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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65화 (165/250)

제165화

제165화

운남의 교역로와 남만에 굳건히 자리 잡던 남만야수궁의 존재가 사라지고 생긴 빈 공백은 운남에 있던 군소 방파들이 채웠다.

특히, 대현문(大賢門)과 벽강문(碧强門)은 문도 수가 거의 백에 가까운 문파들로 교역로의 통행세를 나눠 먹기 위하여 정의와 협의를 내세운 간판을 내걸었다.

“저 벽강문 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남만야수궁이 없는 운남은 곧 기회의 땅이란 말이다! 이것들아!”

“움직여! 움직이라고! 이 머저리 같은 것들아! 너희의 봉급이 무려 세 배는 많아질 것이다!”

“정의? 협의? 뭐든 좋다! 상행하는 놈들의 마음을 뺏어 우리한테 보호비를 내도록 만들라고!”

대현문은 중원 무림에서 이름깨나 높았다는 대현검(大賢劍) 안벽을 문주로 내세우며 찌들었던 문파의 탈을 벗고 새로운 방식으로 운남의 양민들에게 접근했고.

“우리가 놈들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 저긴 대현검만 없으면 전부 허수아비들뿐이지 않느냐!”

“문도 수는 우리가 더 많다! 그 말인즉슨, 더 많은 상행하는 놈들! 표행하는 놈들의 관리가 수월하다, 이 말이야!”

“부리나케 뛰어가! 뛰어가란 말이다! 처자식 먹여 살려야 될 게 아니냐!”

벽강문 역시 벽강검(碧强劍) 석문함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대현문보다 정예 문도 수가 더 많다는 점을 내세워 발 빠르게 자리를 잡아 갔다.

대현문과 벽강문이 쌍두마차로 여타 다른 군소 방파보다 먼저 자리를 확고하게 잡아가니, 금세 두 문파의 나눠 먹기가 시작되었고 점차 안정화되어 가는 듯 보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적랑문(赤狼門)이라고?”

“예. 적랑문이라고 이번에 화양루라는 새로운 기루를 열었는데, 상인들이 그리로 제법 많이 가나 봅니다.”

“이유는?”

“조사를 해 보니 외지에서 굴러먹던 놈들이 제법 괜찮은 여인들을 데리고 와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쓰읍.”

“침이나 닦고 말하지.”

벽강문의 관리를 맡고 있는 석문함의 조카이자 나름 재능을 인정받아 일류에 다다른 무사인 석태겸은 자신에게 보고하는 수하의 눈에 일렁이는 묘한 열기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기루에 있는 여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거냐? 한심하긴.”

“……그게 보통내기들이 아닙니다. 아주 혼을 쏙 빼놓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크흠흠.”

“이놈들이! 수련은 안 하고 애먼 데 눈을 돌리고 있었더냐! 썩 물러가서 다른 놈들의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할까!”

석태겸의 일침에 움찔한 수하가 자세를 가다듬더니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 모습에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뜬 석태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벽강문 총관의 자리에 앉아서 수많은 행정 업무를 보고 수하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운남에서 자리를 잡아가면 잡아갈수록 석태겸의 부담도 커졌다.

거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군소 방파들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지금이야 대현문을 제외하고는 당장에 신경 쓸 문파들이 없다곤 하지만, 계속해서 문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니 긴장을 풀려야 풀 수가 없었다.

운남은 여전히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혹은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채처럼 자신들의 구역을 확고히 한 대문파가 아니라면 언제라도 멸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군소 방파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군소 방파들은 대문파와 협력하여 일부 세를 납부하며 그 그늘 아래 들어가기도 했으나.

운남은 대문파가 없는 데다 다른 지역에 비해 노른자 땅이 비교적 적었기에 대문파의 시선을 끌기에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벽강문이 이곳에 자리 잡는 데 적합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양민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벽강문이다. 그런데 기껏 자리 잡은 이곳에 또다시 신경 써야 할 이들이 나타났다.

“적랑문이라. 적랑문. 적랑오객이라 했던가.”

들어보지 못한 문파에다 낯선 별호였다.

객잔과 일반적인 음식점이 아닌 기루를 열었다는 것은 곧 낮보다 밤을 주름잡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그렇다는 것은 곧 사파를 자처하는 이들이나 보일 행보라는 뜻.

“좋지 않군. 그래도 양민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세를 불리려면 기루를 운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텐데.”

하지만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 그에 따른 대가도 상당할 터였다.

위험한 일인 만큼 아마 성장세도 가파를 것이다. 큰 위험을 감수하며 유지하게 되면 큰 보상으로 돌아오는 법이니까.

“더 커지지 못하도록 미리 제재를 가하는 것이 좋겠지. 아이들을 시켜서 미리미리 위협을 가할 필요가 있겠군.”

위협으로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없애 버려야겠지.”

그것이 운남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석태겸은 위인도, 호인도 아닌 일개 문파의 총관에 불과하다. 그리고 제 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그뿐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멈추시오!”

외곽으로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수하들의 음성이 들려와 석태겸의 상념을 깨웠다.

“더 다가온다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으니! 원망일랑 마시오!”

다급한 소리였지만, 석태겸은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있었다. 제 자신의 무력을 믿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이들이.

그리 생각하고 몸을 돌리는 석태겸이었으나…….

콰앙! 쿠당탕탕탕!

벽강문의 탄탄한 철제 대문이 대번에 부서지며 한 인영이 피를 뿌리며 석태겸의 발치 아래로 굴러왔다.

석태겸의 두 눈동자가 커지기도 전에.

콰앙!

“크으아악!”

외곽의 벽에 처박히며 허공에다 피를 분수처럼 뿌린 벽강문도의 목은 이미 이리의 이빨에 뜯긴 것처럼 엉망이 된 채 굴러다녔다.

“……이게 무슨! 웬 놈이냐!”

경거망동할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명백한 침입자의 행동.

“대현문이냐!”

스르릉!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으며 입구에 들어올 이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러나.

“후후후, 여기가 벽강문인가.”

저벅, 저벅.

석태겸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음성과 발걸음은.

“……한 명?”

부서진 대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한 명이었다.

할짝.

자신의 손끝에 묻은 핏물을 핥더니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퉤, 영글지 못해서 맛이 없구나. 어떠냐. 너는 맛이 있을까?”

“……미친!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왔느냐! 감히이!”

대노(大怒)한 석태겸이 크게 소리쳤다.

“후후, 강한 척은. 뭐, 좋구나. 여기는 아이들이 많으냐?”

한껏 여유롭고 더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석태겸에게 다가오는 이는 적랑문의 빈객(賓客)으로 온 홍이였다.

“나의 이름은 홍이란다. 잘 기억해 두어라.”

“미친놈!”

“후후, 새롭게 얻은 힘을 완성시키려면 꽤 많은 피가 필요하거든. 오면서 제법 죽였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석태겸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운남의 벽강문 한복판에 들어와서도 보이는 저 여유로움은 석태겸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고작 이립(而立, 서른)에 불과해 보이는 이가 가지기에는 과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중원 무림에서 과한 자신감은 때때로 혈풍(血風)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벽강문의 문도들아! 모두 나와서 침입자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라!”

석태겸은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벽강문도는 상행과 표행의 보호로 나선 이들을 제외하고도 팔십여 명이 넘는다.

그런 문도들을 혼자서 상대할 순 없을 터.

타닥! 타닥!

뛰어나오는 벽강문도들은 피를 흘리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보고는 황급히 검을 빼 들고 홍의 주변을 에워쌌다.

“벽강문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감히 혼자 와서 이런 난리를 치다니! 사지 근맥을 모두 잘라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우리 벽강문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그 말에 홍이 씨익 웃었다.

움찔.

석태겸은 홍의 말려든 입꼬리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무, 무슨 사람의 입이 저렇게 흉측하게…….’

그러나 석태겸은 이곳 벽강문의 총관이자 벽강문도들의 책임자였다. 벽강검 석문함을 제외하면 이곳에서 제일가는 고수인 셈이었다.

현재 석문함은 대현문과 협의를 하러 갔으니 이곳 벽강문의 문주 대리를 할 수 있는 이는 석태겸밖에 없었다.

“……저놈에게 벽강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려 주어라!”

“충!”

“존명!”

제각기 소리친 벽강문도들은 두 손을 늘어뜨리고 입가를 말아 올린 홍을 향해 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

* * *

“벼, 벽강문이 와해가 돼?”

“그게 무슨 소리더냐?”

적랑오객의 대형인 구소엽과 둘째 혁소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채 막내인 전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모, 모르겠습니다. 대형! 둘째 형님! 어, 어떤 미친놈이 벽강문을 쓸어버렸다고만 들었습니다.”

그 말에 구소엽이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광인을 떠올렸다.

그냥 한 말이 아니었던가.

미친놈이 한 헛소리가 아니었단 말인가.

꿀꺽.

벽강문은 적랑문이 온 힘을 다해 부딪쳐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벽강문을 하루아침에 멸문지화(滅門之火)를 시켜 버렸다고.

마, 만일 자신도 미친놈이라 치부하고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구소엽은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도대체 그 한 명이 누구란 말이냐! 운남을 찾아온 절세 고수라 할지라도 벽강문을 하루아침에 박살을 내다니, 그럴 이유가 없지 않느냐?”

둘째인 혁소의 말에 전욱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후후, 아직 뒤처리를 하지 않았더군.”

“……!”

소름이 돋는 음성. 평범한 목소리에 불과했지만, 구소엽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제법 일머리가 돌아가는 놈인 줄 알았건만, 내 착각이었나?”

홍이었다. 피 칠갑을 한 홍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씨익 입가를 올렸다. 그늘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홍의 말에 혁소와 전욱이 두 눈썹을 역팔자로 꺾으며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대갈통을 부숴 주마.”

“대형에게 무슨 말버릇인지 모르겠으나, 그 주둥아리를 찢어 개 먹이로 주겠다!”

사파의 일원답게 입이 거친 두 사람에게 구소엽은 황급히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닥쳐라! 이놈들아! 대인께 이 무슨 말버릇이냐!”

“……대형?”

“그게 무슨…….”

“내가 모셔 온 귀한 손님이다! 쓸데없는 말일랑 그만두고! 공손히 예를 갖춘 다음 어서 들어가거라! 썩!”

그렇게 소리친 구소엽은 몸을 돌려 홍에게 최대한의 예를 갖췄고, 그렇게 운남에서 홍과 적랑문은 본격적으로 손을 잡게 되었다.

홍은 운남에 있는 각종 군소 방파를 하루아침에 멸문시켜 버렸고 수많은 피를 뿌렸으며, 적랑문은 군소 방파들이 가진 재산과 이권을 순식간에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따라서 적랑문은 개파한 지 불과 서너 달도 되지 않는 시점에 운남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후후, 이제 백 명 남았는가. 호호호.”

갈증이 가시지 않는 홍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배었다. 굵고 낮았던 그의 목소리는 아주 서서히, 느릿하게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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