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제152화
쿠당탕탕.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늘을 보며 땅바닥에 드러누운 송무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몸을 펄떡거렸다.
그를 끝으로 무려 오십여 명의 생도가 사이좋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 다른 이들이 보았으면 사이좋게 훈련을 마치고 지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저, 저 새끼는 어떻게…….”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거 같으냐.”
“저 새끼 몸이 성치 않다고 한 새끼, 나와……!”
“신혁건이야! 저 새끼가 그렇게 말만 안 했어도!”
“악교운 교관 어디 갔어!”
“미친놈아! 님 자 안 붙이냐! 어디 교관님께 버릇없이!”
하나같이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근데.
“왜 저 양반까지 쓰러져 있는 거냐?”
“그러게. 저 양반은 우리보다 더 흠씬 두들겨 맞지 않았냐?”
“낄낄낄낄.”
“쿡쿡쿡쿡.”
쓰러진 소화진이 자신을 향해 웃는 생도들에게 윽박질렀다.
“야! 네놈들이 저 새끼 자극해서 그렇잖아!”
“푸흐하하하!”
“크큭큭, 선배님 꼴이 말이 아닙니다! 큭큭!”
눈두덩이 퉁퉁 부은 소화진의 윽박질에 겁을 먹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무례? 아니, 이미 격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린 소화진과 8기 생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그냥 웃어 버렸다.
“내가 어쩌다가 후배 녀석들이랑 맞먹게 되어서는.”
소화진은 현 사천무관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인물이다.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는 실력자인데다 무림맹에서도 그를 주시하고 있을 만큼 뛰어난 기재다.
소검귀라고 불리며, 차갑고 정이 없어 동기들과도 그리 끈끈하지 않은 소화진이지만, 8기 생도들하고는 둘도 없는 막역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것도 다 저 녀석 때문인가.’
시체처럼 널브러진 생도들 사이에서 혼자 하품을 찍찍하고 있는 녀석.
다름 아닌 천무린이었다.
애초에 무관은 아이들을 단합시키고 혹여 있을 사파와의 각축전에 대비하여 세워진 것이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경쟁을 통해 뛰어난 무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날이 선 경쟁과 또래의 승부욕을 자극하여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게 만드는 것이 무관의 기본적인 원리이자 생리인 셈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그런 무관의 기본적인 생리마저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힐끗.
널브러진 녀석들에게서 악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흠씬 두들겨 맞고서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미 몇몇은 천재성을 드러내 소화진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것이 보일 정도다.
일반적인 무관에서 펼치는 교육 방식과 방침만으로는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애초에 오십여 명이 넘는 후보생들이 단 한 명도 탈락하지 않고 고스란히 생도로 올라가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관주님도, 교관님들도 모른 체할 수밖에 없을 정도이긴 하지.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이렇듯 결과물을 만들어 내니까.’
문제는.
하아아암?
하품을 하다 만 천무린과 눈이 마주친다.
“뭘 봐. 선배 새끼야.”
그만 눈을 질끈 감는 소화진이었다.
‘어쩌다가 저런 놈에게…….’
감긴 그의 두 눈에 살짝 이슬이 맺힌 건 착각이었을까.
소화진에게 성큼성큼 걸어가서 어서 일어나라며 한 소리 하려는 찰나,
저벅, 저벅.
그 광경을 쭉 지켜보던 설화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천무린을 바라본다. 그녀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천무린의 안위뿐이다.
“뭐 하냐?”
그러나 그녀의 걱정스러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삐딱한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으냐고요.”
다가와 천무린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그녀의 시선에 천무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해? 빙백신공 몇 성이나 쌓았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다니요. 당신을 걱정하고 있잖아요. 보면 몰라요?”
……어, 그러네.
딱히 할 말이 없다.
설화린이 다가와 천무린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는 설화린의 모습에 천무린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터벅, 터벅.
물러난 만큼 설화린이 다가와 붙는다.
터벅, 터벅.
뒷걸음질을 치다가,
터억.
아름드리나무에 등이 닿아서 더 이상 뒤로 도망갈 수가 없다.
“……뭐, 뭔데?”
당황한 듯한 그의 음성에 설화린은 요모조모 천무린을 뜯어보며 고운 손을 들어 그의 눈꺼풀을 잡아 벌렸다가 볼살을 쭉쭉 잡아당겼다가 양 귀를 잡아다 쭉 하고 늘여 본다.
“으에에, 뭐, 뭐 하는 거야?”
천무린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설화린에게 와 닿는다.
……그녀의 숨결이 닿는 듯했다.
살얼음 같은 그녀의 얼굴이 천무린에게 닿아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자, 그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처연한 표정 속에 담긴 그녀의 또렷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사슴 같은 눈망울,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가.
오뚝한 코 아래 자리한 붉은 입술은 뭇 사내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린 후보생에 불과했던 설화린은 생도가 되면서 어엿한 숙녀이자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성숙한 분위기를 띠었다.
그런 설화린의 모습에 천무린의 목울대가 꿀꺽하고 넘어간다.
꼬맹이 주제에……!
“요, 요망한!”
천무린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눈앞에 있는 그녀의 고운 아미에 딱밤을 먹이려는 순간,
쿠당탕!
어디선가 튀어나온 인영이 설화린을 밀치고 천무린의 코앞에 모습을 들이민다.
“…….”
설화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신을 밀친 인영을 바라봤다.
……으응?
“당지운?”
천무린과 설화린, 두 사람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당지운을 바라봤다.
갑자기 네가 왜…….
“크, 크흐흠. 두, 두 사람 지금 뭘 하는 건데?”
“……어?”
“모, 모두가 쳐다보고 있잖아.”
그제야 천무린과 설화린은 자신들에게 쏠린 시선을 느꼈다.
물론,
‘부럽다. 씨X.’
‘저 인성 터진 새끼인데도…….’
‘될놈될……. 빌어먹을 세상.’
‘잘생겨서 그래, X신들아.’
‘역시 세상은 잘생기고 봐야 돼.’
부러움과 질시, 질투 어린 남정네들의 시선이 전부였지만.
“시, 신성한 무관에서 무슨 짓들이냐고? 교관님이 보셨으면 야단을 쳤을 거라고.”
당지운 역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인지 호통을 치자, 천무린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 양반들 지금 어딨는데? 아오, 내가 다쳤다는데 코빼기도 안 보여? 다 뒈졌어!”
당지운 덕분에 빠져나갈 궁리를 모색한 천무린은 한걸음에 경신법을 펼쳤다. 어째선지 그 걸음은 평상시보다도 더욱 빠른 듯 보였다. 누가 잡을 새도 없이 다급히 사라진 천무린의 그림자를 아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설화린이 당지운을 노려봤다.
“뭐예요, 당신?”
“내가 뭐!”
“왜 멀쩡한 사람을 밀치고 그래요!”
“멀쩡하긴 개뿔! 안 그랬으면 입술이라도 붙을 기세던데!”
“흥! 남이야 뭘 하든 말든!”
“어디 여자가 부끄러움도 없이 말이야!”
“뭐라고요? 당신! 꼰대예요? 무슨 말이람! 나 참!”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친다. 파지직, 하고 부딪히는 시선이 어쩐지 묘한 기류를 형성했다.
그 모습에 생도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얼떨떨하고 떨떠름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말이야.”
“뭐,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은데.”
“그, 그러니까 지운이가…….”
“취, 취향이.”
뜨악한 표정을 짓던 생도들은 설마 그럴 리가 없다면서 고갯짓을 하고서는 서로를 향해 입을 다물었다.
“미친놈들아, 관주님의 손자야. 관주님의 손자라고. 너희들 다 모가지 뎅강 하고 잘리고 싶냐?”
“……아! 마, 맞다.”
생도들은 눈앞에서 봤던 모습을 기억 속에서 얼른 지워 버렸다.
* * *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쉬는 천무린은 어쩐지 진정이 안 되는 듯 애꿎은 가슴팍을 두드렸다.
“미친놈아, 전생이었으면 내 손녀딸보다 더 어려! 정신 차려!”
전각 기둥에서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혼자 자책하는 천무린이었다.
그러면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저승사자, 이 미친 새끼가 환생시키더니 이상한 짓을 한 게 틀림없지! 으아아!”
「 ……. 」
대답 없는 저승사자에게 몇 마디 욕을 더 내뱉고 있는 그에게.
“여기서 뭘 하는 겐가?”
화들짝!
천무린이 움찔하며 놀라서 뒤로 물러나자, 그 모습에 악교운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뭐 찔리는 것이라도 있나 보지.”
“뭐, 뭘 찔려요! 이 양반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커, 커흐흠.”
헛기침을 몇 번 한 천무린이 콧김을 내뿜으며 악교운을 제대로 바라본다.
“그보다 이제 어쩔 거예요?”
“어쩌긴.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제갈세가에 가지도 못했지 않느냐?”
아, 맞다.
제갈세가에 가던 길이었지?
이런 씨X.
“아오! 산적 새끼들 대가리를 다 부쉈어야 했는데. 어디 눈깔을 함부로 굴려?”
“…….”
천무린이.
다시 돌아왔구나.
두 눈에 귀기(鬼氣)를 내뿜으며 말하는 천무린의 모습에 악교운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쉰다.
“산적들의 머리통을 부수든 팔다리를 자르든 그건 둘째 치고 너의 몸 상태부터 점검해라. 어떤 미친놈이 선천지기(先天至氣)를 끌어다 쓰면서 싸움을 하느냐.”
그 말에 천무린의 입은 그만 합죽이가 되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
그러면서 악교운은 품에서 자그마한 함을 꺼내 들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열리지 않은 함에서는 특유의 향이 풍겼다.
“……뭐예요?”
“먹어라. 먹고 정양(靜養)하도록. 움직이는 건 그 뒤다.”
“이럴 시간이 어딨어요. 안 급해요?”
“급하다. 그러나.”
악교운의 시선이 천무린에게 닿는다.
“응?”
천무린 역시 악교운을 바라봤다.
휙.
“아니, 사람을 뭘 그렇게 봐요?”
그렇게 바라보다…… 천무린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녀석들도 그렇고, 이 양반도 그렇고.
단체로 왜들 이러지?
“……우리가 그렇게도 미덥더냐?”
“네?”
“너의 희생이 당연한 거라고 여기는 거냐?”
“무슨…….”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네 녀석의 몸을 초개같이 던지느냐?”
악교운의 시선 끝에 담긴 것은 나무람도, 꾸중도 그렇다고 연민도 아니었다.
그저.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비록 네 녀석에게 미치지 못하겠지만 발목을 잡지는 않으마. 그러니까…….”
그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 담겨 그의 목소리가 아주 미약하게 떨렸다.
“아, 됐어요. 알았으니까 그런 나약한 소리 하지 마요. 그냥 혼낼 거면 혼내시지. 아오, 참.”
“…….”
천무린은 그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악교운이니까.
악교운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미안해요. 앞으로 안 그럴게요.”
이번 생에 이들을 믿지 않으면 대체 누굴 믿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