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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84화 (183/250)

제184화

제184화

구소엽은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천무린의 섬뜩한 눈길 때문에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무, 무슨 어린 녀석의 눈빛이…….’

“써, 썩은 도, 동아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어린 녀석에게 존댓말이 나왔다.

“……하. 누굴 등X 호구로 아나. 아니, 그럼 네 새끼들이 다른 군소 방파들을 멸문시켰다고? 이 잡것들로?”

천무린은 잡것들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랑문의 문도들을 쭉 훑었다. 그 말에 구소엽은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적랑문에는 제대로 된 전력이라고는 적랑사객밖에 없었다. 그것도 고작 일류에 달하는 전력 네 명이 전부였으니.

그런데 기존에 존재하는 박힌 돌이었던 벽강문을 비롯한 문파들을 멸문시켰다?

오히려 계란으로 바위를 깼다는 소리가 더 믿을 만할 정도였다.

“…….”

“함부로 썩은 동아줄 잡지 마. 그러다 탈이 나는 거야. 아니, 이미 탈이 나고 있는 거겠지만.”

구소엽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꾸욱.

구소엽은 저 어린 녀석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참았다. 꾹 참고 또 참았다.

왜냐고?

저들은 자신들을 죽이지 않는다.

패기는 팬다. 그것도 아주 과격하게 팬다.

하지만 죽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정파를 자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잠깐 이 순간만 오욕과 모욕을 참아 내면 된다.

그러고 나면.

이 모욕과 오욕을 원동력 삼아 더욱 높이 비상(飛上)할 수 있는 적랑문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럴 자신이 구소엽에게는 있었다.

적랑문의 금고에는 자신들을 탈바꿈시켜 줄 재물과 내단, 영초들이 즐비하게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숨겨 놨던 모든 것을 투자하여 적랑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때다.

그런데.

“다 들고 나왔냐?”

으응?

저 미공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예, 옙!”

자신에게 굉장히 귀에 익은 목소리의 누군가가 대답했다.

끼, 끼기긱.

목각 인형처럼 돌아간 구소엽의 고개가 한 곳에 고정되었다.

적랑사객을 비롯한 적랑문 문도들이 한창 두들겨 맞고 있는 순간, 웬 녀석이 금고를 통째로 뜯어서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녀석은 다름 아닌 전욱이었다.

저, 저 개XX가!

눈을 부릅뜬 구소엽이 적랑문의 전부이자 미래를 들고튀려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구소엽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가!”

노호를 터뜨리며 전욱을 향해 적랑권(赤狼拳)을 펼쳤다. 대번에 저놈의 대갈통을 부숴 버릴 셈이었다.

그런데.

서걱.

섬뜩한 예기가 빛살처럼 구소엽과 전욱 사이를 갈랐다.

투욱.

그리고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푸슈우우우우.

“으아아아아아아아!”

구소엽이 막 적랑권을 펼치려던 자신의 팔뚝이었다. 그 팔뚝이 구소엽과 분리되어 땅에서 떨어져서 따뜻했던 체온이 식어 가고 있었다.

“아구구, 어디 감히 내 물건에 손대려고 그래?”

후두둑.

검 끝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내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 천무린이었다. 가벼운 일검에 깔끔하게 잘려 나간 구소엽의 팔뚝이었다.

“크아아아아!”

고통 어린 비명을 내뱉는 적랑문의 수장 구소엽과, 약관의 청년이 보이는 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 없는 검을 펼쳐낸 천무린.

그것은 일순 현실과 괴리된 모습으로 보일 정도였으나.

“뭐 해? 안 갖고 오고?”

정작 당사자는 그의 앞에서 구소엽이 비명을 지르든 잘려 나간 어깨에서 피분수를 뿜어대든.

개의치 않고 금고를 향해 그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 예, 옙!”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 전욱이 갖고 있던 금고를 들고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천무린의 앞으로 당도했다.

“쓸데없이 금고를 한철로 만들고 말이야.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야. 이 새끼들아.”

하여간 돈 아까운 줄을 몰라요. 으이구!

스스스슷. 뎅강.

검 끝에 서린 검기가 금고의 문짝을 거침없이 잘라 냈다. 그러자 문짝 안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목함과 무수한 종이 다발들.

손을 뻗어 종이 다발과 목함들을 보더니 천무린의 입가가 더욱 흐뭇해졌다.

“이 맛이지. 이 맛이야.”

목함들에서 아주 달달한 향이 풍긴다. 하나같이 아주 좋은 영초들임은 분명했고.

특히, 고급스럽게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목함 안에는 단전을 요동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이놈이 묵린혈망의 내단으로 만들어진 녀석이겠지.

“……저기, 침 좀 닦아요.”

……커흠흠.

“아주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내가 뭘?”

“내가 뭘이 아니라 목함 뜯자마자 그때부터 시선이 고정돼서 계속 입가에 군침이 흐르잖아요.”

그랬었나…….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눈깔도 약간 돌아간 거 같아.”

당지혜의 말에 설화린과 악교운, 이검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리도 물욕이 많아서야…….

“뭐! 왜! 집안 살림 제대로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집안 살림은 개뿔! 죄다 박살 낸 사람이 누군데!”

“커흠…….”

하여간 한마디를 안 져요.

으이구,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설화린과 천무린이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당지혜는 금고 안을 쭉 훑어보더니 손을 뻗어 종이 다발들을 바라본다.

“금은보화라도 있을 것처럼 생긴 금고인데, 금은보화는 고사하고 종이 뭉치만 있네……?”

“그러게요. 그래서 이 사람이 발작을 안 한 걸까요?”

이 새끼들이 정말.

천무린은 눈을 부라리다가 말고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뻗어 종이 뭉치들을 잡았다. 그리고 일행에게 보여 줬다.

“잘 봐. 이게 뭔지.”

“……응?”

“그게 뭔데?”

설화린과 당지혜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두 눈을 게슴츠레 뜨자 확연히 보이는 종이 뭉치들. 아니, 전표 뭉치를 보고 두 눈이 확 커졌다.

“……처, 천하전장(天下前場)?”

천하전장이라 함은.

중원 무림에서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장이자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금전 거래가 오가는 곳으로 유명했다.

특히.

암흑가의 자금. 정치권력의 자금. 뒤가 구린 돈 등.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에 대해서도 돈세탁을 해 주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천하전장이었다.

즉.

「 이 세상에 더러운 돈이란 없다. 돈을 더럽게 쓰는 자가 있을 뿐이지. 」

라는 지론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곳이 바로 천하전장이었다.

그런 천하전장의 표식이 새겨진 수많은 전표를 보자마자 설화린과 당지혜는 일순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전표 뭉치를 하나하나 세어 보기 시작했다.

“일…… 십…… 백…… 천…….”

세면 셀수록 두 눈이 더욱 커진다. 절로 입이 벌어진다.

“……와! 이게 다 얼마예요. 대체?”

“운남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냐?”

“……근데 왜 대문파들이나 명문세가들은 운남에 오질 않았던 거죠?”

그 말에 천무린이 고갤 설레설레 저었다.

“보통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 명문세가나 명문 문파들이 운남을 노린다? 그러면 제 지역에 존재하는 지배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다른 놈들이 그냥 두 눈 뜨고 봐줄 것 같아?”

“그 말은 곧…….”

“지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다른 빈 땅을 노리지도 못하는 것이지. 아주 멍청하게도. 물론 남만야수궁이 있었을 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군소 방파들이 득실거렸을 테고.

“……그러니까 정치 싸움 때문에 노른자 땅을 두고도 못 먹었단 말이잖아요?”

“그런 거지 뭐.”

“뭐 그런…….”

한숨을 푹 내쉰 설화린과 당지혜였다. 사이좋게 나눠 먹은 정파의 문파들이 진작에 자리를 잡고 운남을 활성화시켰다면.

적어도 운남에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홍이라는 광인이 이토록 살벌하게 참사를 일으킨 것을 정파 무림에서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무참하게 일으킨 살육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나서서 제대로 막아 내지 않았다는 것. 그런 억제력이 없는 땅이었기에 대참사가 일어난 것일 테고, 참사를 막아 내려 해도 막아 낼 수 없는 군소 방파들과, 그것을 이용한 적랑문.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무수한 양민들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요?”

“어떻게 하긴. 이렇게 노른자 땅을 그냥 둘 순 없지.”

“……에?”

설화린이 미간을 좁히며 의아함을 드러냈고.

“두고 보면 알아.”

천무린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면서 눈을 빛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퍼억! 퍼억!

이용과 이호 형제의 물오른 타격감은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적랑문 문도들의 곡소리와 피를 철철 흘리는 구소엽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그저 흐뭇하게 웃고 있는 천무린이었다.

덜덜덜.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절망 어린 시선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전욱만이 혼이 나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허억, 허억. 나……. 나 죽네!”

“죽긴 뭘 죽어! 이 사람아! 제때 안 가면 우리가 죽어! 그때야말로 진짜 죽는 거라고!”

“……허허, 다들 내공도 있는 양반들이 뭘 그리 힘들어하시는가.”

“아이고! 어르신은 그래도 절정 고수였으니 그 짬밥 때문에 버티시는 거지이!”

육중한 덩치를 갖고 있는 사람과, 그와 대비될 만큼 작은 덩치의 사람 그리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는 한 중년인까지.

어색한 조합이지만, 그런 반면 또 묘하게 잘 어울리는 세 사람은 운남의 을씨년스러운 땅에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헉, 헉, 대, 대체 어디야!”

육중한 덩치의 인물이 불평 섞인 소리를 내며 구슬땀을 흘리는데,

따아악!

그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명중하는 돌멩이.

“크어어억!”

그 모습에 쥐의 관상을 한 작은 덩치의 사내가 황급히 게거품을 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 어린 눈빛을 보내다가 소리쳤다.

“……스, 습격인가!”

“습격은 개뿔. 내가 빨리 오라고 했지? 제때 빨리 안 오고 뭐 하는 거야, 대체?”

천무린이 손에 돌멩이 몇 개를 든 채 사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쥐의 관상을 한 남자, 조수강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몸을 바짝 숙였다.

“……처, 천 공자!”

“천 공자? 천 공자아아? 이게 뒈지려고. 너희들, 내 수하 아니었냐? 넌 수하 새끼가 주인한테 공자라고 부르냐? 뒈지고 싶어?”

“히이이익! 주, 주군!”

육중한 덩치와 쥐새끼 관상의 사내들은 다름 아닌 공야찬과 조수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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