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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23화 (223/250)

제223화

제223화

혈웅사자와 광혼마도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한 청년을 바라봤다.

여유 넘치는 표정. 두 초절정의 고수를 맞이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산적들을 도륙하는 청년들과 여인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오로지 혈웅사자와 광혼마도만을 바라보는 청년은.

“……멸마(滅魔).”

다름 아닌 멸마라고 불리는 청년일 터.

“산적 새끼들의 저열한 입에 내 별호가 오르내리니 영 기분이 잡치는걸.”

그 말에 혈웅사자와 광혼마도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 봬도 두 사람은 거산도 전위와 무위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초절정 고수를 둘이나 앞에 두고도 저리 여유 만만한 표정을 보인다는 것은.

‘설마 무형노괴를 꺾었다는 소문이 진짜란 말인가……?’

‘그럴 리가.’

그 의문은 그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바로 깨닫게 되었다.

멸마라 불리는 천무린의 두 눈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의 심장은 마치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어졌다. 등을 타고 기어오르는 소름에 곰과 같은 덩치의 혈웅사자와 광혼마도는 속으로 진저리를 쳐야 했다.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뭐냐? 무슨 눈빛이…….’

‘고작 눈빛만으로 우리 둘을…….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수 없어!’

혈웅사자는 자신의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광혼마도는 당장이라도 허리춤에 있는 도를 출수할 듯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뭔데? 사내새끼들이 뭘 하다 말아. 거기 달려는 있냐?”

천무린의 이죽거림처럼 두 사람은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장강에도 장강쌍마(長江雙魔) 두 놈이 있으니 그놈들과 힘을 합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미 놈들에게 사람을 보내 놨으니 금방 오겠지. 그렇지 않다면 제 놈들도 죽을 것을 알 테니.”

장강쌍마(長江雙魔).

장강수로채가 자랑하는 초절정 고수들이다. 그들과 합세한다면 멸마 천무린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리라고 확신했다.

그 말을 들은 천무린은 어깨를 으쓱인다.

“뭐, 곧 원군이 온다는 거지?”

“흥! 그렇다!”

“근데 이거 어쩌지.”

스릉!

“조무래기들이랑 실랑이 벌이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뭐, 뭣!”

피빗!

천무린의 검 끝에 핏방울이 맺혔다가 허공에 사라졌다. 그 모습에 혈웅사자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대체 무엇이 지나간 것인가.

푸촤아아아아!

혈웅사자의 가슴팍이 뼈가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쩍 하고 갈라졌다.

지고한 경지에 오른 혈웅사자의 실력이 무색할 정도로 천무린의 검이 움직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소리 지르지 마. 시끄러워.”

혈웅사자가 어떻게 당한 것인지 몰라도 광혼마도 역시 사색이 된 표정으로 도를 뽑아 들더니 단숨에 천무린을 향해 쇄도해 갔다.

초절정 고수다운 판단이었다.

“이노옴! 가만히 당하지 않겠다! 무슨 수작을……!”

내리쳐 오는 광혼마도의 도에는 단숨에 허공을 찌그러뜨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강기가 단숨에 모였다.

짓쳐들어오는 도의 위력에 천무린은 검을 들어 횡으로 베어 갈랐다.

핏! 스으윽, 서걱!

광혼마도의 도에 맺힌 강기가 마치 모래알처럼 낱낱이 흩어진다. 흩어진 강기 사이로 매끄러운 단면을 보이며 도는 두 동강이 났고.

도를 지나 나아간 천무린의 검기가 광혼마도의 목젖에 실선을 만들어 냈다.

“거, 검기 따위가……. 커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광혼마도는 목과 몸이 분리되어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광혼마도라는 악명을 떨치기 위해 수십 년을 노력했던 그의 일생이 그대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덜덜덜.

압도적인 무위.

언뜻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지만, 손속만큼은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모습에 혈웅사자는 자신도 모르게 사지가 떨렸다.

본디 사람이 가져야 할 살인에 대한 거부감 따윈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살인귀의 모습이었다.

사람의 목을 베어 가른다는 것은 검을 잡은 무인으로서 당연히 각오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찰나의 망설임을 보이는 것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으로 태어나 검을 잡은 이들의 본능이니까.

그러나 그런 본능을 망각한 듯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는 천무린의 모습에서 혈웅사자는 죽음을 직감했다. 벽력왕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혈웅사자가 사지를 떨든 말든 천무린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뭐 지원군을 기다린다고 했지? 수적 새끼들.”

마침 생각났다는 듯 천무린이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근데 어쩌지? 저기엔 더 자비 없는 인간들이 갔는데. 교관이고 선배고 원체 그 양반들이 교양이 없어서 말이야.”

가리킨 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막사에서도 활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비명이 멀리서 들려왔다.

혈웅사자는 그 모습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대체.”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다.

사천무관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벽력왕과 수룡왕이 행차하기 전에 보란 듯이 쓸어버리는 모습까지.

당장 내일이면 사천을 손에 넣고 승승장구하면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자신들이 졸지에 이런 꼴이 되다니.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 잘 가라. 혹시나 하늘에서 저승사자 만나면 안부 좀 전해 주고.”

서걱.

혈웅사자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실선이 생겨나더니.

투욱.

이승과의 결별을 맞이했다.

“저쪽은 잘하고 있으려나.”

* * *

장강쌍마(長江雙魔).

수룡왕과 교룡검, 그리고 장강쌍마까지.

초절정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절대 고수의 숫자가 곧 세력의 강성함을 대변해 준다. 장강쌍마는 쌍둥이로 사람을 죽인 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고한 경지에 오른 이들이다.

그리고 단 한 번의 패배.

수룡왕에게 진 두 사람은 수룡왕의 무위와 분위기에 도취되어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조건을 받아들여 장강수로채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해들아,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처억.

“사일검룡이 선배님들을 뵙고 한 수 배우고자 합니다.”

“병X아, 선배님들은 무슨 선배님. 사파 새끼들한테 선배 대우해 주지 마. 어차피 너 죽고 나 죽고 싸움판으로 번질 텐데.”

사일검룡 이백의 예를 갖춘 모습을 보고 진량이 못마땅하다는 듯 외쳤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장강쌍마였다.

“그러니까…… 지금 너네들이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말이냐? 이 장강쌍마를 상대로?”

“……이 장강쌍마를 상대로?”

말을 똑같이 하는 장강쌍마의 모습에 진량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이건 메아리야, 뭐야. 아니, 거 보면 모르냐고. 그럼 우리가 너네 앞에 왜 서 있겠어?”

황당하다는 눈길로 진량을 바라보던 장강쌍마 첫째 동인문과 둘째 동인만은 이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그러다가 장강수로채의 막사를 습격한 이들을 쭉 훑는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으아아! 사, 살려…… 줘어!”

“제, 제발…….”

“도망가……. 컥!”

갑자기 들이닥친 적들의 습격에 장강쌍마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동인문의 시선이 이백과 진량을 넘어 저 멀리까지 쭉 훑었다.

수백 명이 있는 수적 떼를 기습할 만큼 완벽한 우위를 갖춘 전력인가를 묻는다면.

“……초절정 고수가 대체 몇 명이나 온 것이지? 대체 이게 무슨 전력이란 말인가.”

이백과 진량이라는 젊은 청년들이 자신들을 상대하겠다고 나선 것도 황당한 일이었지만, 정작 동인문과 동인만의 시선을 빼앗는 광경은 따로 있었다.

콰지지직!

단숨에 수적들 서넛의 목젖을 꿰뚫는다.

광야차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살기를 뚝뚝 흘리면서 자비 없는 창격을 보여 주는 악교운의 위용에 수적들은 감히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서걱!

또한, 귀신 들린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단지 베어 내고 막아 내며 휘두르기에 집중하는 검귀 담진이 산적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피빗! 핏! 핏!

표홀하기 그지없는 경공으로 수적들 사이를 종횡무진 움직이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배단아였다.

악교운과 담진에게 밀려 그간의 무위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한을 풀겠다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수적들은 그저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교관은 수적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위를 뽐냈다. 수적들 사이에 간간이 섞인 절정 고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덤벼들었지만, 그들조차 가소롭다는 듯 세 교관은 능수능란하게 그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거기다.

묵색의 기운이 검을 감싸고, 누구보다 살검(殺劍)에 특화되어 그림자와 같이 사람을 베어 가르는 한 청년이 있었다.

“컥!”

“큭!”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는 수적들을 지나치며 검세를 더하는 청년의 이름은 소화진이었다.

장강쌍마는 그들을 보자마자 침음을 흘렸다.

‘저들 넷 중에…….’

‘……우리보다 약한 이들은 없다.’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저들은 장강수로채 수적들을 베어 가르고 흉포한 기세로 쓸어버리고 있으면서도 시선만큼은 장강쌍마와 그들 앞에 서 있는 두 청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장강쌍마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단숨에 정리하고.’

‘신속하게 이곳을 벗어난다.’

수적들이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이 알 바 아니었다. 장강수로채에 차고 넘치는 게 수적이니까.

하지만 장강쌍마 본인들의 전력은 아니지 않은가.

아마 수룡왕 역시 이해하리라.

그렇게 합리화를 한 장강쌍마는 눈앞에 있는 두 청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할 마음이 생겼나 본데?”

진량의 말에 이어.

“고맙습니다. 제대로 한 수 배워 가겠습니다.”

이백이 예의 바르게 응수한다. 참으로 안 맞는 한 쌍이었다.

“큭큭, 합격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무엇을 할지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일 터인데.”

“그리 맞지 않으면서 감히 우릴 상대 하겠다고?”

한껏 비웃은 장강쌍마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손바닥이 어우러지더니 동시에 왼손과 오른손을 제각기 뻗어서 이백과 진량을 덮쳤다.

한눈에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저력.

이백과 진량은 강호에 출두하고 나서 처음으로 지고한 경지에 오른 고수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교관님들과 선배님이 주신 이 기회.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해야겠지.”

“헛소리 말고 놈들 공격이나 잘 봐.”

진량의 검이 장강쌍마의 장법을 향해 강맹하게 쏘아 갔다.

쾅!

부딪치면서 생긴 반발력으로 진량이 몇 걸음이나 물러나며 검이 튕겨 나갔고, 훤히 드러난 빈틈을 보고 눈을 빛낸 장강쌍마의 손이 짓쳐들어왔다.

채앵!

하지만 그 사이를 이백의 검이 절묘하게 막으면서 공격을 차단했고, 언제 물러났냐는 듯 진량이 자세를 바로 하며 장강쌍마의 무릎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베어 오는 검을 보며 다리를 들어 올려 피해 낸 동인문이 진량의 검면을 발로 밟았고,

동인만 역시 이백의 검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후려치면서 둘 사이의 공간을 벌렸다.

장강쌍마는 그런 찰나의 접전에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고작 한두 수 오갔을 뿐이지만, 자신들의 장법에 상대가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검술은 재능의 영역이지만, 내공은 세월의 영역일 터인데…….

어찌 자신들이 유수한 세월 동안 녹여 낸 내력의 힘을 이처럼 맞받아친단 말인가.

하지만 그 물음에 친절히 답해 줄 리 없는 이백과 진량이 묘하게 같은 미소를 띠면서.

“합격술에 능하니 어쩌니 그렇게 염병을 떨더니, 일대일은 어떤지 한번 볼까?”

진량의 말에 동인문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순간적으로 맞닥뜨린 구도를 바라봤다. 벌린 공간 틈 사이로 동인문과 동인만이 서로 갈라서서 제각각 이백과 진량을 맞이하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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