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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207화 (207/250)

제207화

제207화

교룡삭(蚊龍索).

교룡의 힘줄을 꼬아 만들었다는 밧줄로, 희대의 기형이기(奇形利器)로 불린다.

가벼우면서도 매우 질겨서 끊어지지 않는다.

어지간한 검력(劍力)으로는 절대 끊지 못하는 이 밧줄.

바다의 이무기로 널리 알려진 교룡이라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영물의 힘줄을 꼬고 또 꼬아서 만든 것이다.

그런 밧줄을.

후우우웅!

퍼엉!

“조심하게.”

티잉!

신준건이 창에 내력을 주입하여 막아 냈지만, 잘려 나가는 소리가 아닌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흡사 만년한철로 만든 듯한 탄력성을 지닌 무기와 부딪친 것처럼.

교룡삭에 적중당한 하후성은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며 왼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말라비틀어진 입술, 퀭한 눈.

단내가 느껴질 듯한 거친 호흡과 어질어질한 정신.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넘어 칠 주야 동안.

저 교룡삭으로 신준건과 하후성을 끊임없이 극한의 극한까지 내몰고 있었다.

먹을 것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붙이니 초절정이라는 경지조차 무색해진다. 하후성의 정신 상태 역시 극한까지 내몰렸다.

게다가 이는 비단 하후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던 신준건 역시 급격히 무너지는 하후성의 상태에 따라 보조를 맞춰 가며 용을 쓰니 정신력과 체력 역시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

“더 이상 말하지 말게. 그조차 힘을 아끼세.”

“놈들이 이토록 소극적으로 응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후성의 두 눈은 수적과 산적들의 포위망 사이에 낀 교룡검 풍산과 거산도 전위를 훑었다.

저 둘 때문에.

특히 교활한 교룡검 풍산의 계략에 빠져 지금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교룡삭?

물론 기형이기이므로 보기 드문 물건임에는 틀림없었으나.

자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초절정 고수인 그들에게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산적들과 수적들의 포위망에,

조금이라도 집중하여 포위망을 뚫으려고 하면 풍산과 전위의 검기와 도기가 방해했다. 포위망은 결코 두렵지 않았고, 그들을 옥죄지도 못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괴롭혔다. 잠을 잘 수 없도록 밤새도록 돌아가며 괴롭혔고,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려고 하면 대뜸 공격을 해 왔다.

운기조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단전은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내력조차 없으니 물 먹은 솜처럼 몸이 한없이 무거워지기만 했다.

최악의 몸 상태였다.

“아이고, 이제 영락없는 늙은이 한 명과 밧줄 하나 쳐 낼 힘이 없는 부랑자 한 명이네.”

“킥킥. 조만간이야, 조만간.”

꾸욱.

사람이란 참으로 나약한 존재라고 여겨질 때가 바로 이럴 때다.

보통 때라면 누가 봐도 뻔해 보이는 수작을 산적들과 수적들이 부린다고 해도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이 무력해지면 무력해질수록 저런 얕은 도발에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평정심을 잃은 하후성은 자신이 한참 부족하다고 여겼다.

아마 거산도 전위와 하루 밤낮은 물론이고 죽을 때까지 생사결을 치르라고 했어도 여지없이 검을 들었을 하후성이었겠지만.

한참을 싸우던 전위는 풍산의 전략대로 치고 빠지는 전법을 택했고, 그 뒤부터 하후성은 그저 이를 악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전력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싶어 했다. 이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빨리 흐르고 차라리 명예롭게 죽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인 하후성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게. 악착같이 버티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게.”

“하, 하지만.”

“그리 죽으면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 같은가. 결국 산적과 수적들의 속임에 넘어간 멍청한 작자로 남을 뿐이네. 살아야 명예도 회복하는 걸세.”

신준건의 말은 단호했다. 신준건 역시 하후성만큼이나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어 보였지만.

“내 삶은 항상 전장과 함께였네. 오히려 저놈들을 질리게 만들어 버리겠네.”

“하하,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희망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 * *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뛴 것이 요 근래에 너무 빈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욱은 쉬어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천가장을 위해 죽을힘을 다하겠다는 뜻을 품었기 때문이다.

“어푸푸!”

하지만 자꾸만 입가에 벌레들이 달라붙고.

쿠당탕탕!

“아이고! 무릎이야.”

전욱의 발 앞에 차이는 잔가지들과 나무뿌리,

각종 식물들이 그의 바쁜 갈 길을 방해한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자신을 누가 볼까 싶어 후다닥 일어난 전욱은 몸에 묻은 흙을 털 생각도 않고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위사검의 명에 따라 남만으로 가서 폐관 수련을 하는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허억! 허억! 주, 주구운! 크, 큰일 났어요! 큰일 났다고요.”

평소에 식수와 식량을 놔두던 곳을 넘어서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들을 헤치며 크게 소리쳤다.

“들리세요? 들리면 누구라도 대답 좀 해 봐요! 대답 좀 해 보라고!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다고!”

우지끈.

흠칫.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제야 전욱은 긴장의 끈이 풀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뭡니까? 이제야……. 응?”

깡충.

황갈색의 토끼 한 마리가 전욱의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서 그대로 달아난다.

고작 토끼에게.

한숨을 푹 하고 내쉰 전욱은 다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려는 찰나.

두리번. 두리번.

이상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배달한 식량과 식수를 놔두면서 곁눈질로 보았던 그 길을 따라 오면 있을 거라던, 전에 송무가 남긴 말을 기억해 쭉 따라 들어왔는데, 당최 보이지 않는다.

“여기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주춤하고 있는 전욱의 뒤로.

촤아아아아아.

강렬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전욱을 스쳐 지나가는, 칼날 같은 소리에 순간 그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것은 바로.

사람 냄새가 나는 무수한 바람 소리였으니까.

* * *

“채, 채주님!”

“수룡왕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드디어 온 건가?”

때맞춰 거산도 전위에게도 동일한 벽력왕의 전언이 전달되었다.

전언은 단 한 단어.

「 함락 」

짧고 명료한 단어 하나.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곧.

“전쟁 발발이로군.”

“이야, 벽력왕 고집이 정말 대단하네. 우리 수룡왕 고집도 만만찮은데.”

찌릿.

“아오, 알았어. 표정 좀 풀어. 벽력왕한테 한 소리 했다고 그렇게 정색하기냐.”

풍산의 말에 전위가 콧바람을 ‘흥!’ 하고 불더니 고갤 돌린다.

그곳엔 자신과 검을 부딪쳤던 무인과, 어딜 가도 인정받을 만한 창객이 포위망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나?”

“왜? 보기 거북하냐?”

“내 손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근데 왜 하지 않았는데?”

풍산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전위를 바라본다.

“적당하게 싸워라. 적당하게. 잘 생각해 봐. 여긴 적지(敵地)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교룡검 풍산의 말에 전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듯.

“하물며 네놈이 원하는 그 애송이 놈과 제대로 붙으려면 힘을 비축해 놔야 될 거 아니냐.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질 판국에 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신창이고 나발이고, 천성검협이고 나발이고 쟤들 죽이려고 일대일을 고집하다가 혹여 네가 내상이라도 입는다면.”

풍산이 혀를 쯧 하고 차면서 말을 마무리 짓는다.

“그건 비단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장강수로채에도 문제가 된다, 이 말이야. 알겠냐?”

“그래.”

짧고 간결한 대답이었지만, 풍산은 그제야 흡족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거치검을 꺼내 들었다.

“교룡삭은 우리 수로채의 저력 중 하난데 말이야. 저놈들 잡으려고 쓴 거야.”

“아까운가?”

“아깝지. 저게 다 돈이야. 저걸 팔면 약탈 따위 안 하고도 여자 궁둥이를 주무를 수 있다고.”

“……점점 수룡왕을 닮아 가는군.”

“칭찬이지?”

이빨을 훤히 드러낸 풍산이 전위를 힐끗 쳐다보더니 기진맥진해 있는 신창과 천성검협을 재빨리 훑었다.

“아마 녀석들은 돌파구를 찾으려고 용을 쓸 거야. 그러면 기껏 토끼몰이를 하면서 수하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인 게 무의미해지잖아.”

“……이젠 나서도 된다는 거냐?”

“저 끝을 봐라.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저 몰골들을. 나선다는 개념이 아니라 정리한다는 개념으로 가야지.”

“잡는 순간, 전쟁의 시작이다.”

“전쟁은 개뿔. 저 새끼들 둘 잡으면 전쟁이란 거창한 단어를 쓸 것도 없다. 오늘 하루 만에 운남을 함락시킨다.”

“간단해서 좋군.”

제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잠을 자지 않고, 밥을 먹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끊임없이 긴장시켜서 정신력 고갈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버틴 게 용한 거지.”

“……적으로서 인정해 줄 만하다.”

“아직도 그런 낭만을 갖고 사냐.”

혀를 찬 풍산은 거치검을 어깨 위에 척, 하고 올리더니 전위를 바라봤다.

“적으로 인정해 주는 건 여기까지고, 우린 우리 할 일을 해야지?”

“알겠다.”

전위 역시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일은 추후 천무린을 잡을 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그 외의 일은 풍산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그편이 수하들의 피해도 줄이고, 운남에서 가장 거추장스러운 이들을 단숨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억, 허억.”

하후성과 신준건의 앞에 나서는 전위와 풍산이었다.

“아유, 가까이서 보니까 몰골이 더 말이 아니네. 어떡한담?”

“허억, 허억, 이따위 비겁한 수작으로……!”

“곱게 자란 티를 벗질 못하시네. 뭐가 비겁한 수작이야? 되레 비겁한 건 네놈들이 식량을 불태우고 독으로 식수를 못 먹게 만든 거지.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 양반아.”

풍산의 말에 대꾸할 힘조차 없는 하후성이었다.

방금까지 치른 교전으로 인해 이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단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내력에 검집을 지팡이 삼아 겨우 버티고 서 있는 것이 고작인 지금,

눈앞에 선 풍산의 저 당당한 모습은 그의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정사대전은 이미 시작되었어. 그리고 그 시작의 첫 번째 제물은 바로 네놈들이고.”

풍산의 거치검이 바람을 가르며 소리를 냈다.

후용!

그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하후성의 목을 향해 대번에 거치검을 내리긋는다.

촤아아아아!

바로 그때.

키기기긱!

사람의 목을 벴다면 절대 날 수 없는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정사대전? 시작했다고? ……당사자가 없는데, 그건 또 왜 시작한 거래. 하여간 사파 새끼들 더럽게 급해요.”

그와 동시에 풍산과 전위 뒤에서 낭창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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