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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66화 (166/250)

제166화

제166화

“다음이 대현문이라고. 후후후, 벽강검을 박살 냈을 때 제법 쾌감이 좋았는데 말이야.”

콧소리가 섞인 비음을 듣고 구소엽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 끼치는 기분을 느꼈고,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혁소와 전욱이 어느 순간부터 홍을 가리켜 왜 광인(狂人)이라고 말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심지어는.

“열 살이 채 넘지 않은 아이들을 모아 다오. 뜨끈하고 펄떡이는 핏물에 몸을 담그고 싶구나. 후후.”

살육을 하면 할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피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구소엽은 더욱 불안감을 느꼈다. 불과 벽강문을 와해시키고 살인을 저지를 때만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시시때때로 거북스럽고 역겨운 요구들을 해 오기 시작했다.

“후후후! 죽인다 하여 심장이 바로 멈추더냐. 단 몇 초라도 좋으니 데려오너라.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치는 아이들의 절망적인 비명이 더없이 꾀꼬리 노래처럼 들리는구나.”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면서 갈구하는 한편,

“여인들! 오갈 데 없는 여인들을 데려오너라! 여아도 좋고, 당장 오늘내일하는 계집도 좋으니! 데려오너라! 내 오늘 그년들의 피로 머리를 손질해야겠구나.”

점차 징그럽고 끔찍한 요구를 해 오기 시작했다. 특히 그런 요구는 적랑오객 중에서도 막내인 전욱이 도맡아서 해야 했는데.

“대형! 제가 언제까지…… 저 미친놈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합니까! 하, 하기 싫습니다.”

비위가 좋기로 소문 난 전욱도 때가 되어 홍을 만나러 갈 때마다 사색이 된 채 파리해진 몰골로 돌아왔다.

“……막내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저 광인이 했다는 것을 모르는 운남의 현 상황을 우리가 독식하려면 저자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으냐.”

“대형!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이젠 놈인지 년인지도 모를 인간을 데리고 있다니……!”

“……막내야!”

“아무튼 싫습니다! 이제 다른 놈을 찾아보십시오! 대형은 보셨습니까! 아이들을 납치해 와서는 아이들의 목을 자르고 솟구치는 피로 온몸을 흠뻑 적시며 웃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치가 떨린다는 표정을 짓는 전욱은 다시는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더는 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참아왔다.

“……알겠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구소엽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런 대형의 반응에 마음이 풀렸는지 전욱은 저도 모르게 대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막내야, 너의 이야길 들으니 이제 네가 아닌 다른 이에게 그 일을 시켜야겠구나.”

역시 대형이었다.

적랑오객의 대형의 가슴은 하해와 같이 넓다.

분명 그리 생각했건만.

“대현문까지만. 대현문까지만 안내하거라.”

……젠장.

또 당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전욱이었지만, 어쩌겠나. 대형이 저리도 간곡히 부탁하는데.

“하휴, 알겠습니다. 제가 해야죠. 대신 다녀오면 저 술 왕창 마실 거예요. 말리지 마십시오.”

“오냐! 내 네가 마시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게 해 주마. 술을 마시든 여자를 품든 네 마음껏 해라!”

전욱에게는 더없이 달콤한 이야기였다. 그는 입가가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구소엽은 아우들을 잘 챙겼지만, 일에서는 단호하고 엄격한 편이었다. 전욱에게 화양루 기녀들의 관리와 손님들에 대한 접대 등 전반적인 운영을 맡기고 있었지만, 사적으로는 이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을 두었다.

그런 대형에게서 늘어지게 쉬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순간.

광인을 데려다가 피 칠갑을 해 준 뒤에 후딱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흐흐, 아영이 고년! 내가 오늘……!”

“그리도 좋으냐. 고생했으니 쉬게 허락해 주는 것이니 마무리까지 잘하고 오너라.”

“옙! 대형!”

전욱은 부리나케 광인, 홍을 데리고 대현문으로 안내했다.

“호호, 대현문이라고. 거기에는 쓸 만한 사내놈들이 좀 있을까나.”

어느새 늘어진 콧소리와 여인의 말투가 서슴없이 튀어나오는 모습에 전욱은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애써 진정시켜야 했다.

“후후후, 대현문의 아이들이 백 명쯤 된다 하였느냐?”

이번엔 사내다운 말투가 흘러나왔다.

“……그렇소. 그런데 그곳은 조심해야 할 것이오. 아마 대현검 안벽이 소문을 듣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오. 대현검 안벽은 절정의 고수로 제법 이름을 날린 인물이라오. 아마 우리 형제들이 힘을 합쳐도 결코 쉽지 않은 인물이지.”

전욱은 속으로 침음을 흘리며 발걸음을 멈춘 채 엉거주춤하게 한 곳을 가리켰다.

“호호호! 친절하구나. 그런데 네 이름이 뭐라고 하였지?”

저벅, 저벅.

홍이 다가와 전욱의 뒷덜미에 얼굴을 천천히 가져다 댔다.

“……그것이 왜 궁금하시오!”

황급히 몸을 내뺀 전욱의 모습에 홍이 묘한 열기를 담은 두 눈을 번뜩였다.

“그야 오늘 밤 내 시중을 들라고 하기 위해서지. 오호호! 오늘로써 피 맛을 보는 것도 끝일 테니 말이야.”

옷소매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찍어 바른 분칠을 한 허여멀건 얼굴을 보고 전욱은 속으로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대체 어떤 인간이 저 모습을 보고 담담히 있을 수 있을까.

“자알 생각해 보거라.”

저벅, 저벅.

대현문이라는 간판이 새겨진 대문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홍이 슬며시 뒤로 돌아서서 전욱을 바라봤다.

“정녕 네 형제들이 너를 지켜줄 것 같으냐? 허나 자진해서 네가 내 밤 시중을 하러 들어온다면.”

홍의 기괴했던 목소리가 약간은 나릇하고.

꿀꺽.

또 자세히 들으면 여인의 교태 어린 음성에 가까워졌다.

“내 너를 운남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텐데, 오호호!”

아마 다른 이가 들었다면 ‘미친놈!’이라고 소리치며 검을 빼 들었을 테지만, 전욱은 그저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전욱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걸음을 옮기는 홍은 대현문이라는 문파가 별거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그리고 전욱은 알고 있었다.

저 홍이라는 광인으로 인해 운남에 존재하는 문파가.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것을.

그것도 수십 개의 문파들이.

일거에 싹 쓸어버리는 광인의 무위도 무위지만.

살인에 대한 무감각은 물론이고, 피에 지독한 열망을 보이는 모습에서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심지어 사내도, 그렇다고 여인도 아닌 해괴망측한 모습에 거부감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다니.

“자알 생각해 보거라. 호호호. 운남의 주인이 된다면 네게 생길 재물과 여인과 자유를!”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되지만, 귀 끝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주 약간.

미미하게나마 달콤하게 들린다.

그리고 전욱의 시야에서 사라진 홍의 뒷모습이 어느덧 대현문의 대문 앞에 당도하여 옷소매를 걷었다.

운남에 올 때까지만 해도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어느새 하얗게 변했고, 분칠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안면의 피부도 백옥같이 바뀌었다.

“호호호, 마음에 드는구나. 마음에 들어. 이 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붉어진 두 눈가는 열망으로 일렁거렸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우연히 얻게 된 비급에 적힌 대로 행해 왔고, 그대로 행하니 몸 안에서 퍼져 나오는 기운이 하해(河海)와도 같았다.

지금도 어느 누구와 상대해도 질 것 같지 않은데, 이 무공이 완성된다면 어찌 될까.

까다롭기 그지없는 조건이었지만, 이 눈앞에 있는 문파만 지워 버리면 얻게 될 것이다. 사상 최강의 무공을.

“호호호, 코앞이구나. 바로 코앞이야.”

저벅, 저벅.

그리고 그때,

대현문에 도착하기 직전, 홍을 맞이하는 몇몇의 인영들.

이마에 구슬땀을 흘린 청년이 징글징글하다는 듯 표정을 잔뜩 구기고 있었고.

“아휴. 찾았다. 씨XX.”

자신을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는 천무린이었다. 그리고 그 천무린의 뒤를 따라온 일행 역시.

“허억, 허억. 남만이라면서요!”

“남만은 개뿔! 운남성 한가운데였는데, 왜 빙그르르 돌아서 여기에 온 거야.”

“……후우.”

세 남녀가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헉헉거리고 있었다.

“이, 이 사람 맞아요?”

“어. 맞아.”

“……피 한 방울 묻힐 줄 모르는 여인 같은데.”

당지운의 말에 악교운과 설화린 역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호,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신 분들이실까.”

옷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흘깃흘깃 쳐다보는 것이 여인이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모습에 일행은 눈앞에 보이는 이가 당연히 여인네라고 생각했다.

단 한 명만 빼고.

“다 필요 없고, 이 새끼 맞아. 악취가 진동을 하거든.”

킁킁.

찡그린 천무린의 표정이 코끝을 내세우다 말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표정이 굳어져 갔다.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굳어지는 그의 표정에 일행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뭔데? 갑자기 왜 정색을 하고 그래.”

악교운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홍을 바라봤다. 입가를 가리고 있지만, 가느다란 눈매와 전체적인 옷태를 보고서 고개를 갸웃했다.

“……심복은 남자였는데.”

남자가 어떻게 갑자기 여자가 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그건 제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다는 의관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저놈, 저놈의 손아귀에 못 해도 삼백은 넘게 죽었구나.”

혈향(血香)이 코를 찌른다.

천무린의 인상이 찌푸려지자, 일행 역시 표정이 굳었다.

“……사, 삼백?”

“말도 안 돼…….”

경악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홍이 비음이 섞인 목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호호호, 강호의 협객분들이 왜 제 앞을 막아서는지 잘 모르겠으나 비켜 주시겠어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에요~.”

기루의 여인과 별 다를 바 없는 교태 어린 음성에 응당 비켜 줘야 할 것 같았다. 목소리에 담긴 뜻으로만 듣자면, 무공의 무 자도 모를 듯한 여인의 음성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염병하네. 사내 구실이 안 돼서 여자인 척하는 건가? 징그럽게 말이야.”

천무린이 칼끝으로 홍의 사타구니를 가리켰고, 씨익 웃었다.

“혈마공(血魔功) 말고도 규화보전(葵花寶典)도 있었더냐. 후후후.”

그 말에 홍의 표정이 변색되며 주춤하고 말았다.

“어, 어떻게. 규, 규화보전에 대해 아, 알고 있는 것이지……!”

처음으로 홍의 한없이 여유롭던 표정이 굳어졌고, 그 모습에 기껍다는 듯 낄낄거리는 천무린이었다.

“……나? 네놈 참교육을 시키러 온 사천무관의 생도다. 이 새끼야. 오늘 좀 맞자. 아 참, 그리고 말이야. 사내를 하든 여인을 하든 하나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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