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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27화 (125/250)

제127화

제127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식이 반불구가 되어 돌아온다면?

사내로서의 구실은 물론이거니와 아래턱이 부서져 옆에서 누가 미음이라도 떠먹여 주지 않으면 평생 제 손으로 밥조차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면?

부모 된 입장에서, 부모 된 도리로 피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못 견딜 터였다.

아니, 피눈물을 흘린다는 표현으로도 한없이 부족할 터였다.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으랴.

편일현의 아비인 호표상단 단주 편도림은 두 눈을 감은 채 실려 온 아들의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눈알만 떼구르르 굴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꽈악.

“고룡표국과 대감전장에 전서구를 보내라. 내가 얼굴을 직접 보고자 한다고.”

“충!”

나직한 편도림의 말에 심복으로 보이는 이는 금세 자리를 떴다.

그리고 편도림의 주관으로 사천 무림 내에서 제법 위세를 부리는 세 아버지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고룡표국의 주인이자 국주인 고색.

대감전장 주인이자 장주인 명일석.

두 사람 역시 편도림처럼 초췌해진 얼굴이었다. 그들 사이에 감도는 침묵은 꽤 길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무친 원한이 깊었고, 그 깊은 원한은 굳이 말로 언급하지 않아도 동일한 것이었으니.

찌지직.

목소리 대신 정적을 깨뜨린 것은 종이를 찢는 소리였다.

후두둑.

사천무관주 직인이 찍힌 서찰을 찢어 흩날리는 이는 다름 아닌 고색이었다.

“시답잖은 서문 따위 볼 필요도, 보고 싶지도 않구려.”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해도 모자를 판에 제 아들들의 잘잘못을 적어 놓다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당백진을 뼈째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소.”

콰앙!

명천과 같이 실눈을 한 명일석이 역팔자로 눈썹을 꺾으며 점진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갔다. 탁자를 후려친 명일석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으드득, 천이의 밝았던 미소를 본 것이 바로 엊그제요. 그런데 허허허! 허허허허! 아비 된 입장으로 어찌 이 꼴을 보고 가만히 참을 수 있겠소.”

두말할 것도 없이 명일석이 내세우는 주장은 단 하나.

지금 당장 사천무관을 쳐들어가 당백진을 고꾸라뜨리자는 것. 그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허나.

“명 형, 진정하시오.”

편도림은 침착했다. 그 모습에 명일석은 바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노호를 터뜨렸다.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소! 대가 끊길 판이라오! 모두가 나를 비웃을 것이오! 제 아들이 병X이 되어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비라고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을 할 것이오!”

씩씩거리는 모습에 편도림과 고색은 그의 화가 가라앉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아무런 대꾸 없이 편도림이 그저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명일석은 한참을 분노하며 콧김을 내뿜다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팔짱을 꼈다.

그 모습에 편도림의 스산한 음성이 두 사람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명분이 없고, 힘이 없소.”

“명분이 왜 없소! 내 아들이 저리 병X이 되어 돌아왔는데!”

“정파 무림, 특히 사천 무림 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사천무관이오. 무엇으로 사천무관을 압박할 것이며,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겠소.”

냉정하리만치 단호한 음성.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에 움찔한 명일석이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들!”

한 소리 하려는 찰나,

“허나 우리의 적은 사천무관이 아니지.”

“……!”

“…….”

편도림의 말에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일현이를 그렇게 만든 이는 8기수 천무린이오. 현재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평가를 받는 데다 단신으로 쌍용검 파평을 무너뜨린 녀석이지.”

“……거짓이오. 어떻게 절정급의 고수를 이긴단 말이오. 그것도 갓 후보생 티를 벗은 녀석이!”

“그게 거짓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소. 어떤 수를 쓴 건지 몰라도 그만한 명예를 얻었다는 것은 세간의 이목이 그만큼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지.”

“그게 어떻다는 것이오! 편 형! 구구절절……!”

“택하시오.”

명일석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데, 편도림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터억.

자신의 모든 것인 호표상단 단주를 상징하는 패였다.

“군자보구십년불만(君子報仇十年不晩)이라 하였소이다.”

나직한 말에 고색과 명일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즉, 아직은 때가 아니니 힘을 기르자는 이야기를 하는 편도림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명패까지 꺼내 들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남다른 각오를 보여 주었다.

담담하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한 편도림의 두 눈에는.

주르륵.

붉은, 그것도 아주 시뻘건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겠소. 두 사람이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면 내 반드시 약속하리다. 천무린이라는,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도륙하고 개의 먹이로 던져 줄 것이라고.”

그 모습에 말이 많던 명일석마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제 자식을 잃어버린 아픔을 공유한 세 아버지는 그렇게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천 무림에서 제법 저력을 가진 하나의 표국, 하나의 상단, 하나의 전장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뿌리내렸던 사천무림 내에서 홀연히.

* * *

“…….”

“어……. 그러니까 이게.”

“…….”

“진짜야? 이거……?”

눈만 껌뻑이는 이들을 답답하게 바라보던 천무린이 못마땅하다는 듯 버럭 소릴 질렀다.

“빨리 안 처먹고 뭐 해! 안 먹을 거면 도로 가져간다?”

그 말에 후다닥 제 품에 무언가를 챙기는 8기수 생도들이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슬그머니 품속에 숨긴 무언가를 꺼내 힐끗 쳐다본다.

“그러니까…….”

“여, 영단이라는 거지?”

“이렇게 생긴 거구나…….”

“나 처음 봐……!”

천무린의 눈치를 한 번 살폈다 말고 연신 히죽거리는 생도들은 제 품속에 들어온 영단을 금이야 옥이야 조심스레 다뤘다.

그러면서 심드렁한 천무린의 얼굴을 보고 콧구멍을 벌렁거린 태강은 파들거리는 입술로 이야길 꺼냈다.

“과, 관주님이 약속을 지키신 거야?”

약속, 그렇다.

사천무관주 당백진에게 8기수 우승의 대가로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했던 천무린이었다. 천무린이 별의별 난리를 치면서 얻어 낸 약속이었고, 그것을 생도가 된 지금에서야 받아 냈다.

영단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적독단이었다.

“아주 안 주려고 별의별 헛소리를 해 대는 터라 받기 힘들었어. 아휴, 나이 들더니 쪼잔해져 가지고.”

사천무관주 당백진에게 쪼잔하다고 욕할 수 있는 인물은 아마 몇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생도들의 눈앞에 있는 천무린이었다.

선망의 눈초리들이 초롱초롱하게 천무린을 향했다.

아니.

뭘 그렇게들 쳐다봐.

어후! 부담스러워!

“무린아, 영단이야! 영단!”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영단이라고!”

“세상 천지에 수십 개나 되는 영단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 들었다고!”

흥분한 채 소리치는 생도들의 모습에 천무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북해빙궁의 금지옥엽이라 칭해지는 설화린 정도 되어야 이런 영단을 몇 번 봤을까. 내로라하는 명문 문파가 아닌 이상, 이 정도 되는 영단은 꿈도 꿀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못 먹지. 어떻게 먹긴! 흐아아.”

“후헤헤, 난 이거 고이 모셔 놨다가 후대에 물려줄까 하는데.”

헛소리를 하는 생도들이 늘어나자, 천무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빠직.

“아냐, 아냐. 이거 밖에다 팔면 얼마나 하려나?”

“에헤이! 얼마나 하다니! 이거 영단이야, 영단!”

“그렇지. 영단 하나에 칼부림도 나는데, 값어치를 제대로 매길 수나 있을까!”

빠직.

“이 새끼들아! 처먹지 마! 내가 다 처먹을 거니까!”

“야야! 빨리 먹어! 저 새끼 달려온다!”

“으아아아! 안 돼!”

소리치는 천무린의 모습을 보자마자 금이야 옥이야 아끼던 영단을 대번에 입안에 쏙 넣는 생도들이었다.

쏘옥.

화아아악.

입안에 쏙 하고 들어가자마자 혀끝에 닿더니 녹아 사라지는 영단.

후우우욱.

배 속이 뜨끈한 불길처럼 서서히 기운이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에 집중하는 생도들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영단의 기운!

제 내공으로 융화시키면 몇 단계나 높은 경지로……!

아, 맞다.

“한 가지 말 안 해 준 게 있는데.”

너나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에 집중하는 생도들의 귀로 천무린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일을 열었다.

“그거 독단이 기반이야. 아무래도 사천당가에서 만든 독을 기반으로 한 거니까.”

……으응?

그 말을 듣고 나니 점차 온몸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뭔 말인지 알지? 독 기운을 몰아내고 내공을 흡수하지 않으면 아마 불구가 되거나 죽게 되겠지? 껄껄.”

저, 저 새끼.

일부러!

일부러 말 안 해 준 게 분명해!

당장이라도 낄낄거리는 천무린에게 달려가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독 기운이 전신을 휘감으면서 격통으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도들이 하나둘씩 식은땀을 줄줄이 흘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끄으으윽.

하지만 입조차 열 수 없었다.

“입 열면 죽는 거 알지? 좋은 기운은 다 빠져나가고 잡기운만 남겠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 잇따르면서 꽉 깨문 입가에 검게 물든 침이 흘러나오는 생도들이었다. 심지어 온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은 명확히 독단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화아아악!

독 기운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던 생도들이 하나둘씩 대항하며 자신의 기운으로 만들어 가는 도중에 들리는 태연한 천무린의 음성.

“안 그래도 이번에 귀구의 알이랑 적독단이랑 섞어 배합한 거라고 하던데, 제법 성공적으로 만들었나 보네. 한 놈도 안 죽은 거 보니.”

뭐, 뭣!

그러니까 우리가 곧 실험체라는 소리잖…….

“낄낄, 그래도 꽤 아파하는 걸 보아하니 난 안 먹길 잘했다.”

부들부들.

“에이,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 죽지만 않으면 더 강해질걸? 꼬우면 강해지든가! 껄껄.”

생도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죽인다. 무조건. 저 개X끼.

강해지자.

그래서 언젠가 반드시.

천무린을 쓰러뜨리고 말 거야.

엉엉. 운기 도중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생도들이었다.

약해서 서러운 생도들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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