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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48화 (148/250)

제148화

제148화

악교운의 검지와 중지가 꼿꼿이 세워진 채 천무린의 전신을 난타했다.

파바바박!

손끝이 닿을 때마다 천무린과 악교운, 두 사람 다 전신에서 비 오듯 땀을 쏟아 내고 있었다.

옆에서 울먹이며 바라보는 설화린이 굳어 버릴 정도로 악교운은 무섭도록 집중했고, 천무린은 뭐라 입을 벙긋하다가 반항할 새도 없이 악교운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설화린은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두 사람이 방해받지 않도록 전신에서 한기를 뿜어냈다.

북해빙궁의 진신절기로 손꼽히는 빙백신공이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며, 대번에 만년빙과 같은 기운을 양손에 뿜어댔다.

쩌저적!

다가오는 산적들에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설화린이었다.

콰앙! 콰앙!

더불어 옆에서 담진이 막광야를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호량채의 산적들을 상대로 사천무관의 생도들은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검술을 펼쳐 냈다.

서로에게 등을 맡긴다는 것.

날 선 검이 등 뒤에 언제 와서 꽂힐지 모르는데, 자신의 동기이자 벗인 생도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는 의미였다.

그 와중에도.

콰드드드득!

“애송이 새끼들이 합쳐 봐야 애송이들이지! 나 홍가가 다 쓸어버려 주마!”

“예끼! 이놈들아! 나도 있느니라!”

호량채의 전력이자 정예인 절정의 고수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과 맞서는 생도들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꺼질 듯한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나아가 처음으로 생사결을 마주하는 생도들이 많다 보니 검을 뻗다가도 몸이 굳어 버리는 이들이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사파다! 손속에 제한을 두지 마! 망설이면 죽는 건 우리다. 동료들이 눈앞에서 죽는 꼴을 보고 싶으냐!”

소화진이 미친 듯이 검기를 뿌려 대며 생도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콰가가강!

수많은 협객행 경험과, 짧은 시간이지만 깨달음을 통해 정진한 소화진은 이 전장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혼자 상대하려 들지 말고, 모두 사천검진을 펼쳐!”

배단아까지 합세하면서 전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었다.

8기 생도들의 부족한 실전 경험을 메우기 위해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면서도 호량채의 절정 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막광야를 상대하는 담진.

천무린을 보살피는 악교운.

두 사람이 없는 지금, 소화진과 배단아만이 이 상황을 지휘하며 버텨 낼 수 있었다.

문제는.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무려 백여 명이다.

심지어 잔혈겸 야억과 같이 여기저기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갈라졌던 호량채의 산적들까지 상황을 깨닫고 이곳으로 몰려왔다.

수적인 우세도.

개개인의 무위도.

어느 것 하나 나을 게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콰지직!

“으아아아아!”

“태강아!”

태강이 날아가 뒤로 몇 바퀴나 구르더니 한 모금의 피를 토해 냈다.

호량채의 산적이 철퇴를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조소를 띠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크아악!”

다부진 명진도 온몸에 새겨진 상처들 때문에 전신에서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제기랄!”

체력적으로, 그리고 패기와 호기로움으로 등장하여 호량채와의 승부에서 승기를 잡나 싶었지만.

“크하하하하! 내 검을 받아 보거라!”

“큭큭큭큭, 똥 마려운 개XX처럼 두려움에 덜덜 떠는구나!”

“온 전신을 육편으로 만들어서 씹어 먹어 버리겠노라.”

절정 고수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흔히 말하길 절정 고수 하나가 일류 고수 열을 상대한다고 했다.

사실 절정의 고수가 내뿜는 검기의 향연은 일류급의 무인들 여럿이 힘을 내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승기가 호량채 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를 갈아붙이며 앞에 있던 산적의 도끼를 빗겨 내며 발로 걷어찬 소화진의 뒤에서 뾰족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사천검진을 펼쳐! 혼자서 무리하지 마! 무리하는 순간, 옆에 있는 동료가 다친다!”

배단아가 얇디얇은 검 한 자루를 허공에 수놓으며 사천검진을 펼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었다.

사천검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검진이다. 그저 서로의 손을 빌려서 같이 검을 펼쳐 내는 것이다.

연수합격이라는 말처럼 한 사람이 공격하면 다른 한 사람도 같이 공격한다.

그리고 강대한 적의 공격을 막을 때에도 함께 검을 들어 막아서 피해를 분산시킨다.

적재적소에 공수를 나눠 상대를 몰아칠 수도 있다.

그것이 단순한 검진의 묘리였다.

그러나.

“이익!”

“가, 갑자기 이놈들의 손발이 잘 맞는 게……!”

산적들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춰 가며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검 끝을 막으려는 찰나의 순간에 정수리를 쪼개려 드는 검격이라니.

살기 위해선 몸을 구르는 나려타곤까지 펼쳐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빌어먹을 애새끼들!”

저건 욕이 아닌 칭찬이었다.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상대가 욕을 한다. 그보다 더한 칭찬이 없다.

태강과 송무의 손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천무린이라는 악귀를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다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검을 펼칠지라도, 어느 순간에 어떤 검을 펼쳐 낼지에 대해.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신뢰한다. 믿지 않고서는 나를 맡길 수가 없는 곳이 강호였다.

지난날 천무린이 떠들었던 말 한마디가 생도들의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생도들은 절박했다.

눈앞에 있는 산적들과 직접 칼을 대 보니 알겠다.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들을 우물 안 개구리의 신세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동안 천무린이 얼마나 발버둥을 쳤었는지.

오로지 받기만 했다.

늘 받기만 하다 보니,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몰랐다.

강호는 은원이 전부인 세계.

받았으면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 늘 듣지 않았던가.

원한은 원한으로, 은혜는 은혜로.

“눈앞에 있는 놈들을 쓸어버리고 무린이를 구하자.”

“당연하지! 이 사파 새끼들. 내가 다 조져 버릴 거야.”

송무와 태강이 천무린의 은혜를 떠올리며 검을 바로잡았다. 검을 고쳐 잡은 그들에게 산적들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 녀석은 모두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 오히려 열심히 싸우지 않는 이들을 솎아 내려고.”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송무와 태강의 오른쪽에는 백리무영과 백리후가,

“흐하하하하. 저 녀석은 이런 산적들 사이를 헤집고 대장 놈을 꺾었단 거잖아?”

“야야, 대장 놈이라니? 산적 새끼라고 해야지. 저놈은 뭐가 다르냐.”

왼쪽에는 명진과 진무양이,

“산적 새끼들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호량채가 뭐냐.”

“오늘 산적들로 산적구이나 해 먹어야겠다.”

“으……. 웃기려고 한 말이야?”

뒤에는 황태와 남사익, 낭소소가 자리를 잡는다.

타다닥, 타앗!

그리고 땅을 박차며 선봉에서 창을 유연하게 뻗어 내는 신혁건과,

파바바박!

멀리서 비수를 던지며 암기와 독으로 엄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당지운까지.

그들을 필두로 다른 생도들 역시 검진을 펼치며 조금씩 나아간다.

챙! 채채채채챙!

그 모습에 소화진은 절로 이를 악다물었다.

강자가 약자를 상대하는 것?

손쉽다. 큰 변수가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그러나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한 자신감과 기백만으로는 강자만이 가진 노련함을 이겨 내기란 어렵다.

그런데 눈앞에 자신보다 후배들인 이 녀석들은.

자신조차 천무린이 만들어 준 퇴로로 도망쳤던 상황인데, 월등히 무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어째서.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이끈단 말인가.

“이번에는 우리가 지켜줄 차례다.”

“우리가 보여 준다! 가자아!”

“죽을힘을 다해 싸워!”

“아니, 그냥 여기서 죽는다고 생각해!”

“미친놈아! 여기서 왜 죽냐? 고작 산적 새끼들한테 죽고 싶냐, 넌!”

닮았다.

소화진의 시선이 한 곳을 응시했다.

악교운의 손길에 따라 사지가 뒤틀리며 몸이 펄떡거리고 있는 천무린이 보였다.

그렇구나.

녀석은 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녀석이 없는 일상은 생각해 본 적도 없겠구나.

감격에 벅차서 소화진 역시 검을 들려다가…….

“난 아직 녀석에게 덜 맞았다고!”

“미친놈! 너 그런 성향이었냐.”

“아, 아니지. 나도 패 봐야 할 거 아냐! 저놈 상판대기를!”

“암! 그렇고말고! 고작 여기서 우리가 무너져야 되겠냐. 저놈이 깨어나서 우릴 또 얼마나 놀리겠냐고!”

으응?

소화진의 감동을 한 번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생도들은 검을 정면으로 겨눴다.

두려운 적이 앞에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그제야 깨닫는 생도들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천무린이 늘 했던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말로 무거운 분위기를 가벼이 만드는 것이었다.

굳어 버린 몸을 조금이나마.

긴장으로 얼어붙은 발걸음을 약간이나마.

움직이게 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도들의 눈빛이 한 곳으로 모인다.

천무린.

죽지 마라!

그렇게 대치하며 생사결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악교운 역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대체……!’

구석구석 단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걸레짝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넝마가 되어 버린 몸에 악교운은 지체 없이 자신의 내력을 쏟아부었다.

육체적으로 손상을 입으면 지혈을 하듯이, 내력을 통해 손상된 내부의 구간 역시 잠깐이나마 돌볼 수 있었다.

‘이런 제길, 선천지기까지 끌어다 썼어?’

그러나 어찌 천무린을 욕할 수 있으랴.

녀석이 이렇게나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 상대가 호량채의 채주이자 녹림의 차기 군주로 손꼽히는 거산도 전위라면.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어쩌자고……!’

고작 약관도 지나지 않은 녀석이다.

불가사의하다고 느낄 정도로 고강한 무위와, 끝을 알 수 없는 지계, 그리고 노회한 강호들이나 펼칠 법한 생각을 하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게 뭐가 대수이랴.

어쨌건 이 녀석은.

‘내 제자이자 내가 가르치는 생도다.’

악교운의 두 눈이 깊어지며 단전 내에 잠들어 있던 잠력이 일순간 터져 나오며 악교운의 손끝에 모였다.

망가진 혈관을 일시적으로 봉합하고, 선천지기가 더 이상은 소모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파바바바박!

꽂히는 손가락 끝에 맞춰 천무린의 전신이 약동한다. 파들거리는 몸과 이어지는 충격에 천무린의 안색이 파리해져 갔지만, 악교운은 이를 악물었다.

‘버텨라. 이 녀석아! 버티지 못하면 죽는 거다.’

동시다발적으로 악교운의 내력이 천무린의 몸속 곳곳을 부드럽게 맴돌다가 말고.

슈우우우욱!

‘……!’

악교운의 단전에 잠들어 있던, 충만했던 내력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대번에 삼 할가량의 내력이 빨려 들어가다시피 하다니, 소멸되었다기보다 이것은 흡사…… 흡수가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악교운은 그런 기현상에도 멈추지 않고 천무린의 전신을 돌봤다.

사방에서 폭음이 터지는 듯한 충격음과 휩쓸리는 잔재들로 인해 영향을 받을 법했지만, 악교운은 오롯이 천무린을 돌보는 데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인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천무린의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근. 사근.

털썩.

고른 숨소리와 돌아온 천무린의 혈색을 보고 나서야 악교운은 뒤로 벌러덩 주저앉아 처음으로 깊은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빌어먹을 녀석, 끝까지 고생시키는구나.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무시해 버리겠다.”

한숨을 푹 하고 내쉰 뒤 욕지거리를 내뱉는 악교운의 말투는 거의 악담에 가까웠다.

들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모습에 악교운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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