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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75화 (175/250)

제175화

제175화

쾅!

무형의 검강을 쳐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일순 무형의 검강이 별 위력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저 눈속임일 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천무린의 손속은 한층 간결하고 단순하게 변하며 그것을 쳐 냈다.

허나.

콰앙!

천무린의 검에 맞부딪쳐 무형의 검강은 상쇄되었지만, 비산하는 무형의 검강들이 땅거죽을 훑고 지나간 곳에는.

콰드드득!

튕겨 나온 검강이 흙바닥을 모조리 뒤집으며 그것이 새겨 놓은 흔적이 땅 아래 깊은 구렁텅이를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는 무형의 검강이 위력을 잃지도 않은 채 악교운과 이검을 향해 마구 날아왔다. 비산하는 기운은 악교운의 정면을 향해 횡으로 덮쳐 왔다.

피한다고 한들, 저 검강의 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터.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악교운은 산동악가의 비전절기이자 그를 제외한 중원 무림 어디에도 더 이상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무공인 ‘악가창법(岳家槍法)’을 펼쳤다.

묵운악가창공(墨雲岳家槍功).

사십구식악가창법(四十九式岳家槍法).

무려 마흔아홉의 창식으로 이루어진 악가창법의 최후의 3식 중,

사십구식악가창법(四十九式岳家槍法).

봉황비창(鳳凰飛槍).

비상하는 봉황의 상서로운 기운이 악교운의 창끝에 담긴다 싶더니 날아오는 무형의 검강을 향해 그대로 부딪쳤다. 봉황의 날갯짓을 그대로 빼다 박은 그 기운은 무형의 검강과 맹렬히 부딪쳤다.

‘검강이라고 하더라도 고작 파편에 불과할 뿐! 쳐 낼 수 있다.’

그리 생각하고 부딪친 악교운이었으나, 무형의 검강과 부딪친 창대가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크게 휘었다.

상상 이상의 위력.

악가창법의 최후의 절초 중 하나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파편에 불과한 검강조차 쳐 내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꽈드드득.

창대를 꽉 쥔 손아귀에 더욱 많은 내력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밀어 넣은 창의 기운이 창기(槍氣)의 푸른색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악교운의 전신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랐고, 동시에 통제하고 있던 내력을 풀어냈다.

약동하는 단전 속에 휘몰아치는 내력 중 삼분지의 일을 밀어 넣자, 선명해지는 창의 기운은 점차 창의 강기로 변모했다.

끄드드드득.

꽈앙!

파편에 불과하다고 여긴 무형의 검강을 쳐 내느라 애를 먹은 악교운의 푸석한 안색이 천무린에게로 향했다.

‘이런 무차별적인 검강을 바로 코앞에서 받아 낸다고…….’

악교운의 시선이 닿은 천무린의 얼굴은 무감정한 표정이었다. 그런 위력적인 검강을 바로 코앞에서 쳐 내면서도 감정의 동요 없이 천무린은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콰아앙!

일검(一劍).

그리고 일보(一步).

일렁이는 무형의 검을 구체화하여 코앞에서 쏟아지는 검강을 쳐 내며 나아가는 천무린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닥에 깊이 새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진각(震脚)에 가까운 발구름이었다. 단순한 걸음이 아니었다. 그의 지난했던 행적과 과오를 모조리 이 발자국에 담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무형노괴를 향해 나아가는 천무린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사실만 되새기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마인 천무린은 더 이상 없다.

천마신교의 주인이고 만마의 종주였던 천무린이 아닌.

오직 사천무관의 생도인 천무린만 남아 있다.

이 걸음은 전생과 얽혀 있는 천무린을 내려놓고.

현생에서는 오로지 멸마신군 천무린으로서 살아가겠다.

비산하는 무형검강의 도산검림(刀山劒林) 속에서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그야말로 억겁의 시간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닿을 듯 닿지 않을 천무린의 걸음이었다.

‘지은 업(業)은 사라지지 않는다.’

낙인처럼 새겨진 지난날의 과오는 아무리 잊고 싶다고 한들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이번 생에는 그리할 것이다. 안 했던 일을 할 것이다.

그게 이번 생의 천무린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나아가는 것이다.

오른쪽 다리에 실린 내력이 한 걸음 나아간 그 순간.

콰아앙!

굉음과 동시에 무형노괴의 무형검이 코앞에 보인다. 드디어 당도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이노오오옴!”

무형노괴의 전신에서 발산하는 기세는 투명했지만 모든 것을 소멸할 듯 무시무시한 기운이 뻗어 나온다. 흡사 용권풍(龍卷風)처럼 일렁이는 것이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였다.

육안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형노괴의 전신을 휘감은 무형지기는 그가 선 자리에서 높이 치솟아 구름을 꿰뚫어 버렸다.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잃어버린 오른팔 따위는 무형노괴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형형하게 쏟아 내는 붉은 안광으로 무형노괴가 입을 열었다.

“……네놈을 죽이고 천마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겠노라! 네깟 놈에게 더는 나를 잃지 않으리라!”

터져 버린 사자후(獅子吼)가 점차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사방으로 울려 퍼졌고, 포효하는 음성만으로 운남의 모든 이들의 심장을 옥죄듯 옭아맸다.

“모두 지워 버려 주마!”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 행한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 운남의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천무리이이이인!”

허공을 꿰뚫어 버렸던 무형의 용권풍이 멈추는가 싶더니, 단숨에 무형지기의 기운이 운남성 전체를 짓눌러 대기 시작했다.

모든 인세(人世)를 멸하겠다는 악의가 없고서야 이런 무위를 펼칠 순 없을 것이다.

악교운 역시 다리가 꺾일 것처럼 휘청거리더니 피 한 모금을 울컥 토해 내야만 했다. 악교운마저 이럴진대 다른 이들은 어떠랴.

“……대, 대체 이게 무슨……!”

사람이 펼치는 무위가.

어찌 세상을 이리 바꿔 버릴 수 있는가.

감히 인간이 펼치는 무위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광경에 악교운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으나, 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뒤로 물러나 있던 설화린과 당지혜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광포하게 내리누르는 무형의 기운.

눈으로라도 느껴지면 차라리 공포가 덜하련만.

알 수 없는 기운이 전신을 찍어 누르기 시작하니 사람인 이상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무형의 압력에 설화린과 당지혜의 무릎이 꺾이며 저도 모르게 격통을 호소하였다.

“끄으윽…….”

“……아아아!”

고통을 호소하며 정신을 잃으려고 하는 두 생도에게 악교운은 이를 악물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두 생도는 지금부터 잘 들어라.”

“…….”

엄청난 압력을 견디며 이야기하는 악교운의 두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지금부터 우리는 운남성의 모든 양민들을 대피시킨다. 단 한 걸음이라도 좋다. 대피시킨다.”

그 말에 설화린과 당지혜가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대꾸하려는 찰나.

“포기하지 마라. 물러서지 마라. 무림학관의 생도가 되어 배움을 얻었다면 응당 그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녀석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라.”

무림학관의 생도라는 입장.

그리고 천무린의 악전고투(惡戰苦鬪).

두 생도를 바라본 악교운이 울컥거리는 핏물을 한 모금 내뱉더니 입가를 억지로 끌어올린다.

“내가 앞장서마.”

그러면서 악교운은 천무린을 힐끗 쳐다보고는 운남성에 휘몰아치는 재해에 대비하여 힘겹게 경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걸음 속엔 어서 양민을 구해야겠다는 일념뿐,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구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그리고 그리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믿는다.’

천무린이라는 녀석을 향한 굳은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를 믿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악교운의 행동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양민들을 향해 나아가는 악교운을 멍하니 바라보던 설화린과 당지혜가 이를 꽉 깨물고 무형의 압력을 견디며 무릎을 세웠다.

“……가자. 화린아.”

당지혜의 말에 설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그녀들의 눈동자에는 천무린이 나아가는 걸음이 보였다. 무형노괴라는 희대의 거악(巨惡)을 홀로 상대하고 있는 천무린의 모습.

두 여인은 찰나의 그 모습을 담고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려 악교운을 따라 움직였다.

세 사람이 움직이고 남은 이검만은 무형노괴와 천무린의 격전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다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거센 압력에 모든 혈관이 터져 버릴 듯 짓눌리고 있었지만…….

“……거 참, 떽떽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시끄럽게.”

노호성을 터뜨리는 무형노괴에 대한 천무린의 답변이 그 압력에 짓눌리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다소나마 해소시켜 주었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을 눈앞에 두고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천무린이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움직이는 천무린이었다.

악교운과 설화린, 그리고 당지혜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천무린의 방식으로 그들을 지켜 주고 있음을.

운남의 양민들에게 향할 압박감을 자신에게로 집약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런 벌레 같은!”

무형노괴의 짓눌린 진노(眞怒)가 급류처럼 터져 나오며, 무형의 압박감이 배로 강해졌다. 광포한 무형의 급류는 운남성 전체를 산산조각 내 버릴 듯 더욱 속도를 더했다.

자신의 무형지기 앞에서 감히 어느 누구가 벗어날 수 있겠느냐.

모조리 죽여 버리리라.

그리 생각한 무형노괴는 그런 상념을 채 끝맺지도 못한 상태에서.

……움찔.

등 뒤를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기운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야 했다. 천천히 돌아간 고개에 보이는 천무린의 두 눈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무형검(無刑劍)에 서서히 색이 입혀진다.

붉은색, 푸른색 그리고 검은색, 하얀색, 황금색까지.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운들이 발현되어 그 색이 무형검에 스며들어서 더는 무형검이라고 부를 수 없는 한 자루의 검이 형성되었다.

그 검에 무형노괴의 전신에서는 뜻 모를 섬뜩함이 스쳐 지나갔다.

본능이 말한다.

저 검은 매우 위험하다고.

하지만.

참혹하게 일그러진 무형노괴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천무린의 입가에 새겨진 비틀린 미소가.

서서히 과거의 망령으로 치부하던 천마 천무린의 미소와 겹쳐 보였다.

천마 천무린.

그는 전 중원이 인정하던 무신이자, 무형노괴를 비롯한 여섯 장로를 옥죄었고 마도일통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직전까지 이끌었던 인물이다.

홀연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아마 전 중원은 그의 발아래 놓였을 테지.

그런데.

어찌하여 저 애송이의 얼굴에 천마 천무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단 말인가.

“으아아아아아아아!”

운남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하는 무형의 기운이 찍어 누르고 또 찍어 누른다. 그것을 상대하는 천무린의 전신의 혈관이 투툭 하고 불거지더니 대번에 터질 듯 꿈틀거렸다.

우웅.

천무린의 검 끝이 움직였다.

화(火), 확산되는 불처럼.

수(水), 응축되는 물처럼.

목(木), 뻗어 가는 나무처럼.

금(金), 단단한 금속처럼.

토(土), 수렴하는 흙처럼.

오행(五行)의 기운이 담긴 검 끝이 삽시간에 만들어졌다.

“……사라져라!”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천무린의 오행검이 그대로 운남을 찍어 누르던 기운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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