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제157화
“푸휴우, 드디어 돌아갔나?”
“아그그그! 삭신이 쑤신다, 쑤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니 정말 돌아버리겠구먼.”
“어쩌겠나. 다음 생엔 자네도 이런 암흑가 말고 양지에서, 볕 자알 드는 곳에서 천하제일의 후기지수가 되어 보시게.”
불과 몇 개월 전 천무린이 돌아가고 난 뒤, 쥐소굴의 공야찬과 조수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라고는 암흑가의 인물들이나 한둘 받던 쥐소굴이었거늘 틈만 나면 찾아와서 자신들을 두들겨 패고 삥을 뜯고, 욕지거리를 마구 해 대는 악귀 같은 녀석 때문에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삼대 무관의 비무대회가 길어야 한두 달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유증은 꽤 길고 컸다. 심지어는 칠 주야마다 자신들이 아끼고 거액을 들여 키운 살수들을 정보통으로 써야 하는 처지가 속상해서 분노의 눈물을 매일같이 삼켜야만 했다.
“어, 언젠가는 그 악귀 새끼를 내 그냥!”
“포기하세. 포기하면 편할 것을 대단하군, 자네도.”
눈에 불을 켜는 공야찬과 고개를 저으며 안 될 거라는 조수강은 서로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넘길 수밖에 없었다.
천무린이라니.
천무린은 기이할 만큼 사천무관을 믿었고, 자기 자신의 실력을 맹신(盲信)했다. 처음에는 그 믿음이 너무도 허무맹랑하여 코웃음도 나오지 않았지만, 보여 주는 무위와 사천무관 생도들의 행보는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공야찬과 조수강은 천무린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삼대 무관 비무대회로 인해, 그리고 천무린으로 인해 꽤 거액을 챙긴 것도 사실이었고, 갑작스레 툭툭 던지는 말에 좋은 정보도 많이 챙겼다.
그렇다.
좋은 정보도.
그 정보는 천무린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두 사람만 알고 있는 정보이기도 했다.
천무린이 돌아간 뒤, 제갈세가에서 사라진 제갈벽의 행방을 찾기 위해 소가주를 낙양으로 급파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자신들이 얻은 정보라면!
크게 한탕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
콰앙!
난데없이 쥐소굴의 문이 박살이 나고 온통 난장판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공야찬과 조수강은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천무린이 하는 발작(?) 정도로만 여기고, 어서 천무린을 극진히 대접해야겠다고만 생각했으니까.
“끌끌끌, 악취가 진동을 하는구나.”
볼품없는 노인이 소매로 코를 가리면서 천천히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검아, 검아, 정녕 여기가 맞는 것이냐?”
“장로님께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일로일남(一老一男).
평범해 보이기 그지없는 촌로와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야찬과 조수강은 알았다.
강호 무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있으리라.
여인.
아이.
서생.
그리고 노인.
본디 힘없어 보이고 절로 동정심이 드는 여인과 아이와 서생과 노인은 살수들이 분장하기에 더없이 편리하다.
실제로도 살수 단체와 문파들은 그렇게 훈련을 시키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눈앞의 노인을 보고서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유약하고 힘없어 보이는 노인을 조심하라.
강호 무림의 격언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말이다.
수명과 건강을 고려했을 때, 흰 수염이 성성한 노인의 나이가 되면 두 다리로 멀쩡히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 그들이 암흑가나 살벌하기 그지없는 강호행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문이 부서진 것보다 천무린 이후에 생긴 위협에 대한 본능과 감을 믿게 된 공야찬은 경계 어린 눈을 하면서 동시에 예를 갖췄다.
“어르신께서는 무슨 연유로 이곳을 방문하셨는지요?”
“이곳은 어르신께서 찾으시는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눈치 빠른 조수강은 공야찬의 행동이 어색하지 않도록 말을 맞췄고, 그 모습에 노인은 혀를 찼다.
“끌끌끌, 아해들이 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정보를 다루는 아이들이라 그런 것인가. 요즘 젊은것들이랑은 달라.”
노인은 마치 제집에 들어오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쥐소굴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곳이 강호의 무림이 아니었다면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책하는 노인쯤으로 여겼겠지만, 공야찬과 조수강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곳은 암흑가의 소굴인 쥐소굴이다. 두 사람이 있는 이 집무실까지 올 정도라면 아마 앞에 있는 암흑가의 부하들은 죄다 박살이 났거나 쓰러졌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끌끌끌, 그런데 마음에 안 드는구나.”
노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춘 곳에는 집무실 내에 들어 있는 금고 앞이었다. 손을 뻗어 잡아채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조수강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 어르신. 그 금고는 만년한철로 된……!”
우지끈.
금강석 수십 개를 가져다 바쳐도 하나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만년한철이다. 하지만, 비용적인 부분보다 내구도를 따진다면 마땅히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만년한철이었다. 검으로 제련하면 천하제일의 검이 되는 것이 만년한철로 된 검이요, 투구로 제작하면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보호구가 될 것이고, 갑옷으로 만들면 수백 개의 화살에도 끄떡없는 강력한 갑옷이 될 터였다.
그런 만년한철로 금고를 만들었으니, 두 사람의 자부심이 어떠했으랴.
그런데 눈앞의 노인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그것을 뜯어 버렸다. 통째로.
놀라 몸이 얼어붙은 공야찬과 조수강을 뒤로하고, 노인은 직접 금고 속을 훑으며 재물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모조리 치워 버렸다.
제아무리 재물에 관심이 없는 이일지라도 번쩍거리는 금은보화를 보고 저리도 무심하게 치워 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노인의 목적은 그런 재물이 아닌 듯 보였다.
“……끌끌끌, 귀찮구나. 예의를 갖추는 아해들을 보고 과하지 않게 해 주려 했더니 잘도 꽁꽁 감춰 두었구나.”
한 차례 혀를 차던 노인의 손아귀가 허공을 내저었다.
푸욱! 푸욱!
“꺼, 꺼어억.”
“푸흐아! 이, 이게 무스은……!”
허물어지듯 쓰러진 공야찬과 조수강은 자신의 어깨를 꿰뚫은 무언가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를 날린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루어 짐작해 공야찬은 바들거리는 입술을 열 뿐이었다.
“무, 무형지기(無形之氣).”
형체도, 중량도 없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라니.
공야찬의 황망한 표정은 다가오는 노인의 발걸음에 맞춰 더욱 공포로 물들어 갔다. 갑작스레 찾아온 노인의 범상치 않은 모습에서 공야찬은 머릿속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려야만 했다.
“끌끌, 아해야. 노부는 길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 저희한테 왜 이러시는…….”
푸슉!
공야찬의 허벅지를 뚫고 지나가는 무형의 기운.
“말을 길게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느니라. 끌끌끌.”
죽는다.
짙디짙은 죽음의 향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이유도 알려 주지 않고서 그저.
“……끌끌끌.”
눈치껏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노인이 금고까지 뜯어 본 것은 이곳에 반드시 찾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
공야찬은 자신이 굴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그러나.
콰앙!
노인의 두 발은 두 사람의 머리통을 지그시 밟고는 일말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대로 단숨에 두부를 으깨듯 밟아 죽여 버리겠다는 모습이었다.
바들바들.
“장로이시여, 만 리를 지나 당도한 곳에서 원하는 바를 얻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코앞에 둔 두 사람을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던 이검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끌끌, 오냐. 내 시간을 주마. 더 이상 피를 보는 것도 귀찮으니 알아서 구해 오도록 해라.”
그 모습에 이검은 그 노인이 무슨 지고한 신분이라도 되는 양 납작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지체 없이 몸을 돌린 노인은 금세 사라졌으나, 두 사람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대, 대체 저희에게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사, 살려 주십시오.”
공야찬과 조수강은 그저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
무정한 눈으로 바짝 엎드린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사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제갈벽의 심복…….”
차가운 인상의 사내, 이검의 손에 잡힌 검 끝이 피투성이가 되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겨눠졌다.
처억.
“그자의 행방은 어디로 갔는가?”
그 말에 바짝 엎드린 두 사람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제갈벽이 사라진 뒤, 모든 사람들은 사라진 그의 행방을 추적하기에 급급했지 그의 심복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나 빈틈을 놓치지 않는 쥐소굴의 두 사람만이 제갈벽의 심복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으니.
“……살 궁리를 찾고 있는가.”
푸욱!
이검의 검 끝이 조수강의 왼쪽 어깻죽지를 파고들었다. 무심한 검 끝은 조수강의 고통이나 아픔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아아.”
“그, 그자라면 운남으로……!”
쭉 힘이 빠져 흐릿해지는 두 눈으로 혼미한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조수강을 대신하여 공야찬은 있는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운남이라……. 그곳에 숨어들면 숨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건가.”
이검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그런 이검에게 공야찬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어찌하여 그자를 찾는 것입니까?”
그 말에 이검의 무정한 눈길이 공야찬에게로 향했다. 위화감을 느낀 공야찬은 자신에게 검 끝이 향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다, 다름이 아니라! 제갈벽의 행방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그의 심복은 멀리 도망갔으며, 제갈강은 이곳에 오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정보를 다루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상황은 어처구니없었다. 무릇 정보란 무엇인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소문과 이야기 속에서 진위를 가려내어 정보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과 같은 경우는 정말 대책이 없었다.
“후후,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럴 리가. 낙양 바닥에 진동을 하더구나.”
이검의 차가운 조소가 내부에 울려 퍼졌다.
“혈마공의 냄새가 진동을 하더구나. 과도하게 혈마공을 사용하게 되면 그걸 익힌 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지. 마공이 허락되지 않은 자가 치러야 할 대가다.”
그 말에 공야찬은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수많은 정보를 담았다.
‘제갈벽이 혈마공을 익혔었다? 그렇다면 그의 심복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또한 이자들이 찾아오리라고 생각한 것도.’
“후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가 마지막까지 직업병이 이리도 투철하여서야. 생각이 정리되면 말하라.”
이검의 무정한 두 눈이 공야찬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 순간에도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정확하게 진실을 파악해 내는 공야찬을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정보로 혀를 놀리면 네놈의 사지 근맥을 절단하고 평범한 이보다도 못한 삶으로 평생을 살다가 죽게 만들어 주겠노라.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본 교에서.”
팽그르르……. 뚝.
쉼 없이 회전하던 공야찬의 두뇌가 뚝 하니 멈춰 버렸다. 마지막 말에 공야찬은 들려서는 안 될 고개가 들리며 이검을 바라보고야 말았다.
“보, 본 교……. 처, 천마신교!”
경악한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시커멓게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