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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08화 (208/250)

제208화

제208화

“후후, 운남에서 제법 빨리 눈치를 챘나 보군. 그렇다고 한들…….”

풍산은 자신의 앞에서 거치검을 막은 사내를 훑었다. 한눈에 봐도 고수였다. 악교운이었다.

‘……운남에 이 정도의 인물이 또 있었던가.’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달라질 것은 없다. 신창과 천성검협은 어차피 죽을 테니까.”

그러면서 전위를 바라봤다. 더 귀찮아지기 전에 힘이 빠진 신창과 천성검협을 죽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드디어 나타났는가?”

전위의 시선은 풍산의 검을 막은 악교운이 아니라 뒤편을 향한다. 눈앞에 있는 신창 신준건과 천성검협 하후성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몸을 홱 하고 돌렸다.

“뭐야? 간만이네. 반가운 얼굴이야.”

익숙한 얼굴, 장난기 넘치는 미소, 한없이 여유로운 표정까지.

그때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던 단 한 사람.

고작 일 년하고도 반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앳된 외모의 청년은 더욱 훤칠해졌다.

“……멸마신군.”

“알면서 왜 불러? 내 얼굴이 그리 보고 싶었어?”

천무린이 말을 내뱉은 후 하품을 쩌억 하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악교운이 풍산의 검을 쳐내고 밀쳐내자 풍산이 몇걸음 물러나 상황을 흥미롭다는 눈으로 지켜봤다. 그러다가 궁지에 몰린 신창 신준건과 천성검협 하후성을 바라보며 몸을 숙인다.

저벅, 저벅.

그런 후 포위망을 이루고 있는 산적과 수적의 무리 사이를 유유자적 걷는다.

백여 명이 넘는 산적 떼와 수적 떼 사이를 가벼이 걸어 하후성과 신준건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몰골들이 왜 이래. 피죽도 안 끓여 줬나 봐요?”

“……며, 멸마신군.”

“호오.”

하후성이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눈앞에 선 미청년을 바라봤다. 삼대 무관 비무대회 이후 처음 보는 얼굴. 그리고 독고황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한 장본인.

하후성은 저도 모르게 말라비틀어진 손을 뻗었다.

꽈악.

후웅!

하후성을 벌떡 일으켜 세운 천무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가벼워진 거 아닌가요?”

“……그렇게 됐네.”

“고작 산적 새끼들하고 수적 새끼들 하나 처리 못 해 가지고. 으휴.”

눈앞에서 질책하는 저 망둥이 같은 모습은 여전했지만, 하후성은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수십, 수백의 적 앞에서.

그것도 교룡검 풍산과 거산도 전위라는 초절정 고수를 눈앞에 두고도 저토록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청년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이 든 것이다.

“자, 자네, 자신 있는가? 저 둘은 수로채와 녹림채의 차기 채주들이 될…….”

“자신이요? 제가 왜요?”

천무린이 피식 웃으며 주변을 쭉 훑는다. 산적들과 수적들이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먹잇감을 포착했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제가 움직이기엔 끗발이 너무 떨어져요.”

응?

그게 대체 무슨?

하후성이 주춤거리며 천무린을 바라보는 순간.

“그렇군. 네놈이 바로 멸마신군이라는 애송이 놈이냐.”

멸마신군이라는 별호.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이전에 천무린의 무위를 목격했던 녹림의 호량채 산적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멸마신군이다.”

“저, 전위 님과 호각으로 붙었다던……?”

“호각이 아니라…… 패배하셨…….”

산적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어찌 모르겠는가.

스무 살도 안 된, 고작 무림학관의 생도라는 이 청년이 녹림의 차기 군주라는 전위를 상대로 이겼다.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호량채의 포위망이 구축된 그곳에서 말이다.

꿀꺽.

호량채 산적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하자, 귀왕수룡대 수적들 역시 덩달아 긴장했다. 그들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다 보니 멸마신군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천무린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쓰러질 듯한 신준건을 부축했다.

“아이고, 나이도 지긋하게 먹은 양반이 왜 이렇게 무리를 했어요?”

“……허허, 늙으니 자연스레 후배의 도움도 받는구먼.”

“선배 된 도리로 뒤로 물러나서 좀 지켜봐 주는 것도 좋다고요. 아시죠, 어르신?”

신준건은 낭창하게 말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천무린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곳은 적지(敵地) 한복판이다.

그런 곳에 등장하여 분위기를 바꾼 것도 모자라서 무시 못 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천무린의 등장으로 득의양양하던 산적과 수적이 꼼짝도 못 하고 있다.

“허명을 얻더니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후후후, 내 당장 너의 모가지를 잘라 사천무관의 정문에다가 내걸고 말 것이다.”

교룡검 풍산의 서슬 퍼런 말과 동시에.

투화아아아아아!

삽시간에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 모든 이들의 몸을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짓누르는 살기가 퍼졌다.

교룡검 풍산이 내뿜는 진득한 살기였다.

스윽.

천무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풍산을 바라본다.

“왜? 바짓가랑이 사이가 움츠러드냐? 소피가 마려우면 제발 멀리 가서 개XX처럼 싸도록. 냄새나니까 이 애송이 놈아.”

피식.

교룡검 풍산의 말에 천무린이 피식 웃었다.

“수로채든 녹림채든 인물이 없나 봐? 너희 같은 새끼들을 차기 채주니 뭐니 하고 내세우니까 말이야.”

“…….”

“그리고 넌 말이야. 좀 다를 줄 알았더니 다른 사파 새끼들이랑 다를 바가 없네. 오늘 좀 맞자.”

천무린이 풍산을 무시하고 전위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전위 역시 마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모습에 풍산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살기를 더욱 돋웠다. 자신이 풍기는 살기에 직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천무린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지만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채주를 모욕한 천무린을 바라보며 호량채의 부채주인 막광야는 이를 으드득 하고 갈았다.

“네 이노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헛소리를……!”

서걱!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목덜미에 닿은 검에 의해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얼마나 깔끔하게 잘려 나갔으면 폭포수처럼 쏟아져야 할 핏물조차 흘러내리지 않았다.

막광야의 목에 실선이 그어지더니 기우뚱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아, 맞다. 미리 말해 줬어야 하는 건데. 너희를 족칠 사람은 참고로 내가 아니야.”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하는 천무린의 시야에 막광야의 목을 단번에 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검을 손을 든 검객이자 한때는 검귀(劍鬼)라고 불리던 사내.

지난 녹림과의 혈전 때 제 한 몸을 불사르기 위해 뛰어들었던 남자가 단번에 막광야를 베고 자신의 무력을 여실히 입증했다.

“아유, 담진 교관님. 아무리 그래도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 주지 그랬어요.”

“……그럴 여유가 없다. 무린아.”

검귀 담진.

막광야와 비등비등했던 지난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훨씬 날카로워진 기세로 더 높은 경지에 오른 고수가 되었다.

수없이 갈고닦은 담진의 기세에 풍산과 전위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담진이라고? 저 정도의 인물이 또 있었나.’

‘…….’

저벅, 저벅.

그리고 풍산과 전위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두 사람.

다름 아닌 광야차(狂夜叉) 악교운과 천살대 대주가 된 천살대주(天殺隊主) 이검이었다.

“거기 두 분도 너무 강하게 하지 말고요!”

“……알았다.”

“알겠습니다. 주군.”

악교운과 이검이 풍산과 전위 앞으로 제각기 나섰다. 풍산이 그 모습을 가늘어진 두 눈으로 바라보더니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초절정 고수가 셋이라.”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력치고는 놀랍도록 뛰어난 인물들. 듣도 보도 못한 전력이었다. 운남에서 사라진 인물들이 제법 많다고는 들었지만…….

“아아. 맞다, 맞아.”

천무린이 신준건과 하후성을 부축하며 걸어가다가 말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갤 돌려 풍산과 전위를 바라봤다.

“초절정 고수 셋만 있는 건 아니야.”

그 말과 동시에 산적들과 수적들 사이로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도 몸을 푸는 거야?”

“하아, 너무 길고 길었다. 아주 지루했어.”

“나도 이제 사람이랑 칼 좀 부딪치고 싶었다고.”

“하긴, 저 새낀 사람 새끼가 아니었지.”

“……난 제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만 먹고 싶어.”

능청스럽고도 유쾌한 목소리들.

누가 이런 전장에서 저리도 천진난만한 말을 꺼내겠는가.

하지만 풍산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 서 있는 이들이 고작 약관에 이른 청년과 여인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는데.

귀왕수룡대 수적들과.

녹림의 호량채 산적들이.

이렇게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마치 제집 앞마당에 나온 것처럼 한껏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천무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저들은 응당 당연하다는 기세를 보인다.

“……이, 이게 무슨?”

“뭘 그리 당황한담.”

배단아를 기준으로 설화린, 당지혜, 낭소소가 함께 한층 더 아름다워진 모습과 성숙미를 풍기며 시선을 빼앗았다.

아름다운 여인들로 보이는 네 사람, 그리고 헌앙한 청년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보여 주는 날카로운 기세.

그뿐 아니라.

스르륵.

수풀과 나무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무복의 사내들.

가슴팍에 ‘천살(天殺)’이라는 표식을 새긴 천살대 서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 년 반 동안 천무린 아래에서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조련된 서른 명의 살수들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살기까지 느끼는 순간, 산적들과 수적들은 자신들의 심장이 아프게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큭큭. 아우야, 저놈들이 아주 바짝 얼었구나.”

“형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놈들은 이제 고양이 앞에 선 쥐 신세입니다.”

거기다 초절정 고수 셋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경지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거대한 도를 등 뒤에 멘 채 나타났다.

바로 이용과 이호 형제였다.

고작 오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곳에 있는 백여 명이 넘는 산적과 수적들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오십여 명이 뿜어내는 살기가 그득하다.

“나 먼저 간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 상태가 안 좋아서 말이지. 여기 누구 볼 사람 없으니까 한바탕 몸 좀 풀고 와!”

천무린이 낭창하게 말하자.

“알겠다. 그리하지.”

“……주군!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무린아, 내가 도와주는 게 어떻겠느냐?”

악교운과 이검, 담진이 물었다.

“주군! 주모님 두 분은 모셔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형님도 참! 말 꺼내기 전에 미리 모시고 가자니까!”

이용과 이호.

“무린아! 조심히 가고 있어!”

“하여간 우리한테 이런 일이나 시키고 말이야.”

“……난 못 까불겠다. 어제까지 두들겨 맞은 게 아직 온몸에 남아 있어서.”

7기수와 송무와 태강 그리고 황태를 비롯한 8기수 생도들.

천살대원들과 5기수 소화진까지.

모두가 남만에서의 폐관 수련을 마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이들이 하나같이 무게 있는 고수의 모습으로 등장하자…….

“한 명이라도 도망치게 냅 두면 너희들 다 죽는 거 알지? 히히.”

그 말에 오십여 명이 넘는 이들이 우악스럽게 적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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