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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90화 (190/250)

제190화

제190화

“……다, 닿았어?”

무려 무형노괴를 꺾은 괴물이다.

약관의 청년?

그런 게 무엇이 중요하리.

절정의 고수들을 코앞에서 찍소리 못 하게 발로 걷어차는 게 바로 눈앞의 괴물이다.

쌍용검 파평을 꺾을 때만 해도 약관의 청년인 천무린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절정의 고수,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러나.

지금은 절정급의 고수 열이 덤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괴물 중 괴물이 되어 있었다. 하물며 천마신교의 육장로인 무형노괴는 삼대 무관의 관주들 혹은 녹림과 장강의 주인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절세 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꺾은 이가 천무린이었다.

나이는 그저 허울뿐이라는 뜻이었고, 천무린을 바라보고 어리다고 코웃음을 칠 이가 누가 있으랴.

천무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대하고 우악스러운지,

직접 상대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존재감과 위압감에 절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무형노괴, 그리고 그보다 몇 수 낮은 홍의 마기(魔氣) 앞에서조차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경험을 한 악교운과 설화린, 당지혜였지 않던가.

결과적으로 천무린은 그런 인간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었다. 또한 천무린을 상대하는 이들은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렇게 쉴 새 없이 고갈되는 정신력과 날마다 터무니없이 깎여 나가는 체력 소모로 인하여 휴식을 취해도 취한 것 같지 않은 나날이 한 달이 넘어갔다.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절로 나올 정도였다.

평소 천무린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조차 느낄 수 없는 삭막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지옥을 체험하는 수련은.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그런데.

그 지옥과도 같은 순간에서,

마치 가뭄 속 단비를 만난 것처럼.

불구덩이 속에서 찬물 한 모금으로 지독한 갈증을 해결한 것과 같이.

절대 닿을 것 같지 않던 천무린의 허벅지에 닿아 있는 송무의 목검.

……닿았다.

“……으아아아아아아!”

평소 송무의 순박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천무린의 허벅다리에 자신의 목검이 닿았다는 기쁨에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뜨렸다. 그것은 흡사 짐승의 울부짖음과 다를 바가 없었고, 그 함성에 따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사람들.

황태와 태강이 괴성을 지르며 송무의 목검을 한 번 보더니 바로 목검을 쥐고 천무린을 향해 달려든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저 새끼한테 닿았다! 닿았다고!”

“미친! 내가 처음으로 패려고 했는데!”

좀 전까지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완전히 나가떨어진 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하나둘 몸을 일으켜서 천무린에게 덤비고 있었다.

목검이 닿은 것 정도를 특별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을 가능으로 만든 순간보다 더 즐겁고 특별한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비현실을 현실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버리고.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리를 바짝 좁혀 버린 지금.

닿아 버린 목검이 그 모든 것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콰앙!

그러나 송무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가 저 벽에 처박혔고.

“……이 새끼들이 고작 그딴 걸로 즐거워하다니.”

퍼억! 퍼억!

천무린에게 달려들던 황태와 태강 역시 달려오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갔다.

“쓰잘머리 없이 희망이나 가지고 말이야.”

차갑게 일갈하는 천무린이었다.

그러나.

“헹!”

벌떡 일어난 송무가 코웃음을 치며 목검을 쥐었고.

“저 새끼 뭔가 힘이 빠진 것 같지?”

“분명해! 오늘 내가 꼭 쥐어 패고 만다.”

연이어 일어난 황태와 태강의 모습에서 놀라울 만한 힘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천무린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푸흐흐흐흐흐.”

“흐흐흐흐.”

“후후후후.”

그러면서 모든 이들이 웃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를 본 듯 희망이라는 기운을 얻은 이들은 더 이상 움직여질 것 같지 않던 두 다리를 힘겹게 움직였다.

웃음기 하나 없이 몇날 며칠을 매달렸던 순간, 그 희망이 절로 웃음이 나게 만들었다. 그 희망이 바로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이…….”

천무린의 두 눈에 형형한 안광이 터져 나왔지만.

꾸욱.

꽈드드득.

천무린을 둘러싼 이들의 두 눈엔 조금의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목검을 꽉 쥐고서 천무린의 빈틈을 노리기 위한 이리 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빠직.

천무린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허벅지에 닿았던 목검 탓인지 아주 미약하게나마 둔통이 느껴졌다.

어색했다.

녀석들에게 당한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더 깝죽거릴 수 있는지 보자! 이 X 같은 놈들아!”

천무린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사천무관의 생도들과 교관, 이검과 이용 형제와 천살대의 살수들까지.

미친 듯이 천무린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 * *

“……아파 죽겠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인사할 뻔했어.”

“낄낄낄.”

“……그래도 그놈 표정 봤냐?”

“밥 안 먹어도 배가 다 부르다! 낄낄낄!”

천무린은 몸이나 잘 회복해 놓으라고 잔소리를 한바탕하곤 사라졌고, 그런 잔소리에도 일행은 하나같이 널브러진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무린의 허벅다리에 닿은 송무의 목검 한 방.

그 이후로 유효타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되레 흠씬 두들겨 맞아서 혼절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절망하거나 포기를 입에 담는 이들이 없었다. 멀기만 했던 거리가 조금이나마 좁혀졌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성장은.

가파르기만 하지 않았다.

성장은 관성과 한계라는 요인을 만나 번번이 깨지고 무너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하려고 해도 이미 박혀 있는 관성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관성이라는 벽을 극복하려고 움직이다 보면 수없이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딪히고 부딪히다 보면 결국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성장하는 이들은 관성이란 벽 앞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사실 관성이라는 벽은 성장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다음 계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임계점이기 때문이다.

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혀도 어느 순간 계단 위에 올라서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벽은 자신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성장통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일행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

쉴 새 없이 깎여 나간 정신력이 회복되면서 더욱 단단해졌고.

손발이 부르터서 핏물이 굳고 굳은살이 박여, 수천 번을 휘둘러도 더는 피가 터져 나오지 않는 것처럼.

정신과 육체 모두가 성장하고 있었다.

차례대로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다들 괜찮으냐?”

일행 중에서 가장 고참이라고 할 수 있는 악교운의 나직한 음성이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전신을 옥죄는 고통에다 찌르는 듯한 단전에서 내력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 대체 무엇이 괜찮겠는가.

하지만.

“낄낄, 괜찮습니다. 교관님.”

“오늘 봤지 않습니까? 저놈 새끼, 저거 결국 표정 찡그리고 잔소리만 해대는 꼴이란!”

“킥킥킥!”

“내일은 제가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버릴 겁니다.”

“그럼 전 다리몽둥이요!”

“에헤이! 다들 목표가 그리들 소박해서야! 모가지는 따야지!”

“낄낄낄! 좋다! 좋아!”

그 누구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들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천무린은 단순히 생도가 생도로 머무르지 않도록 길을 보여 주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천무린이 가진 책임감과 무게감이 얼마나 큰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저 망할 새끼가 자기 혼자 다 짊어지고 뛰어다니지 못하게 해야겠죠.”

“곧 죽어도 그렇게는 안 둡니다! 암요!”

“그러니까…… 죽더라도 여기서 죽자고요!”

생도들은 천무린이 거산도 전위와의 싸움에서 거의 죽을 뻔했던 상황을 목격했다. 그 당시에 느꼈던 참혹한 심정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생도들의 반응에 악교운이 입가를 끌어올렸다.

“내일은…….”

악교운을 바라보는 생도들의 시선들.

“내가 놈의 모가지를 딸 것이다!”

그 말에 일행 모두가 파안대소를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둘 지쳐서 그 자리에서 잠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 * *

파다다닥!

“……왔군.”

전서구 두 마리가 목함을 들고서 특급 배달로 천무린이 기거하는 창가를 두드렸다.

목함을 받아 든 천무린이 거기에 끼어 있는 서한을 먼저 펼쳤다.

‘망할 녀석.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요청한 대로 당가에서도 영단 제조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는 이들을 몇 보냈다. 시기적절하게 도착할 것이다.’

천무린이 미리 전서구를 따로 날려 당백진에게 보낸 결과물이었다. 당백진의 잔소리가 적힌 글귀였지만, 싫은 티 하나 없이 요청에 응해 줬다.

끼익.

그리고 목함 안에는 적독단 수십 개가 들어 있었다. 귀구의 알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효능을 배가시킨 적독단의 색깔은 영롱하기 짝이 없었고, 천무린은 그것을 공야찬과 조수강을 통해 일행에게 먹이도록 시켰다.

잘 먹는 것도 수련이자 훈련이다.

묵린혈망의 내단과 남만에서 갖고 온 수많은 영초와 영단이 천무린의 방 안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영단을 만들어 매일같이 먹이고 훈련을 시키면 제법 괜찮은 결과물들이 나오겠지.”

어느 문파에서도 이토록 많은 영단을 제자들에게 먹이진 않는다.

영단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물보다 더 높게 평가를 받는 중원 무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린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먹지 못하면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뭐, 물론 녀석들에게 공짜로 주는 건 배가 좀 아프긴 하지만.

어쩌랴.

결국 자신을 따라온 이들이기에.

더욱 강해지도록 만들 의무가 있었다.

저벅, 저벅.

천무린은 숙소에서 나와 위사검에게 찾아갔고, 위사검과 공야찬, 조수강은 널브러진 일행을 조심스레 옮겨 각 숙소에다가 눕히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천무린을 발견한 위사검은 혀를 내둘렀다.

“자네는 정말…… 멀쩡해 보이는구먼.”

“애송이들인데요, 뭘.”

사실 그런 것치고는 꽤 아프다.

맞은 곳은 한 대뿐이지만, 잘 벼려진 수십의 기운에 대항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정신력과 내력을 고갈한 것은 천무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어르신.”

천무린의 말에 위사검이 고갤 들었다. 이미 위사검은 무슨 뜻인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남만에 괜찮은 수련 장소를 알아놨네. 이미 식량과 식수도 구해다가 그쪽으로 옮겨 놨고.”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게. 아쉽지만,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자네의 책임감이란 짐만 더 무거워질 터이니 내 더는 잡지 않겠네.”

“아마 천가장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핵심 인력이 모두 빠져 나갈 테니 말이다.

절레절레.

“걱정 말게. 그 정도 위험은 내 충분히 감수할 터이니. 이래 봬도 나 위사검일세.”

허허 웃는 위사검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천무린은 빙그레 웃고는.

“그럼, 내일 해가 밝는 대로 녀석들과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통을 넣어 주십시오.”

“걱정 말고 다녀오시게.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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