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34화 (234/250)

제234화

제234화

교룡검 풍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수룡왕의 총애를 받아 장강수로채를 호령하던 그는 이제 외팔이 검사로 후방에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진천뢰라는 희대의 기형이기를 다루도록 명을 받았지만, 그는 당최 성이 차지 않았다. 수룡왕의 눈 밖에 난 이상, 그는 더 이상 수룡왕의 뒤를 이을 군주가 되진 못할 테니까.

이를 갈아붙이고 있는 교룡검 풍산에게 넌지시 말을 건 이는 다름 아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담담하고도 존대하는 이를 바라본 풍산이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천하의 교룡검 풍산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렇게 이를 갈아붙이며 배를 진두지휘할 필요가 없다고요. 기회의 장이니까요.”

흑포를 두른 사내, 그리고 그 옆에 선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두 사람을 본 풍산은 저도 모르게 잘게 떨었다.

‘……수룡왕은 왜?’

“그렇게 떨지 말고요. 우린 같이 손을 잡은 동. 맹. 군 아닙니까. 안 그래요?”

어깨를 토닥거리며 나지막이 말하는 사내의 모습에 풍산은 그렇다는 듯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따름이었다.

“……맞습니다.”

대체 수룡왕은 왜 이 작자와 손을 잡았단 말인가.

곁에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런 자들과.

곁눈질로 두 사람을 살핀 풍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검마 그리고…… 마황.’

천마신교의 부교주인 마황과 검마가 서 있었다.

‘대체 이 작자들이 왜 여기에…….’

“아아, 여전히 우리를 못 믿는 건가요? 수로채를 위해서 우리가 진천뢰까지 갖다 바쳤는데 말이죠.”

저벅저벅 걸어간 마황, 아니 이제는 천마신교의 주인이 된 갈천중이 주야장천 화력을 뽐내느라 아주 뜨끈뜨끈한 진천뢰를 툭툭 건드렸다.

“이걸 공수해 오느라고 얼마나 구슬땀을 흘렸는데 말이죠. 안 그래요? 이장로. ”

“……그렇습니다.”

“하여간.”

갈천중이 풍산을 바라보더니 하얀 이를 드러냈다.

“기회의 장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말한 대로 하니까 지금 저렇게 폭풍의 핵이 된 저 작자들이 저렇게 알아서 기어들어 왔죠. 제대로 된 반격 한번 못 한 수로채와 녹림채를 생각하면 이건 더할 나위 없이 큰 공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갈천중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풍산이 뭐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진천뢰 스무 문을 한꺼번에 사용했으면 사천무관 전체에 크나큰 피해를 줬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순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을 테니까.

하지만 진천뢰가 고작 다섯 문밖에 안 된다고 여긴 저들이 이곳까지 저돌적으로 달려온 것은 분명 방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을 정확히 예견한 갈천중의 말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요술을 부린 것인지 사특한 술법을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이 보여 주는 무위는 단순한 생도의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지금 죽여야 후환이 없겠죠.”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아아, 잠깐만요. 아직 말이 안 끝났어요.”

뭐가 그리 급하냐는 듯 마황 갈천중이 풍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룡왕과 벽력왕이 저 끝에 도달했을 텐데, 저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두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뜻일 테고.”

궁지에 몰린 사천무관의 일행을 바라본 갈천중이 어깨를 으쓱인다.

“조금만 기다리면 누가 이겼는지 결과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야 당연히…….”

“당연히 수룡왕과 벽력왕이 이겼을 거라고요? ……글쎄요.”

마황 갈천중이 이를 훤히 드러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정 짓진 말자고요. 그렇게 자꾸 단정 짓고 행동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예?”

풍산은 자신도 모르게 마황 갈천중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고 있었다. 잘게 떠는 몸은 물론이거니와 보여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된 채 위축되어 있었으니까.

“그따위밖에 행동을 못 하니까 사파 나부랭이 새끼들이 안 되는 거라고요. 알겠습니까, 풍산?”

그 말에 풍산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게졌지만,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대꾸하면.’

꿀꺽.

그대로 목이 달아날 테니까.

절로 마른침을 삼킨 풍산이 갈천중의 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멸마가 태풍의 핵이지만, 벽력왕을 이겨 낼 저력이 있는지. 이겼다면 얼마나 쉽게 이겼는지 파악해야죠. 그래야 다음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풍산이 어떤 표정을 짓든 마황 갈천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

그 말에 풍산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제아무리 멸마라고 불린 애송이가 뛰어나다고 한들.

어떻게 벽력왕을 이기겠는가.

그러나 그런 풍산의 생각을 처절히 박살 내는 순간이 금방 다가왔다.

독 안에 든 쥐 꼴이었던 일행에게 빠르게 다가가는 오십여 명의 인영들이 보였던 것이다.

게슴츠레 눈을 뜬 풍산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며, 멸마!”

분명히 멸마 천무린이다. 운남에서 봤던 그 천무린.

저 멀리서 풍산의 눈은 천무린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없어. 그 어떤 부상도 보이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천무린에겐 그 어떤 부상도 없었다.

대체.

대체 어떻게.

“푸흐하하하하하.”

경악한 풍산과 달리 전혀 다른 반응이 옆에서 터져 나왔다.

짝! 짝! 짝!

마황 갈천중이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박수까지 쳤다.

“멸마……! 멸마 천무린.”

천무린 이름까지 언급하며 웃음을 멈추지 않던 그는 눈가에 고인 이슬을 닦아 냈다.

“정말 대단하네. 대단하기 짝이 없어. 푸흐흐흐흐.”

풍산은 마황을 미친놈이라고 여겼다.

저 애송이가 무슨 수로 벽력왕이나 수룡왕을 꺾었는지 모르겠지만, 상처 하나 없이 누군가를 제압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인데 그게 뭐가 좋다는 건지.

그리고 풍산의 시야에 천무린의 모습이 정확히 들어왔다.

‘……헙.’

천무린 역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허, 다섯 문인 줄 알았더니 더 많네?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일세.”

배가 학익진(鶴翼陣) 형태로 강 위를 점거하고 있었고, 모든 진천뢰의 포문이 일행을 향해 있었다.

잠깐이라도 몸을 돌려 도망간다면 대번에 포격을 시작할 것이다.

저 정도 포격이면 천무린 본인은 문제없이 달아날 수 있겠지만, 일행까지 모두 책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그때.

스윽.

천무린의 시선이 한 곳에 꽂힌다.

“하! 어쩐지 기분이 더럽더라니.”

너였냐.

천무린의 시선이 꽂힌 곳에 선 세 사람.

스무 척의 배 중 가장 중앙에 위치한 배 위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본 천무린에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교룡검 풍산.

외팔이가 되어서 이곳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검마.”

삼이장로 검마였다. 여전히 싸가지 없어 보이네. 확 쥐어패고 싶게.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인물.

“하! 새끼.”

멀고 먼 거리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시선을 마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

그곳에서 천무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새끼는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그리고 보자마자 혼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고.

“뭘 좋다고 실실 쪼개고 있어. 뒈지게 패 버릴까 보다.”

천무린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일행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그러게. 지금 저게 보여?”

“……안 보여.”

“하여간 사람 새끼 아닌 놈이라니까.”

강 위는 안개 천지다. 물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교룡검 풍산이야 특수한 수공을 익혀서 안력까지 좋아져 천무린의 존재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반대쪽에 있는 사천무관의 일행은 안개로 자욱한 강 위에 배가 스무 척 있다는 정도밖에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천무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으니 일행으로서는 그저 당황스러울 수밖에.

아무튼.

천무린은 그런 일행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헛웃음을 지으며 마황 갈천중을 노려봤다.

“저 새끼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뭐 한 가지겠네.”

그러면서 천무린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뭐, 뭣……!”

“야, 야! 천무린! 어디 가!”

“미친놈아! 어디 가냐고!”

일언반구도 없이 천무린이 그대로 배를 향해 나아갔다.

첨벙! 첨벙!

마치 잘 만들어진 길 위를 달리듯 물 위를 거침없이 달려간 천무린은 그대로 허공에 몸을 띄웠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무려 허공에서 여덟 번이나 박차며 몸을 회전시키더니 순식간에 배 위에 당도했다.

처억!

그리고 고갤 들어 세 사람을 바라본다.

스르릉.

검마의 허리춤에서 순식간에 검이 뽑혀 나와 천무린을 향해 겨눴다.

“……어디서 싸가지 없이. 어른이 왔는데, 검부터 뽑고 X랄이야.”

천무린이 검을 바라보면서 일갈하자,

“푸하하하하! 와, 정말 오셨네요.”

겨눴던 검마의 검을 천천히 내리면서 갈천중이 웃었다.

“기다렸냐?”

“너무도요. 너무 기다렸네요.”

“……하, 새끼. 남자한테 난 관심이 없는데.”

“어쩌죠. 여태까지 제가 찾던 사람이 바로 당신인 것 같은데.”

갈천중의 눈빛이 빛났다.

“멸마, 멸마 천무린.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당신은.”

“……미친 새끼.”

옛날부터 껄끄러운 녀석이었다. 천마 시절에도 마황 갈천중의 꿍꿍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으니까.

“아아, 정말 대단해요. 벽력왕을 꺾고 오셨는데도 전혀 지쳐 보이질 않네요?”

“그깟 게 뭐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표현하는 천무린의 말에 풍산과 검마는 그만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었나…….

천무린의 그런 모습에 놀라지 않는 것은 갈천중뿐이었다.

“역시 저를 꺾을 사람은 당신밖에 없네요. 환영해요.”

“뭐?”

처억.

검지로 천무린을 가리켰다가,

“그렇잖아요. 당신은 멸마(滅魔).”

다시 자신을 가리킨다.

“저는 천마(天魔).”

그러면서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갈천중이었다.

공식적으로 천마라는 별호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밝힌 것이다.

“하늘이 내린 대적자. 그게 바로 당신과 나, 나와 당신이에요.”

그 말에 천무린 역시 새하얀 이를 드러낸다.

일순 갈천중과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생각한 풍산이었다.

“하늘이 내린 대적자?”

“네.”

“염X 떨지 마. X신아. 네가 무슨 천마야! 그저 빈자리를 메운 2인자에 불과한 새끼가 말이야. 천마신교에 있던 소교주는 어디 가고 네가 감히 천마 행세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