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제182화
악교운과 이검은 두 형제를 인정사정없이 팼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감정은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찌 됐건 이놈들은 나쁜 놈들의 편을 들어 주던 녀석들이 아닌가.
악교운은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면서 패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이글이글.
물론.
저 뒤에서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눈빛 때문에 손속의 강도를 더욱 높이거나 자비를 두지 않았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 저 녀석의 사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이유를 투영시켜 손속을 과하게 한 것 역시 아니었다.
……절대로.
퍼억! 퍼억!
있는 힘껏 패고 있는데도 뒤에서 툴툴거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 옆에서 그렇게 많이 본 양반이 제대로 패지도 못하네. 광야차라면서? 죄다 과장이었던 거야? 나 원 참.”
그 말에 악교운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리고 그의 손아귀에 절로 힘이 더 들어갔고, 이호는 자신을 두들겨 패는 손속의 강도가 더욱 강해진 것을 느끼고 천무린을 원망했다.
‘대체 저 애가 뭐길래 그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과해지는 거냐고!’
퍼억! 퍼억!
영문을 알 수 없는 이호로서는 그저 맞는 수밖에 없었다.
퍼억! 퍼억!
“……마교 출신이면서 고작 그 정도밖에 못 한다고? 천마신교 이 새끼들, 많이 풀어 주긴 풀어 줬나 보네. 제대로 못 하는 놈들을 이렇게 내놓고 말이야.”
그 말에 이검은 식은땀을 줄줄 흘려야 했다.
“그것밖에 못 하면서 내 수하를 하겠다고 나섰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마라. 죽으려고.”
빠득.
이검의 안광이 활활 타오르며 더욱 형형하게 빛났다.
그래.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패자.
그렇게 패서 주군의 인정을 받자. 그것만이 살길이다.
자비 없는 눈빛으로 변한 이검은 이용을 무섭게 패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절정 고수를 마치 아이 다루듯 말 몇 마디로 조정하는 천무린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전욱은 그야말로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
절정 고수조차도 이 공자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위치를 떠올렸다.
그렇다. 나는 이 인간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가 없겠구나.
여기서 혀를 깨물고 자결하지 않는 한, 자유로워질 수 없겠구나.
그리 생각하다가 전욱은 자신이 살아날 구멍에 대하여 골똘히 궁리하기 시작했다.
「 적랑문이 운남에서 돈 좀 벌었다며? 있는 거 다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 줄게. 그 미친 새끼 데려다가 운남에 있는 군소 방파 죄다 쓸어버리고, 거기 있는 보물이니 재물이니 다 털어서 갖고 있을 텐데 말이야. 」
천무린의 말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던 전욱의 두 손이 꼬옥 쥐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 구씨, 나는 내 목숨부터 보전해야겠으니 알아서 잘들 살아남으시라고. 」
……그랬구나.
자신은 이미 적랑문의 문주이자 자신의 대형 앞에서 적랑문의 표식을 떼고 탈퇴하겠노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아마 적랑문으로 돌아가게 되면 적랑오객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저어…….”
“응?”
“그게…….”
“아하, 드디어 금고 위치가 생각났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이미 적랑문에서 탈퇴를…….”
“응? 잘 안 들려. 뭐라고? 뒈지고 싶다고?”
……그래.
뒈지기 싫으면 해야지.
이미 한 번 버린 의리 따위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내 목숨이 더 중요하지. 일단은 살아야 할 게 아닌가.
전욱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무섭게 불태웠다.
“……공자님, 적랑문 문주실 서고 3번째 칸에 보면 붉은 책자가 있습니다. 그 책자를 당기시면…….”
그래서 자신을 거둬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준 적랑오객의 의형제들을 팖과 동시에 적랑문에 있는 금고의 위치를 상세히 알려 줬다.
“오호라! 녀석.”
“헤헤헤헤헤!”
묵린혈망의 내단?
운남에서 갖고 온 수많은 영초?
군소 방파를 털고 나온 많은 재물?
무엇이 중요하랴.
목숨보다.
“호, 혹시…… 저를 거둬 주신다면 제가 공자님의 쓸 만한 오른팔이 될 수 있을 것…….”
거기다가 이 사람의 눈에 든다면 적랑오객 따위가 무슨 문제겠는가.
멸마신군이라 하면 천하제일의 후기지수……. 아니.
무형노괴마저 꺾어 버린 약관의 청년이라면 얼마 안 가 천하제일인의 자리는 따 놓은 당상 아니겠는가.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굴러 가는 전욱은 생각했다.
만약 이번에 이 사람의 옆에 한 자리를 꿰찬다면……?
크으.
이보다 달콤할 수 있으랴.
신분 상승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야.”
달달한 꿈을 꾸는 전욱이 꼬옥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뜨는 순간, 천무린의 주먹이 그의 눈앞을 가렸다.
퍼어억!
“쓰레기 같은 새끼, 지 형제들 죄다 팔아먹고 말이야.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를 거둔다? 어휴, 그럴 순 없지.”
기껏 다 말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천무린의 흉포한 주먹질이었다.
퍼억! 퍼억!
말하면 말했다고 패고.
말 안 하면 말 안 했다고 패고.
전욱은 천무린의 매서운 손속에 울면서 맞아야 했다.
그러다가.
“……이, 이의 있습니다!”
전욱이 용기 있게 손을 들자 천무린의 주먹질이 딱 멈췄다.
“호오, 새끼. 제법 용기 있네. 날 멈추게 하다니. 뭐, 변명이라도 하게?”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거?”
“저만 배반한 게 아니라! 저, 저 무사님도 제 주인을 배반한 것이지 않습니까!”
올렸던 손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이검이 이용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응?”
“저, 저 무사님도 무형노괴가 죽자마자 고, 공자님을 따르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천무린의 주먹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 주먹을 보고 더욱 용기백배한 전욱이 다시 입을 뗐다.
“……저, 저 무사도 받아 주신 것이라면 저 역시 바, 받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무, 물론 저 무사님처럼 무위가 고강하진 않지만, 날랜 다리로 충분히 쓸 만한……!”
“야.”
천무린의 말이 전욱의 말을 잘랐다.
“……예!”
“말 다 했냐?”
말을 다 하지 않았지만, 다 했냐고 묻는데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예.”
“좋아. 그럼 이제 내 대답은 뭐냐 하면.”
“……예!”
주먹이 그대로 전욱의 턱주가리에 꽂혔다.
퍼어억!
턱이 돌아가며 그대로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은 전욱에게 천무린은 미간을 좁혔다.
“이 새끼가! 어디서 다른 놈을 들먹이며 정당성을 부여해? 앙? 안 패고 싶어도 안 팰 수가 없어! 하여간 세상엔 나쁜 새끼들이 너무 많다니까?!”
퍼억! 퍼억!
“네가 마교 출신을 알아? 마교 새끼들이 강한 놈한테 끌리는 건 본능이라고!”
퍼억! 퍼억!
“마교는 말이야! 원래 지 주인을 잃으면 다른 강한 놈에게 적을 둘 수밖에 없다고!”
그랬다. 원래 마교는 천마에게 충성을 바치고, 광신도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천마도 없지 않은가.
천마의 부재에는 그에 걸맞은 이를 주인으로 모시고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제 살길이니까.
퍼억! 퍼억!
“뭣도 모르면서 이 새끼가 아주!”
……이런 씨앙.
내가 마교를 어떻게 아느냐고!
전욱은 그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천무린은 어찌 마교에 대해서 그토록 잘 아는지.
까닭을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그저 자비 없는 손속이 전욱의 전신을 두들겼지만 어쩌겠는가.
반항하기엔 너무 강하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자신의 삶이 너무도 아까운 것을.
* * *
“……이호야.”
“예……. 형님.”
“살아 있느냐…….”
“죽은 것 같습니다.”
“세상이 참 넓구나…….”
전신의 뼈가 다 부서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운남에 절정 고수들이 없다 하지 않았더냐?”
“분명히…….”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구나.”
“…….”
떠드는 두 사람을 향해 한 사람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일축했다.
“시끄러! 아오, 죽으면 물 위에 주둥이만 뜰 새끼네! 저거!”
그 사람은 자신들을 팬 이검도, 악교운도 아닌.
“뭔 사내새끼들이 쫑알쫑알 말이 많아, 어? 뒈지고 싶어?”
자신들보다 훨씬 어린.
저잣거리에서 마주쳤으면 코웃음을 치고 지나갔을 정도의 어린 청년.
그 청년이 두 눈을 부라리는데 일언반구조차 할 수가 없었다.
왜냐고.
“며, 멸마신군이라니.”
“어째서 멸마신군이 운, 운남에…….”
멸마신군(滅魔神君).
이젠 후기지수가 아니라 손꼽히는 무인의 별호가 되었다.
무형노괴를 꺾었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했다.
거산도(巨山刀) 전위.
초절정의 고수이자 녹림의 차기 군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무형노괴가 차치하고 전위를 꺾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용과 이호는 그 청년에게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자신들을 쥐어 팬 두 절정 고수가 저 청년에게 반항조차 할 수 없는 모습까지 본 마당이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으랴.
“그런데 계속 데리고 가시려고요?”
두들겨 맞아서 몰골이 형편없는 이용과 이호 형제를 바라보던 설화린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응. 왜? 문제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굳이 데려가야 하나 싶어서요.”
“데려가지 마? 그럼 그냥 귀찮은데, 불구를 만들어 버릴까.”
그 말에 이용과 이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 지금 대체 무슨 말이람.
절정 고수가 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부단히 노력해 왔던가.
그 피나는 노력 끝에 이제 운남으로 와서 자신들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참이거늘.
설화린에 대한 원망보다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린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했다.
“주, 주모(主母)!”
설화린을 향한 절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누구보다 빠른 처신이었다.
뭐? 주모?
그 모습에 천무린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 새끼들이 무슨 개소릴……!”
“……흠, 데려가야겠네요.”
으응?
갑자기 데려가자고?
“그럼요. 절정 고수들을 구하기가 어디 쉽나요. 거기다 낭인 출신이라면서요. 적을 둔 곳이 없으니 당신의 수하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지 않나요?”
……어? 그렇긴 한데.
그건 그렇고, 왜 네 얼굴은 벌게져 있는 건데?
왠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데.
“……에이, 출신이 불분명한데 어떻게 데리고 가? 안 돼. 데리고 가지 마!”
당지혜가 콧김을 흥 하고 내뿜으며 안 된다고 소리쳤다. 그 모습에 천무린은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귀찮은데, 그냥 단전을 빨리 부숴야…….”
후다닥.
설화린에게 아양을 떨던 두 형제는 당지혜에게 황급히 몸을 바짝 엎드리더니.
철퍼덕.
“아, 안주인께서는 제발 자비를……!”
그 모습에 천무린의 표정을 또 구겼다.
이번엔 안주인? 이 새끼들이 돌았나.
한 소리를 하려는데.
“호호호! 출신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아주 마음에 드는데, 데리고 갈까요?”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