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제136화
“이게 뭔…….”
섬서무관의 문지기이자 선위대 조장을 맡고 있는 석자문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작스레 당도한 사람들의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십여 명도 안 된다며?’
불과 몇 명만 올 거라고 전달받았는데, 몰아닥친 수십 명의 일행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보다.
“개, 개방에서 온 건지. 도대체 이 꼴은 대체…….”
개방의 거지들과 별 차이가 없는 볼품없는 모습. 옷차림이 꼬질꼬질하기 짝이 없는 데다 머리는 죄다 산발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처억.
마차에서 유유히 걸어 나온 단 두 사람은 멀쩡했고.
“사천무관의 총교관인 악교운이라 하오.”
“사천무관 8기 생도 천무린입니다.”
악교운이 보여 준 명패나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 말도 안 되는 무위를 펼쳤던 천무린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는 석자문이었다.
그러니 믿지 않을 도리가 있나.
처억.
거기다 천무린이 보여 주는, 결코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예를 갖추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무관은 그저 무공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보다 준법정신과 예의범절을 우선시하는 곳이 바로 무관이다.
사천무관이 배출한 최고의 후기지수.
멸마신군이라는 별호답게 보여 주는 정갈한 태도는 석자문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과연 멸마신군이오.”
“별말씀을.”
“그나저나…….”
힐끔.
뒤에 있는 거지꼴을 한 이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천무린은 빙긋 웃으며 손바닥을 합장하며 고갤 숙였다.
“모두 원시천존의 뜻대로 가엾은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저 길바닥에 쓰러져 나동그라진 아이들을 데리고 왔…….”
찌릿. 찌릿.
말을 하다 말고 천무린의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머리는 산발에다 깔끔했던 무복은 넝마가 된 이들이 보여 주는 살기란 그야말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살기만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천무린은 이미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오십여 명이 내뿜는 진득한 살기가 다름 아닌 한 사람을 향해 쏘아졌으니까.
어우, 쟤네들은 눈도 안 아픈가. 그만 좀 노려봐라.
“……다는 것은 거짓이고, 모두 사천무관의 생도들입니다.”
“그거야 무복의 표식을 보면 알지만, 대체 어쩌다가…….”
“커흠흠, 사천무관만의 수련법이라고 생각해 주시지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본인들이 그렇다는데.
“알겠습니다. 접객청으로 모시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선위대 대원의 안내를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귀 관의 방문에 늦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석자문의 인사를 끝으로 섬서무관에 들어선 일행은 거듭 놀라운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고 때깔 좋다?
번들번들하다?
그런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섬서무관 내부의 모습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땡중 놈들이랑 말코 놈들의 색채가 그대로 묻어났네. 으휴! 징그러.”
혀를 차는 천무린이 소림과 무당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끼며 지독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근데 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무관에 이따위로 돈을 처바른 거야?”
“무, 무린아! 쉿! 쉿! 듣겠다!”
“아니, 뭐 들으면 안 되나. 지들 돈 많다는데 칭찬이지 뭐.”
송무의 다급한 외침에도 천무린은 아랑곳하지 않다가 갑작스레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악교운을 지그시 바라보는 천무린이었다.
“……뭐가 또 불만이냐?”
“진작에 잘 키우지 그랬어요.”
“뭘 말이냐?”
“눈앞에 보고 있는 게 뭐겠어요.”
“때깔이 좋구나.”
“예.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 당연히 그렇게 보이죠.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요.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왔겠냐고요?”
“커흐흠.”
악교운이 고갤 돌렸다. 뱀눈을 한 천무린의 눈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때깔. 말 그대로 이만한 형편이 다 어디서 나왔겠는가.
비무대회의 우승이다.
우승으로 인해 얻은 상금?
상금도 물론 한몫했을 수 있겠지만, 상금보다는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상단과 표국의 관심과 후원 때문이다.
비무대회에서 우승한 이가 얻게 되는 부차적인 관심과 후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기다 섬서무관은 이미 5차례나 우승을 거둔 전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부터는 달라질 게다.”
“암요. 당연히 그래야지. 누가 우승까지 시켜 놨는데! 누가 밥상을 차려 놓고 숟가락으로 밥까지 퍼서 아가리 안에 들이밀고 있는데!”
버럭 소리치는 천무린의 말에 악교운의 어깨가 왠지 움츠러들어 보인다.
그 모습에 생도들은 절로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어쩌다가 악 교관님마저 궁지에 몰린 거야……?”
“누가 교관이고 누가 생도인지 모를 지경이야.”
“……사천무관은 망했어.”
“이왕 섬서로 온 김에 섬서무관으로 갈아탈까?”
“자신 있냐? 갈아탄 거 들키면 저 새X한테 잡혀서 사지근맥이 잘려 버릴 텐데.”
“……혹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미리 네가 날 죽여 줘.”
생도들의 잡담을 뒤로한 채 천무린이 배를 쭉 내밀며 악교운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휴, 걱정일랑 마시라고요. 올해도 비무대회 있다고 했죠? 아마 우리가 또 참가하겠지.”
“그래그래, 어차피 네 녀석이 있는데 무슨 우승이 걱정이겠느냐.”
“뭔 헛소리예요. 이번에도 참가하라고요? 그런 코흘리개들이 참가하는 대회에?”
누가 코흘리개인데.
대체 누가!
“이번엔 이 녀석들이 알아서 해야죠.”
“……그렇겠지.”
악교운이 천무린을 바라보다가 생도들의 얼굴을 훑는다. 하기야 삼대 무관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또 참가한다고 하면 형평성을 따지고 들지도 몰랐다. 아마 섬서와 산동에서 기를 쓰고 천무린의 참가를 막으려 들 것이다.
“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이번에도 우승을 거머쥐어야 이제 막 긍정적인 흐름을 탄 사천무관이 더욱 날개를 달 수 있을 터인데.
그런 걱정을 하는 악교운에게 천무린이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 천무린을 바라본 생도들의 표정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왠지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 것 같았으니까.
“이 새X들이 우승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 놓을 테니까 걱정일랑 마세요. 낄낄.”
“……자신 있느냐?”
“저 못 믿으세요?”
“아니, 믿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기왕이면 제대로 굴려 줬으면 좋겠구나.”
그 말에 천무린마저 ‘이 새X 뭐지?’ 하는 눈빛을 했다. 그리고 그걸 듣는 생도들은 고갤 떨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관을 퇴관하는 것이 내 살길이지 않을까.’
‘굳이 칼밥 먹고 살아야 하나.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냥 다 죽었으면…….’
생도들의 우울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을 뒤로한 소화진의 시선은 그저 아련할 뿐이었다.
‘……8기수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야차라고 불리는 악교운. 소화진은 함부로 할 수도 없는 거인인 그를 막 대하는 건 기본이요, 사천무관주인 당백진도 이 양반 저 양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뜻은 뭐냐.
즉, 미친X이란 소리다.
“……접객청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느라 고생하신 여독을 오늘은 푸시고 명일(明日) 해가 밝는 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내를 마친 선위대원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접객청을 서둘러 벗어났다. 천무린과 악교운 그리고 생도들의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황급히 벗어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모두 오느라 고생 많았다. 여독을 풀고 휴식을 취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생도들에게 간단히 지시를 내린 뒤, 악교운은 몸을 돌려 선위대원이 가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요?”
천무린의 물음에 악교운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요청으로 오긴 했으나, 객(客)으로서의 예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인사는 드리고 와야겠지.”
“피곤하게 사시네. 쓸데없는 예의는.”
그 말을 뒤로하고 악교운은 그저 발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명일부터 바빠질 터이니 푹 쉬는 것이 좋을…….”
“쉬긴 뭘 쉬어요. 뭘 했다고.”
천무린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갤 돌려 거지꼴이 된 생도들을 쭉 훑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계속 그렇게 쉬게 두면 버릇 나빠져요.”
저 미친 새X가 지금 뭐라는 거야.
생도들의 얼굴이 순간 험악해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정도면 이미 살인을 하고도 남을 인상들이었다.
“……나 오늘 동귀어진(同歸於盡)하고 말겠어.”
“너도냐? 나도.”
“더 살아서 뭐 하냐. 어? 더 살아서 뭐 해?”
“여기서 죽어 버리자. 대신에 저놈도 죽이고.”
으응?
다, 다들 살벌해졌네. 왜 그래, 무섭게.
이를 바드득 가는 녀석들의 모습에 천무린이 움찔거렸다.
……아하핫.
그렇게 물러나려는데, 한 인영이 불쑥 나타나 생도들과 천무린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우리 인간적으로 적당히 좀 하자. 이 새X들아, 제발.”
소화진이었다.
아마 그 자리에 소화진이 없었다면 누구 하나 죽었어도 죽었을 터였다.
* * *
“아미타불.”
“무량수불.”
혜공과 청강.
양립할 수 없는 남무당 북소림의 전대 장문인이자 섬서무관의 관주인 두 사람이 각자 불호와 도호를 외며 슬며시 앞을 응시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소이다. 아미타불.”
“아닙니다. 응당 와야 할 일입니다. 무관이 설립된 이래 서로서로 돕고자 한 의의였으나 여태 각자도생을 하느라 바빴을 뿐이지요. 시기가 늦었을 뿐 진작에 이랬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마주 바라보고 있는 악교운이 두 거인(巨人)에게 예를 갖추었다. 비록 지난날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을 걸고넘어질 만큼 이곳에 자리한 이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무량수불. 도와주러 오신 것은 고맙습니다만, 당장 쓸 수 있는 전력이라고는…….”
오십여 명이 왔으나 즉시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가 있는가 하고 꼬집는 청강의 이야기였다.
사실 8기수 생도들 정도의 전력감이야 섬서무관에도 차고 넘쳤다. 도움을 요청했는데 숫자만 많고 전력으론 제대로 쓸 수도 없는 인원들만 끌고 온 사천무관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청강이었다.
마치 자신들을 우롱하기라도 하는 듯한 사천무관의 행태다.
그러나.
“불편한 마음이 드셨다면 어쩔 수 없으나, 현 사천무관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런 것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악교운의 시선이 청강과 혜공을 응시하며 엷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