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제149화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이!”
부와와아앙!
막광야가 쥐고 있는 거대한 도끼에서 형성된 부기가 그대로 담진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불그스름한 기운은 대번에 담진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 쪽으로 쪼갤 듯했다.
콰앙!
그런 부기(斧氣)에 맞서 담진은 검을 들어서 푸르스름한 반월형의 검기를 만들어 맞부딪쳤다.
“이노옴!”
어지간한 성인의 몸뚱어리는 될 법한 도끼는 전위의 거산도만큼 거대했다. 힘이라면 전위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막광야가 아니던가.
그런 그에게 한사코 정면 승부를 하려 들다니, 가소로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까드드득!
기운과 기운이 맞부딪쳐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백중세.
치열하게 주고받는 공수는 마치 미리 합을 맞추고 검을 나누는 비무처럼 척척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하릴없는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가.
막광야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도끼를 그대로 내리쳤다. 부기가 사방으로 비산하면서도 담진을 쪼개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였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 텐데.”
담진의 고저 없는 목소리와 함께 사특한 도끼질을 무수한 검영으로 맞이한다.
벼락같이 쏟아지는 검의 그림자가 거대한 도끼질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맞이하는 광경은 무인이라면 뭔가 심장을 들끓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검영에 맞춰 막광야 역시 속도를 높인다. 힘만 무식하게 강하다고 판단했던 막광야의 도끼질 속도가 더없이 빨라진다.
투쾅! 투콰가가가강!
파죽지세.
지속되던 소모전을 이번에야말로 끝내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이는 막광야의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설화린이 아랫입술을 꽉 다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담진이 진다면?
그야말로 끔찍했다.
생도들은 물론이고, 이곳에 남은 천무린과 격체전력으로 전신의 힘이 빠진 악교운까지.
모조리 몰살되는 건 예정된 수순일 터였다.
그렇다고 설화린이 나서기엔.
‘난 아직 너무 약해.’
꾸욱.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진 설화린은 애타는 시선으로 담진과 막광야의 격전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도와주려다가 담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꽈앙! 꽈가강!
천무린과 전위의 격전이 태산을 무너뜨리는 산사태였다면.
담진과 막광야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해일과도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지막지한 혈투였다
일부 생도들을 제외한 이들은 절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다, 담진 교관님의 무위가 저 정도였어?”
“믿을 수가 없군.”
“생각한 그 이상인 것 같은데.”
“너 방금 저 지독한 기본기무새 양반이 저렇게나 강할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지?”
“미친놈아! 그런 생각 안 했어!”
치열한 양상으로 번지는 그 격전은 바라보기만 해도 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큰 깨달음을 주는 전투였다.
허나.
두 사람의 승패가 전세를 크게 좌우한다고는 하나 오로지 두 사람만의 전투는 아니었다.
막광야의 비산하는 도끼의 기운이 담진에 의해 전부 해소되지 않고 날아가서는 하나둘 생도들에게 틀어박힌다.
“크아악!”
옆구리를 크게 베인 황태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튕겨 났다.
그 모습에 담진의 안광이 빛났다.
“프흐흐흐, 어떠냐? 이 기운까진 막아 내긴 힘들겠지.”
막광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말대로 막광야의 들끓는 기운은 점차 생도들에게도 타격을 줄 만큼 내력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후후.”
그러나 담진은 뒤에서 벌어지는 생도들의 모습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두 뒤로 물러나서 재정비해!”
파바바박!
튕겨 나오는 기운에 맞서 소화진이 묵빛 청운적하검을 펼쳐 내며 기운을 쪼갰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믿어 주는 것도 교관이 된 자의 도리일 터.”
소화진이 튕겨 나오는 막광야의 기운을 막느라 용을 써야만 했고, 대척점에 선 소화진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전장에서 이목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적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놈부터 죽여라!”
“지친 놈이다. 다리 한 짝부터 베어 버려!”
“모가지를 비틀어서 보여 주어라! 정파의 애송이들에게!”
악의에 찬 산적들의 발언에 절로 안색이 창백해지는 생도들이었다.
소화진마저 없으면 생도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마저 없으면.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무린이 없으면 안 되고! 담진 교관님 없으면 안 되고! 화진 선배 없으면 안 되냐! 뭐 하는 새끼들이야!”
신혁건이 선봉에 나서 창대를 낭창하게 휘두르며 눈앞에 있는 산적들 중 한 명과 격렬하게 부딪쳤다.
콰드득!
“언제까지! 의지하면서 싸울래! 애새끼들도 아니고!”
신혁건을 향해 몰려드는 산적들이 비릿한 조소를 띠며 대번에 그를 포위했다. 빠져나갈 구멍일랑 없다는 듯.
신혁건의 창끝이 산적 한 명의 검 끝에 눌려 아교처럼 떨어지질 않자, 다른 산적이 도끼를 붕붕 회전시키며 뒤에서 달려들었다.
“죽엇!”
무딘 도끼날이었지만, 찍힌다면 단숨에 신혁건의 등판이 쩍 하고 갈라질 판이었다.
허나.
콰앙!
“애새끼라니, 말이 좀 심한데? 혁건아!”
송무의 손에 잡힌 검날이 도끼질을 틀어막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 걸음 물러나 신혁건의 등과 등을 마주했다.
그 모습에 다시금 생도들은 용기백배하여 기세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어떻소? 보기만 해도 뿌듯하지 않소이까.”
담진의 담백한 미소에 막광야의 심기가 뒤틀렸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여유를 부리는 것이냐!”
콰앙!
샘솟듯 쏟아지는 붉은 기운이 담진을 찍어 누르자, 먼지바람도 함께 둘 사이를 덮쳤다.
끼기기긱.
거대한 도끼날을 얇은 검 한 자루로 막아 내며 힘겨루기를 했다.
꾸구국.
그 힘에 짓눌려 담진의 두 발이 땅바닥을 한 치 정도 파고 들어갔다.
그때.
“……후후, 급하시구려.”
다시 한번 담백한 웃음이다. 허나 그 웃음과 달리 한기가 철철 흐르는 두 눈빛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담진은 막광야를 상대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를 얕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막광야의 조급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헛소릴!”
“그대들의 우두머리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구려.”
그 말에 막광야의 도끼가 움찔거렸다. 정곡을 찔린 순간, 담진의 두 눈에 귀기가 흐른다.
몰아치는 호량채의 산적들과 생도들의 대치를 느끼고 있는 터라 담진 역시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막광야와의 승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생도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는 생도들을 끌고 가야 하는 교관이자 가르치는 스승이지 않은가.
담진과 막광야의 검과 도끼가 서로 맞부딪치면서도 지금 이곳의 전세를 이끌어 가는 두 고수이기에 주변 상황을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균형을 깨뜨리는 음성.
“부, 부채주님!”
“채주님의 사, 상태가!”
혼절한 전위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가는 모습을 본 산적들의 목소리에 막광야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고작 생도 녀석들을 눈앞에 두고 이리 지지부진하게 되다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물러날 기회를 드리겠소.”
눈앞에 있는 검수가 자꾸만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점이었다. 평상시의 막광야라면 뒤돌아볼 것도 없이 들이박았을 것이다.
허나.
“……부채주!”
“부채주니임!”
아우성치는 수하들의 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다음 세대의 녹림을 이끌어 갈 전위를 눈앞에서 죽어 가게 놔둔다면.
막광야는 대번에 벽력왕에게 찢겨 죽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막광야는 전위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택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으득.”
허나, 여기서 물러난다면 다른 의미로 문제가 생긴다.
- 사천무관이 녹림칠십이채의 주력 산채인 호량채에게 이겼다!
- 멸마신군이 녹림의 차기 군주 거산도를 이겼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이런 소문이 마치 해일처럼 중원 무림을 온통 뒤덮을 것이다.
과연 그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나저러나 최악의 상황이었다.
막광야의 도끼에 힘이 들어가며 이를 악무는 그 순간,
“붙으려면 붙든가. 다 조져 줄 테니까.
멈칫.
가볍고도 경망스러운 말투.
평소의 막광야였다면 단숨에 정수리부터 쪼갰을 버릇없는 말.
그러나.
눈앞에 선 녀석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어, 어떻게!”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믿고 따르던 전위는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그를 상대하던 녀석은 버젓이 일어나 입을 놀리고 있다.
“왜? 해 보려면 더 해 보든가. 그 모가지 따서 내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줄 테니까.”
씨익 웃는 녀석.
천무린이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채, 막광야를 응시하고 있었다.
피 칠갑을 했지만, 보여 주는 여유는 전위를 마주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 모습이 비록 허장성세라고 할지라도.
“으으…….”
“아, 악귀……. 어, 어떻게……!”
“마, 말도 안 돼!”
그의 모습은 호량채의 산적들에게 무시무시한 공포를 선사했다.
게다가 처음부터 쭉 같이 천무린의 무위를 지켜봤던 터라 충격은 배가되었다.
까딱. 까딱.
천무린의 손끝이 까딱거렸다.
그러면서 천천히 천무린의 뒤로 집결하는 생도들과 교관들.
“안 오면 내가 가고.”
당장이라도 귀신같은 경신법을 펼쳐 검을 뽑을 것 같은 귀기에 막광야는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다.”
수치와 모욕 그리고 오욕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호량채가 전멸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막광야는 지체 없이 선택지를 골랐고, 혼절한 전위와 쓰러진 산적들을 데리고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천무린과 생도들은 그들이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금.
스르륵.
털썩.
“하아, 못 해 먹겠네. 진짜.”
악교운 덕에 내력은 회복했지만, 고갈된 선천지기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급한 불을 잠깐 껐을 뿐 이후 오랜 시간 요양하며 몸을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겨우겨우 정신력으로 막광야를 노려본다고 본 도박수가 다행히도 통한 것이다.
하마터면 조질 뻔했네. 어휴.
그렇게 안도를 하고 있는 사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들.
승리를 했음에도 그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천무린만을 바라보는 이들.
“뭘 봐. 이 새끼들아. 사람 얼굴 처음 보냐?”
천무린의 삐딱한 말투에 모두가 한꺼번에 천무린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진짜로 뒈지는 줄 알았잖아!”
“미친 새끼야! 적당히 했어야지! 살다 살다 자기 생명을 깎아서 싸우는 새끼가 어딨어!”
“흐윽, 흐윽.”
“이 와중에 우는 새낀 뭐야!”
왁자지껄하게 천무린을 덮치는 이들의 모습에 천무린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나, 나……! 환자라고, 이 새끼들아아!
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