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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30화 (230/250)

제230화

제230화

고요한 침묵이 뒤따랐다.

용기백배해 누구보다 용감하게 전선을 뛰쳐나와 달려온 백여 명의 생도들과 그들을 이끌었던 배단아의 입에서는 그 어떤 말도 쉬이 나오지 않았다.

괴리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삼대 무관, 그것도 최약체로 평가받던 사천무관 8기수 생도 하나가 중원 무림과 강호에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던 벽력왕 금태도를 꺾었다.

그야말로 상식이 붕괴한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 맞나?”

생도들도 귀가 있었다.

천무린이 사천무관을 떠나 어떤 행보를 걸어왔는지.

거산도 전위를 꺾었고, 나아가 천마신교의 육장로 무형노괴를 꺾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운남에서의 혈전.

지독한 괴리감을 불러일으키는 나날이었다. 듣는 내내 자신들이 듣고 있는 이 사실이 정말인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비로소 그 의문들이 깨끗하게 해소되었다.

“자, 끌고 가.”

천무린이 뒷덜미를 잡고 있던 벽력왕을 그대로 허공에 던져 버렸다. 그 육중한 덩치를 가볍게 던진 천무린의 모습에 생도들 몇몇이 허둥지둥하다가 그만 벽력왕의 몸에 깔려 엎어졌다.

쿠당탕!

“히이익!”

“헉!”

“사, 살려 줘……!”

깔려 버린 생도들이 팔다리를 허공에 내젓자, 다른 생도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빼 준다.

“하이고, 그래 놓고 잘도 여기까지 달려왔다. 혈을 모두 점해 놨으니 못해도 칠 주야 동안은 꼼짝 못 할 거야. 잘 챙겨 둬. 그놈한테 받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야 되니까.”

천무린의 혀를 차는 말투와 눈빛이 생도들에게 가 닿았다. 하지만 그의 퉁명스런 말투와 달리 눈빛은 한없이 따뜻했다.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토록 깐깐하기 짝이 없던 기수 문화는 개나 줘 버렸는지 5기수와 8기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고,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던 6기수와 7기수가 서로 부축까지 해 준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강한 책임감과 정신력으로 무장했다는 뜻이었다.

‘별로 신경도 못 썼던 녀석들인데.’

8기수야 당연히 천무린에게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던 녀석들이지만.

5기수, 6기수, 7기수까지 제대로 가르친 바가 없었는데, 자신만의 노력과 힘으로 여기까지 왔기에 더욱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천무린이 바라던 바였고.

“……하여간 갑갑한 녀석들.”

피식 웃은 천무린이 일행을 쭉 훑더니 배단아에게 멈춘다.

“다른 건 교관님이 잘 알아서 해 주셨을 것 같고, 우리만 다시 움직이면 되겠네요?”

“진천뢰를 부수러 악 교관님을 필두로 일행들이 움직였어.”

“그래요?”

천무린의 고개가 주억거렸다. 대충 기척으로 일행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기에 금방 납득했다.

악교운의 성격상, 당연히 그렇게 움직일 거라고 예상했고.

그의 시선이 스윽, 하고 움직였다.

콰아아아앙!

쿵쿵쿵!

또 하나의 격전지.

수룡왕 파건량과 만독암제 당백진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천무린이 혀를 찼다.

“아주 날 잡았네. 날 잡았어. 그동안 몸 못 풀었다고 제대로 난리를 치시네.”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고?”

배단아의 말에 천무린이 고개를 젓는다.

“우리도 가야죠. 진천뢰 쪽으로. 생각보다 더욱 빨리 움직이고 있어요. 대략 진천뢰 다섯 문. 하지만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죠.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천뢰로 갈 테니 무린이 너는 관주님께 가 보는 건 어떠니?”

“그 양반한테요? 비수 꽂혀 죽을 일 있어요?”

“…….”

“가서 구경했다가 제 정수리부터 쪼갤 것 같은데요. 더럽게 자존심 강한 양반인데, 돕는다고 말했다가 자칫 수룡왕이랑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

맞는 말이다.

배단아가 아는 당백진의 성격이라면 천무린의 도움을 절대 받지 않을 것이다. 십수 년을 봐 오고 모셔 온 당백진이라는 위인은 그런 사람이니까.

“……차근차근 불부터 끄죠.”

그러면서 천무린이 고갤 돌려 금태도를 질질 끄는 생도들 몇몇을 제외한 생도들에게 시선을 준다.

“모두들 내 말 잘 들어.”

“어?”

“두 갈래로 찢어져서 배 교관님을 따라 이곳 전장에 남아 있는 수적과 산적 잔당들을 모두 제거한다. 중요한 일이야. 놈들이 남아서 어떤 수작질을 벌일지 모르니까.”

천무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반은 나를 따라 진천뢰를 향해 전진한다. 네 녀석들이 앞서간 놈들 보조 맞추려면 이쪽엔 내가 있어야지. 안 그래? 격이 맞으려면.”

“…….”

생도들의 대답이 없자, 천무린이 말을 덧붙였다.

“죽을힘을 다해 쫓아와라.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움직여. 너희야말로 이 전쟁의 가장 큰 공로자다. 고작 뒤늦게 참전해서 공 좀 세웠다고 그놈들에게 공을 다 빼앗길래?”

앞서간 일행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불을 뿜은 포격이 일행을 향해 짓쳐들어오자, 천무린의 온몸에서 상서로운 금광(金光)이 터져 나오면서 그 포격을 밀어냈다.

쿠콰카카카가아앙!

그리고 터져 나온 포격은 일행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터지며 불길을 뿜었다.

화르르르르륵!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포격을 간단히 막아 낸 천무린의 모습을 본 일행은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가자.”

그리고 저 고강한 청년이 몸을 돌리자, 일행들의 눈이 반짝인다.

그래, 걱정할 것 없다.

믿으면 된다. 믿고 내가 할 일을 하면 될 뿐.

두렵다고 물러서지 말고.

죽을 것 같다고 무서워하지 말고.

나아가려면 그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처억.

천무린이 앞으로 튀어 나가자, 그 뒤를 따라 후송이 맹렬히 쫓아갔다.

“나는 먼저 갑니다! 저 녀석 말대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전쟁은 우리가 다하고 다른 녀석들이 공로를 차지하는 거 절대 두 눈 뜨고 못 봅니다!”

타다다다닥!

그런 후송이 쫓아가는 길을 따라 다른 생도들 역시 줄지어 쫓아간다. 이런 힘이 아직도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 쫓아가는 모습을 본 배단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못 당하겠네.”

천무린의 등은 자그마하면서도 컸다. 보고 있노라면 드넓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 주는 그런 등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배단아가 몸을 돌렸다.

“우리도 가자. 남은 버러지들을 박멸하러.”

자신의 편에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남의 편에는 더없이 잔혹하고 단호하다.

사천 이곳저곳에 숨어 있을 산적들과 수적들에겐 그야말로 끔찍한 지옥을 보여 줄 배단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콰아아아앙!

“이제 몇 개나 남았나?”

어느새 바닥에 내려앉은 수룡왕 파건량의 옆구리에는 핏물이 꿀럭꿀럭 흘러나왔다. 비수가 지나간 흔적. 옆구리가 관통돼 고통스러울 파건량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다.

“……애초부터 목적이 이것이었나.”

우우웅!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비수의 숫자가 현격히 줄어 있었다. 무려 마흔 자루에 달했던 비수의 숫자가 이제는 고작 일곱 자루만 남은 것이다.

“칼이 있으면 칼을 부수고, 창이 있으면 창대를 부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 혼자 지리멸렬해지더라고. 콧대 높은 만독암제도 그런가 싶어서 궁금해 가지고 말이야.”

우, 우우웅-!

당백진의 비수 일곱 자루의 기운은 전보다 못했다. 비수 한 자루, 한 자루를 완벽하게 통제해서 다루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 비수를 마흔 자루나 통제하고 있었으니, 당백진의 내력 역시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룡왕 파건량의 손바닥 위에 둥그런 구의 형태가 갖춰진다.

“무기 없이 싸우는 사람이 이래서 유리하거든. 무기 타령이나 하며 싸우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헛소리.”

“정말? 정말로 헛소리라고 생각해?”

동그란 구의 형태가 회전하더니 그대로 앞으로 쏘아진다. 그리고 그 구의 형태에 맞서 비수 한 자루가 앞으로 나선다.

그 구에 적중한 비수는 형태조차 없애 버릴 만큼 맹렬하게 회전하여 당연히 뚫고 지나갈 줄 알았으나.

휘리리리리릭…….

회전력을 잃고 맥없이 멈춘다.

“원래 물속에서는 모든 무기가 소용이 없는 법이거든. 내가 또 명색이 수룡왕인데,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어?”

파건량은 단번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비수를 발로 밟아 형체도 없이 찌그러뜨린다.

그러자, 당백진의 두 눈이 부릅떠지더니 잘게 쪼개진 비수 조각에 의지를 불어넣는다.

우우우웅!

“어이쿠! 똑같은 수에 또 당할까 봐?”

자신의 옆구리를 관통했던 수.

그것은 다름 아닌 산산이 부쉈다고 생각한 비수 조각들이 흩어져 그를 마구 공격했던 것이다.

두 번은 속지 않는 파건량이 뒤로 물러나며 손을 휘젓자, 다시금 쪼개진 비수 조각들이 기운을 잃으며 모조리 튕겨 나갔다.

“……이젠 여섯 자루 남았군.”

수룡왕 파건량의 말에 당백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파건량이 만들어 내는 심해 속 밀도 높은 수압의 공간은 당백진에겐 최악의 상성이었다. 여태까진 당백진의 반사 신경과 본능적인 움직임, 독과 섞어 쓴 수로 인해 피해를 입은 파건량이었지만, 그 역시 절대 고수이자 화경의 경지에 든 초인(超人)이다.

당백진의 약점과 한계를 명백히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파건량은 절대 다급하게 당백진을 압박하지 않았다.

그는 알았다. 다급하게 조일수록 당백진 역시 본능적인 움직임과 임기응변으로 이 상황을 모면할 기회를 잡을 거라고.

파건량이 방심할 가망성이 다분히 많아질 테니까.

그래서 아주 서서히.

당백진의 목을 옥죄어 왔다.

“하핫! 뭐야, 그 표정. 표정이라고는 없는 냉혈 인간인 줄 알았는데 잘 안 풀리니까 이제 표정에 변화가 생기네? 역시 사람은 사람이었어.”

파건량의 입가에 득의에 찬 미소가 번진다. 그러면서도 방심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앞으로 여섯 자루. 너에게 기회는 단 여섯 번이네? 어디 한번 해 보자고. 만독암제 당백진.”

우우우웅!

여섯 자루의 비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파건량을 겨누었다. 파건량 역시 오른손 손바닥 위에 만들어진 구의 형체로 화답했다.

왱왱-!

그 구의 형체는 여섯 자루의 비수를 꿀꺽 잡아먹겠다는 듯 광포하게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지. 그런 표현이 많다지? 장강에서는 그렇게 말해. 사어(鯊魚, 상어)도 피라미를 잡아먹을 때 열심히 움직인다고. 최선을 다해서.”

번뜩.

수룡왕 파건량의 옆구리에서 진득한 핏물이 흘러나올수록 서서히 충혈되는 그의 두 눈빛은 심해 속 사어(鯊魚)처럼 광기를 띠었다.

“아! 참고로 내가 사어, 너는 피라미야. 알지, 만독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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