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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33화 (233/250)

제233화

제233화

“낭왕과 신창……이라고?”

태양천자 남선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낭왕 위사검과 신창 신준건을 쳐다봤다.

남선의 입장에서는 천마신교의 침입을 미리 각오하긴 했으나 미처 예상 못 한 패왕이라는 초거물급 인사가 등장한 것만큼이나 이 두 사람의 출현이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흥!”

패왕은 두 노인의 등장에도 코웃음을 칠 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중원 무림엔 기인이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고, 고작 이 두 사람 때문에 지금의 판도가 바뀌지는 않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패왕의 반응처럼 남선 역시 두 노인의 기운과 기세를 읽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와 주신 것은 고맙소. 하지만 그대들도 개죽음을 당하게 생겼구려. 패왕이 왔을 줄이야.”

패왕.

천마신교의 패왕은 천마 다음으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교주인 마황은 정마대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패왕은 맹활약을 펼치며 화경의 고수 중에서도 최상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남선 역시 화경의 경지에 다다른 인물이지만, 패왕의 무위에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사검이 신준건을 돌아봤다.

“자네의 말대로 남해에서 제일가는 태양궁이 저 천마신교 버러지들 앞에서 비에 쫄딱 맞은 개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벌벌 떨고 있군.”

“뭐, 뭣!”

남선의 얼굴이 남해의 뜨거운 열기보다 더 시뻘겋게 변했다.

“……감히.”

“남사익.”

위사검의 입에서 이름 석 자가 흘러나온다.

“……사익이?”

남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자신의 아들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온단 말인가.

“남사익 생도가 그러더군요.”

「 흥! 고작 마교의 버러지들이 북해와 남해를 넘볼 수 있을 리가 없소. 제깟 놈들이 그 기후에 적응하고 제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

마교가 침범한다고 했을 때 남사익이 외쳤던 말이다. 그 말을 전해 준 위사검은 순간 멍해져 있는 남선을 바라본다.

“마교는 사파와 손을 잡았습니다. 지금 마교가 북해와 남해에 침공을 시작함과 동시에 장강수로채와 녹림칠십이채 역시 움직였고, 남사익 생도는 그런 사파를 맞아 용감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위사검이 고갤 들어 패왕을 위시한 마교의 무리들을 둘러본다. 패악적인 기세로만 보면 남해태양궁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숫자는 엇비슷한 데다 낭왕과 신창이 합세함으로써 전력도 어느 정도 비등비등해졌지만, 문제는 남선을 비롯한 남해태양궁 무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패왕이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만들어 낸 핏빛의 강이 그들을 그만 압도하고 만 것이다.

“……남사익 군은 믿고 있더군요. 남해가 절대 무너질 리 없다고.”

위사검의 말에는 내력이 담겼고, 남선에게 한 이야기는 남해태양궁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어쩌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눈앞의 싸움이 개죽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남해태양궁은 백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낭왕 위사검은 더 이상 힘이 없어서 그저 두뇌와 지도력만으로 무리를 이끌던 인물이 아니었다. 수백, 수천 명을 이끌고 정마대전에 참전했던 낭인들의 왕의 면모를 되찾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남해태양궁 무인들을 돌아보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니 선택하십시오.”

스윽.

그의 시선이 패왕을 비롯한 수많은 마교인들에게 닿았다. 위사검이 뭐라고 떠들건 말건 관심 없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든 어디 한번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여유 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 시선이 닿았다가 떨어진다.

“남해태양궁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버러지처럼 도망가다가 개죽음을 당할 것인지, 그게 아니면…….”

스르릉!

위사검의 허리춤에 차 있던 검이 태양의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다.

“남해태양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음 세대에 자신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의지를 보였는지 자랑스럽게 전할 것인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은 사람이 제 마음이 가는 대로 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지이기도 했다.

개죽음인지, 명예로운 죽음인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위한 죽음인지, 다음 세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위대한 죽음인지.

꽈악.

남선의 손아귀가 꽉 쥐어졌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불가사의하다. 특히 제 자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초인적인 힘을 내기 마련이다.

궁주, 그리고 한 문파의 수장이라는 존재 역시 불가사의하다. 비록 이 태양궁이 눈앞에 있는 마도인들에게 짓밟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더라도 언젠가 후예들이 태양궁의 위상을 되찾아 줄 것임을 믿기에.

남사익의 말을 전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남사익의 활약을 들은 남선의 가슴속에는 남해의 열기보다 더욱 뜨거운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던가.’

눈앞에 있는 패왕 때문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던 모닥불이 다시금 커져 태양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못난 모습을 보였소이다.”

남선의 등 뒤로부터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 낼 햇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사검이 고개를 저었다.

“비로소 남해태양궁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등 뒤를 맡기겠소.”

그리 말하고 남해태양궁주이자 태양궁의 천자(天子, 황제)라 불리는 남선은 그 이름에 걸맞은 위용을 뽐내며 패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역시 못난 모습을 보여 미안하오.”

“됐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 같군.”

패왕은 짧게 감탄했다. 불과 일각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사이에 남선이 발산하는 기세는 아까 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이것이 남해의 왕. 좋군.’

진심으로 패왕은 기뻐했다. 자신이 상대하는 적이 이토록 강자일 수 있어서.

“그럼 나 역시 진심으로 가겠다.”

“내가 해야 할 말이외다.”

신형이 사라진 남선의 온몸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초절정에 달하는 위사검과 신준건의 호흡마저 뜨겁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남선의 손바닥에서 타오르는 열양장은 만년 한철마저 녹일 정도로 극양(極陽)의 기운이 만연했고, 그것은 패왕의 오른손 주먹과 강하게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앙!

폭음과 굉음이 동시에 터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마교의 버러지들을 쓸어버려라!”

“우리의 가족들을 생각해라!”

“남사익 소궁주님께서 오고 계신다!”

“버러지들을 쓸어버리고, 또 쓸어버려라!”

남해태양궁의 무인들은 한마음으로 중무장한 채, 득달같이 마교인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겁을 먹고 물러서기만 하던 무인들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준건이 위사검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정도면 자네가 천마신교의 교주를 하는 게 어떤가. 아주 말솜씨가 훌륭해.”

“헛소리. 그저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씨를 크게 키웠을 뿐이라네. 진작에 이럴 인물들이었어.”

위사검은 격정적으로 맞부딪치기 시작한 두 세력의 모습에 그 역시 검을 빼 들고 전장의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무위를 되찾은 뒤 처음으로 맞서는 적이 마교라니, 너무 가슴이 뛰는구먼! 더 늦으면 나 혼자 다 처리할걸세!”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달려가는 위사검의 모습에 신준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정도면 아주 전쟁광이구먼. 나 원 참…….”

서걱! 서걱!

표홀하고도 맹렬하게 돌진하는 낭왕 위사검의 검 끝은 거침없이 마도인들에게로 향했다. 그간의 한을 풀겠다는 듯 쏟아 내는 거친 검격에 마도인들이 쓸려나가고 있었다.

“거참, 그렇다면 나도 질 순 없지. 이제 막 돌아온 노인네한테 밀려서는 내 자존심에 금이 간단 말이야.”

와다다다다!

신준건 역시 창을 빼 들더니 풍차처럼 크게 회전시키며 마도인들에게 창끝을 내뻗었다.

그렇게 북해와 남해에서는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 * *

퍼엉!

화염에 휩싸인 불덩어리가 허공에서 붉은 호선을 그리며 일행의 눈앞으로 떨어진다.

콰아아아아가가가가강!

“비틀어!”

“이런 씨X!”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소화진과 황태가 용트림하는 진천뢰의 포격을 보자마자 악다구니를 쓰며 검을 들었다.

정면으로 맞선다면 어떻게 박살 나는지 아는 소화진은 검면을 비스듬히 들어 맹렬하게 터져 나오는 포격을 빗겨 내었다.

크그그그극!

폭발력이 있는 진천뢰이다 보니 검면으로 흘려 내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소화진과 황태는 내력을 끌어올려 부족한 힘을 메웠다.

콰아아아앙!

흘려 낸 포격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큰 화재를 불러일으켰다. 강 위에 떠 있는, 군함과 다를 바 없는 배들을 바라본 일행은 호흡을 골랐다.

“교관님.”

“말해라.”

“강을 건너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초절정이라는 경지에 올라섬으로써 그들은 내력의 순환과 통제력 역시 가뿐하다 여길 만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저 포격을 막아 내면서 달리는 건 위험부담이 있는 행동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함으로써 일행 모두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의논할 수 있는 것이다.

독단적인 움직임이 아닌 함께하는 것이니까.

“그것도 무려 5문의 진천뢰가 불을 뿜고 있어 막기 버거우니 두 개의 조로 나누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화진이 말하는 것처럼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두 개의 조로 나뉘어 1조는 포격에 대비하여 다른 조가 침투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2조는 진천뢰의 화포를 저지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 움직이지……!”

그리고 그때.

펑! 퍼버버버벙!

콰가가가가강!

진천뢰가 터져 나오는 불길의 포문이.

“배가 다섯 척이 아니라…… 더 많은 것 같은데?”

그 모습에 악교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분명 강 위에 떠 있는 배는 다섯 척으로 보였으나, 어둠 속에서 불을 뿜는 진천뢰의 불빛으로 그 다섯 척의 배 뒤로 무려 진천뢰가 실린 열다섯 척의 배가 더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이는 것이다.

“……이럴 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진천뢰의 숫자에 일행은 이를 꽉 깨물었다.

과연 검면으로 죄다 흘려 내거나 빗겨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우릴 유인한 거야?”

태강이 내뱉은 말에 일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섯 문이 아니라 스무 척의 배와 스무 문의 진천뢰.

일행은 깨달았다. 저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것이다.

쥐덫에 걸린 쥐와 같은 형국에 일행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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