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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27화 (227/250)

제227화

제227화

사실 독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그 효력이 무색해지는 무기였다. 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일수록 만독불침(萬毒不侵)에 가까워지면서 독이 침투할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진다.

그러나.

그것을 운용하는 이가 독 분야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는 만독암제 당백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안해. 내가 방심했어.”

수룡왕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웅!웅웅-!

그의 말에 당백진은 말없이 비수들의 공전과 진동으로 답을 대신했다.

공방일체(攻防一體).

마흔 자루의 비수들이 당백진을 지킴과 동시에 공격하는 최강의 수단이 된다. 그러면서 비수 속에 담긴 독주머니를 터뜨려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무기력해진 상대를 관통한다.

왜 당백진이 정파 제일의 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대답하기도 싫다는 건가. 하, 참.”

수룡왕 파건량이 헛웃음을 흘리더니 윙윙대는 비수들을 훑어본다.

쇄애애애액!

말이 필요 없었다. 본 순간, 움직인다.

파건량이 허공을 할퀴기라도 하듯 손톱을 세워서 그어 버리자,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거친 풍압이 터져 나왔다.

콰자지지지직!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름 돋는 풍압에 담긴 우악스러운 기운이 당백진을 향해 쇄도함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우우웅!

다섯 자루의 비수에 담긴 녹빛의 강기가 터져 나오더니 짓쳐들어오는 풍압으로부터 당백진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쾅! 쾅! 쾅! 쾅! 콰아아아앙!

찢어발겨 버린 그 가공할 압박이 비수 다섯 자루를 쳐부수며 짓쳐들어왔다. 단순하다 여겼던 그 공격에 담긴 기운이 한철로 만들어진 비수 다섯 자루를 먼지로 만들어 버리며, 계속해서 짓쳐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웅웅웅!

비수들이 위협을 느꼈는지 당백진의 의지에 따라 풍압을 향해 더욱 큰 강기를 담아 마주한다.

콰앙! 콰앙!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무려 비수 여덟 자루가 먼지가 되고 나서야 풍압을 모조리 해소시켰다.

“아직 멀었어.”

위였다.

당백진은 고갤 치켜들어 위를 바라봤다. 산사태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 풍압의 해일. 그 풍압은 마치 당백진을 장강 깊숙이 처넣어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려는 듯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처럼.

산사태 때 산비탈을 타고 쏟아지는 토사물처럼.

땅거죽은 뒤집히고, 장강 심해의 압력은 더해지며, 허공에서 미친 듯이 찢어발기는 풍압으로 짓누른다.

보여 주는 규모가 달랐다.

사람의 힘, 그것도 단신이 보이는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 준다.

재앙(災殃)이었다.

그런 재앙 앞에서 당백진의 시선은 그저 머무른다.

‘수룡왕 파건량.’

장강수로채의 주인이자 사파제일인이라고 꼽을 수 있는 자.

수룡왕 파건량의 존재가 곧 장강이 사파 제일의 집단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파건량이 없었다면 장강수로채는 수많은 사파 집단에 물어뜯겨 사라졌어도 진작에 사라졌을 집단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

그것이 곧 당백진에게 호승심을 불러일으켰다.

십여 년간 조용했던 강호 무림.

그간 얼마나 근질근질했던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의 전신에서 재앙에 맞서기 위한 투기(鬪氣)가 터져 나왔다.

부서져 버린 여덟 자루를 제외한 서른두 자루의 비수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당백진의 내력에 이어 투기라는 기운마저 하나하나 깃드는 것처럼.

만 가지의 독을 다루며, 암기에서는 제왕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당백진의 격(格).

자연재해와도 같은 그 재앙을 향해 서른두 자루의 비수의 끝이 향한다. 비수들이 당백진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해일에 폭사했다.

웅웅웅!

퍼엉! 퍼엉! 퍼엉!

광폭하게 터져 나간 비수들이 몰아치는 해일을 맞이하는 순간, 모조리 꿰뚫어 소멸시켜 버린다.

퍼엉! 퍼엉! 퍼엉!

맹렬하게 회전하는 비수들의 힘은 해일을 꿰뚫고도 다하지 않았는지 허공에서 오시하듯 내려다보는 수룡왕 파건량을 향해 나아갔다.

단숨에 그의 전신을 관통해 버리겠다는 듯이.

하지만.

찌지지직, 찌지직!

수룡왕이 양 손가락을 구부리더니 허공을 찢어발겼다.

“물속이었으면 넌 진작에 뒈졌어. 알지?”

쿠콰카가가가강!

흉악한 기운이 거친 물살처럼 일렁이며 맹렬하게 쏘아지는 비수들을 감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아지던 비수들은 힘을 잃지 않고 기운의 물결을 헤치고 나아갔다.

아니, 나아가려는 순간.

회전하던 비수들이 멈추며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공에서 힘없이 떨어지는 그 비수들을 본 수룡왕이 입가를 비틀었다.

“뭐 나쁘지 않아. 아무리 네 의지대로 비수를 통제할 수 있다고 하나 딱 이 정도의 거리까지인 셈이지.”

화경이라는 드높은 경지에 다다른 당백진이라고 할지라도 서른두 자루의 비수를 무한한 거리에서 통제할 순 없는 법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수룡왕 파건량은 오시하듯 내려다보면서 그 거리를 측정했고, 확인했다.

그 모습에 당백진의 표정에는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피식.

“……수룡왕이라는 작자가 입심으로 화경에 올라섰나 보군.”

“아아, 그럼. 입심으로 따지면 사파 제일이 아니라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무방할걸.”

“녀석과 만났으면 제법 재미난 싸움을 벌였을 것을.”

“녀석? 누구? ……멸마?”

더 이상의 대답은 없었지만, 수룡왕 파건량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네놈은 그 벽력왕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무식한 놈인지 몰라서 그래. 난 그래도 말이 통하잖아. 근데 그놈은 말 같은 거 전혀 안 통해. 짐승이지, 짐승.”

“……녀석 역시 마찬가지다.”

“허, 그래? 이거 더 궁금해지네. 짐승과 짐승의 대결이라니.”

* * *

꽈과가가강!

꽈앙! 꽈앙!

벽력왕의 주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순식간에 일곱 번 터져 나왔다.

그리고 천무린의 주먹에서 우레에 전혀 밀리지 않는, 그에 버금가는 금빛 서광이 무수히 뿜어져 나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주먹은 주먹으로.

맞부딪치기 시작한 그 파공음은 천지를 떨어 울릴 만했지만, 벽력왕 금태도는 눈썹을 꺾었다.

“검을 들어라.”

“내가 왜?”

“안 그럼 죽으니까.”

“검을 들면 안 죽이려고?”

금태도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고, 그 주먹을 맞이한 천무린이 백보신권을 펼쳐 낸다.

우웅!

동시에 웅혼한 서광이 터져 나오며 불광보조(佛光補助)가 천무린의 등 뒤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콰가가가강!

“그런데 말이야.”

주먹을 맞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천무린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눈빛은 서늘하고 입가는 비틀린 특유의 표정이 나왔다.

“내가 검 들면 넌 진짜 죽어. 안 들 때 잘해.”

꿈틀.

주먹을 맞대고 있던 금태도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대체 이 얼마나 오만한 말인가.

자신은 다름 아닌 벽력왕이다.

천마신교?

파천검황?

무형노괴?

그 누가 온다고 할지라도 벽력왕 금태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녹림의 동도 수천 명을 거느리는 압도적인 군주였으며, 오롯이 두 주먹만으로 사파를 제패했다.

실력만으로 천하가 인정할 악명을 쌓은 이가 바로 벽력왕이다.

그런 그의 앞에서 이렇듯 태평하게 자신을 죽인다고 말하는 청년을 대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이 믿고 애지중지하던 거산도 전위를 두 차례나 패퇴시키고.

사천무관으로 향한 광혼마도와 혈웅사자마저 눈앞에 선 이놈에게 철저히 분쇄되었다.

그렇다.

결국 이 눈앞의 애송이에게 녹림이 유린당한 것이다.

흉악하고 광폭한 기운이 벽력왕 금태도의 눈빛에 감돈다.

감히.

감히 어딜 넘본 것인지.

눈앞에 선 상대가 누구인지를 똑똑히 각인시켜 주리라.

처참한 패배와 굴욕감으로 다시는 검과 주먹을 들 수 없게 아주 폐인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뼈를 하나하나 발라 분리시키고.

오장육부를 뒤틀어 벌레처럼 기어 다니게 만들 것이며.

단전을 철저하게 부수어 다시는 무인을 꿈꾸지 못하게.

똑똑히 보여 주리라!

그 순간!

“뭔 생각을 하냐? 하여간 생각하는 것도 그 덩치 새끼랑 다를 바가 없다니까.”

천무린의 신형이 퍽 하고 금태도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연기처럼.

그것도 홀연히.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감을 끌어올린 금태도가 반사적으로 한 곳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벽력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반사 신경이자 짐승과도 같은 본능이었다.

살기 위한.

콰아아아앙!

금태도의 주먹이 욱신거린다.

그저 주먹이 맞부딪쳤을 뿐이고,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인데 벽력왕은 주먹에서 은은한 고통이 느껴진다.

‘……이게 무슨?’

헛바람을 들이켠 금태도는 또다시 유령처럼 사라진 천무린의 신형을 눈으로 좇았다.

콰아아앙!

화경에 다다라 그 누구도 자신에게 범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던 벽력왕의 시선으로도 좇을 수 없었다.

결국 본능에 의지해 주먹을 내뻗는다.

뿌드드득.

벽력왕 금태도의 주먹보다 훨씬 작은 주먹과 부딪칠 때마다 금태도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크으으으으!”

저도 모르게 기함한 금태도가 비틀거리더니 온 세상을 우레와 같은 기세로 터뜨리는 벽력왕의 기운을 폭사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더 이상은 얕볼 수가 없다.

얕봤다간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한 채 두 주먹이 먼저 부러질 것 같았으니까.

찰나의 순간에 탈골된 왼손을 끼워 맞춘 벽력왕의 두 주먹이 허공을 수십 번씩 강타했다.

콰아앙! 콰아앙! 광광!

가공할 속도의 주먹과, 주먹을 타고 뻗어 나오는 우레로 인해 땅거죽이 모조리 박살 나며 주변의 환경이 초토화되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체가 뻗은 손길로 인해 하늘이 갈라지며 벼락이 내리친다.

눈으로 좇을 수도, 기척으로 따라잡을 수도 없는 천무린에게 단 한 대라도 맞는다면 뼈가 으스러지고 말리라!

그리 여긴 벽력왕 금태도는 태산과 비교하여도 부족함이 전혀 없는 자신의 내력을 무한히 발산했다.

쾅! 콰앙! 콰아앙!

하지만.

‘어째서…….’

전력을 다하고 있는 자신의 주먹과 벽력의 기운에도 천무린의 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무린은 고작 약관의 나이다. 그가 무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무신이라고 할지라도 약관의 나이에 자신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계라는 말이 대체 왜 있겠는가.

“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까 막 후달려?”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의 음성이 허공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천천히 신형을 드러낸 천무린이 두 주먹을 들어 보인다.

“이해가 전혀 가질 않지? 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 고작 약관의 나이에 저런 무위를 보이는지 상식과 너무 먼 상황이잖아. 그렇지?”

천무린이 한 걸음 내딛자 금태도의 전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한 올, 한 올이 섬세한 근육으로 뒤덮인 완벽한 육체를 자랑하는 금태도가 자신보다 한없이 작고 유약해 보이는 저 청년에게 물러서려는 동작을 발작적으로 멈췄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네 생각이 맞아. 난 상식을 벗어난 존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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