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제143화
꽈아아앙!
꽈가가강!
꽝! 꽝!
바로 코앞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사방을 휩쓸었다.
산적들은 맨몸으로 받아 내기엔 폭풍 같은 풍압에 속절없이 밀려나 뒤로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였다.
끄그그극!
허공에서 얇은 검과 거대한 도가 몇 차례나 맞부딪쳤다.
끼기기기긱!
불똥이 사방으로 비산하였고, 녹림의 정예라고 불리는 호량채의 산적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칼밥 좀 먹었다는 자신들이 감히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꽈강! 꽈과가강!
그저 허공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과 불똥만이 어디에서 어떻게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략이나마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으아아아압!”
“후으아아아아!”
아름드리나무들이 진동에 미약하게 흔들리더니,
꽈가강! 꽝!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죄다 기의 폭풍에 휩쓸려 날아가기 시작했다.
콰직!
그리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미친 여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콰직! 콰직!
몸채만 한 나무들이 하나둘 뜯겨 나가 통째로 날아간다. 반응 속도가 뛰어난 산적들은 힘을 합쳐 막아 내기도 했지만, 대개는.
콰드드득!
“으아아아아아아! 사, 살려 줘!”
“미, 미친! 모, 모두 물러나!”
“살고 싶으면 물러나야 해!”
한편,
끼기기긱!
청명하다 못해 은은하게 흐르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검기가 줄기차게 뻗어 나오는 것은 천무린의 검이었다.
마주 바라보는 전위의 패도에도 역시 도기가 감싸고 있었다.
전위와 천무린.
천무린과 전위.
두 사람은 오직 서로만을 바라봤다.
주변에 들리는 자잘한 소음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씨익.
히죽.
두 사람은 비슷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비등할 순 없었다. 필시 누군가는 힘이 빠지기 마련이었다.
우드득. 우드드득.
팔이 부들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무린이었다.
내력도, 신력도, 모든 신체적 능력에서 전위보다 뒤떨어지는 천무린의 검 끝이 미약하게나마 밀리기 시작했다.
끼기긱.
힘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의 병장기가 천무린 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힘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겠어. 타고난 거라고 해야 하나.”
천무린의 즐겁다는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묘한 흥분과 즐거움이 뒤섞여 일종의 광기마저 엿보였다.
끼기긱.
“무엇이 그리 즐거우냐?”
거산도 전위의 대도가 조금씩 천무린의 몸에 붙더니, 결국엔.
피잇!
천무린의 지척까지 다가와 그의 왼쪽 어깻죽지를 베어 냈고,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뿐만 아니라, 전위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팔꿈치가 접혔고, 땅에 박힌 천무린의 단단한 두 다리가 점차 뒤로 밀려났다.
그러자 전위의 대도가 회수되었다가 금세 천무린을 쪼개기 위해 내리쳐진다.
쾅!
한 번.
콰앙!
두 번.
콰가강!
세 번.
가공할 만한 도격을 미친 듯이 쏟아 내는 거산도 전위의 초식에는 변화도, 부드러움도, 화려함도 없었다.
그저.
천무린이라는 존재를 이 자리에서 일도양단(一刀兩斷)해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로 힘에 모든 것을 걸 뿐.
보통은 이처럼 힘으로 무식하게 달려드는 상대를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오로지 가진 힘만 믿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만 해 오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힘에 의존한 공격은 금세 무력화시키기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녀석들끼리 싸울 때의 이야기고.’
거침없이 몰아치는 저 도격은 오롯이 힘이라는 선천적인 능력만을 믿고 내리친다고는 하나, 반대로 생각하면 오직 그 능력 하나로 저 자리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고 있다는 뜻이다.
꽈가강!
당장이라도 천무린의 검이 박살 날듯 뒤틀렸고, 동시에 검을 쥐고 있는 팔이 튕겨 날 정도로 미친 듯한 연격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
천무린의 입가에 핏물이 주르륵 새어 나왔다.
“퉤, 이 정도 몰아쳤으면 한 번쯤 방심할 만도 한데.”
천무린을 향한 공격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아예 천무린이라는 존재를 말끔히 지워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일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이 연신 즐겁다는 듯 전위는 광소를 터뜨릴 따름이었다. 귀화가 피어오르는 전위의 두 눈엔 느슨함이나 여유 따윈 없었다.
거산도라는 별호답게 당장이라도 거산을 무너뜨릴 듯 쏟아지는 도격의 폭풍 속에서는 그 누구도 살아 나올 수 없을 터.
그런 그가 이토록 천무린에게 자비 따윈 없는 공격을 쏟아붓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천무린을 본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막광야를 비롯한 호량채의 많은 산적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전위는 알 수 있었다.
고작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절정급에 다다른 것은 그만큼 천무린이 말도 안 되는 천재라는 뜻이다.
천재 중 천재, 하늘이 내린 기재여야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그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불과 십 년, 그 짧은 시간 안에 이 녀석은 중원 무림을 주름잡는 위대한 무인이 되리라는 것을.
전위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것은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전위만이 느끼고 전위만이 알 수 있는 감이었다.
그와 평생의 친우가 될 수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없앨 것.
그것이 전위가 내린 결론이었다.
차후에 벌어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적절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끝을 모르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이 녀석이 보여 주고 있는 여유로움과 호기로움.
대체 이유가 뭘까.
녹림채의 정예로, 호량채의 산적들 중 가장 강한 녀석들이 사방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전위에게서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다고 한들, 부상당한 몸으로, 산을 타는 것을 마치 숨 쉬듯 하는 녀석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천무린이 보여 주는 저 여유로운 웃음을 단순한 허세로 보긴 어려웠기에.
절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기회를 찾고 있었거든. 강해질 기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천무린의 나직한 말에 전위의 대도에 휘감긴 도기의 폭풍이 일순 멈췄다.
“반드시 죽여야 할 거야. 그렇지 못하면 나로 인해 네놈들은 물론이고, 중원 무림 내에 녹림이라는 이름은 깨끗이 지워질 테니까.”
강호의 은원이란 그런 것이다.
“무슨 연유가 됐든 날 건드린 이상 그 정도 각오는 했겠지. 후후후.”
전위, 막광야 그리고 주변의 산적들을 바라보며 입안에 머금고 있던 핏물을 보인 채 환히 웃는 천무린이었다.
핏물이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왼쪽 어깻죽지와 비틀린 피 웃음을 보이는 천무린의 모습에 전위는 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어떻게 돼먹은 놈이지.
이런 상황에서 저리 괴소를 흘려 대다니.
살기 위한 발버둥인가.
아니면, 정말로 뭐가 있는 것인가.
……시험해 보는 수밖에.
전위는 하던 생각을 끝맺음과 동시에 땅을 박찼고,
콰드득!
땅거죽이 뒤집어지며 그 자리에 있는 바닥이 뭉그러졌다.
그러자 관아에서 금지시킨 포탄을 눈앞에서 쏘기라도 한 듯,
콰아아아앙!
귀청을 때리는 폭음이 사방에 자욱하게 퍼졌다.
이어지는, 태산이라도 단숨에 무너뜨릴 듯한 도격!
전위가 익힌 거산도법을 극성으로 펼쳐 내며 모든 것을 찢어발기듯 천무린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주변의 모든 산적들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천무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면서 여태 그리 허세를 부렸던 거냐는 눈빛으로!
찰나의 순간이자, 무려 한 호흡도 지나지 않아 내리쳐지는 도격에 천무린의 몸은 그대로 두 쪽이 날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처억.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린 거목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앞에 당도한 무시무시한 도격을 목전에 두고도 천무린의 몸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동시에,
콰화아아아아아!
금빛 서광이 천무린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더니 왼손에 스며든 장엄하고도 웅혼한 불광이 터져 나오며 거산도의 도격과 마주했다.
꽈가강!
“쿨럭! 퉤.”
타다다닥, 콰직.
무려 일곱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다가 아름드리나무에 등을 마주하고서야 겨우 멈춘 천무린이 울컥하고 핏덩어리를 뱉어냈다.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소림의 백보신권과 더불어 칠십이종예의 수위를 다투는 권법이다.
허나 황금빛 휘광에 감싸인 권격으로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천무린은 뒤로 밀려나야 했고.
전위는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채 천무린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봐야 했다.
“…….”
분명 이 격돌의 승자는 전위였다. 그런데 왜 께름칙함이 더해졌는가.
놈이 소림의 무공을 펼쳐서?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무공을 펼치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어째서 네놈의 표정은…….”
핏덩이를 뱉으며 내상을 입어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를 보이는 저 녀석의 표정이.
“밝단 말이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말에 천무린은 핏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후후후.”
만신창이인 천무린은 그저 이 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으랴.
생사를 오가는 격전을 벌이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살육의 현장.
그곳에서 천무린은 전생의 감각이 돌아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숨통이 트였다.
비록.
온 근맥에 뒤틀리다 못해 꼬여 갔고, 단전이 약동하다 못해 충만한 내력을 어떻게 해서든 끌어올리고자 무섭게 자맥질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전위의 신형이 빛살처럼 전방을 향해 쏘아져 갔다. 이번에야말로 놈의 몸을 찢어발겨서 이 상황을 끝내리라.
우우웅! 폭풍 같은 기세로 순식간에 대도에 휩싸인 도기가 다시 한번 만년 거암조차 쪼갤 듯이 횡으로 베어졌다.
막는다고 할지라도 대번에 몸의 상하체를 분리시키겠다는 각오로 도를 휘두른 전위였다.
그러자 느릿하게 움직이며 천무린의 오른손에 쥔 검이 서서히 올라왔다.
끼기기기긱!
무극도, 오행도, 구궁도, 팔괘도, 칠성도 아닌.
음과 양의 조화로 어우러지는 단 하나의 오의.
그것은 상반된 기운이자 곧 하나를 뜻하는 태극이었다.
횡으로 베어 오는 대도에 맞선 천무린의 검이 마치 버들가지처럼 뒤틀리면서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았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
이화접목(移花接木).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되돌려준다.
초상승의 묘리가 담긴 태극의 검이 천무린의 검 끝에서 전위의 대도를 막았다.
타다다닥.
……아니,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모든 힘을 해소해 내지 못한 천무린의 신형이 또다시 몇 걸음이나 물러나야만 했다.
초상승의 묘리마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 땅거죽을 움푹움푹 패면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꾸구구국!
“쿨럭!”
몇 걸음이나 물러나고 나서야 천무린은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퉤에.”
또다시 울컥 올라오는 핏덩이를 뱉어내야만 했지만.
“……무당의 태극혜검(太極慧劍).”
전위의 나직한 중얼거림.
대도를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 전위는 저도 모르게 두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저릿한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희미한 통증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