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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56화 (156/250)

제156화

제156화

“지금 마교라고 했어요?”

“그래, 마교.”

종잇장처럼 구겨진 천무린의 표정은 도무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갈벽이 혈마공(血魔功)을 익힘으로써 생긴 부작용, 그리고 과도한 시전으로 먼지처럼 흩어졌다는 사실을 이 중원 무림에서 천무린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른다.

제갈벽과 같이 정마대전으로 인해 생긴 마교의 흔적은 남아 있을 수 있어도.

갑자기 마교의 발호(跋扈)라니.

“믿을 수 있는 이야기예요?”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개방에서 알려 줬다는구나. 사결개 탁궁 생도로부터 나온 이야기니까 정확할 거다.”

“하여간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줄 알았더니, 이럴 땐 또 일을 잘하네. 계륵(鷄肋) 같은 놈이라고! 필요할 때 열심히 일 안 하고! 꼭 이럴 때만 한다니까!”

길길이 날뛰는 천무린을 바라보면서 악교운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칭찬이든 욕이든 제발 하나만 해라.

“악 교관님, 제갈세가에서 직접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있는 악교운에게 담진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담진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중원 무림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죽거나 사라진다. 뜬금없이 시체로 발견되는가 하면, 난데없이 새외나 외지에서 그 모습이 목격되기도 하는 곳이 중원 무림이자 강호다.

그러나.

명문 정파이자 천하제일지문(天下第一智門)으로 손꼽히는 제갈세가의 소가주의 죽음은 정파 무림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낭인 한 명의 죽음과 명문 거파의 차기 가주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 무게감이 달랐으니 말이다.

“…….”

“제갈세가의 소가주라면 제갈강 소협이던가?”

“……그렇지.”

“백의문사(白衣文士) 제갈강 소협이 갑자기 죽다니…….”

중원 무림은 어디까지나 강자존이라는 법칙과 율법을 따르지만, 지략과 전략, 그리고 학문으로 이름을 빛내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가문이 바로 제갈세가였다.

무학(武學)만이 학문의 전부가 아니라고 부르짖던 제갈세가는 황제의 스승인 태사(太師)의 자리에 올랐을 만큼 지고한 가문 중 하나였다.

제갈강 역시 가문의 뜻을 이어받아 황가와 끈을 잇는 역할을 하면서 중원 무림에서 뛰어난 학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침묵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장수하여 정파를 다시 한번 빛낼 수 있기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짧게나마 애도를 표하는 생도들은 밝은 하늘 아래 작은 별이 졌다고 느꼈다. 비록 생도들에겐 일면식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헤집는 한마디.

“염병들 하네.”

“부디 좋은 염병……. 에이씨! 뭐야, 누구야!”

신혁건이 고인의 명복을 빌다 말고 냅다 소리쳤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휙!

“…….”

고갤 돌려 본 곳에 천무린이 두 눈을 부라리며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할 말 있냐?”

“……어? 아, 아니.”

“그럼? 불만 있어?”

“아, 아니.”

“그럼 뭔데!”

뻐엉.

걷어차인 신혁건이 떼구르르 구르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잘못한 거냐고!

“그놈이 뭔 짓거리를 했는지 어떻게 알고 애도부터 하고 X랄이야? 죽은 이유는 누가 밝혀 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명복을 빌어? 왜! 사파 새끼들이나 마교 새끼들이 죽어도 애도해 보시지! 왜! 어!? 아주 그냥 다들 명문가 출신들이 많아서 우호적으로 보나 본데? 어디 또 애도해 봐! 또!”

발작을 일으키는 천무린의 말에 단체로 합죽이가 되었다. 틀린 말은 없었지만, 뭐 저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생도들이 서로를 마주 바라보면서 두 눈을 감았다.

“……녹림이랑 싸울 때, 그냥 둘걸.”

“그랬다면 저 녀석의 명복부터 빌어 줬을 텐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 녀석을 위해서 도끼에 찍혀 가면서…….”

울적해진 생도들이었다. 웬 악귀 새끼 하나가 뭔 말만 하면 저리 날뛰니 함부로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뭐! 또 말해 봐!”

행여 말이라도 할라치면.

“말 안 해? 말 안 하냐고?”

뻐엉!

말 안 한다고 걷어차이고.

“그게 가당키나 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뻐엉!

말했다고 걷어차이고.

“……죽다 살아나서 더 팔팔해진 것 같아. 열 받게.”

“더러운 세상. 누군 죽다 살아나니까 얼굴도 잘생겨지고 힘도 더 세지고!”

“제X랄.”

생도들의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어쩌랴.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호 무림은 어쨌든 강자존(强者存)이니까 말이다.

“아니, 소가주나 되는 인간이 왜 낙양에서 발견됐대? 뭐 볼 게 있다고?”

“제갈벽이 사라진 곳이 낙양이다.”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근원이 되는 곳이 낙양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삼대 무관 비무대회가 끝나기 직전에 사라진 제갈벽의 행방 때문이다.

섬서무관을 비롯한 개방과 정보 단체, 양민들에게까지 수소문을 해 봤지만, 하늘로 솟은 것인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도무지 그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제갈벽의 행방을 찾아서 제갈세가의 소가주인 제갈강이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요. 왜 소가주나 되는 인간이 낙양까지 움직였냐고요. 낙양이 어디 마을 앞 구멍가게도 아니고! 그게 중요한 부분인데, 그걸 왜 모르실까? 이 양반도 많이 나태해졌……!”

뻐엉!

걷어차인 천무린이 떼구르르 굴렀다.

“이 양반이라니! 교관님이다! 말조심해라! 이 녀석아!”

소화진의 외침에 생도들이 감격 어린 눈으로 소화진을 바라보며 목울대를 꿀꺽 삼킨다.

“여, 역시! 선배님은 뭔가 다르구나.”

“하기야 저래 봬도 무림맹에 입맹할 만큼 실력 하난 알아주잖아?”

“역시 세월을 먹은 짬밥은 무시 못 하는구나?”

허나.

벌떡 일어난 천무린이 콧김을 내뿜으며 악교운과 소화진을 둘러봤다. 뭐 틀린 말을 했냐는 듯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번엔 악교운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갈벽은 제갈강의 형이니까.”

섬서무관의 총교관인 제갈벽이 제갈강의 형이라니.

그 말에 천무린이 움직임이 우뚝하고 멈췄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흐으음……?”

뭔가 냄새가 나는데.

제갈벽은 똑똑한 놈이다. 그리고 그만큼 음침한 놈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는 놈이었다.

그랬기에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동원하여 구타와 폭행을 유도했고, 비약적으로 무위를 높이기 위해 건드려선 안 될 마공까지 건드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없이 더러워질 수 있는 인간이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진 것을 감쪽같이 은폐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진동하는 마공의 구린내를 진즉에 맡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파 무림에 더욱 큰 혼란을 가져왔을 터.

‘그런데 그런 놈이 제 동생에게 차기 가주 자리를 내주고 섬서무관 총교관 자리에 만족했다?’

제갈벽을 깊이 알지 못하는 천무린이지만, 검을 대 본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불가(不可).

‘차라리 귀신을 속이지, 내 눈은 못 속인다.’

그렇다면 무슨 꿍꿍이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구린내가 난다. 구린내가! 아주 진동을 해!”

제갈벽은 혈마공을 펼치다가 목숨을 잃었고, 그런 제갈벽의 흔적을 쫓아 낙양까지 온 제갈강마저 죽음을 맞았다.

단순히 제갈강이 형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랬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제갈벽이라는 인간이 그럴듯한 탈을 쓰고 형 노릇을 해 왔다는 전제하에서나 가능한 일.’

그러나.

‘애초에 그럴 위인이었다면 섬서무관에서 제 생도들에게 그리 지시하지 않았겠지. 그리 잘 숨기던 놈에게 일이 있었던 것이지. ……뭔가 놈을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깊은 생각에 빠져 제갈벽과 제갈강을 떠올리던 천무린이 갑자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거기다 낙양에 주름잡고 있던 쥐소굴은 소식이 끊겼고, 동시에 마교가 발호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제갈세가 두 형제의 죽음과 아무 소식이 없는 쥐소굴은 물론이고, 갑작스런 마교의 발호까지.

뜬구름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정말 마교와 연관이 있는 거라면.’

천무린의 두 눈이 깊이 침잠한다.

‘이미 정파 무림에 마교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는…… 것이겠지.’

그러면서 천무린의 고개가 천천히 웃고 떠들고 있는 생도들과 교관들을 향했다.

* * *

“끌끌끌.”

가래가 끓는 듯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로 보이는 축 처진 눈에서 드러난 안광은 노인이 살아온 세월이 무색할 만큼 빛났다.

“그래, 아직도 할 말이 남았더냐?”

한없이 추레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노인은 휙 하고 부는 바람에도 휘청일 정도로 가냘픈 몸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끄으윽.”

“끄륵, 끄륵.”

노인의 앞에서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고작 노인이 누르고 있는 힘을 이겨 내지 못해서 말이다.

“끌끌, 네놈들이 가진 정보력이 제법 뛰어나다 하여 굳이 먼 걸음을 하였더니 쓸모가 없는 아이들이로다. 쓸모가 없으면 죽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느냐, 아해들아.”

그 말에 두 사람은 버둥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발버둥 치는 모습에 노인을 바라보는 차가운 인상의 사내.

얼음장을 가져다가 얼굴에 붙인 것처럼 차가운 인상의 그는 눈앞의 노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갖춰서 고갤 숙였다.

“장로님, 죽이지 마시옵고 한번 말이라도 들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끌끌, 필요 없구나. 죽이고 직접 움직이면 되는 것을.”

“물론 그게 나을 수 있사오나…….”

장로라 불린 노인의 두 눈이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검아, 검아, 이검아, 생긴 대로 놀지 못하는구나. 차갑기는 참으로 차갑게 생긴 네가 이리도 온정을 베풀어서야 되겠느냐.”

“……죄송합니다.”

“쯧, 오냐. 이틀을 주마. 놈들의 입을 열어서 내 앞으로 가져오너라.”

“충! 장로님의 명을 받듭니다!”

이검이라 불린 차가운 인상의 사내는 납작 엎드려 장로에게 예를 갖췄고, 인기척이 사라진 뒤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쥐소굴의 공야찬과 조수강.”

이검의 호명에 바닥에 처박혀 버둥거리던 육중한 몸집의 공야찬과 삐쩍 마른 조수강이 놀라 움찔거렸다.

“들었는가? 네놈들의 가치는 정보력, 단 하나뿐이다. 가치가 무의미해지면 살아 숨 쉴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이검의 말에 두 사람의 눈이 공포로 물들어 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두 사람으로부터 당한 목숨의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살벌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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