 그 기운을 베어 가른다.
콰가가가가가가강!
말도 안 되는 두 기운이 맞부딪치자, 장강의 강물이 무섭게 소용돌이친다. 동시에 천마신검의 기운 중 일부가 뭉쳐 있던 배 서너 척을 베어 갈랐다.
콰가가가강!
두 사람의 격전의 여파로 주위의 배들이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천무린의 두 눈이 깊이 침잠한다.
갈천중이 뻗어 내는 기운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귀곡성이 장강 위에서 크게 울려 퍼진다. 갈천중이 기운을 뻗어 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귀곡성 때문에 이곳 전장에 있는 모두가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끄으으읍. 무, 무슨 소리가……!”
“괴, 괴로워…….”
“커억!”
대다수가 초절정 고수로 이루어진 일행은 내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귀를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심한 두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을 쳐야 했다.
심지어 몇몇은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해 냈다.
“제기X.”
“악 교관님을 보호해!”
“일단은 물러나야 해.”
“하, 하지만 무린이는……!”
일행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천무린을 바라봤다.
그들의 걱정과는 무관하게.
더없이 든든하고 듬직했다.
“……오히려 녀석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해 주자고.”
“여차하면 튀어 나갈 수 있게 우리도 준비하고 있으면 돼.”
“그러자고.”
전신(戰神).
천무린은 전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장강 위에서 천하를 오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천무린의 시선이 허공에 떠오르는 갈천중에게로 향했다.
“너, 이 새끼.”
“……후후후.”
“설마?”
“맞아요, 그 설마가. 안 그러면 내가 어떻게 천마신공을 펼치겠어요?”
그리 말하는 갈천중의 두 눈이 천무린에게 꽂혔다.
“멸마……. 아니, 천마 천무린.”
“…….”
“유구한 역사를 돌아봐도 천마신공을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거든요. 오로지 단 한 사람.”
씨익, 하고 웃으며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갈천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