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제163화
콰앙!
“푸하아악!”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양의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겨우 상처가 지혈되나 싶었는데.
젠장.
‘몇 대 맞고 말 거라더니, 말이랑 너무 다르잖아!’
진탕된 내부로 인해 혼미한 정신을 붙잡고 주저앉은 공야찬의 시선에 무형노괴가 보였다. 진노(眞怒)한 무형노괴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조수강의 목을 틀어쥐고 벽에 밀쳤다.
끄그극.
가히 폭력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세와 별개로 혀를 차는 특유의 웃음을 뱉는 무형노괴였다.
“끌끌끌……. 네놈들이 감히 나를 능멸해? 이틀이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다니. 오냐. 모조리 죽여 주마.”
“지, 진짜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공야찬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피범벅이 된 채 입을 열어야만 했다.
“저, 정말로 천마신공(天魔神功)입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공 이야기만 꺼내면 살 수 있다며!
살 수 있긴 개뿔.
당장 눈앞에 있는 저 손아귀에 세 갈래, 네 갈래 찢기게 생겼다. 짙은 살기에 숨이 턱 막혀 왔다. 옥죄는 기운과 살을 저미는 듯한 무시무시한 살기에 공야찬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저려왔다.
저 눈빛에 갇혀 영원히 악몽을 꿀 것 같은 느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가지 않은 것을 그저 후회할 따름이었다.
“끌끌……. 이틀을 허비하게 만들다니, 나의 시간이 너희와 같은 줄 아느냐. 아해들아, 도망가지 않고 이곳에 머문 것은 기특한 일이나 나의 자비는 여기까지다.”
그 말에 다급해진 공야찬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단 몇 초면 자신은 이승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젠장!
그래서 소리쳤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위험한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미친 색마 새끼야! 사내 구실도 못 하는 주제에 여자나 밝히고! 네놈이 다른 마공이 가당키나 하냐? 구유비마의 꽁무니라도 따라가려면 천마신공쯤은 되어야 할걸? 낄낄낄! 」
“미친 색마 새끼야! 사, 사내구실도 못 하는 새끼가 여자나 밝히고! 구, 구유비마의 꽁무니라도 쫓아가려면 천마신공쯤은 되어야 할걸!”
두 눈을 딱 감고 크게 내지른 공야찬이었다.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목에 힘을 주고 온 내력을 써서 소리친 덕분에 내부는 더욱 진탕이 되었지만, 그 덕에 무형노괴의 귓가에 정확히 박혔다.
우뚝.
코앞에서 무형노괴의 손끝이 멈췄다.
“…….”
일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어떤 감정도, 휘몰아치는 분노조차 소멸한 채 사위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공야찬이었다.
‘왜, 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지.’
스르륵.
뭔가 주저앉는 소리와 동시에 쿨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쿨럭!”
무형노괴의 손에서 벗어난 조수강은 거친 숨을 훅훅 들이마셔야 했다. 목에 새겨진 상흔을 보노라니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조수강은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힘이 빠진 조수강은 각혈을 하며 그대로 혼절했고, 남아 있는 공야찬에게 그 기세가 집중되었다.
“끌끌,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그 주둥아리로 뭐라고 하였느냐?”
무형노괴가 느릿한 시선으로 공야찬을 바라봤다.
덜덜덜.
그 시선 속에 갇힌 공야찬은 떨리는 턱을 부여잡았다. 인내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형노괴의 눈빛이 공야찬과 마주했다.
“죽을 테냐. 끌끌.”
있는 힘껏.
전신에 모든 힘을 짜내서 공야찬은 입을 열어야 했다.
“……구유비마의 꽁무니…… 라도 쫓아가려면 천마신공은 되어야 할 것이라 하였…… 습니다.”
떨리는 입술로 말문을 연 공야찬은 이러나저러나 무형노괴의 변덕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클클클……. 천마신공이라.”
무형노괴를 따르던 이검의 두 눈이 질끈 감겼고, 이검의 표정을 본 공야찬은 비참한 자신의 말로를 떠올려야 했다.
제X랄.
구유비마가 오장로인 건 안다. 근데 그 자세한 사정까진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정보력이 뛰어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 마교의 정보를 개나 소나 다 빼 올 수 있다면 이런 곳에서 정보꾼으로 살아가진 않았을 터.
그래서 답답했다. 뭔지 알아야 말대꾸라도 하지!
덩그러니 놓인 자신의 처지가 급격히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괜스레 그 새끼 말만 믿고 깝죽거렸다가 비명횡사(非命橫死)를 당하게 생겼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걸음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것으로 보아 공야찬이 보기에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 봤던 장문인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저 살기충천(殺氣衝天)한 기세는 공야찬이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런 자 앞에서 헛소릴 지껄였으니, 되레 살려 달라는 말이 비양심적일 것 같았다.
스윽.
느릿하게 다가오는 무형노괴의 손길에 공야찬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다니.
“……클클, 그래애. 천마신공을 갖고 있는 이가 어디에 있다고? ……운남의 대막이라고?”
그 말에 공야찬의 머리 위에 자글자글한 주름에 덮인 손이 닿았다.
“예, 옛! 그, 그렇습니다!”
“그 정보에 대한 진위가 사실이기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기도해야 할 게야. 그렇지 않다면……. 클클.”
참으로 섬찟한 시선이었다. 당장이라도 갈가리 찢어 버릴 수 있다는 시선에 공야찬은 암흑의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심연(深淵)을 들여다본 공야찬은 어떠한 대꾸도 할 수 없었고.
얼어 버린 공야찬과 혼절한 조수강을 뒤로한 채, 무형노괴는 발길을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검이 검을 뽑으려 하자,
“놔두거라. 어쩌면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 혹여 나를 능멸하였다면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테니까. 끌끌끌.”
쥐소굴에 울려 퍼지는 무형노괴의 만류에 이검은 무심한 눈동자에 공야찬과 조수강을 담았다.
“목숨을 담보로 한 정보가 사실이기를 빌도록.”
그러고는 사라지는 노인과 청년.
털썩.
바르르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공야찬의 몸이 잘게 떨리며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의 힘이 그만 풀려 버린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진득한 살기 덩어리.
“우웨에에엑!”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대로 구역질을 한 공야찬은 그저 몸을 둥글게 만 채, 움켜쥔 주먹으로 몇 시진을 심마에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으으으으…….”
이것이 정녕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허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찌 됐든 천무린은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저 무형노괴의 앞에서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저 멀리 남쪽으로 사라진 천무린 일행 쪽을 바라보며 가시지 않은 공포 속에서도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죽지 마시오.
* * *
타다닥!
“허억! 허억! 왜 갑자기 이렇게 속도를 높여요!”
“속도를 높이다니? 원래 이래야 하는 거야.”
“미, 미쳤어! 섬서무관 갈 때보다 배는 더 빨라욧!”
“어리광 부릴 거면 꺼져!”
“…….”
역시 여자라고 봐주는 법 없는 천무린의 말에 설화린의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돌아가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설화린이었기에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경공을 펼칠 뿐이었다.
“그런데 구유비마(九幽飛魔)가 대체 누구냐?”
“그런 것도 몰라요?”
“알아야 하는 것이냐?”
“하기야 그놈들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넋두리처럼 말한 그의 말에 악교운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구유비마(九幽飛魔).’
여섯 장로 중 오장로.
무형노괴와 함께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장로다. 구유비마에 대한 정보는 수면 위로 드러난 정마대전 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악교운으로서는 모를 수도 있을 터였다.
악교운에게 대답하는 대신 천무린은 피식 웃으며 천마신교의 상황을 떠올렸다.
‘우습지.’
천마신교는 맹목적인 집단으로,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철저하게 믿는다. 그것이 천마신교라는 집단이다.
그들이 모시는 신(神).
천마 천무린.
그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정마대전을 통해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저 천무린의 명령에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고 전쟁이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제 한 몸을 던지는 광신도들이라는 것을.
그런데 그 속에서도 천마(天魔)라는 신(神)을 모시면서 자기네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녀석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여섯 장로였다.
그와 같은 내부 이야기.
위협적이라는 말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한 천마신교라는 집단.
‘그런 지저분한 속사정을 누가 알까. 전 중원이 공포에 떠는 천마신교가 사실은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없다는 사실을.’
목숨을 걸고 천마신교라는 지옥도에 뛰어들지 않는 한,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 제아무리 개방과 하오문 그리고 쥐소굴이라도 천마신교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천마가 필요한 것이다.
천마라는 존재 하나로, 여섯 장로는 발이 묶여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일 수가 없었다.
여섯 장로에 대한 무게감보다 천마라는 신에 대한 존재감이 훨씬 우위에 있는 천마신교이기에.
절대적인 권위와, 천마신공(天魔神功)을 통해 얻게 되는 절대자의 무위.
결과적으로 무형노괴가 저리 날뛸 수 있는 것은.
‘현재 천마신교에 천마가 없다는 뜻이겠지.’
추측 가능한 사실이었다.
하기야 절대자였던 천무린의 공백을 누군가 메우려고 해도 결코 메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게 소교주인 천무린의 제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천마가 없는 천마신교?
속 빈 강정이라 할 수 있었다.
‘서서히 놈들이 날뛰기 시작하겠지.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지금처럼 조용히 지내진 않으리라는 것은 무형노괴의 움직임으로 확실하게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중원에는 다시 한번 혈겁(血劫)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절로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졌다. 모순적이다.
전생의 혈겁은 천무린이 일으켰는데,
현생의 혈겁은 천무린이 막아 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후후. 후후후.’
천무린의 두 눈이 깊이 침잠한다.
‘천마신교의 이목은 내가 끌어야지. 내가 벌인 판, 내가 막는다.’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검은 동공에 묘한 열기를 띤 채.
바로 그때, 그의 상념을 일깨우는 한마디.
“대막(大漠)에 도착하였습니다!”
살수답지 않은, 명랑하고도 쾌활한 아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을씨년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한, 인적이 드문 이곳은 대막이라고 표현할 만큼 공기가 탁하고 일교차가 심한 곳이었다.
그래서 사막이 아닌 이곳에 대막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이곳엔 왜 왔을까요? 오히려 숨기엔 부적합해 보이는데.”
“그러게. 힘들 것 같은데?”
설화린과 당지운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이쪽을 통해야만 남만(南蠻)으로 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