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제186화
운남을 기반으로, 사라진 남만의 영향력을 획득함과 동시에,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현문과 적랑문, 그 밖에 다른 군소 방파들의 힘을 전부 끌어모아야 한다.
천무린의 진두지휘 아래 위사검은 능숙하게 사람들을 다뤘다.
“공야찬과 조수강이라 했는가. 자네들의 정보력이 참으로 대단하이. 그만큼 정보력을 끌어모으려면 고생을 꽤나 했어야 했겠구먼.”
“크흑……. 아닙니다. 어르신.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지에서 머물지 말고 이제 양지로 나와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나. 그 빛이 되어 줌세.”
“……힘이 닿는 대로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공야찬과 조수강의 마음을 얻는 것까지 수월히 해낸 위사검은 운남의 경제권부터 능숙히 다루기 시작했다.
먼저 적랑문이 뒷배를 봐주고 있던 기루들과 객잔, 표행을 나가는 표국과 상행을 나서는 상단하고 접촉하기 시작했고.
“여태까지 해 온 것과 동일하게 하되, 분리를 시킬 필요가 있겠군. 이보게, 전욱.”
하옥된 적랑사객과 달리, 전욱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위사검의 옆에서 적랑문이 가진 정보를 알려 주며 운영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예, 어르신!”
“기루의 기녀들에게도 휴식은 필요할걸세. 연이어 밤을 새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이니 희망하는 이들에 한해서만 연이어 손님을 받게 하되, 쉬고 싶은 이들에겐 휴식을 주도록 하게. 단,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더 웃돈을 쥐어 주고.”
“……하, 하지만.”
“괜찮네.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지 않은가. 기루의 중심은 기녀들일세. 그녀들의 몸이 축나면 기루로 발걸음을 하는 이들은 더욱 줄어들 것이네.”
그 말에 전욱은 이내 고갤 끄덕였다.
또한, 이용과 이호를 대동한 채 대현검 안벽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천가장(天家莊)의 임시 문주를 맡고 있는 위사검이라 합니다. 시간을 내주어 감사합니다.”
“아니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오시었소?”
안벽은 볼품이라곤 없어 보이는 위사검에게 은근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주려다가 뒤에 서 있는 두 형제의 위압감에 주눅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절정급의 실력자로 자신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절정의 고수 둘을 대동할 수 있는 문파라는 소리였다.
“……양민들에게 선의랍시고 간혹 그 세를 과하게 받는 경우가 있다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쪽이 관여할 바가 아닐 텐데요.”
“물론 아니지요. 아니, 정확히는 아니었겠지요. 허나.”
위사검이 빙긋 웃으며 안벽을 직시했다.
“운남에 자리 잡은 천가장은 양민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돕기를 자청할 것입니다. 지금이야 대현문의 구역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나, 혹여 양민들이 우리에게 와서 도움을 청한다면 결코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드리려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문주라는 자리에 올라선 것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예의와 걸맞은 태도를 보였다. 언뜻 보면 저자세로 보일 정도로 태도가 정중했다.
하지만 말하는 내용만큼은 달랐다.
고오오오오.
두 형제가 내뿜는 기운에 안벽은 절로 위축이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주의하겠소.”
대현문을 필두로 주변 군소 방파들에 엄포를 놓고, 천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위사검이 점차 자리를 잡아 가는 동안.
“낙양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한다. 우리도 이제 햇빛을 받으며 일해 보자!”
“옳다구나! 그 꿉꿉한 냄새 맡아 가며 일하는 거 죽도록 싫었는데 드디어!”
“크흐흐흐.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그런데, 공 형.”
“왜 그런가, 조 형.”
공야찬과 조수강이 서로를 마주 바라본다.
“한 가지 걱정은 된다고. 우리가 이래 봬도 쥐소굴에서 요고, 요고는 제법 만졌잖아?”
그러면서 조수강이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공야찬 역시 공감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시작을 왜 쥐소굴이라는 암흑가에서 했겠는가.
정보라는 업으로 먹고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음지가 더 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구태여 암흑가에 자리를 잡으려고 용쓴 이유가 있었다.
바로 돈 때문이었다.
삼대 무관 비무대회를 두고 진행하는 투기대회도 그렇고, 정보를 사고팔 때 단가를 후려치고 올릴 때도 자유분방했기에 음지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버리고 양지를 택한다는 것은.
“……여기서 도박은 못 할 테니 그것도 좀 아쉽구려. 뭐니 뭐니 해도 돈을 벌려면 도박장을 여는 것이 최고인데.”
그러자 그 말을 듣던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하면 되지. 왜 못 해?”
“……주, 주군?”
천무린이 혀를 차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 새끼들아, 투기대회로 진행하니까 안 되는 거야. 너희가 어떤 제한도 규칙도 없이 맘대로 진행하니까 투기로 치부되는 거지. 공정한 규칙과 지침을 만들어 진행해. 안 그래도 운남 땅에서 할 거 없어서 허구한 날 기루 찾는 놈들이 저리 많은데.”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그의 말에 공야찬과 조수강의 구겼던 표정이 조금씩 펴졌다. 그리고 천무린의 이야기를 듣던 위사검이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일세. 어차피 자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한다면 운남을 활성화시킬 수 없을 걸세. 비무대회처럼 큰 행사를 당장 개최할 수는 없겠지만, 남만에 있는 새외 군소 방파들과 운남, 그리고 주변 군소 방파들을 통해서 입소문을 흘리다 보면 자그마한 소대회쯤은 금방 만들어 개최할 수 있을 걸세. 그렇다면 괜찮은 도박장도 만들어지겠지. 단, 치안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고 적당한 선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어야 하는 게 조금 골치가 아프겠지만 말이야.”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고 무엇이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 적랑문의 수장들이었던 적랑사객은 하옥되어 갇혔지만, 그 문도들은 적랑사객이 시킨 일을 한 죄 말고는 따로 없다고 판단한 천무린과 일행은 그들을 적재적소에 일을 시키는 것으로 대신하였고.
악교운과 설화린, 당지혜 역시 무형노괴와의 격전 중에 집이 무너졌거나 재산상으로 피해를 입은 운남의 양민들을 돕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문파의 체계를 잡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철걱, 끼긱.
“호오, 때깔 좋군요.”
“운남에서 제일가는 목수와 장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일행이 하나둘 모여서 장원의 입구이자 정문 위에 건 문패를 바라봤다. 문패에는 정확하게 ‘천가장(天家莊)’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가장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부담스러운데.”
천무린은 한사코 거절했다. 자신의 성씨가 들어간 문파라니. 문주를 할 것도 아닌데 웬 천가장이라며 길길이 날뛰었건만.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네.”
위사검뿐만 아니라,
“멸마신군 이름값을 이용하려면 저 정돈 하게 해야죠!”
“그냥 좀 해! 다른 사람들 뼈 빠지게 고생하는데, 넌 이름도 투자 안 하려고?”
“……동감이다.”
설화린과 당지혜, 악교운의 뭇매를 맞고 울며 겨자 먹기로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가장이 어느덧 문파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반년이라는 시간을 더 소요했다.
위사검이 도움을 요청하자 낭인 출신의 인물들이 대거 투입되어 천가장의 허리 역할을 적절히 맡아 주었고, 공야찬과 조수강은 정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표국과 상단의 자금줄을 틀어쥐면서 경제와 행정을 담당하는 장로가 되었다. 천가장의 경제와 행정을 담당하는 경영각의 각주라는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말이다.
위사검은 자신이 문주라고 표현하기 민망한 나머지 어디까지나 임시 문주일 뿐이며 언제든 문주가 돌아올 것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누구나 위사검을 문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이용과 이호는 천가장의 안전을 담당하는 이대호법이 되었다.
또한, 공야찬과 조수강이 직접 창설한 살수대의 이름을 ‘천살대(天殺隊)’라고 이름을 붙였고, 마교에서 온 이검을 천살대주로, 운남으로 길을 안내했던 아삼을 부대주로 추대하였으며, 천살대는 운남 주변에서 눈과 귀가 되어 움직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네. 어떠한가?”
“어르신이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빨리 자리를 잡진 못했겠지요.”
“무슨 소리인가. 자네 이름을 듣고 구름떼처럼 몰려오는 이들 덕분인 것을.”
“그렇게 말씀해 준다면 뭐.”
“허허허허!”
천무린과 위사검은 이젠 천가장이 자신들이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르신.”
“말하게나.”
“아직 가장 시급한 것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위사검이 무겁게 고갤 끄덕였다.
“……무력을 말하는 겐가?”
“알고 계셨습니까.”
“무력 역시도 어지간한 군소 방파는 뛰어넘을 정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위사검은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표현했으나, 천무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반나절. 아니, 한 시진 만에 다 같이 몰살당해 죽기 딱 좋죠.”
“…….”
“무력이 없는 세력은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강호는 힘의 논리로 흘러갑니다. 힘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 아닙니까.”
안다. 너무나도 잘 알기에 위사검 역시 원리원칙대로 힘의 원리에 순응하고 살지 않았던가.
“……지금이 적기입니다. 무형노괴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긴 하나, 안다고 해도 바로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놈들의 자존심이 발목을 잡을 테니 말입니다. 사파 놈들이 변수이긴 하나, 이에 대비하여 사천무관에 미리 언질을 넣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사천무관에서 지원이 올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떠날 생각이구먼.”
“예. 내일 떠날 겁니다.”
“자네만 떠나는 것은 아닐 테고.”
그 말에 천무린이 빙긋 웃으며 일행을 쭉 훑었다.
악교운과 천살대주 이검, 설화린과 당지혜, 그리고 이대호법이 된 이용과 이호.
마지막으로 천살대 서른 명까지.
“저들 서른여섯과 제가 갈 것입니다.”
이들은 사실상 천가장의 주요 전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대현문의 습격에도 바람결에 나부끼는 촛불처럼 위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녀오게나.”
위사검은 그런 우는소릴 하지 않았다. 구태여 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 정도의 위험에도 자유롭지 못한다면 천가장을 이끌어 갈 임시 문주의 자격을 박탈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위사검의 말에 천무린 역시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입가를 말아 올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