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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76화 (176/250)

제176화

제176화

서걱.

일도양단(一刀兩斷).

운남성 전체를 찍어 누르듯 광포한 무형의 기운이 천무린의 오행검에 그대로 베였다.

일렁이던 투명한 기운은 덩어리째 그대로 절삭되었고.

허공에서 공기 방울이 터지듯 기세가 단박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천무린의 검격에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소용없다! 소용없느니라!”

터져 나오는 대노한 음성.

천무린의 오행검에 경악하던 것도 잠시.

무형노괴의 왼손이 서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쪼개졌던 무형지기(無刑之氣)가 서서히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기뻤느냐. 자신의 검이 통했노라고 즐거워했더냐.”

넘실거리며 이어진 무형의 기운은 그 기세가 더욱 공고해졌다. 그리고 베어지기 직전보다 더욱 흉포하게 운남성 전체를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그 기운의 압박에 운남성 양민들의 두 눈에 절망감이 어렸다.

그저 재해라고 표현하기에도 너무 두려운 기운이다. 재해는 피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갑작스레 하늘에서 느껴지는 이 압박감을 어찌 피할 수 있으랴.

그런데 그때.

“멍하니 있지들 말고 다들 두 다리로 설 수 있을 때 어서 움직여요!”

날카로운 음성이 양민들의 귀에 들려왔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세 사람의 다급한 표정과 손짓에 양민들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 무관 생도?”

“무, 무림학관의 생도님들이십니까?”

제아무리 머나먼 땅이라고 해도 무관이 세워진 지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운남 출신의 무림학관 생도들도 있었고, 그들도 듣는 귀가 있었기에 무복에 새겨진 사천무관의 표식은 알아볼 수 있었다.

“네! 사천무관에서 온 생도입니다. 그러니까 저희를 믿고 지금 어서 움직이세요.”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서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설화린과 당지혜가 벅찬 숨을 헐떡이며 양민들을 이끌려고 했다.

허나.

“……새, 생도님들, 저희가 어딜 간다 말입니까. 여기가 저희 고향이고, 저희 일터입니다.”

“제 가족은 여기에 있고, 늙은 노모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만 빠져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양민들의 입에서 그리 긍정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진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하늘 위의 압력이 무슨 조화인지도 모른 채 갑자기 생도랍시고 나타난 이들이 어서 도망가자고 재촉한다.

어느 누가 이 말을 쉽게 따를 수 있으랴.

“……그, 그래도.”

“지금 떠나지 않으면……!”

차마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떠나지 않으면 당신들이 모조리 몰살당할지 모른다고.

그것을 이 양민들 앞에서 어찌 쉽게 말할 수 있으랴.

설화린과 당지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찌하랴.

정작 당사자들이 떠나기 싫다는데.

그때.

“……살아야 뭐든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나직한 악교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 당신은?”

“사천무관 8기수 총교관 악교운이라 합니다.”

“……아!”

양민들이 하나같이 악교운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총교관이라 하니 제법 높은 직위에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고갤 숙이는 그들을 향해 악교운이 말문을 열었다.

“갑작스런 재해에 놀라셨을 겁니다. 하지만 때에 맞춰 움직이셔야 비로소 목숨을 부지하실 수 있습니다. 늙은 노모를 모신다고요. 거기가 어디입니까.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어서 빨리 생도들의 안내를 받아 멀리 가십시오.”

양민들을 쭉 둘러보며 악교운은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진정성이 있었고, 양민들조차 이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급박한 것임을 인지했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란 말입니까…….”

양민들이 서로 당혹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짓는 순간.

쿠웅!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과.

꾸구국.

몸을 지탱하고 있던 양민들의 두 다리가 맥없이 굽혀졌다. 불가사의한 압력에 의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힌 것이다. 그 기세에 양민들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 사천무관의 생도가 이 알 수 없는 재해와 맞서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멀리 떠나서 잠깐 피해 계신다면.”

악교운의 시선이 양민들을 쭉 훑었다.

“약조하겠습니다. 당신들의 보금자리를 목숨을 바쳐 보호하겠다고.”

그의 의연한 음성에 감화된 것인지 혹은 마음이 통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양민들의 눈빛은 두려움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로 점차 바뀌었다.

“……그래! 모두들 들으쇼잉! 이게 무슨 난린지 모르겠지만, 후딱후딱 움직입시다!”

“당연히 그래야지! 생도님들께서 저리 고생하시는데,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소!”

양민들은 하나둘 무릎을 지탱하고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 의지로 무시무시한 압박을 견뎌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철퍼덕.

사실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이들이 거센 압력을 견디기란 무척 힘들었다. 무공을 익힌 이들도 하나둘 주저앉는데, 양민들이 어찌 견딜 수 있으랴.

하지만.

처억.

주저앉은 양민의 어깨를 부축하는 악교운이었다.

“다리에 힘을 주십시오.”

그 모습에 설화린과 당지혜 역시 몸속에 남아 있는 내력을 끌어올리며 하나둘 양민들을 부축하여 일으킨다.

부축한 힘으로 양민이 일어서고, 그 양민이 다른 양민을 부축한다.

무수하게 흩어져 있던 기운들이.

점차 하나로 이어진다.

꺾였던 무릎이 바로 세워진다.

이를 악문 양민들이 서서히 하나로 뭉치며 만들어 낸 단결된 기운은 무형의 압력을 견디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결된 힘으로 운남을 빠져나가는 이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악교운과 설화린, 당지혜의 고개가 한곳으로 모였다.

‘……믿는다.’

‘……죽지 마요.’

‘천무린…….’

세 사람의 표정은 밝아질 수 없었다. 천무린이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크하하하하하!”

앙천대소를 터뜨리는 무형노괴의 기운을 맞서고 있는 천무린이었다.

전신을 짓눌러 모든 혈관들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린의 검이 다시 한번 움직인다. 서서히 올라간 오행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저 벨 뿐.

후우우웅!

하늘이라도 대번에 쪼갤 기세로 흩뿌린 검격에 천무린이 담은 의지는 단 하나였다.

콰가가가강!

무형의 기운이 언제 붙었냐는 듯 단번에 절삭되었다. 허나, 이글거리는 오행검의 검격에 잘려 나간 부위에서 아지랑이처럼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금세 다시 붙었다.

기껏 전력을 펼친 자신의 검이 막히는 것보다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

한껏 뻗어 낸 자신의 검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 또 있으랴.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흐하하하하하!”

무인이라면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 의지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천무린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두를 뿐.

콰아앙!

굉음과 함께 다시 한번 기운을 베었다. 일그러진 천무린의 표정과 함께 미간이 한계까지 좁혀졌다가 풀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바라보는 무형노괴의 입가가 한껏 올라갔다.

그럼 그렇지.

네깟 놈이 어찌 천마 천무린이라 할 수 있더냐.

한껏 고양감에 취한 무형노괴의 내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대번에 찍어 눌러서 저와 나의 ‘격’의 차이를 여실히 느끼게 해 주리라.

그것이 여태 자신을 농락한 대가라고 알려 주리라.

다시금 앙천광소를 터뜨리려는 찰나에.

“……무게 좀 잡아 보려 했더니, 역시 안 되겠네.”

“…….”

입을 뗀 천무린의 말에 무형노괴의 득의양양한 입가가 삽시간에 굳어졌다.

이 상황에서 저리 여유를 부린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늘 위에서 짓누르는 자신의 무형지기는 자신이 봐도 한없이 압도적이다. 고작 약관의 청년이 견뎌 낼 수 있는 압력이 아닌 것이다.

무형노괴의 한평생 살면서 끌어모은 내력의 결정체이니 말이다.

그런데.

“죽을 때가 되긴 했나 봐. 웃을 때 가래가 안 끓어.”

도리어 입가를 비틀면서 천무린은 이렇게 말한다.

그 모습에 역팔자로 꺾은 두 눈썹과 함께 무형노괴는 크게 진노한다.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한번 보자꾸나! 모든 이들이 죽고 나서도 과연 그리 말할 수 있는지.”

무형노괴의 잠력이 터지며 강대한 내력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광룡처럼 휘몰아치는 무형의 기운 속에 담긴 거력이 천무린의 전신을 터뜨려 버리겠다는 듯 무섭게 짓누른다.

그 속에서 천무린의 검이 움직였다.

아주 서서히.

그 모습에 비릿한 미소를 짓는 무형노괴였다.

고작 저 검으로.

저 따위의 검으로 대체 뭘 어떻게 할 수 있다고.

그때.

천무린의 검이 다시금 움직였다.

서걱.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더……!”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베고, 또 벤다.

무차별적으로 벤다.

오행검이 빛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나는 쾌검이 베고 또 벴다.

기운이 일렁거리며 뭉쳐지기도 전에 벤다.

그리고 또 베자 차마 뭉쳐질 수가 없었다.

오행검의 빛살은 멈출 새가 없었고, 무형지기는 수십, 수백 개의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멈출 생각이 없는 천무린이었다.

“……벨 수 없다! 이 기운을 고작 그렇게 벨 수 있다고 보느냐!”

무형지기는 다시 합쳐질 것이었다. 무형노괴의 내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양이 방대하니까.

그런데.

수백이 수천, 수천이 수만이 되어 무형지기를 더욱 흉포하게 베어 냈다.

“……이제 그만 죽어라.”

천무린의 입가가 서늘하게 굳는다.

굳어진 입가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무형노괴의 눈에 어느 한 사람의 모습과 선명하게 겹쳐진다.

“……처, 천마 천무린?”

“뭐래, 등X이. 내가 왜 천마야? 난 그냥 천무린이니까.”

그러면서 무형노괴가 생성해 내는 무형지기보다 더욱 빠르게.

오행쾌검(五行快劍)으로 무형지기를 모조리 소멸시켰다.

“지옥으로 가서 저승사자를 만나거든.”

씨익.

무형지기를 다시 일으키려는 무형노괴의 가슴팍에.

콰드드드득!

오행검이 틀어박힌다.

“내 이름을 꼭 말해라. 그리고 한 건 했다고 꼭 알려 주도록.”

미소를 짓는 천무린의 모습 그리고 가슴팍에 박힌 오행검.

무형노괴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이, 이럴 수는…….”

“늙은 할아방탱, 그 정도면 세상 재밌게 살았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죽으라고.”

천무린은 무형노괴로부터 흡수한 무형지기를 모조리 끌어올려 검 끝을 비틀었다.

푸콰아아악!

“……어, 어찌하여 하늘은 나를 낳고…… 처, 천무린을…….”

서걱!

무형노괴의 머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 그대로 일자로 베어진다. 서서히 일그러지는 세계를 바라보는 무형노괴의 눈앞이 점차 흐려졌다.

“꼴값 떨지 마. 네깟 놈과 비교될 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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