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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37화 (137/250)

제137화

제137화

“본디 어려움을 같이 나누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이번 일 역시 무관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청강 관주님께서는 저를 시험하려 드시지 마시지요.”

악교운과 청강의 시선이 서로 맞부딪쳤다. 섬서무관의 무관주이자 검왕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는 정파 무림의 최고수였지만, 지금 악교운은 당백진의 대리인으로 온 것이다.

그러니 굳이 악교운이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청강의 두 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으나.

“아미타불. 그리 생각해 주신다면 마음 편히 이야기를 꺼내겠습니다.”

혜공이 둘 사이에 끼어듦으로써 자연스레 중재가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천무관과 섬서무관 사이의 긴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산기슭에서 안력을 높여 섬서무관의 입구를 감시하던 이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호리병을 들고서는 뇌까렸다.

“크으, 한발 늦었군. 아쉽게 되었어.”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채주!”

꼴깍, 꼴깍.

호리병에 든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목을 축이는 우두머리에게 아쉬움이 담긴 살벌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호피로 된 가죽을 허리춤에 둘러맨 이들의 거대한 덩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줄 정도였다.

“의뢰인들이 난리를 치겠군요.”

그들은 다름 아닌 녹림칠십이채에 속한 호량채의 산적들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는 호량채다. 의뢰인들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하라.”

스산하게 눈을 뜬 이는 호량채의 우두머리이자 녹림칠십이채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로 알려진 전위였다.

「 전위야, 전위야. 이 정도 금전이라면 1년간 걱정 없이 녹림의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해 보이는구나. 」

중원 무림의 모든 산적들의 군주에게서 전위는 단 한마디를 듣고 움직였다.

칠십이채 중에서도 실질적인 타격대 역할을 맡고 있는 호량채였으며, 벽력왕의 신임을 얻고 있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전위에게도 수많은 수하들이 있었고, 아주 가끔은 충성심이 높아 간혹,

“채주! 의뢰금이 제법 크다곤 하나 고작 돈 때문에 저희가 이리 움직인다는 것이…….”

이와 같이 자존심 상해하는 이들이 등장했는데, 전위는 그저 술을 들이켤 뿐이었다.

“채주!”

“시끄럽다. 한 번만 더 말하면 그 주둥아리를 찢어서 개밥으로 던져 버리겠다.”

그 말에 불평을 늘어놓던 산적 하나가 입을 다물었다. 전위를 오래 본 그는 전위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벽력왕께서 흡족해하신다.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

전위의 시선이 그 산적에게 닿자, 그는 반문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갤 숙일 따름이었다.

녹림칠십이채.

72채에 해당하는 수많은 산채를 다스리는 단 하나의 군주.

그가 바로 벽력왕 금태도다.

전위의 명성이 아무리 세상을 벌벌 떨게 한들 금태도라는 이름 앞에서는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벽력왕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내 소임은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무려.”

그 말에 호량채의 산적들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형제들을 배불리 만드는 일이다. 그 일에 정파 애송이들의 사정을 봐줘 가며 움직일 필요 따윈 없다. 길어 봐야 사흘이다. 각자 자리를 잡고 애송이들이 나올 때를 위해 준비하도록.”

“예!”

섬서무관 근처 기산을 떨어 울리는 산적들의 대답이었다.

* * *

와구와구.

“술! 술은 없어요?!”

“저 미친놈! 또 시작이네. 자, 여기에 곡료 있으니까 그거나 마셔.”

“하여간 섬서도 뭐 별거 없네. 쪼잔해 가지고!”

섬서무관에서 섬서를 욕하는 놈은 분명 이놈밖에 없을 거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정말 머릿속을 뜯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태강이 기가 막혀 혀를 내두르고 있는 와중에,

“너무 맛있어! 너무!”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제대로 된 음식이냐.”

허겁지겁 먹는 생도들 앞에서 음식을 조달하는 숙수들은 죽을 지경이었다. 음식 준비라면 이골이 난 그들이었지만, 오십여 명이서 끝을 모르고 입안에 들이붓는 음식들 때문에 잠시도 쉬질 못하고 있었다.

“사천 음식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향신료를 쓰지 않아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야야, 말할 시간에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

“저 새끼 때문에 제대로 밥 먹은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 또 언제 굴릴지 모르니까 어서 먹자!”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잖아. 죽더라도 먹자. 미리 많이…….”

천무린이 불러온 파장 탓에 숙수들의 얼굴이 그만 핼쑥해졌다.

“어떻게 된 인간들이 하루 종일 먹을 수가 있지…….”

“사천에서 무슨 지원을 나왔다더니…….”

이런 숙수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도들은 먹는 데 온 정신이 팔렸다.

그런 가운데,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악교운이었다. 악교운의 등장에 숙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총교관이 와서 이 광경을 본다면 응당 말릴 터였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쿠당탕!

탁자를 밟고 고기 한 점을 먹기 위해 젓가락질로 무공을 쓰는 생도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면 그것이야말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일 테니까.

“이 새끼가! 어디 내 음식에 손을!”

“야야! 넌 의리도 없냐? 좀 나눠 주면 안 되냐!”

“의리 좋아하네! 자기 거 다 처먹고 부족하니까 내 거 뺏어 먹는 거면서!”

봉두난발을 한 채 제대로 씻지도 않고서 접객청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는 이들의 모습에 천무린이 빙그레 웃었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됐는지.

그래도 딴에는 나름 품격이 있어 보였는데.

대체 어쩌다가.

“잠깐!”

악교운이 스산한 눈빛으로 생도들의 얼굴을 훑자, 거짓말처럼 소란이 잠재워졌다. 그 모습에 숙수들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러나.

“그렇게 깨작깨작 먹어서 될 일인가. 배불리 먹도록 하라. 내일부터 바로 움직여야 되니까.”

숙수들의 희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근데 뭐 하다가 이제야 온 거예요? 늙은 할아방탱들이 꼽이라도 줬어요?”

그 말에 악교운이 흐뭇하게 웃었다.

“너에게 예의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은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에이, 예의 지켜서 득 될 게 무어 있다고!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 맙시다. 후후후.”

예의는 뭔 놈의 예의! 땡중과 말코 도사에게 무슨 예의!

정말 별로지.

사천당가의 당백진도 당백진이지만, 이 두 놈의 속내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그러지 말고, 무슨 이야기 오갔는지 말해 주세요.”

삐딱한 말투에 악교운이 고개를 저었다.

제발 어디 가서 사천무관 다닌다고 하지 마라. 후보생 다 빠져나가겠다.

아무튼.

“제갈벽 총교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마교의 소행으로 보인다는구나.”

“근데 그걸 왜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한대요? 각 문파들은 뭘 하고? 섬서에 얼마나 많은 문파들이 있는데요. 종남에, 화산에, 조금 더 가면 무당도 있고, 소림도 있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다면 그리했겠지.”

“그럼 도움이 필요 없단 소리예요?”

그 말에 악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외적인 외교 활동이라고 보거라.”

“외교라고요?”

“그렇지. 왕래가 너무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지. 명분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아니, 이런 미친. 결국 친한 척하려고 그 먼 길을 제가 왔단 거예요? 아오 씨!”

당백진, 이 개새X!

마교 소행이니 뭐니 해서 왔더니 똥개 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가면 뒈졌어!

“아니, 그럼 할 일 없는 부교관 한두 명 보내면 될 것이지, 날 왜!”

“말했잖느냐. 사이가 좋아 보여야 한다고. 비무대회에서 우승자인 네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기에 좋지 않겠느냐.”

“아오! 그런 쓰잘머리 없는 일에 이 귀한 몸을 움직이게 했다니! 당백진, 이 인간을 그냥 마! 확 마!”

부들부들 떠는 천무린을 본 악교운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뭐, 물론 대외적인 그림은 좋아지는 거니까.”

씩씩거리던 천무린이 한숨을 깊게 내쉬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순 없죠.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뭐라도 하고 갑시다.”

“뭘 할 수 있단 말이냐?”

“안 그래도 무관 내에 있는 놈들끼리 치고받아 봐야 알 거 다 아는 사이라 그렇게 큰 도움도 안 되잖아요.”

그 말에 악교운이 왁자지껄하게 밥을 먹고 있는 생도들을 훑었다.

“네 말은 결국 섬서무관의 생도들과 비무라도 시키자는 말이더냐.”

“역시 척하면 착이네.”

“그런 요청을 들어줄 리가 없잖느냐.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말고!”

악교운이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란 식으로 고갤 저었으나, 천무린이 씨익 미소를 띠었다.

“오히려 저쪽에서 더 원할걸요?”

“뭐?”

“생각해 봐요. 몸이 달아오르는 건 저쪽이 더 심하겠죠.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 가뜩이나 우승을 밥 먹듯이 하던 놈들인데, 자기들 기수에 와서 우승을 못 했다? 어휴, 치가 다 떨릴 텐데.”

그러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자존심 하면 섬서무관이다. 구파에서도 가장 상위의 문파로 손꼽히는 소림과 무당이 함께하고 있으며, 검파라면 으뜸으로 치는 무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산과 종남이 있다.

천무린의 말대로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죄다 구겨졌을 그들이 어찌 행동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두고 봐요. 그리고 어차피 이렇게 왔다 갔다 시간 낭비를 하느니 얘들 더 굴리는 게 맞죠. 그렇게 꿀 빨게 할 거예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 돼요.”

그러면서 가슴을 쭉 내밀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자세를 잡는 천무린이었다.

그 말에 악교운이 재차 빙긋 웃었다.

이 사탄 새X, 정말 대단하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그러면서 이런 운명을 모르는 생도들을 훑는 악교운이었다. 웃고 떠드는 모습이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비록 봉두난발에 거지꼴을 하고 있는 놈들이었지만, 악교운의 눈에는 그저 아껴야 할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키키키킥, 눈물 콧물 쏙 빼 줄게. 이것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키키키킥.”

몸을 풀며 누구보다 악랄하게 웃고 있는 천무린을 보고 악교운은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어쩌자고 이놈한테 걸린 것이냐.

킥킥거리는 천무린, 그리고 처연하게 웃는 악교운과 자신들의 처지가 어찌 될지도 모르고 태평하게 밥을 먹는 생도들의 모습이 너무도 대비되었으나.

어쩌랴.

이것이 바로 순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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