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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95화 (195/250)

제195화

제195화

“그런데 이렇게 빨리 출발할 필요가 있냐?”

“……없다.”

“급하게 출발해 봐야 전선 배치가 끝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움직일 수도 없을 텐데.”

“그렇다.”

“…….”

“아이들이 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오랜 시간 돌아갈 것을 대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건 너희들 입장이고. 나 원 참.”

혀를 차는 풍산이 고개를 크게 저었다. 자신이 아는 수룡왕 파건량이 녹림의 입장을 크게 배려해 주고 있음에도 자신은 딱히 들은 바가 없으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보다 놈들의 전력이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게 왜?”

“저 지경인데, 적을 맞이하여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나. 같은 편의 등에 칼이나 꽂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스런 상황이 아닌가.”

전위의 말에 풍산이 고개를 힐끔 돌렸다. 그의 말마따나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녹림과 장강의 모습이 보였다. 악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존심을 버리지 않을 이들.

“놈들 전력이 얼마나 된다고.”

“절강성 주변의 산채에서 이미 몇몇이 나아갈 것이다.”

“벌써?”

“호흡을 빠르게 가져가는 것이지. 미리 파악도 필요하고.”

풍산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천무린? 그가 얼마나 강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현재 이 배에 올라탄 전력만 하더라도 웬만한 문파 하나는 하루 반나절 만에 깨끗이 지워 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호량채와 귀왕수룡대.

두 세력만 합치더라도 그 수가 이백을 족히 넘어간다.

어디 그뿐이랴. 절정의 고수들은 도합 오십이 넘는다.

이 정도의 전력은 녹림과 장강 연합의 전력 중 이 할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본인과 거산도 전위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과한 걱정이라고 치부하며 한마디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풍산은,

“저 새끼가! 뭐? 이 호방하고! 거칠게 자란 수염을 보고! 뭐라고 했느냐! 다시 한번 씨불여 보거라!”

“산에서 처박혀 살더니 귓구멍이 막혔나! 오냐! 내 다시 한번 말해 주마! 밤 껍질을 주워서 턱에다 갖다 붙여서 수염을 만들었냐고 했다!”

“내 오늘 이 도끼에 네놈의 피를 적셔서 산신령님께 인사를 드려야겠다. 이 멸치 대가리 같은 놈아! 나와라!”

절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구나. 저들은 자존심을 빼면 시체구나.

하기야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누굴 보낸 건데?”

“절강성에 규모 있는 산채에도 아마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놈들 전력은?”

“절정급 여섯.”

“오호라, 하여간 대가리 수 많은 건 여전하네. 절정 고수 여섯이나 내보내는데, 반대는 없었고?”

“벽력왕의 명령이시다. 그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놈의 벽력왕, 벽력왕.”

“……나랑 싸우자는 겐가?”

“됐고.”

풍산이 고갤 돌려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을 하려는 녹림의 산적과 장강의 수적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놈들은 언제쯤 철이 들려나.”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풍산이 미간을 한계까지 좁히며 전위를 매섭게 노려봤지만.

“아닌 말 했나.”

“……뭐.”

아니라고 말하기엔 뭐.

“놈과 싸울 생각에 몸이 절로 달아올랐다.”

“에?”

“나는 놈과 다시 싸우기 위해 실력을 갈고닦았다.”

“호오.”

교룡검 풍산은 전위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에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새삼 그가 경쟁의식을 갖고 있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은 것이다.

“…….”

“부탁이 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전위는 거두절미하고 말을 내뱉었다.

“뭔 부탁?”

이놈이 웬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갑자기 웬 부탁이란 용어를 쓴단 말인가.

“……나는 그놈과 다시 제대로 붙고 싶다.”

“뭐?”

“오롯이 그놈과 붙길 원한다. 다른 녀석들은 필요 없다. 나는 놈만을 원할 뿐이다.”

“……그러니까 잡놈들은 나보고 처리해 달라? 그리고 그놈과의 일대일 정면 승부의 판을 깔아 달라, 그 말인 거지? 지금.”

“…….”

“맞네. 와! 이 엉큼한 놈을 보게. 결국 나한테 시다바리를 해 달라는 거잖아? 지금.”

“…….”

침묵.

전위는 침묵으로 무언의 답변을 한 셈이었다.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는 풍산이었지만, 전위의 굳게 다문 입술을 보고는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하아, 내 의견은 물을 생각도 없었구먼?”

“……그렇진 않다.”

“됐고.”

교룡검 풍산이 피식 웃더니 전위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반응에 전위가 힐끗 풍산을 바라봤다.

“그렇게 해라. 네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허락해 주는 것이냐?”

“허락은 무슨 허락? 네놈이 내 명령을 들을 것도 아니고.”

“아무튼 고맙다.”

“대신에 맨입으론 안 되고.”

“…….”

“설마 맨입으로 그렇게 받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겠지?”

은근한 풍산의 눈길에 전위가 콧바람을 내며 뭐든 말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에는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였다.

“말해라.”

“뭐 그리 진지한 표정까지 짓고. 다른 건 아니고.”

풍산이 씨익 웃더니 전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뒤를 힐끔거렸다. 여전히 장강수로채와 녹림칠십이채가 대치하는 모습이 보인다. 악의라기엔 어색하지만, 묘한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는 모습.

“……우리가 붙어먹을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사람 인연이란 게 참 묘~하거든.”

히죽 웃는 풍산의 모습에서 묘하게 수룡왕 파건량의 능글거리는 미소가 겹쳐 보였다. 전위는 풍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서 해 보라는 듯.

“하여간. 딱딱하기는.”

“본론이 무엇이냐?”

“……혹여 우리 아이들에게 한 번쯤은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관용. 그거면 될 거 같다. 어때, 쉽지?”

“지독히도 어려운 부탁을 하는군. 정말…….”

“싫음 말아라. 일대일이고 나발이고 내가 그런 자리 마련해 주나 봐라.”

“……알았다. 기억이 나면 그리해 주도록 하지.”

“안 하기만 해 봐. 내가 평생 저주할 테니까.”

“……그건 좀 무섭군.”

전위와 풍산.

사파의 두 거대 세력을 이끌어 가는 후계자들은 아주 느릿하게, 녹림과 장강의 연합을 이끌고 나아가고 있었다.

* * *

“전선을 배치하고 장강에서 바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대략 삼 개월은 있어야겠지요.”

“그 안에 빌릴 수 있는 손은 비록 고양이 손이라도 모두 빌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현검 안벽에게도 힘을 빌려야겠지요. 운남의 모든 전력을 한곳에 모아야 합니다.”

“섬서와 산동은 어떻게 되었는가?”

“장강과 녹림의 연합 규모 자체가 워낙 클뿐더러 장강을 틀어쥐기 시작한 장강수로채의 압박이 섬서와 산동으로도 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운남에 닥칠지 안 닥칠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전력을 함부로 뺀다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있는 일이라.”

“……이런 멍청한! 그만큼 정보력이 없단 말인가?”

위사검의 답답해하는 표정에 공야찬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르신,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라니.”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개방이 있는 한, 장강과 녹림의 일부 전력이 운남으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첩보를 확인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공야찬은 이미 정파 무림에 꽤 많은 정보를 흘렸다. 운남이 위험에 빠질 거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낙양의 쥐소굴을 통해 퍼뜨린 것이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 때문입니까?”

“공 장로……. 그리 말하지 말게. 설마 그 원인이 천무린 문주에게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

“설사 그렇다고 한들 무엇이 문제인가. 자칫 잘못하면 사파의 악적들에게 수많은 양민들이 화를 당할 처지이건만!”

정의와 협을 행하는 정파 무림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낭인의 세계를 살아온 위사검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와 같은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파 무림에 저도 모르게 울분이 치밀었다.

“……어르신.”

“후우, 미안하네. 자네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 그만 흥분하고 말았네.”

“아닙니다. 어르신. 어르신의 마음은 백번 공감합니다.”

“고맙네.”

그리 말하는 위사검과 공야찬이었지만, 서로 간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르신께서 신창 어르신을 부르셨으니 그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마 어르신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공야찬의 말에 위사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일순 씁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천가장일세. 감히 산적이나 수적들 따위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만들 걸세. 허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구먼. 나 역시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면 한몫을 했을 텐데 말이네.”

“……어르신.”

“허허, 나의 푸념일 뿐일세. 흘려듣게나. 자,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공 장로는 나와 더 고민을 해 보세. 허투루 시간을 낭비할 순 없으니 말일세.”

바로 그때.

쿠당탕탕!

허겁지겁 뛰어 들어온 전욱이 떨리는 목청으로 소리 높여 외쳤다.

“와, 왔습니다!”

무엇이 왔단 말인가.

설마?

“시, 신창 어르신이 벌써 왔단 말인가!”

공야찬과 위사검이 순간 밝은 표정을 지었다. 신창이 왔다면 아주 조금은 낙관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 터.

그런데.

“……사, 산적 놈들이!”

낙관적인 소식일 거라 믿었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최악의 상황을 알려 주는 소리만 크게 울려 퍼졌다.

“……사, 산적? 녹림이 말인가!”

공야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장강의 물길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순 없었다.

더군다나 산적들이 여기로 온다는 것은.

당장 전면전을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정사대전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은 이상, 이 정도로 급하게 불을 지필 순 없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력왕의 인내심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내 진즉에 눈치챘어야 했을 것을.”

벽력왕은 거산도 전위에 대한 배려가 있었기에 여태 복수를 미루고 있었을 뿐, 그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전면전 혹은 가벼운 주먹을 날리는 선제공격 후에 이어질 후폭풍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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