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제219화
꺄아아아아아아아!
일순간 마황의 전신에서 끔찍한 귀곡성이 울려 퍼진다.
귀곡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천마전 안에 있는 다섯 장로의 몸이 움찔거릴 정도였다. 화경이라는 절대자의 경지에 다다른 장로들은 느꼈다.
수백, 수천 명이 동시에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면 이와 같이 전신의 털이 쭈뼛 설 수 있을까 하고.
“아, 그런데 말이죠.”
마황은 순식간에 기세를 거둬들이더니 빙긋 웃었다. 그 미소가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말 그대로 순수 악 그 자체라고 할까.
“패왕이라는 전력을 잃긴 싫어서요.”
“……뭐라.”
패왕의 주먹이 까딱거린다. 누가 봐도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당장이라도 마황의 몸을 부숴 버리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것이 패왕의 압도적인 기세였으니까.
하지만 마황은 그런 패왕의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무형노괴를 꺾은 자가 다름 아닌 생도라더군요. 일개 생도.”
갑작스레 나온 화제.
방향을 바꾼 새로운 화제에 패왕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황 갈천중이 공동 안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세워진 천무린의 석상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고작 약관의 청년이.”
희번덕.
“무형노괴를 이겼다는 말이지요.”
“…….”
“거기다 독고황이 무위를 되찾을 거라는 소식까지 전해졌어요.”
파천검황(破天劍皇) 독고황.
정파 무림에서 최강의 무인인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 말에 패왕이 움찔거렸다.
“아직 그와 못다 한 승부가 남아 있겠죠. 패왕.”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건가?”
“쯧쯧. 패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너무 힘만 앞세우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천마신교 이름값 떨어지게.”
“우선순위라는 게 있습니다. 패왕.”
갈천중이 천천히 걸어가 좌중을 훑어본다. 다섯 명의 장로가 한 사람에게 압도되고 있었다.
장포 자락을 젖히며 옷소매를 바로 하더니 빨갛기 그지없는 입술을 열었다.
“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는.”
그 말에 패왕과 구유비마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마도인은 누구보다 힘을 숭배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천마이다.
그런 천마가 없는 곳에서 천마신교가 하나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천마, 그 천마라는 자리의 부재가 곧 천마신교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두 장로의 표정이 급변했다. 감히 천마를 논하다니.
저 작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하여 저런 이야기를…….
“십 년. 십 년입니다. 십 년간 돌아오지 않는 천마의 부재를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지요.”
패왕은 그 누구보다 천마 천무린에게 충성을 바친 장로였다. 그의 무력을 깔끔하게 인정했던 인물 중 하나였으며, 구유비마는 천마신교의 모든 교인들을 대표하여 천마의 사라진 흔적을 찾아내는 임무를 맡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 장로에게도 천마 천무린의 흔적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 불리는 것들도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치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천마신교의 장로라는 작자들이 아직까지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마황이 이를 훤히 드러냈다.
“천마의 자리에는 내가 오를 겁니다.”
쿠궁!
패왕과 구유비마의 표정이 급변했다.
“혹시라도 용건이 있는 이는 상대해 줄 겁니다. 단, 이 모든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이고, 그 이외의 모든 내분은 허용치 않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아!
천마전 전체를 감싸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귀곡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황이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이 귀곡성은 다섯 장로의 모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끔찍하고도 소름끼치는 그 기운은 다섯 장로의 발끝부터 천천히 잠식해 가더니 순식간에 목젖까지 감쌌다.
“조만간 천마의 자리에서 교인들에게 공표할 겁니다. 그때까지는 부교주이니만큼 호칭 정리는 알아서 해 주시고.”
마황 갈천중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다섯 장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벽력왕, 수룡왕과 손을 잡을 겁니다.”
그 말에 구유비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사적으로 사파라는 이름에 몸이 반응한 것이었다.
“마황! 지금 천마신교를 고작 사파 나부랭이와 손을……!”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방금 말한 것 같은데요. 구유비마. 나이가 드니 학습 능력이 떨어지나 봅니다.”
“…….”
반항을 하다가도 자꾸만 마황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게 된다.
그가 보여 준 귀곡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을 보여 주는, 이 소름 끼치는 분위기 때문일까.
“독고황이 없는 정파 무림. 고작 애송이들을 키워 전초기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발상을 실현한 정파 무림이었다면, 이렇게 장로들을 불러 모았겠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황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독고황이 무위를 회복하고.”
씨익.
입가를 말아 올린 마황이 장로들을 쭈욱 훑는다.
“혜성같이 등장한 누군가가 정파 무림의 빛이 되어 하나로 규합한다. 그리고 독고황이 무위를 회복하는 순간, 만독암제, 권왕과 검왕, 그리고 창천검존까지 움직이겠죠.”
그 말에 구유비마가 그럴 리 없다며 고갯짓을 했다.
“할 말 있나 본데요. 구유비마. 발언권을 드리죠.”
“……그렇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없다?”
“……없습니다.”
존대를 듣고서야 흡족한 미소를 짓는 마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아니고 단순히 절대 고수의 숫자만 따졌을 때 천마신교가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마황이 손가락 두 개를 뻗어 보인다.
“두 가지가 변수입니다.”
“……두 가지 말입니까?”
“첫째는 새외삼궁입니다. 뭐, 포달랍궁이야 이미 중원 무림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니 상관없겠지만, 북해빙궁주 설종량과 남해태양궁주 남선은 위험하죠. 북해의 왕과 남해의 왕인데.”
“그보다 더 큰 변수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건데,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요. 왜 이렇게 내가 장황하게 이야길 꺼냈을 것 같습니까.”
마황이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구유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언제 그가 이런 모욕을 받아 봤겠는가.
그런 그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마황 갈천중이 두 번째 손가락을 편다.
“그 생도, 별호가 뭔지 아세요?”
장로들도 정보통이 있었다. 당연히 그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다들 입이 많이 무겁네요? 계속 저만 입을 열기를 원하는 걸 보니.”
“……멸마신군.”
“틀렸습니다. 구유비마.”
멸마신군이 아니라고?
구유비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멸마. 말 그대로 멸마(滅魔)라고 하더군요. 후후후.”
멸마라니.
천마신교에 상반된 별호가 아닌가.
모든 마를 아우르는 천마신교 앞에 마를 멸한다고 표현하는 별호가 나타나다니.
“멸마 천무린. 그가 바로 두 번째 변수입니다.”
마황의 말에 구유비마의 표정이 한껏 차분해졌다.
“……여기 그 누구도 무형노괴보다 약한 이는 없습니다.”
마황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멸마라는 작자가 왜 나타난 건지 아십니까?”
“…….”
“간혹 하늘은 말도 안 되는 인물을 내리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몸을 휙 하고 돌려 천무린의 석상을 몇 번 두드린다.
“세상의 균형을 바로잡고자 말이에요.”
드높은 석상을 올려다본 마황 갈천중이 형형한 안광을 내비쳤다.
“천마신교에 천마와 같은 인물을 내려줬다면.”
여전히 두 번째 손가락을 굽히지 않는 마황이었다.
“정파 무림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
“……설마?”
구유비마가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누가 천마 천무린과 비견될 수 있겠는가.
아니, 천마 천무린이라고 할지라도 약관에 불과한 시기에 무형노괴를 꺾진 못했다.
마도관을 졸업하는 시기가 이립(而立, 서른)이었으니 말이다.
그보다 십여 년을 단축시킨 천고의 기재가 나타났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강호 무림에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법이지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있다가는 그런 이에게 잡아먹히게 될 것이고요.”
마황 갈천중이 혀를 차면서 다섯 장로를 훑었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어차피 말로 당신들을 납득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별로 기대도 안 했다는 뜻이고요.”
상관없다는 듯 갈천중이 첫 번째 손가락, 검지를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사파 나부랭이들? 개X끼들이 모여 봐야 개X끼들일 뿐이지요. 늑대는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X끼들의 우두머리가 늑대 새끼들 정도라면 이용할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새외에 대한 마교의 움직임을 보고 나면 사파 놈들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순 없을 겁니다.”
사파를 아우르고 전 중원 무림에 사도의 왕이라고 불리는 벽력왕과 수룡왕이 마황의 한마디에 늑대 새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는다.
“정면충돌하는 것은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진 정파와 사파의 전면전이 될 거고, 언제든 마교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두 세력 사이를 크게 흔들게 되겠죠. 바로 내가 이끄는 천마신교가.”
마황 갈천중의 두 눈이 패왕과 구유비마에게 닿았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옛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어 멍청한 선택을 하는 아둔한 자가 없길 바랍니다.”
천마전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길 꺼낸 순간부터,
‘이장로, 삼장로, 사장로에겐 시선 한 번 주지 않는다. 그 뜻은.’
완벽하게 제 편으로 만들었다는 뜻.
검마, 사신, 폭산혈산.
심지어 가장 강한 무력대라고 일컫는 검마대와 혈영대, 마궁대는 세 장로의 직속 부대였다.
직속 무력대가 마황의 명에 따라 일찍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마황의 손에 마교가 집어삼켜진 것인가.’
구유비마의 두 눈이 깊이 침잠했다.
“이해하였으면.”
마황의 입가가 비틀리며 패왕과 구유비마를 바라본다.
“움직여야겠지요?”
북해빙궁주 빙천검 설종량.
남해태양궁주, 태양천자 남선.
마황의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두 장로에게로 향했다. 북해와 남해로 향할 이들을 마치 제비뽑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는 마황의 행동에.
“자, 판을 한번 짜 볼까요?”
그리고 그의 장난스럽기까지 한 말투에.
패왕과 구유비마.
두 장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끔찍하게 들리는 귀곡성과 진득하게 덮쳐든 마황의 기운이 사방을 진동시키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