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제225화
휘몰아치는 장력은 그 무엇보다 직선적이었고, 강맹했다.
그리고 그 강맹한 기세와 부딪치는 것은 다름 아닌 점창파의 절기 중의 절기.
번쩍!
검광이 순간 일었다.
사일검법(射日劍法).
후예사일(后羿射日).
공간을 가르다시피 쏘아지는 검 끝에 모인 기운은 그 무엇이든 단숨에 꿰뚫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완연했다.
더없이 강맹하기 그지없는 후예사일이라는 초식을 펼친 순간.
진량과 이백의 신형이 쭈욱 하고 늘어나며 장강쌍마의 장력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번쩍!
검광이 번뜩이는 수준과는 달리.
장강쌍마의 두 눈을 멀게 만들 강렬한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장력 속에서 폭발하듯 터져 버린 기운은 장강쌍마의 장력의 힘을 잃게 만들었다.
순간적인 폭발로 인한 파괴력은 장강쌍마의 철갑보다 단단하고 두툼한 손바닥을 금세 걸레짝처럼 만들어 버렸다.
너덜거리는 자신들의 손바닥을 보고 장강쌍마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여전히 폭발력으로 생겨 버린 틈새의 공백은 메워지지 않았다.
장강쌍마의 두 눈에 비친 청년들의 검은 여지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자신들의 시간만 멈춰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진 절기를 펼치고도 두 청년은 다음 공격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응당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두 청년의 검 끝은 여전히 빛나며 장강쌍마의 바로 코앞까지 당도했다.
저벅.
한 걸음 더 내딛는 두 청년의 움직임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장강쌍마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쏘아진 검면을 향해 장력을 무수히 뿌렸다.
장력은 곧 수십 개의 장영을 만들며 순식간에 허공을 메우고 또 메웠다.
어떻게든 이 한 수만을 피해 보고자.
이 눈앞에 있는 새파란 애송이들이 뿌릴 검격, 단 한 차례만 어떻게 피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장강쌍마였다.
그토록 간절했으나.
사일검법(射日劍法) 오의(奧義).
구곡전척(九曲箭剔).
하늘은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크, 크어아아어어……!”
“아, 안 돼……!”
단말마의 비명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양 손가락 마디마디를 모두 끊어 낸 것도 모자라 팔꿈치를 베어 갈랐으며, 어깻죽지에 이어 옆구리, 양 무릎, 양 발목, 종래엔 목젖까지 베어서 그들의 비명을 끊어 버렸다.
경이로운 검 끝은 무려 아홉 번의 검광을 뽑아내고서야 멈췄다.
점창파 사일검법의 오의이자 극의에 달한 이들만이 뽑아낼 수 있는 검결이자 아홉 번 굽이치는 검결을 뿌려대는 절기.
그것이 다름 아닌 두 청년의 검 끝에서 피어났다.
투두두둑.
서 있던 장강쌍마 두 사람의 온몸이 토막토막이 나서 그대로 허공에서 한 줌의 핏물로 산화되었다. 핏빛의 빗물이 흩뿌려지며 더없이 잔혹한 광경으로 사람의 눈을 현혹시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고가 정지되어 그 모습마저 아름답다는 착각에 빠진 수적 중 하나가.
“……도, 도망가.”
정신을 차린 뒤 본능적으로 소리쳤고.
“아, 아아아악!”
“사, 살귀들이다! 으아아아아! 살귀들! 제, 제발 난 죽고 싶지 않아!”
아비규환이 되어 버렸다.
속절없이 당하면서도 버티던 그들은 두 청년이 보여 준 잔혹함에 놀라 이제는 오로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몸을 실었다.
당장이라도 저 번뜩이는 검광이 자신들을 향해 짓쳐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감에 등을 돌렸다. 사색이 된 표정을 보여 주는 수적들은 말 그대로 고양이 앞에 선 쥐 신세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량과 이백은 이제 허허벌판이 되어 버린 그곳에 몸을 누었다.
“죽겠네. 제길.”
“……가르침을 소화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어.”
“미친 새끼, 아직도 가르침 타령을 하냐.”
“하하, 우리가 해냈잖아. 구곡전천 초식을 처음으로 아홉 번의 검결로 승화해 냈어.”
시원한 미소. 막혀 있던 점창파 사일검법의 오의에 다가서기 위해 그간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던가.
천무린 밑에서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을 소화해 내며 구곡전천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던 이백과 진량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그 노력이 빛을 본 것이다.
“됐고, 좀 쉬어라.”
진량은 온몸을 적신 피 냄새에 눈살을 절로 찌푸렸다.
“내 피인지 그 노괴들 피인지 분간도 안 간다.”
“……몇 날 며칠은 요양해야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
사일검법은 전심전력을 모조리 끌어내는 검술이다. 제 자신을 연료로 삼아 불태워 쓰는 검술인 데다 누구보다 강맹하고 쾌속함에 치중하는 만큼 몸에 큰 무리가 가해진다.
아마 사일검법만큼 강강강의 초식들만 가득한 검술은 중원 무림에서도 손꼽을 정도이리라.
그렇게 드러누운 두 사람이었으나.
“왜 이렇게 조용해?”
“그러게. 뭐지? 교관님들 모두 수적들 상대하러…….”
순간적으로 이백의 말이 막혔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오소소.
모든 진력을 소모하여 텅 비어 버린 단전으로 기진맥진했던 진량과 이백, 두 청년이 쓰러진 채 저도 모르게 전율하게 되는 기운.
경악.
그리고 불신.
어마어마한 기운이 넘실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그러니까 우리 애들을 이렇게 개 작살낸 게 여기 있는 놈들이라는 거지?”
전장의 한복판에 등장한 사내가 말을 하며 다가오지만, 소름 끼치는 기운과 달리 말에 무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장강 위를 유영하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여 주는 사내의 시선이 찬찬히 주변을 훑는다.
“흐으음.”
뻣뻣.
그토록 무게감이 없어 보이는 그 사내가 대체 무엇이라고.
장강쌍마보다 강해 보이지도 않았고, 수백 명으로 이루어져 작살을 뿌려 대던 수적들보다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저자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이곳에 있는 사천무관의 일원들은 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라. 장강쌍마는 어디 갔지? 도망갔나? 흐음.”
눈을 게슴츠레 뜬 사내가 이곳저곳을 쭉 훑더니 상체를 일으켜 자신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청년에게 시선이 멈췄다.
“당했네? 벌써.”
짝, 짝.
그러면서 가벼운 박수를 친다.
“와, 그래도 그놈들 내가 데리고 오려고 직접 움직이기까지 했는데, 너희들이 죽인 거야? 뭐, 도망가지 않아서 다행이려나. 언제고 도망가면 잡아서 족치려고 했는데, 나름 장강에서 받아먹은 값만큼은 했나 보네.”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그의 말에 악교운의 입가가 중얼거렸다.
“……수룡왕 파건량.”
그 말이 천둥처럼 사천무관 일원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어라, 나 알아? 이거 영광이네. 무관의 교관님들이 다 알아봐 주시고.”
사파 제일을 다투는 왕 중의 왕(王中王).
수룡왕 파건량이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긁적, 긁적.
그러다가 파건량의 시선이 두 청년에게서 떨어져 배단아에게 머문다.
“어우. 뭐야, 이렇게 미인이 있었어? 너무 내 스타일인데. 적당히 농염하고, 적당히 아름답고. 특히 둔부가 아주 예쁘네? 이제야 좀 흥미가 동하는구먼.”
그리 말하는 수룡왕의 시선이 배단아에게서 떨어지질 않자, 그 앞을 가로막듯 담진이 한 걸음 나섰다.
“……수룡왕.”
“응? 뭐야. 정인(情人)이야?”
“당신, 설마…….”
담진의 시선이 수룡왕이 걸어왔던 뒤편을 바라본다.
더없이 고요했다.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아마 처음 당도한 이들이라면 응당 당연하다고 느낄 만큼 한적하기 그지없는 곳.
“당신의 수하들……. 모조리 죽여 버린 것이오?”
떨리는 그의 음성에 이백과 진량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파건량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때려잡았어도 도망간 이들만 해도 백여 명은 족히 될 터.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가기 위해 제 아군조차 밟고 달아나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자비 없는 검을 휘두를 만큼 일행은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일행의 기척에 잡히는 이들이 없었다. 단 한 명도.
“……아아, 걔들?”
촤악.
수룡왕 파건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흙바닥을 발로 차 버린다. 그러자 모래와 자갈, 흙들이 한 움큼 패어 이리저리 허공에 휘날렸다.
“이 흙이나 자갈 따위보다도 쓸모가 없는 놈들인데, 뭘. 굳이 살려 둘 필요가 있나. 그렇지, 예쁜이?”
파건량의 미소가 배단아에게 향했고, 배단아는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을 따르던 부하들인데…….”
“아이고, 우리 예쁜이. 은근히 꼰대였네.”
씨익 웃은 파건량이 입가를 비튼다.
“네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굳이 굳이 말해 주자면 말이야. 나한테 그런 놈들의 충성심? 장강에서 뼈를 묻겠다고 하는 놈들의 쓸데없는 회생? 하잘것없는 것에 불과하다고. 내 그늘 아래에서 잘 먹고 잘살던 놈들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이름값 걸고 자기 인생을 그리 평탄하게 살던 놈들인데. 근데 쓸모가 없어졌잖아.”
응당 그렇지 않은가.
단 하나의 의문조차 담기지 않는 대답에 담진과 배단아를 비롯한 일행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그런 놈들이야 발에 채고 채었지. 그래서 이번엔 좀 쓸 만한 놈들로 데리고 와 보려고 해.”
파건량의 말과 동시에.
후웅!
콰르르릉!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수룡왕의 저 너머 뒤편에서 무언가가 불을 거세게 내뿜는다는 생각이 든 순간,
악교운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몸을 허공에 띄우더니 날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쇄도했다. 동시에 창을 들어 크게 회전시키더니, 쏘아진 무언가를 막았다.
콰아아아앙!
적중된 순간, 악교운은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대번에 땅바닥에 처박히면서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동시에 양손과 양다리, 그리고 온몸에 휘감긴 불길이 날아온 무언가가 포탄임을 증명했다.
“……진천뢰(振天雷)?”
유일하게 그 정체를 아는 이는 배단아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될 최악의 화기 이름이 흘러나왔다. 관에서 홍건적과 전쟁을 할 때나 진천뢰라는 포탄이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그녀의 박학다식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오오, 역시. 예쁜이가 똑똑하기까지 하네. 이를 어째. 너 내 첩? 아니, 정실이 되는 건 어때?”
파건량이 배단아의 유식함에 감탄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따악!
뒤에서 다시 한번 불을 뿜어댄다. 진천뢰가 발사된 것이다.
진천뢰를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배, 배 교관님!”
얼어 버린 배단아의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몸을 띄운 담진이 앞으로 쇄도한다.
“흐읍!”
검 끝에 청명하고도 심유한 기운을 모아 검막(劍幕)을 펼치기 시작하는 담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