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제160화
“천마신교라고요? 말도 안 돼…….”
설화린이 설마 하는 눈빛으로 반문하며, 공야찬과 조수강을 바라봤다. 설화린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이들은 천무린을 제외하고 당연히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을 수 없다기보다 믿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십여 년 전의 악몽, 그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이가 누가 있으랴.
거기다 일면식도 없던 이들에게서 흘러나온 이야기인데다 이곳 환경을 보면 뒷골목이나 진배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 있는 이들의 입에서 갑작스레 천마신교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니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천마신교라니, 너무 뜬금없는 이야길…….”
당지운마저 의심스러운 눈길로 공야찬과 조수강을 바라봤다. 음침하고 컴컴한 이곳에서 피를 흘리며 겨우 목숨을 보전한 이들.
그저 암흑가에 있는 뒷골목 파락호들끼리 부딪혀 칼부림이 난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소. 설 소저.”
“……설 소저? 어떻게 내 성을 아는 거죠?”
설화린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어린다. 그녀는 일개 무관 생도에 불과하다.
그녀가 제대로 된 협객행을 한 것도 아니고,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도 명성을 날리지 못했거늘.
어떻게 자신을 알았느냐는 표정을 짓는 설화린에게 공야찬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정보꾼은 다름 아닌 정보로 말하며, 정보가 가진 공신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들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가 자신들을 믿어 주겠는가.
“우리가 다루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지. 당신이 북해빙궁 설종량 궁주의 따님이란 것도, 빙화(氷花)라는 별호로 불리는 것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그 말에 설화린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건 알 법한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그것으로는…….”
“그렇다면 자네가 빙백신공 5성을 넘었다는 것과 남사익 소협과 곧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겠지.”
그 말에 설화린이 주춤거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빙백신공 5성을 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정녕 이자들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정말 천마신교가 등장했다고?
그래도 믿을 수 없던 그녀가 한 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그럼 이 사람의 이름도 알고 있는가요?”
설화린이 가리킨 곳에 당지운이 서 있었다. 당지운은 사천무관 내에서 그리 존재감이 강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제아무리 정보에 빠삭한 이들일지라도 모르리라고 판단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를 시험하는구려……. 사천무관 8기 생도들 중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미모를 지닌 이들이 여럿 있으며, 다른 곳보다 손가락 끝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인 것으로 보아하니 비수를 쓰는 것으로 보이는군. 아마 당씨 성을 쓰는 당지운 소…… 아니, 생도겠지. 당백진 관주의 손주 말일세.”
술술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설화린과 당지운은 놀라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뒷골목 파락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 공야찬은 절로 뿌듯함을 느꼈다. 뒷골목 파락호라는 신분에서 정보꾼이자 암흑가를 주름잡는 인물로 올라섰으니 말이다.
그런데.
천무린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한 걸음 나섰다.
“왜 저 녀석은 소저이고, 이 녀석은 애매하게 생도인 건데? 왜 차별하고 난리야. 소협도 아니고.”
그의 말에 되레 공야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당연히…….”
그런데 공야찬의 시선과 마주한 당지운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애처로운 두 눈동자가 미친 듯이 지진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뜻을 짐작한 공야찬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그의 시선이 천무린에게로 천천히 이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눈깔을 또 어디다 돌리냐? 뭐 칼빵 좀 맞았다고 나한텐 안 맞을 거 같아? 날 뭐로 보고!”
……눈 한 번 다른 곳에 돌렸다고 두들겨 팬다는 게 정상인가!
뚜둑. 뚜둑.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먹은 코앞에 있고 헛소릴 하면 바로 날아들 텐데.
기껏 지혈해 놓은 곳들이 다시 욱신거렸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뻗을 것 같은 천무린의 위협적인 모습에 평소엔 잘 돌아가던 머리가 굳어져 두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개방과도 연이 닿아 봤고, 하오문도 이용해 봤지만……. 대단하군.”
차분하고도 담담한 목소리로 하는 자그마한 감탄.
악교운이 눈을 빛내며 공야찬과 조수강이 조사해 놓은 서류들을 살펴보면서 감탄사를 뱉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였지만.
“정보의 질적 수준이 굉장히 높아. 입수한 정보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 가능한 부분까지 파악하는 건가. 그저 정보를 가공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단 말이로군.”
그 말에 공야찬과 조수강은 자신도 모르게 뿌듯함을 느끼며 악교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그렇소이다! 악교운 대협! 과연 광야차(狂夜叉)라는 명성이 허투루 만들어진 게 아니시구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외다!”
어린 생도들이 자신들을 의심하던 모습에 잠시 회의가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악교운이 직접 이야길 꺼내 주니 설화린과 당지운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는 것이 아닌가.
다른 것보다 저 악귀의 발걸음을 막아 주었…….
“뭘 또 그리 띄워 줘요? 아주 승천시켜 버리시겠네!”
아니구나.
뚜둑. 뚜둑.
그러면서 고개를 비틀더니 두 사람을 노려보는 천무린이 입가를 말아 올렸다. 그것도 비틀린 채로.
“내가 제때 정보를 갖고 오라고 했을 텐데. 등 따숩게 해 주고 배부르게 해 주니까 등 뒤에 칼을 꽂아?”
……누, 누가 등을 따숩게 해 주고 배불리 해 줬다고.
거기다 등 뒤에 칼을 누가 꽂았다고!
저 말속에 맞는 거라곤 정보를 제때 갖다 바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칠 주야마다 사천으로 정보통을 보내야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반박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랴.
그저.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머리를 조아리고 그저 살려 달라고 비는 수밖에.
“그만하고 들어 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마신교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누군가에게 급습을 받은 것만은 확실해 보이는군. 문 상태도 저렇고 벽…… 은 네 녀석이 그랬고. 아무튼 극약 처방으로 지혈도 하고 내상도 다스린 것 같으니 이야기는 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악교운의 말에 천무린이 아쉽다는 듯 두 주먹을 내렸다.
그 반응에 공야찬은 눈가에 맺힌 이슬을 훔쳐야 했다. 정말 때리려고 했다니.
“하나도 빼뜨리지 말고 기승전결 확실하게 말해라. 아님 죽. 는. 다?”
죽는다는 말을 강조하며 눈을 부라리는 천무린의 모습에 여태 그에게 두들겨 맞은 기억이 새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 인간은 한다면 하는 인간이다.
기껏 천마신교 놈들한테서 벗어났는데, 여기서 죽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공야찬과 조수강은 목울대를 겨우 넘기며 결국 지난날의 과오까지 포함하여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제갈벽의 죽음 이후 낙양 일대가 어수선해졌고, 제갈강이 찾아오는 순간에 제갈벽의 심복이 운남으로 도망간 것과 그가 들고 간 짐 속에 무언가 있음을 짐작한 사실까지.
제갈강이 제갈벽을 찾아온 게 아니라 제갈벽의 심복을 쫓아 쥐소굴에서 정보를 구하려 했단 사실과 천마신교의 등장까지.
등장한 천마신교의 입을 통해 듣게 된, 하오문의 멸문과 혈마공의 사용 흔적까지.
어느 하나 범상치 않은 것이 없었다.
거기다 천마신교의 인물로 이곳에 발을 들인 이들이 두 사람이었으며, 한 사람은 천마신교의 육장로인 무형노괴라는 사실까지.
천마신교의 육장로.
여섯 명의 장로들은 한 명, 한 명이 구대 문파의 장문인,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비견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자들이다.
개개인의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악명 또한 드높았다. 게다가 무형노괴로 인해 아미파가 멸문 직전까지 갔음은 무림인들이라면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 무형노괴라고요? 그, 그 더러운 색마(色魔)!”
“아아……. 그 색정광(色情狂)이 이곳에…….”
덜덜 떠는 설화린과 당지운은 어질어질한 눈빛으로 주춤거렸다. 그 모습에 악교운 역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어야 했다.
무형노괴라니.
대체 이게 무슨.
감당할 수 없고 실로 버거운 이름이다. 악교운이 제아무리 정파 무림에서 이름이 꽤 드높았다고 해도 무형노괴에 비하면 태양 앞에 선 반딧불에 불과하니 말이다.
자신도 이러할진대 생도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런데.
“뭐? 육장로? 그리고 무형노괴 새끼가 왔다고? 하, 씨.”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천무린의 두 눈에 귀화(鬼火)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귀화에 전생의 육장로들이 쭉 스쳐 지나갔다.
여섯 명의 장로들은 기본적으로 교주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치적으로는 적으로 간주된다. 천마신교의 역사상 여섯 장로들과 교주 사이에 있었던 치열한 신경전을 생각하면.
‘아마 선대 교주들이 죄다 빨리 죽은 이유가 그놈들이 헛짓거리를 많이 해서겠지.’
그러나 천무린 때만큼은.
‘그래서 내가 진작에 찍어 눌러 놨건만.’
찍소리도 못하게끔 여섯 장로를 무력으로 찍어 누르고 가진 모든 힘을 빼앗아 쇠약하게 만들어 버렸다.
처음에 장로들이 가지고 있는 무력대를 모조리 교주의 직속으로 복속시켜 버렸고, 언제든지 여섯 장로들의 자리가 위협을 받을 수 있도록 적자생존의 규율을 같이 적용시켰다.
그에 따라 장로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고, 제 무위를 유지하느라 다른 데 정신을 쏟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놈은 예외였다.
“귀찮은 놈이 왔네. 제X랄.”
빠득.
무형노괴 좋아하네. 색마 새끼.
그놈 때문에 천마신교의 위신만 추락했다.
정마대전이 일어나자마자 여섯 장로 또한 출전을 명했는데, 무형노괴만큼은 눈이 뒤집혀 천무린의 손아귀를 벗어나서 아미참변을 일으켰다. 무형노괴는 교주인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정마대전이 끝나는 대로 극형에 처해야 했다.
‘진즉에 죽여 버렸어야 할 놈이 또 기어 나와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로군.’
천마신교라는 교주 자리는.
누구나 동경하는 지존(至尊)의 자리임은 분명하다.
허나, 그 이면에 감춰진 부분 역시 많았다.
지독히도 외롭고 쓸쓸한 자리였고, 교주로 있는 그 자리는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천하제일인.
무신이자 마신.
천마신교의 교주라는 명성과 무색하게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형노괴는 특히 천무린에게 아주 적대적이었다. 물론 공공연하게 적대적인 표현을 할 순 없었지만, 호시탐탐 늙은 여우 같은 눈으로 천무린을 마뜩잖아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정도였다.
그래서 정마대전 이후에 그것을 죄목으로 대번에 찢어 버리려 한 것인데.
“……후, 오히려 다행인가.”
씨익.
이번에야말로 그때의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으니.
감히 나의 명령을 거슬러?
후후후.
앞으로 영영 사내 구실을 못하게 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