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제200화
신준건이 뻗어 내는 창격, 그리고 창끝에 맴돌기 시작하는 푸른 기운은 순식간에 뭉쳐지더니 그대로 내리그어졌다.
후우우웅!
콰앙!
두 주먹을 교차하며 끌어낸 기운으로 창격을 막아 내던 양적의 양옆으로 각을 좁혀 토룡채주와 백마채주도 제각각 검을 들어 막아 냈다.
힘을 분산하기 위해 세 채주가 힘을 합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파앗!
신준건의 뒤를 점하며 검을 휘두르는 세 절정의 고수들이 줄기차게 검기를 뿜어 댔다.
“……쯧.”
짧게 혀를 찬 신준건이 창대를 회수하자마자 창대 가장 밑단의 뭉툭한 부분을 당겨 뒤를 점한 산적의 명치를 밀쳐 냈고.
동시에 그 창대가 횡으로 휘둘러지며 산적들의 움직임을 밀어냈다.
“억!”
“윽!”
가볍게 밀쳐 낸 듯 보이는 신준건의 창이었지만, 그로 인해 산적들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쿠당탕탕!
동시에 앞으로 짓쳐들어오는 세 채주를 바라보며 신준건이 싸늘한 시선을 보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그대로 창을 휘둘렀다.
챙! 챙챙채앵!
“……해 볼 만한 것 같은데?”
“충분하지. 절정 고수 여섯이면 뭔들 못 하겠소!”
“흥! 신창이라고 나이를 안 먹는 것은 아니잖소. 대번에 이 기세를 몰아 숨통을 끊어 놓자고.”
창격을 세 채주가 돌아가며 막아 낸다. 분산된 힘으로 막아 내다 보니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여긴 것이다.
넘어졌던 세 명의 절정 고수까지 합세하여 여섯이 신준건의 반경 안으로 들어가고자 용을 썼다. 그리고 점차 신준건의 창격이 눈에 익숙해지는지 하나둘씩 신준건의 품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간만에 창을 들어서 나약한 모습을 보였구먼. 쯧.”
눈앞에서 쇄도해 오는 절정 고수 한 명을 스윽 하고 훑어보더니 신준건은 그대로 투창하듯 찔렀다.
후우웅!
“……!”
익숙해진 창격에 비해 무려 서너 배는 빨라진 속도에 차마 대응할 수 없었던 산적은 내력을 불어넣어 검기를 일으켰다.
제아무리 신창이 마음먹고 뻗어 낸 공격일지라도, 다른 이들이 함께 막아 준다면 충분히……!
푸욱!
그러나 절정 고수의 가슴께가 꿰뚫렸다.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바르르르.
온몸에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파들거리더니 그대로 절명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창백하게 질려 버린 표정을 한 채.
“……힘을 좀 줘 버렸더니 이렇게 되어 버렸군. 어쩌겠는가. 이해 좀 하게나. 여전히 힘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을. 십여 년 만에 제대로 해 보는 창질이라 그런지 영 시원찮아.”
신창 신준건이 창끝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내며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후두둑.
다섯 명의 시선이 일제히 신준건에게로 쏠렸다.
저벅.
한 걸음.
신준건의 발이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를 밟으며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던 다섯 산적이 뒤로 주춤주춤한다.
‘……수, 순식간에 찔러 죽여 버리다니. 그것도 저렇게나 가볍게.’
‘애, 애초부터 우릴 갖고 놀던 거였나? 마, 말도 안 돼.’
‘미, 미친!’
주춤거리는 산적들의 모습에.
“난 기다려 주지 않는다네. 그대들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가지.”
타앗!
풍차처럼 회오리치는 풍압은 물론이고, 유려하게 휘날리는 창기가 푸른 유성처럼 산적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파악!
양적이 이를 악물면서 다른 두 채주와 시선을 마주하고 맞서 주먹을 들었다.
“어차피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소! 사생결단이라 이 말이야!”
“……으아아아아!”
“죽인다! 죽일 것이야!”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절정의 고수든 일류 무사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후우우웅!
신준건의 참격이 닿은 양적과 두 채주가 전과 동일한 형태로 뻗어 왔고.
세 채주는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전과 동일한 공격이라면 막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반격까지 가능할 터.
이번에야말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걱.
서거걱!
섬뜩하고도 소름이 돋는 소리와 함께 교차하여 막으려던 양적의 두 주먹이 대번에 잘려 나갔다. 너무도 매끄럽게 잘려 나간 두 주먹에서 피분수가 솟구쳤고.
그 모습에 다른 두 채주 역시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양적은 자신의 두 팔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는데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찰박.
피 웅덩이를 밟은 신준건의 발소리를 듣고 나서야.
“끄으아아아아아아아!”
터져 나온 양적의 비명이 사위를 울렸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창백하게 질려 버린 표정으로 잘려 나간 두 팔을 보고 양적은 주저앉아 꺽꺽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두 채주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신준건의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직 우린 네 명이다!”
발작적으로 외친 토룡채주의 고함에 다른 산적들이 애써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다, 단 일격만 먹이면 저 늙은이를 제압할 수 있다! 갈등하지 마라!”
토룡채주가 검을 들었고, 백마채주도 따라 검을 들었다.
여전히 신창 신준건은 상처 하나 없이 멀끔한 자태를 유지하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존 본능 또한 자신들에게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넷 중에 한 명은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고작 혼자 살아남아 산채로 도망간다고 한들 그간 유지했던 명성과 호사는 어쩔 것인가.
토룡채주와 백마채주는 손에 쥔 검을 놓고 도망갈 생각을 버렸다. 혹여 살아남더라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꽈드드득.
두 채주는 자신의 병장기에 내력을 미친 듯이 불어넣었다. 동시에 다른 두 절정 고수까지 상황을 판단하고 내력을 불어넣으며 최후의 한 수를 펼쳐 내기 위해 준비했다.
“호오라. 한 수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것인가.”
감상까지 늘어놓는 신창 신준건이 네 사람의 주변에 감도는 기운을 감지하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
그리고 땅을 박차는 네 사람을 바라봤다.
단전이 텅 비어 버릴 만큼 가진 모든 내력을 끌어올린다. 검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내력이 담겼다.
파아앗!
“죽어……!”
푸욱!
푹푹푹!
터뜨린 비명과 함께 쇄도하며 신준건을 향해 검을 내뻗는 찰나.
신준건의 창이 쭉 늘어난다 싶을 만큼 흡사 빛살과 같이 네 산적의 어깨와 명치, 가슴, 그리고 허벅지를 관통한다.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네 사람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었고, 휘청거리며 땅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 언제?’
‘……마, 말도 안 돼!’
대체 언제 창을 뻗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왜 우리가 균형을 잃었지?
분명 접근해 검을 내리치기만 하면 될 것처럼 보였는데.
어째서.
“……너무 느리구먼.”
그렇다.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창 신준건의 창이 보이지 않았던 네 사람은.
“보이지 않으면, 그리고 막지 못하면.”
후두둑.
“죽어야 마땅하지.”
핏기를 털어 내던 신준건이 싸늘한 일갈과 함께.
“그만 가시게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산적들을 향해 창대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그대로 창날을 세웠다.
“……자, 잠시만!”
“사, 살려 줘어…….”
“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아!”
저벅, 저벅.
심장을 옥죄어 오는 신준건의 걸음걸음에 모두 사색이 된 채 짐승과도 같은 비명을 질러 댔다. 어떻게 된 인간이 저리도 고강하고, 저리도 살벌한가.
“살려 달라. 잘못했다. 좋은 말일세. 하지만 말이네.”
차가움을 넘어 고저가 전혀 없는 음성이 네 명의 산적들의 귀에 파고든다.
“그대들은.”
저벅, 저벅.
“그대들은 그 이야기를 했던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는가. 들어 주었는가.”
저벅, 저벅.
그 음성을 끝으로, 신준건의 걸음이 네 산적 앞에 딱 멈췄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털썩.
네 번의 창격이 정확하게 산적들의 목을 베어 갈랐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허공에 치솟은 네 개의 목이 땅바닥을 굴렀다.
촤아악.
“다음 생에서는 좀 더 자비로운 이들로 태어나시게.”
그리고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무른다. 두 손이 잘려 나간 양적이 바닥을 기는 모습이 보였다.
저벅, 저벅.
“어딜 그리 열심히 가는가.”
신준건의 차가운 음성에 양적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딱 멈췄다. 두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넘쳤고.
창백해진 그의 표정은 새까맣게 죽어 가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로고.”
“제, 제발 살려 주오……. 내, 내 뭐든 하겠소. 죽어 간 이들에 대한 배상을 하라고 하면 할 것이고, 머,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라고 하면 하겠소. 그러니 제발…….”
이젠 울먹이기까지 한다.
그 모습을 신준건은 말없이 내려다봤다. 발버둥치면서 사죄하는 양적의 모습에 절로 말을 멈춘 것이다.
신준건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에게 손자가 한 명이 있다오.”
“…….”
“손자 녀석에게 내가 열심히 가르친 것이 뭔지 아시오.”
“…….”
서서히 창을 든 신준건은 그대로 그어 버렸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이에게,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이에게.”
“…….”
뎅강.
매끈하게 잘려 나간 목이 기어가던 양적의 몸과 분리되어 떼구르르 하고 땅바닥을 구른다.
“자비 따윈 절대 베풀지 말라 하였다오. 그런 인간이라면 살고자 뭐든 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선 신준건.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진다 싶더니.
타아아앗!
흙바닥을 박찬 그의 창이 순식간에 남은 산적 떼 사이로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서걱!
푸르게 빛나는 창끝이 대번에 산적들의 목을 날려 버렸다. 방심하고 있던 산적 떼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지더니 양 떼 속에 들어온 이리를 보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도, 도망쳐라!”
우두머리인 채주들도 모조리 죽은 마당에 그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살기 위해 도망가도 누구 하나 해코지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난 그렇게 무르지 않다네.”
신준건의 창은 무정(無情)했다.
그렇게 단 하루 만에 녹림채 세 채가 전멸하였고.
여섯의 절정 고수와 백칠십이 넘는 산적 떼의 목이 달아났다.
십여 년 만에 은거를 깨고 중원 무림으로 나온 신창의 무위가 다시 한번 온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신창전신(神槍戰神).
그리고 그의 등장과 동시에 절강성 산적들이 모조리 도륙을 당했다는 소식은.
“……속도를 높여라.”
전위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 명령에 따라 물살을 거세게 헤치며 나아가는 호량채와 귀왕수룡대였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