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제211화
전위는 거산도라는 그 이름답게 도력(刀力)이 그야말로 명불허전 그 자체였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천무린에게 패배한 뒤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 녹림의 차기 군주이자 이미 초절정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라선 그였지만, 패배는 그를 다시금 더 높은 경지를 지향하도록 만들었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소음과 기세를 발산하는 전위의 무위는 그 앞에서 선 이를 주저앉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기세를 보였다.
휘이이잉.
그런 그의 앞에.
도 한 자루로 녹림의 수백 산적들을 살 떨리게 만드는 전위의 도를 묵묵히 바라보면서.
흔들리지 않는 청년이 있었으니.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도평(天下道平).
굳건하게 선 두 다리로 지탱하며 검을 잡고 자세를 잡는다. 상대를 겨누면서 천하삼십육검의 기수식이 되는 자세.
그러나 그 순간에도 맹렬하게 송무를 쪼개기 위해 날아오는 우악스러운 도격이 펼쳐진다.
눈앞에 도격이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송무의 두 눈엔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그 모습에 되레 전위의 표정이 흔들렸다.
‘강기의 폭풍을 마주하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막지 못하면.
아니, 어설프게 막다간.
대번에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질 텐데.
“……또 방심하시네요.”
그리 생각하던 순간에 송무의 짧은 말 한마디와 함께 검이 움직인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도사(天下倒瀉).
거력에 맞서 나아가는 천하삼십육검의 벼락같은 절초가 아래에서 위로 쳐 냈다.
콰앙!
그러나.
맥없이 사라지는 천하도사의 기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무의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고, 강맹한 거산도법을 맞이해 다시 한번 검이 올려쳐진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승천(天下乘天).
천하도사에 이어 천하승천.
연속해서 천하삼십육검의 이격이 펼쳐진다.
콰가강!
두 번이나 연격으로 부딪쳤지만.
“소용없다……!”
전위의 도격은 찰나에 멈칫거렸을 뿐 그 강맹한 위력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송무는 별 상관없다는 듯했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성천(天下星天).
송무의 검 끝에 유유히 흐르는 검강(劍强).
콰아아앙!
첫 번째 검격과 두 번째 검격이 무색하리만치.
세 번째 검격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응축되어 격렬하게 터져 나온다.
전위의 도격이 일순 멈췄다. 두 팔이 굳어 버린 듯 내리쳐지지 않는다. 거산도에 맞선 얇은 검 한 자루가 공명하며 막아 내고 있었다.
“대체…….”
전위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요술을 부린 것이냐…….”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호(大虎)의 음성. 큰 범이 울부짖는 듯한 음성이 전위의 입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그 말을 듣고 송무는 굵은 땀방울을 미친 듯이 흘리면서 전위의 표정을 마주했다.
“……당신과 나의.”
카가가가강!
금속의 마찰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전위가 뿜어내고 있는 도의 힘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송무의 검 끝이 부서져라 뒤로 밀려났다.
송무는 이를 악다물어야 했다. 계속해서 전위의 압박이 강해진다.
“시간의 농도가 달랐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맞춘다.
“시간의 농도……. 지금 내 수련량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수련의 양이라면 그리 부족할 리 없었겠죠. 다만 사선(死線)을 그리 넘을 수 있었을까요, 당신이?”
그 말에 전위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그렇다면 네놈은 그 짧은 시간에 사선을 그리 많이 넘었단 말이더냐?”
“……당신 앞에서 제 검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끼기기기긱!
눌려 왔던 송무의 검에 힘이 들어가며 다시금 균형이 맞춰진다.
“……오만하구나. 감히 네놈 따위가!”
거산도가 송무를 납작하게 만들겠다는 듯 힘차게 내리쳐진다.
송무의 단전에서 정순하고도 청명한 기운이 넘실거리며 검 끝에 몰려든다.
콰앙!
“쿨럭.”
왈칵.
송무의 입안에서 한 움큼 핏물이 새어 나왔다.
“감히 네놈 따위가 내게 이리 오만방자하게 군단 말인가! 고작 생도 따위가!”
콰앙!
역팔자로 꺾인 전위의 험악하게 일그러진 눈매를 바라보며 송무의 검이 다시금 올려쳐진다.
왈칵!
단숨에 울컥거리는 핏물을 애써 삼킨 송무였다.
콰앙!
콰앙!
쾅쾅쾅!
미친 듯이 질주하는 경주마의 맹렬한 속도처럼 내리쳐오는 도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상대를 전혀 봐주지 않고 휘몰아치는 저 도격의 폭풍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으득.
전위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도격을 몇 차례나 받으면서도.
‘……저 눈!’
초연한 송무의 두 눈이 전위의 속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차분하기 그지없는 그 눈이 전위를 패배감에 물들게 만들었다.
지난날이 스쳐 지나간다.
“……감히! 가암히!”
전위의 두 눈에 송무의 모습이.
천무린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입가에 핏물을 쏟아 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저 눈빛과.
검을 잡은 손은 언제든지 전위를 벨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휘청거리는 자세를 보이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 모습이 전위의 자신감을 조금씩 잃게 만들었다.
평정심(平靜心).
그것을 잃기 시작하는 전위였다.
평정심을 잃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는 전위의 모습을 보면서 송무의 두 눈이 시리도록 차가워졌다.
이전에는 볼 수 없는 빙골심안(氷骨心眼).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유운(天下流雲).
송무의 검에 담기기 시작한 무수한 기운이 응축되더니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면면부절(綿綿不絕)의 묘리.
넘실거리는 검강의 향연이 수많은 도격을 마주하고도 끊기지 않는다.
흡사 포탄의 굉음을 내면서 송무를 박살 내려는 도격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천하유운의 초식이 끊기지 않고 검강을 유유히 막아 낸다.
꽈가가가강!
전위의 폭발적인 힘에도.
강맹하기 그지없는 위력을 마주하고도.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벽을 때리지만, 그 힘을 흡수라도 하듯.
마치 물을 흡수하는 솜처럼 송무는 전위의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전위는 그 모습에 더욱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노오오오옴!”
송무가 펼쳐 내는 무위가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저 기세가.
저 검세가.
저 무위가.
저 신위가.
저토록 어리고 앳된 청년이 보이는 침착성과 차분함, 그리고 담대함이 그려 낸 저 검의 기운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이해를 도울 생각 따윈 없다는 듯 송무는 그의 폭발적인 도격을 모조리 막아 낸다.
“당신은 너무도 강합니다. 하지만 지난 패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네요. 그 늪에서 전혀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차분히 말하는 송무.
그 말이 오히려 전위의 마음을 뒤흔든다. 광포하게 휘둘러지던 거산도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평정심을 잃은 전위가 이제는 근간마저 흔들린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송무였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오의(奧義).
천하백경(天河白鯨).
천하삼십육검의 최후의 절초이자 모든 검초의 힘을 녹여 낸 단 하나의 검초.
인체에 존재하는 서른여섯 가지 방위 안에 모든 것을 막아 내고 방어해 내며.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이루는 근간인 인을 아우르는 검초.
서른여섯의 방위를 점하고 모든 공격에 대해 직시하며 모든 외격(外激)으로부터 스스로를 수호하는 검.
그 검의 서른여섯 개의 점이 하나로 모인다.
그러자 패도적으로 쏟아지는 도격.
콰아아아앙!
패도거산(覇道巨山).
말 그대로 송무가 뻗어 내는 모든 검격을 소멸시켜 버리겠다는 듯 타오르는 강기가 단숨에 그 점을 찍어 눌렀다.
강대한 내력의 폭풍이 한 점으로 변해 버린 송무를 무수히 두드렸다. 심장을 옥죄는 압박감과 함께 버티지 않으면 온몸이 뒤틀려 고꾸라져버릴 듯했다.
‘이것이 차기 사파의 군주가 될 인물.’
분명 전위보다 강한 이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후계자라는 말은 왕이 물러나야만 그 위로 올라설 수 있는 법이니까.
벽력왕은 건재하고, 못해도 십여 년은 족히 지나야 전위가 그 자리를 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위가 보여 주는 거력은.
송무가 상대했던 어느 누구보다 강했다.
휘둘러지는 도격의 풍압만으로 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이고, 스쳐 지나간 도의 폭풍에 온몸이 짓이겨질 것 같았다.
거센 반발력에 천하백경의 초식이 단숨에 부서질 듯 하나의 점이 무수히 흔들린다.
하지만.
콰앙! 콰아아아아아앙!
콰앙! 광쾅쾅!
터져 나오는 폭음에도 흔들렸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송무의 코와 입에서 폭포수처럼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상당했다. 온몸을 적시고 쏟아지는 피로 인해 송무의 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고.”
산적 한 명이 중얼거리듯 내뱉은 음성이다. 그의 말처럼 송무는 당장이라도 쓰러져 저 도격에 두 쪽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 하나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불안 따윈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지나온 시간으로 인해 새겨진 신의(信義)이자 신뢰(信賴)였다.
콰앙! 콰앙! 광광쾅!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다. 전위로서는 당최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쓰러지지 않는단 말인가.
으득.
도에 힘을 실은 채, 전위의 몸이 허공에 떴다. 그러자 도의 끝에 담긴 강력한 강기가 호선을 그리며 아래에서 내리그었다.
일도거산(一刀巨山).
단 한 번의 도격에 전위는 모든 도를 담았다.
그리고 송무를 향해 그대로 도를 내려친다.
한 자루의 검이 점이 되었고.
한 자루의 도가 선이 되었다.
그리고 두 병장기가 부딪치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시야가 빛무리에 명멸(明滅)했다.
이어서 의식이 순식간에 암전(暗轉)한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푸화아아아악!
송무는 피를 토하며 자신이 쥐고 있던 검이 먼지처럼 산화된 것을 보고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네 녀석의 말대로 나의 패인은 너를 얕보고 방심했다는 것이겠군.”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전위는 자신의 심장에서 한 치 비껴 나간.
무려 서른여섯 개의 점이 자신의 가슴에 찍혀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조금만 더 깊었다면 전위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 전위는 자신의 거산도를 허리춤에 서서히 끼워 넣고는 쓰러진 송무를 담담하게 둘러업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쓰러진 송무에 대한 살의도.
더 싸우겠다는 의지도 없어진.
아니, 어쩌면 더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전위가 그 청년과 송무를 훑어보다가 다른 생도들을 쭉 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