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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99화 (199/250)

제199화

제199화

위사검이 막 도착한 신준건과 전욱을 바라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름 한 가닥 정도 더 늘었으려나.

그런 생각이 드는, 아주 익숙하고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늦었구먼.”

그 어떤 질책도.

그렇다고 분노도 아닌.

그 머나먼 곳에서 이곳까지 도와주러 온 친우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하는 위사검이었다. 잘게 떨리는 위사검의 목소리에 신준건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늦었고, 자네는 늙었어. 당장이라도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지만.”

어느새 신준건을 둘러싼 산적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허공에서 갑작스레 착지한 신준건의 기세를 전혀 읽어 내지 못했다.

토룡채주와 백마채주, 그리고 마량채주 양적마저도 경계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자신들이 고심하여 키워 낸 절정의 고수들이 한 명씩 나서 총 여섯이 신준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겠구먼.”

휘리리릭.

창을 돌리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꿀꺽.

무려 1장 5척(300cm)이나 돼 보이는 창을 가볍게 돌리면서도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신준건의 눈빛.

“십여 년 전만 해도 녹림이 그리 날뛰진 못했던 것 같은데, 세월이 많이 달라지긴 했구먼.”

신준건의 그 말에 마량채주 양적이 한 걸음 나서며 코웃음을 쳤다.

싸움은 기세다. 이 창객이 나타난 순간부터 전장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 양적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친네 한 명 나와서 이렇게 분위기를 잡고 있으니 코가 차고 기가 차는군.”

양적의 비아냥거림에 다른 산적들도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그가 한가락 하는 인물일지라도 여기에는 백여 명이 넘는 산적들과 절정 고수 여섯이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려우랴.

이 정도 전력이라면 염라대왕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을 정도다.

산적들은 그리 생각하며 경계심보다는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휘리리리릭!

신준건은 대답 대신 풍차처럼 돌리던 창대를 쥐더니 그대로 꽂아 넣었다.

허공이라 생각했던 그곳에.

푸욱.

“커, 커억!”

“긴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거리를 좁혀 오던 산적은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젖에 틀어박힌 창끝을 허망한 눈길로 바라봐야 했다.

“자네들이 보여 주던 그 살기라면 저기 저 성 안에 있는 양민들을 유린할 터. 내가 온 이상 그리할 순 없을 걸세.”

꿀럭, 꿀럭.

창을 뽑자 산적은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지며 몇 번의 경련 끝에 절명했다. 그 모습에 놀라 주춤거리기 시작하는 산적들.

조금 전까지 위사검을 바라보던 따뜻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창객은 싸늘한 시선으로 산적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에 산적들이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앞으로 나선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채주였다.

“쫄지 마라! 쫄지 마, 이 새끼들아! 저 새끼가 한따까리 하는 놈일지라도 우린 무려 백 명이 넘는다 이 말이다!”

“오늘 저놈의 모가지를 따는 녀석에게 술과 여자를 원 없이 즐기게 해 주마!”

“모가지가 아니라도 좋다! 눈에 모래를 뿌리고 창대를 잡아 움직임을 막아라!”

마량채주 양적을 비롯한 토룡채주, 백마채주는 산적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들의 광기를 이용해 전쟁에서 이기면 전리품을 얻는 것처럼.

산적들의 삶은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약탈하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종일 굶는 것이다. 다른 이들보다 악다구니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 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산적의 삶이다.

그런데.

저 늙은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면.

살면서 누려 본 적 없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자신들의 채주들이 그리 약속하고 있다. 살면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호사.

술을 마음껏 마시고, 원하는 대로 여자를 취할 수 있다.

그래.

저 노인만 처리한다면.

산적들의 눈가에 광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꾸욱.

그러면서 하나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한 산적들의 눈에 어린 탐욕은 그 어떤 공포도 쉽게 이겨 낼 듯 보였다.

“……쯧.”

신준건이 짧게 혀를 차더니 한손으로 장창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창을 팽팽히 당겼다가 마치 쏘아 내듯이 뻗었다.

긴 장창을 이용한 찌르기.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격이었으나.

푸욱! 푹푹푹푹!

달려오던 산적 다섯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자비 없는 표정으로 신준건은 마량채주 양적을 비롯한 두 채주를 훑어보았다.

“……곱게 죽기 힘들 것이다. 내 반드시 그리 만들어 주지.”

신준건은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땅을 박찼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앙!

허공을 찢어발기기 시작한 신준건의 창끝이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면서 푸른색의 창기를 담아낸다.

본능적으로 그 창기를 막아 내기 위해 제각기 병장기를 치켜들었지만.

촤아아아악!

각종 병장기가 창끝에 닿는 순간, 그대로 절삭되면서 상대의 목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떼구르르.

산적 열댓 명의 목이 단숨에 날아가는 순간에도 신준건의 발걸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번득이는 욕망과 광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신준건의 손길에는 머뭇거림조차 없었다.

확실한 공포.

‘……뭐, 뭔가.’

‘대체 저런 고수가 왜……!’

‘말도 안 되는군.’

세 채주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보여 주는 무위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였다. 산적들은 신준건이 휘두르는 창격의 범위 안으로는 전혀 파고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넘쳐흐르는 창기가 허공을 갈랐고, 정확하게 신준건의 반경 1장 5척(300cm)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넘보지 못하게 만든다. 신준건 자신만의 거리를.

마량채주 양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결이 다르다. 이 정도 대규모의 인원과 전투라면 제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몸이 경직되기 마련이다. 눈먼 창칼에 맞아 죽는 고수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전장이 가진 광기와 혼돈이 그리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자는.

아군에게는 포근함을.

적군에게는 서늘함을.

안겨 주는 미소를 머금고 창을 내뻗고 있었다.

그때 마량채주 양적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시, 신창.”

중원을 통틀어 단연 최고의 창객으로 손꼽히는 자.

창으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이가 없다고 소문난 기인이자 고수.

낭인사(狼人史)에 길이 남을 최고수 중 한 명으로, 십여 년 전에 은거에 들어간 인물.

“……시, 신창이라고?”

“그, 그 신창 신준건 말인가.”

토룡채주와 백마채주 역시 표정이 굳어진 채 양적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산적 백오십 명을 마구 유린하며 날뛰기 시작한 신창 신준건에게 꽂혔다.

절대 고수 한 명이 전장에서 뿜어내는 영향력은 저토록 강력하다. 하지만 단 한 명이 아닌가.

“우리 절정 여섯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지 않겠소?”

“누군가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저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그러다가 세 사람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데 누가.

누가 저 거리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들어가는 순간.

촤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

지금 목이 달아나는 저 산적처럼 이승과의 이별이 확실할 텐데.

“……마량채주! 그대가 책임지시오!”

“그렇지! 본채에서 연통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당신 아니오!”

그 말에 마량채주 양적은 토룡채주와 백마채주를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새끼들이 뭐라고 하는 것인가.

자신이 연통을 받아 연락을 넣었을 때 자신들이 독식하려고 먼저 날뛴 것들이 대체 누군데.

그런데 이렇게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양적의 핏발 선 눈길이 두 채주에게로 향했으나, 두 채주는 딴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양적의 대답을 기다렸다.

꽈드득.

얼마나 주먹을 세게 쥐었는지 양적의 두 주먹에서 절로 피가 터져 나왔다.

“마량채주가 나서 준다면 우리 역시 책임지고 저 움직임을 봉쇄하겠소.”

“설마 그대가 죽기야 하겠소. 어차피 이번에 저자를 막지 못하면 우리도 다함께 죽는 것이오!”

그렇다. 누군가는 책임지고 선두에 나서서 저 괴물을 막아야 한다.

양적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눈앞에 있는 두 채주의 턱에 돌마권을 꽂아 넣고 싶었으나.

‘따로 움직여서는 승산이 없다. 제각기 움직여서는 저 기량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해.’

양적은 꾹 하고 닫혀 있던 말문을 겨우 열었다.

“내가 먼저 가겠소. 허나 반드시 기억하시오. 어차피 신창이오. 내가 죽으면 균형은 단번에 깨지겠지.”

“……물론이지.”

“후후, 잘 생각하셨소.”

토룡채주와 백마채주는 그제야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나서는 양적을 뒤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황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산적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신준건의 창을 맞이하고 있었고.

촤아아아악!

그의 창과 맞닿는 순간, 목과 몸이 분리되어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자신들이 마구 상대를 유린하던 아까의 상황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손조차 멈춘 채 숨죽이며 죽음을 기다리는 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마치 개구리 한 마리가 요사스러운 뱀의 눈을 마주한 것과 같은 상태로.

“으아아아아아!”

“도, 도망가!”

촤아아악!

도망가기 위해 몸을 돌리던 산적이 오히려 더 빨리 죽게 되는 것을 보고.

이젠 도망도 가지 못한 채 딱 굳어서 신창이 뻗어 내는 사신의 창을 목도해야만 했다.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 때문에 말이다.

“즐겁더냐. 너희가 유린하던 이들이 느끼던 공포를 직접 느껴 보니 어떠하냐? 즐거우냐?”

신창 신준건의 음성이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 걸음씩 다가온다.

저벅, 저벅.

그의 무심한 눈빛과 말투는 산적들의 넋을 빼놓기 충분했다.

“……으, 으아.”

“어억…….”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망가지도,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게 만드는 사신의 모습에 산적들은 발작을 일으키며 달려들었고.

촤아아아악!

다시 한번 휘두른 창격에 다섯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허공을 찢어발기는 창격이자 참격(斬擊).

그리고 신준건이 또 한 번 땅을 박차며 남은 산적들을 모조리 도륙하려는 순간.

“음?”

카가가가가앙!

신준건이 뻗은 창격을 막아 내는 한 사람, 그리고 양옆과 뒤를 점한 총 여섯 명의 산적.

“……호오, 이제야 나서는구려.”

타악!

신준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한 명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기 위해 주먹을 뻗어 오는데, 다른 다섯이 양옆과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형국을 보고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방법이로고. 재밌구려.”

흥미로운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여섯의 산적들은 바짝 얼어붙고 말았다.

보여 주는 미소에 반해, 그의 눈빛이 너무도 차가웠기에.

“수하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수장들끼리도 희생을 강요하는.”

처억.

“버러지들은 여기서 죽어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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