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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98화 (198/250)

제198화

제198화

창공을 가르는 빛살과도 같은 속도.

전욱은 그 속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람을 가른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겨우 실눈을 떠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아가는 창 위에 사뿐히 올라탄 두 사람은 무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허공을 찢어발기면서 나아가는 창끝.

날랜 발걸음과 신법으로 한가락 한다고 자신했던 전욱이었으나.

‘이건……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라.’

눈앞에서 보여 주는 신준건의 뛰어난 무위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유유자적한 모습.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신선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신창 신준건. 중원 무림에서 창으로는 그에게 당할 자가 없다고 소문난 고수 중 고수.’

신창 신준건이 제시간에만 당도한다면 전황은 대변에 바뀔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전욱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자신이 신창을 찾으러 가기 전의 상황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사검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희생을 각오하고 그 전장에서 자신이 벗어나도록 애쓰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한 전욱이었다.

누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을지.

칼에 얼마나 무참하게 도륙당하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두려울 정도였다.

“……걱정이 많군.”

그런 그의 걱정 어린 상념을 일깨운 것은 담담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신창 신준건의 말에 겨우겨우 고개를 든 전욱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예……. 모두 죽을까 봐 두렵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후후. 모두 죽는다라…….”

신준건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전욱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바라본 전욱은 괜스레 죄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그대는 괜찮은 사람이구먼.”

“……에? 아, 아니…….”

신준건의 눈빛과 미소에 전욱은 저도 모르게 아니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니.

개과천선(改過遷善).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전욱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린 천무린의 무자비한 폭력.

그와 반대로 하해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전욱이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위사검의 아량.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전욱은 적랑오객 시절 저질렀던 잘못을 반성하고 천가장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잘못은 잘못. 지난 과오는 사라지지 않기에 전욱은 옛 과거만 떠올리면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수많은 양민의 얼굴이 생각났다.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 자신을 보고 괜찮은 사람이라니.

“……아닙니다. 저는 옛날에 그리 좋은 사람이…….”

“허허. 됐네. 그간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넬 어찌 보든 간에.”

신준건의 포근한 시선이 전욱에게 닿아 절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 벗이, 친우가 자넬 여기로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자넬 믿는다는 뜻이겠지. 아닌가?”

“……아.”

“그리고 내 벗은 그리 약하지 않다네. 그 친구가 한때는 나보다 더 강했던 친구야. 물론 지금은 아니겠지만. 허허.”

“지금은 내력을 쓰지 못하시는…….”

“후후,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걱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겠으나.”

슈우우웅!

타다다닥!

휘리릭!

신준건이 말을 멈추고 몸을 숙여 창대를 잡더니 그대로 전욱을 잡은 오른손을 놓았다. 순식간에 목덜미가 신준건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 전욱은 그대로 허공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으, 으아아아아아! 시, 신창 어르신!”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높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듯한 충격에 전욱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터억.

신준건이 다시 전욱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잡더니 허공에서 창대와 함께 몇 바퀴 회전한 후 바닥에 착지했다.

차악.

사뿐히 착지한 그는 식겁한 전욱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 친구의 의지와 박력은 나조차도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네. 적이 제아무리 무위가 강하다고 한들, 그 친구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네.”

신준건의 말에 전욱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사색이 되었던 그의 표정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그리 굳게 믿으십니까?”

“위사검은 그런 친구니까. 내 친우가 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줄 아는가.”

단순히 친우라고 믿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타라라락.

전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준건은 창대를 몇 번 휘돌리며 전욱을 바라봤다.

“속도를 높여 나아가세. 다시금 방향을 잡아 주겠나?”

여기서 속도를 더 높인다고?

말이 되는가.

심지어 성인 남성 두 명을 태운 창이 그 무게를 견딘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빛살과도 같던 속도보다 더 빨리 나아간다고?

전욱은 절로 혀를 내둘렀으나 신준건은 팽팽하게 창대를 잡아당기는 것으로 전욱의 물음이 담긴 표정에 답을 했다.

“저, 저쪽입니다…….”

자세를 잡는 신준건을 향해 전욱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신준건은 나아가는 방향을 지정한 뒤에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우, 후우웁.”

그러더니 팽팽하게 당긴 창을 그대로 투창했다.

쾅!

진각으로 땅을 밟자 터져 나오는 울림과 동시에 허공을 찢어발기며 앞으로 쏘아져 가는 한 자루의 창.

아마 바다였다면 대번에 두 쪽으로 갈라 내 버렸으리라.

이전의 창이 일으키는 바람이 돌개바람이었다면.

지금의 창이 일으키는 바람은 폭풍 바람이었다.

쿠콰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때리는 무시무시한 압력에 절로 입이 벌어진 전욱은 떨리는 볼살을 주체하지 못하고 뒷덜미가 잡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창대 위에 올라탄 그의 신형은 흡사 다람쥐처럼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있었으나.

이번엔 실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강렬한 바람을 관통하고 있었다.

“금방 도착할 터이니 눈을 감고 있게나.”

* * *

채앵! 챙챙챙챙!

서걱!

서거걱!

마구 도륙(屠戮)한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손속으로 팔과 다리를 잘라 내고.

“킬킬킬킬.”

웃는다. 박장대소를 하고,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하나같이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심지어는 걸을 수 없도록.

서걱!

발목을 베었고, 한순간에 지탱해 준 다리가 잘려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는 무사들.

“끄아아아아아아!”

“목청 좋고.”

“이번에는 내 거도 들어 보자고.”

그 상황마저 즐기며 녹림채산적들은 무사들을 마구 유린한다.

서걱!

“으아아아…….”

“에이, 뭐야. 이놈은 덜 아픈가 봐. 소리도 덜 지르고.”

폐부에 틀어박힌 검 끝을 틀자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는 표국의 쟁자수가 이내 축 늘어졌다.

시시해진 표정과 시들해진 분위기. 이젠 흥미가 떨어졌다는 표정을 짓는 산적들의 주변에 운남성에 모인 무사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들이 흘린 피로 강을 이루고 있었다.

“시시하기 짝이 없네. 운남 수준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마량채주 양적은 백마채주와 토룡채주를 힐끗 바라봤다. 간만에 보는 피 맛이라 오랫동안 즐기고 싶었던 이들은 느긋하게 검을 휘두르며 상황을 즐겼다.

스윽.

“고작 남은 것이라 해 봐야 오십도 안 되겠군. 쩝, 좀 더 즐기고 싶었는데……. 응?”

시선을 돌리던 양적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천가장이라고 하던 놈들 중 몇몇이 눈에 띄었지만, 특히 한 늙은 노인이 병약한 모습으로 토룡채주를 향해 쉼 없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 날카로운 검 끝을 번뜩이는 모습이었지만.

“……후후후. 내력이 없어. 반푼이 놈이로구나.”

반푼이.

내력을 쓰지 못하는 무인은 무인이 아니었다.

양적의 눈에도 위사검은 제법 검을 잘 쓰는 범인(凡人)에 불과했다. 일반인 수준에서 검을 잘 휘두르는 정도로는 여기에 있는 다른 산적들에게 작은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한다.

하지만.

“이노오오옴!”

노호성과 함께 터져 나오는 위사검의 검 끝.

위사검은 자신의 한 수를 감춰 놓은 듯 느릿하게 뻗어 대던 검을 갑자기 날렵하게 휘둘렀고, 위사검의 느린 속도에 익숙해져 있던 토룡채주는 순간 식겁하고 뒤로 물러났다.

피잇!

주르륵.

토룡채주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찡그리며 자신의 옆구리에서 화끈하게 통증이 번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

“말하지 않았더냐!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운남성으로 들어갈 수 없을 터! 그 누구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위사검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벅차서 숨까지 헐떡이는 것이 역시 내력을 쓸 수 없는 고장 난 몸이 문제인 모양이다.

“……하, 나 원 참. 토룡채주, 이거 쪽팔려서 어떻게 한담? 나였으면 창피해서 저어기 나무에다가 대가리 박고 죽었을 거 같은데 말이야.”

마량채주와 백마채주가 토룡채주를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토룡채주의 두 눈에 서서히 핏발이 섰다.

고오오오오.

들불처럼 빠르게 일어난 분노가 대번에 토룡채주의 전신을 감쌌다. 오냐 오냐 하며 봐줬더니 결국 이 사달을 냈다.

그리고 아주 순간적이지만, 이런 노인네의 검에 겁을 먹고 자신이 뒤로 물러섰다는 사실에 대한 모욕과 수치심이 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살기등등한 모습의 토룡채주가 검을 꽉 쥐자, 위사검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어야 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전신에서 흐르는 식은땀으로 인해 정신까지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후웁, 후웁.”

“노인네, 곱게 죽을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 오늘 네 팔과 다리를 자르고 아주 야금야금 숨통을 끊어 주마. 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못한 상태로 만들어 주마.”

말 그대로 살기충천(殺氣衝天).

절정급 고수의 완연한 살기가 내력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위사검에게 쏘아졌다.

그러나.

“……후후후.”

물러나는 것도, 그렇다고 포기한 것도 아닌.

위사검은 웃는 낯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에 토룡채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가 그리 웃기지.”

“그따위 알량한 협박으로 나를 이기려 들지 말거라. 비록 내 늙고 병든 몸이기는 하나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느니라. 정정당당하게 검을 들고 내게 덤벼라.”

침착하고도 담담한 목소리.

토룡채주의 두 눈이 절로 차가워졌다.

“알량? 정정당당? 잘도 지껄여 대는구나. 고작 한 수 먹였다고 아주 자신만만한 모양인데, 네놈이야말로 알량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내 몸소 보여 주겠노라.”

타다닥!

파앗!

토룡채주가 가공할 속도로 위사검을 향해 빠르게 짓쳐들어왔다. 한 점이 되어 쏘아진 토룡채주의 검 끝에서 나온 기운이 대번에 위사검의 목젖을 찌르기 위해 뻗어 왔다.

떼구르르르.

위사검은 자신의 눈앞에 토룡채주가 사라졌다고 느끼자마자 그대로 뒤로 몸을 굴렀다.

나려타곤(懶驢打滾).

무인이 살기 위해 하는 가장 부끄러운 행동 중 하나인 몸을 굴러 회피하는 것.

이를 서슴없이 행한 위사검을 바라본 토룡채주가 멈춰 서서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하 참, 그렇게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더니 결국 나려타곤을 펼쳐 피한 것인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그게 전부면서.”

그 말에 위사검이 말문을 열었다.

“검을 들면서 아직도 수치심에 대해 논하는가. 내 가족을 지키고,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이 무엇이 중요하리.”

한마디도.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위사검의 그런 모습에 뿌득뿌득 이를 갈던 토룡채주가 다시 땅을 박차고 쇄도하려는 그 순간.

“아주 좋은 말이네.”

촤아아악.

땅바닥을 가르며 착지하는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구먼. 나의 벗이여.”

신창 신준건과 전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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